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6.08.20

피폭의 기억을 이어, 합천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로

2026 합천 비핵·평화대회

사회진보연대

지난 8월 4~6일 경남 합천군에서 '비핵·평화대회'가 열렸다. 사회진보연대는 참가단을 조직해 대회에 참가했다. 《드림투데이》의 황해윤 기자가 대회에 동행취재해, 기사를 7회 연재했다. 《드림투데이》의 허락을 받아, 그중 3개를 게재한다. 나머지 기사는 《드림투데이》에서 읽을 수 있다.

 

2026 합천 비핵·평화대회

 

사회진보연대 참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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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고향’ 낙인 벗고, 합천 ‘평화도시’ 거듭나

(기사 원문: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71673)

 

피폭자 70%가 합천 출신…15년째 비핵·평화대회
‘대물린 피폭’ 2·3세 법적 인정·특별법 개정 촉구
‘인권 도시’ 5·18 광주, 어떻게 연대할까? 과제

 

81년 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오늘의 하늘처럼 그 때의 하늘도 맑았고 사람들은 여느 때 처럼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로~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곧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오전 8시 15분, 우라늄 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됐다. 폭심지 반경 2km 이내는 즉시 초토화되었으며, 당일 즉사자만 수만 명에 달했다. 며칠 뒤인 8월 9일 오전 11시 2분, 플루토늄 폭탄 ‘팻맨’이 나가사키에 투하됐고 히로시마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1945년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피폭 문제는 현재까지 ‘이곳’ 한국에서도 세계 곳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외침이 히로시마도, 나가사키도 아닌 경상남도 합천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전두환의 고향으로 낙인 찍힌 ‘합천’이 15년째 비핵·평화대회를 이어가며 스스로를 ‘평화의 도시’로 다시 쓰고 있다.

 

4일 위령각에서 시작된 비핵평화 행진 모습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합천 일원에서 ‘피폭 81년! 제15회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Hapcheon Anti-Nuclear & Peace Festival 26)’가 ‘대물린 피폭! 법적 인정과 치유의 어울림’을 주제로 열렸다.국내 원폭 피해자, 증언을 위해 찾은 아시아 태평양 피폭자, 일본 와세다대·영남대 학생들, 한일반핵평화연대 등 반전, 평화, 비핵을 지지하는 국내외 참가자 150여 명이 함께 했다.

 

오래된 비극 위 피어난 ‘평화의 이름’

 

한국은 일본에 이은 세계 제2의 피폭국이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전체 피폭자 중 조선인은 10% 이상을 차지했다. 히로시마 당시 인구 42만 명 중 무려 14만 명이 조선인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군수공장 노동자·징용자·군인 등으로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60~70%가 합천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귀국한 피폭자들이 모여 살면서 이곳은 국내 원폭 피해의 중심지가 됐다. 합천은 이후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게 된다. 나가사키에도 상당수의 조선인 피폭자가 있었으며, 이들은 해방 이후 귀국하여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방치됐다. 귀국한 피폭자들이 합천에 모여 살면서 이곳은 국내 원폭 피해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나 합천이 품고 있는 기억은 하나가 아니다. 이곳은 또 다른 이름으로도 오랫동안 불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 합천 시민사회는 그 오래된 이미지를 스스로 벗어나려 하고 있다. ‘피폭 81년, 제15회 합천비핵·평화대회’가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대회의 주제는 ‘대물린 피폭! 법적 인정과 치유의 어울림’. 원폭 피해를 과거의 비극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행사 첫날인 4일 오후 5시, 위령각에서 시작된 비핵평화 행진은 합천읍을 지나 원폭자료관으로 이어졌다. 손팻말을 든 시민들과 피폭자, 일본과 국내 평화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걸었다. 내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발걸음은 단단했다.

 

위령각

 

합천의 비핵평화운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2012년 시작된 합천비핵·평화대회는 올해로 15회를 맞았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원폭 피해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핵무기금지조약(TPNW) 가입과 피폭자 지원 확대, 비핵평화공원 조성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독재 그늘 벗고 국경 넘은 연대의 장

 

원폭 피해자들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행사장 안에서는 원폭 피해자들의 그림과 사진, 기록물이 전시됐다. 원폭 피해자는 1945년 현장에서 피폭당한 이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세 3세 후손들까지 유전적 영향과 각종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2016년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특별법’이 제정됐지만, 후손들은 여전히 법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김선민(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피해자 자녀(2·3세)의 지원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이번 대회가 ‘대물린 피폭’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인 피폭 2, 3세들의 법적 피해자 인정과 국내외적 의미를 논한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글로벌 피폭자와 국제연대라는 주제를 통해 잊혀져가는 기억을 미래세대의 과제로 이어가며 반핵평화운동의 전선에서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특히 국경과 세대를 넘어 청년들의 ‘기억의 연대’ 만남을 통해 ‘글로벌 피폭자 연대’의 주역이 되어 반핵평화운동의 흐름을 지속해 나가자는 호소는 ‘합천의 기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뜻깊은 시작이 될 것이다.”

