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6.08.07

환대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 울산 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투쟁이 남긴 질문

박진우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실 전략조직국장)

환대의 법칙과 조선소 현장의 역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오디세이》에는 고대 그리스의 핵심 윤리였던 '제우스의 법칙'이 자주 등장한다. "모든 이방인과 길손은 제우스가 보낸 이들이다. 손님으로 변장한 신일지도 모르는 이를 박대하는 순간, 제우스의 분노가 온 나라에 내릴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이 '환대의 법칙'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세계 조선 시장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하고, 국내 조선업계 역시 최대 수주 실적을 올리며 호황을 누리고 있는 지금, 세계 최대 단일 조선소인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터져 나온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측은 저임금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임금총액을 정해두고 식대 공제, 성과금 미지급 등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수년간 이어왔다. 급기야 지난 5월 27일, 울산현대중공업 원청의 직고용 이주노동자(E-7-3, 즉 일반기능인력 비자) 1,600여 명에게 기본급 대폭 삭감과 성과차등임금제가 포함된 인사제도 개편안을 밀어붙이며 일제히 근로계약 재서명을 강요했다. 이는 오랫동안 참아온 이주노동자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분노를 넘어 전국적 연대로, 확산되는 투쟁

 

6월 13일 울산이주민센터에서 열린 첫 결의대회에 이주노동자 150여 명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6월 17일 고용노동청 울산동부지청 앞 집회에 200여 명, 6월 28일 일산해수욕장 투쟁문화제에는 400여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집결했다.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스리랑카,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네팔 등 참여 노동자들의 국적도 더욱 다양해졌으며 현대중공업 원청 직고용 이주노동자(E-7-3)뿐만이 아니라 하청에서 일하는 E-9(비전문취업 비자) 이주노동자들도 함께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E-7-3은 특정 기술이나 자격을 갖춘 준전문·기능 인력으로 기업이 1년 단위의 단기계약 위주로 직접 선발한다. E-9은 정부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며 최초 4년 10개월까지 체류가 가능하다.)

 

이 투쟁은 전국적인 관심과 연대로 확대되었다. 7월 5일 HD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열린 ‘전국 이주노동자 공동행동 대회’에는 전국적으로 10대가 넘는 버스가 울산으로 모여 이주노동자와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사측은 사태가 커지자 공제했던 식대 일부(2023년 1월 이후 기준 700여만 원)를 환급하고 성과급 차등 지급을 철회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당사자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 개악을 밀어붙이려던 사측의 본질적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7월 29일 문현관 글로벌하우스(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기숙사)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 정주노동자, 이주노동자가 함께 참여하여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결국 정주노동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며, 현장 전체의 노동조건 후퇴를 막아야한다고 주장하며 단결과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7월 5일 전국이주노동자 공동행동대회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앞)

 

[사진] 7월 8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이주노동자 결의마당 (울산 이주민센터)

 

[사진] 7월 14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교육 (울산 동구청)

 

[사진] 7월 29일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기숙사, 문현관 글로벌하우스)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 노동조합이라는 '비빌 언덕'

 

이주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이 지속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민주노총 울산본부, 울산이주민센터를 비롯하여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와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의 헌신적인 연대가 있었다. 투쟁 초기부터 각국 언어로 된 포스터, 유인물과 현수막을 제작하고, 집회 음식과 물을 준비하는 등 실질적인 연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성과는 노동조합이 오랫동안 현장에 뿌려온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역지회 동지들과 조선소 하청지회(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선조선하청지회, 광주전남지부 전남조선하청지회), 이주노조 동지들이 정기적으로 조선소앞에서 이주공동선전전을 진행하고, △금속노조의 이주노동자 소식지 《WOW》(구 이주바지락)를 16개 언어로 번역해 공단과 지역에 배포했으며, △퇴근길 커피트럭에서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권리수첩'을 나누며 이주노동자들을 꾸준하게 만났던 시도가 울산에서 결실을 맺은 것이다.

 

노동조합이 정주노동자들만의 울타리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도 함께할 수 있는 '더 큰 울타리'이자 '비빌 언덕'으로 다가갔기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노동조합으로 함께 조직될 수 있었다. 울산 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미 다른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발빠르게 SNS를 통해 전파되어 거제와 목포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7월 5일 울산에서 열린 집회에도 참석했다. 이처럼 투쟁은 울산을 넘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함께 연대하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스리랑카 이주조합원들은 8월 초 하계휴가 기간 본국에 귀국하는 대신 한국에 남아 다른 동료들을 조직하겠다며 뜨거운 투쟁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투쟁의지를 담아서 8월 16일 서울 보신각에서 '제2차 전국 이주노동자 공동행동 대회'가 열리며, 9월 13일에는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울산 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이 서울로 상경해 투쟁하는 것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이주 정책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올해 상반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의 발표를 예정했으나, 정부 부처 간 협의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의 사용자 종속 심화, 위험의 이주화, 미등록 발생 등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근본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법무부와 고용노동부로 이원화되어 있는 이주노동 정책에서, 법무부의 인권침해적인 초단기비자로 인해 E-7-3 이주노동자의 안정적인 재고용과 체류권이 불안정하다.

 

지금도 관리자들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조선소 현장에서 노조가입을 확인하거나, 재계약을 불허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와 고용안정이 보장되어야 노동조합을 통한 실질적인 노동3권 쟁취가 가능하다는 것은 과거의 이주노동자 노조 조직화 사례를 보더라도 분명하다. 울산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전체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재명 정부의 이주정책이 ‘제한’이 아닌 ‘권리’ 중심의 정책으로 바뀔 수 있도록 많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동지들의 적극적인 환대와 연대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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