 

한국원폭2세환우쉼터 합천평화의집 이남재 원장의 인사말이다.

 

합천 비핵평화대회

 

둘째 날인 5일, ‘피폭 2, 3세 법적 피해자 인정과 국내외적 의미’를 주제로 한 국내외 학계 인사들의 발제와 멀리 미국, 카자흐스탄, 일본을 비롯해 국내 피폭자들의 증언 등이 이어졌다.

 

이날 주제 발제자로 나선 김경인 박사(전남대학교 강사)는 “피폭 2·3세 인정 문제는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어떤 피해를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는 한국인 원폭피해 문제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일”이라며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로서의 책임을 먼저 인정하고 그 후손 또한 명실상부한 원폭피해자임을 인정하고 일제강점과 전쟁과 원폭에 대한 책임을 미국과 일본에 강력하게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천에서 원폭피해 1세와 2세 구술 생애사를 기록해 온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이은정 교수도 발제를 통해 원폭 피해 1세와 2세들이 겪고 있는 피해에 대해 언급했다. 이 교수는 “원폭 피해자의 고통은 단순히 신체적 고통이나 질병에 국한되지 않고 전쟁, 식민 지배 귀한 이후의 차별, 빈곤, 사회적 차별과 같은 구조적 폭력에서 비롯된 사회적 고통임에도 지금까지 법과 정책은 이러한 고통을 의학적 진단, 치료, 의료비 지원으로 치환해 왔다”면서 “이는 고통의 원인을 개인의 질병이나 증상으로 국한시켜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하고 역사적 정치적 책임을 비가시화하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피폭은 1945년 8월에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한 가족의 80년의 삶 전체를 관통해 온 역사적 조건”이라면서 “부모 세대의 피폭 이후 형성된 빈곤, 교육 기회 상실, 건강 취약성, 사회적 낙인과 같은 삶의 조건은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원폭 고통도 세습되나요?” 핏빛 외침

 

이 교수는 또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교수는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국가 지자체 연구 기관이 참여하는 구술 채록 아카이빙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온 반면, 원폭 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기록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면서 “이들의 피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피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이게 할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면서 기록의 과제를 던졌다.

 

합천 비핵평화대회 참가자들

 

비핵평화대회에 함께한 시민들은 원폭 피해를 지역의 상처로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핵 없는 세상과 평화를 이야기했다. 피해의 기억을 세계 시민의 언어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2026합천비핵평화선언’을 채택했다.

 

국가폭력과 민주화의 기억을 품은 도시 광주, 핵폭력의 기억을 품은 합천. 두 도시는 서로 다른 역사를 겪었지만, 기억을 지우지 않고 공공의 가치로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있고, 증언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다음 세대에게 기억을 전하려는 시민들이 있다.

 

5·18 광주가 “인권의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진상규명과 유공자 인정을 요구해온 과정과, 합천이 원폭 2, 3세의 법적 지위를 요구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왔지만 겹치는 질문을 던진다.

 

“전엔 한국의 피폭자 피해 문제에 대해 잘 몰랐다. 피폭 문제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고, 이런 이야기들을 제 3자의 경험자로서 많은 사람들한테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합천을 찾은 한 광주 참가자의 소감처럼, 사회적 낙인을 뚫고 피폭 문제를 공론화하고 더 나아가 평화를 이야기하는 합천의 목소리에 광주는 어떤 응답을 해야할까.

 

 

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원폭2세환우회장

(기사 원문: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71678)

 

“피해자 낙인만, 지원 없어… 억울해서 숨어 살았다”
부모 피폭 숨김과 대물림된 병마 속 이중고
법적 피해 인정과 치료받을 권리 보장 촉구

 

피폭자의 아픔을 표현한 조선남의 시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구나, 너를 위하여’ 앞에 선 한정순 회장. 그는 이 시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했다.

 

“우리는 피해자라는 낙인만 있었지, 인정도 지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숨어 살았습니다.”

 

한정순 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말을 시작하기 전 여러 번 숨을 골랐다. 합천에서 태어난 그는 원폭 2세다. 부모 모두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원폭 2세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특히 다리가 너무 아팠어요. 자꾸 넘어지고,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었어요. 병원에 가도 병명이 안 나왔습니다. 그냥 ‘약하게 태어났나 보다’ 하고 살았죠.”

 

중학교를 졸업한 뒤 생계를 위해 공장에 들어갔다. 13시간씩 서서 일하는 노동이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그러나 병원은 여전히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아프다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고 했다.

 

결혼 후 첫아들이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그 순간부터 삶은 무너졌다고 했다.

 

“내 아픔보다 아이가 더 큰 고통이었어요. ‘왜 우리 아이가 이렇게 태어났을까’라는 생각뿐이었죠. 그때도 원폭과 연결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돌보고, 아픈 몸으로 버티고,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결국 가정은 유지되지 못했다. 그는 “그 시절은 지옥이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리 통증이 심해 걷지 못하게 됐고,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기어 다녔다. 손바닥이 다 까져 피가 났고, 어린 둘째는 “엄마, 여기에도 피가 있어”라며 뒤를 따라다녔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피폭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피폭 경험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는 그 질문을 받으면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혹시 원폭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화를 내셨어요. ‘원폭 맞은 나도 괜찮은데 왜 너희가 그러냐’고요.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사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히로시마에서 임신 중 피폭을 당했다. 해방 뒤 귀국했고, 그때 품고 있던 아이는 돌이 지나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후 태어난 여섯 남매는 모두 크고 작은 질환을 안고 살아왔다.

 

한 회장과 셋째 언니는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고, 다른 형제들은 뇌경색, 심근경색, 협심증, 치아 질환 등을 겪었다. 그는 “건강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병과 원폭의 연결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 것은 2004년 KBS 다큐멘터리를 본 뒤였다. 이어 원폭 2세 환우 고 김형률 씨를 만나면서 ‘나만의 고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원폭 때문에 이렇게 아픈 사람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회장은 현재까지 양쪽 다리 인공관절 수술을 포함해 12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원폭 2세를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원인은 알 수 없고, 병명은 늦게 나왔고, 국가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너무 억울했어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치료받을 권리, 인정받을 권리입니다.”

 

그는 많은 원폭 2세와 3세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지금은 피해자라는 낙인만 찍히지, 어떤 혜택도 인정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가 나서겠습니까. 하지만 인정이 시작되면 숨어 있던 사람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아픈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2008년부터 원폭2세환우회 회장을 맡아 온 그는 “싸울 때는 너무 외롭다”고 말했다. 국회를 찾아가고,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후손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일은 혼자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배우지도 못했고, 아픈 사람들이에요.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연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광주 처음 갔을 때, 너무 가슴 아파”

 

그는 2024년 처음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 참여했다. 광주에서 만난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고 했다.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같은 나라, 같은 이웃끼리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피폭의 고통을 겪었지만, 광주의 아픔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광주와 합천이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고 말했다.

 

“광주도 국가폭력의 피해자이고, 우리도 전쟁과 핵폭력의 피해자입니다. 피해자의 마음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서로의 아픔을 기억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회장은 지금도 장애를 안고 누워 있는 아들을 돌보고 있다. 원폭은 부모 세대의 기억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부모는 침묵했고,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평생을 아팠습니다. 이제는 이 이야기를 남겨야 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또 사라질 테니까요.”

 

 

원폭 2·3세 인정법, 통과 임박

(기사 원문: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71676)

 

세계 33개국 중 첫 사례… 합천서 국제연대 다짐

 

6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간담회. “No More Hiroshima! No More Nagasaki! No Nukes! Peace! Remember Hapcheon!”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간담회 참석자들.

 

원폭 피해자 2·3세를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는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결의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과되면 전 세계 33개 피폭국 가운데 2·3세까지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된다.

 

6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2026 합천비핵·평화대회’ 간담회에서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이 이 같은 상황을 전했다. ‘세계피폭자와 연대를 위한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카자흐스탄과 미국, 일본의 피폭 당사자와 국내외 대학생,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국내 원폭 피해자는 10만 1981명이 등록돼 있고, 이 중 70%가 합천 출신이다. 이미 5만 7237명이 사망했고, 현재 생존자는 1480여 명에 그친다. 2016년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법이 제정되고 2011년부터 2025년까지 7개 광역지자체가 피폭 1~3세를 대상으로 한 조례를 만들었지만, 정작 국가 차원의 법적 피해자 인정은 1세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이 원장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 결과가 다른 32개 피폭국에도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 피해자 2세 마이라 아베노바(교사), 미국 뉴멕시코주 아코마 푸에블로 원주민 원로 페투츠 길버트,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당사자 이치요, 요시자키 사치에 등이 참석해 각국의 피폭 경험을 나눴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뉴멕시코, 옛 소련의 카자흐스탄, 중국의 신장위구르, 영국의 호주, 프랑스의 알제리·폴리네시아 등 핵실험이 주로 옛 식민지나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이뤄져 왔다는 점을 짚으며, 피폭 문제를 개별 국가의 사안이 아닌 국제적 연대로 풀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사회를 맡은 이대수 목사(아시아평화시민넷 대표)는 국제 반핵운동이 거둔 성과를 소개했다. 1989년 옛 소련 해체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카자흐 핵실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냈고, 미국 네바다 핵실험 피해자들도 이에 호응해 이른바 ‘네바다-세미팔라틴스크 선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이 같은 시민사회의 요구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체결의 동력이 됐다며, 이를 “전 세계 반핵평화운동의 가장 큰 성공”으로 평가했다. 그는 국제핵무기폐기운동(ICAN)이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정작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이 조약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올해 핵무기 투하 81주년을 맞아 투하 100주년까지 남은 시간 동안 각국 시민사회가 정부에 조약 가입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간담회 후반부에서는 한일 젊은 세대 사이의 긴장이 표면화됐다. 발단은 사회자 김경묵 와세다대 교수(문화학술원)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 와세다대·인제대·영남대 학생 60여 명이 참가했지만, 배운 내용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학생은 5%도 안 될 것이라며 그 이유를 물었다.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학생은 히로시마대 유학 경험을 언급하며, 현지 친구가 올린 피폭 관련 행사 게시물에 자신은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일본에 미국이 원폭을 떨어뜨린 게 옳다고 생각하냐” “한국인이니 일본이 싫지 않냐” 같은 양자택일식 질문이 돌아올 수 있어, 복잡한 역사 문제를 섣불리 꺼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발언을 계기로 참석자들 사이에 감정이 오갔다. 한 와세다대 학생은 한국 참석자들의 일본 책임 추궁 발언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밝히며,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인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데 대한 거리감을 드러냈다. 재일교포 3세인 이치요 씨는 일본 내에서 식민 지배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왜 한국인인데 피폭자가 있느냐”고 순수하게 묻는 일본인 친구가 있을 정도라며, 젊은 일본인들이 역사를 더 공부해야 한다고 짚었다. 동시에 그는 나가사키 피폭 1세 요시자키 사치에 씨가 추도사에서 자신이 직접 책임질 부분이 아님에도 사죄의 뜻을 밝혔던 것을 언급하며, 그 말이 있었기에 참석자들이 마음을 열고 들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김경묵 교수는 “한일 젊은이들이 서로 부딪혀 보지도 않고 어떤 화해를 하겠느냐”며 이번 마찰이 오히려 화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전남대 철학과 학생 유태현 씨는 불쾌함을 표한 와세다대 학생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함께 전하며, 언어와 입장이 달라도 이를 이겨내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학년인 다른 와세다대 학생은 자신도 일본의 가해자성에 대해 배우고 있으며 관련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고 있다고 소개하면서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 그 부담을 항상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서로 다른 역사관을 존중하며 대화하는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논쟁을 지켜본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학생은 와세다대 학생의 불편함이 “일본인인 너희가 더 알아야 한다”는 말로 서둘러 봉합됐다며, 그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질문으로 발전시키는 자리가 앞으로 더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남재 원장은 이번 대회의 과제로 원폭 2·3세의 법적 피해자 인정, 피폭자 심리 치유 지원, 국제연대 확대 세 가지를 꼽으며 “피해자들이 있는 한 우리 또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간담회는 “No More Hiroshima! No More Nagasaki! No Nukes! Peace! Remember Hapcheon!”이라는 구호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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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핵 군비 경쟁이 다시 본격화되는 지금, 사회진보연대 합천 비핵·평화대회 참가단은 핵무기가 결국 민중을 겨냥한 무기이며, 그 피해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대를 이어 지속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또한 핵무기 철폐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이를 위해서는 원폭 피해의 산 증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고 목소리를 내는 한편, 시민사회가 그 기억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피폭 1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있는 지금, 원폭 피해자 2·3세를 법적 피해자로 인정하는 특별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다시는 핵무기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폭 피해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이어받아, 합천에서부터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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