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6.09.16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으로 흔들리는 세계 질서, 우리는 국제법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제법을 통한 세상 읽기』 저자와의 대화

이형호 조직국장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총성, 잔혹한 전쟁 범죄, 민족·영토 분쟁, 핵무기 고도화 등으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 국제 질서를 떠받쳐 온 국제법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커진다. 특히 국제법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 사회에서 그렇다.
 
한편 국제법의 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되어 왔다. 인류가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전쟁 범죄’라는 개념을 만들고, 전쟁을 불법화하며, 민간인 공격이나 비인도적인 무기의 사용을 금지한 것이야말로 국제법의 발전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국제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다. 국제법을 자본주의의 시녀이자 강대국이 약소국을 억압하는 도구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힘없고 억압받는 자를 위한 희망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국제법은 때로 국내 문제에 대한 외부의 개입 통로이자 주권 국가의 자율을 침해하는 수단으로 비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간 평화로운 관계의 구축에 기여하고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지렛대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국제법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국제법은 정말 힘 있는 국가 앞에서 무력한 규범에 불과한 것일까. 또 국제법은 우리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을까.
 
8월 25일, 2030 국제정치 독서모임 ‘책으로 여는 세계’(이하 ‘책여세’)는 『국제법을 통한 세상 읽기』의 저자인 정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를 초청해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눴다. 올해 여름 책여세는 국제법의 역사, 전쟁 범죄, 평화를 주제로 독서 토론을 진행했다.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읽은 이 책은 화제가 된 사건이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국제법의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국제법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제 무대에서 한국이 겪는 문제를 한국 사회의 관점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 보편의 기준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며,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에 국제법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도 짚어낸다.
 
 

국제법은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정인섭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책으로 독자들이 국제법과 친해질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며, 질문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제법은 과연 현실에서 지켜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오늘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국제법이 과연 ‘법’인가라는 의문은 100년 전에도, 지금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민법이나 형법 같은 법률 서적은 해당 법의 정의부터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제법 서적의 첫 장은 대개 “국제법이 법이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국제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다.
 
왜 이런 질문이 반복되는 것일까. 국제법에는 국내법과 달리 국가 위에 존재하는 강력한 중앙집행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국내법처럼 즉각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강대국이 국제법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면 국제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국제법의 존재 이유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 명예교수는 국제법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무엇보다 ‘전쟁’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빼앗고 도시를 파괴한 뒤 고뇌하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이처럼 수많은 살육과 파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일까. 전쟁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전쟁의 피해와 잔혹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인류가 느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국제법이 출발했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반성하며 인류는 국제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오늘날 국제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있다. 올해 1월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국제법이 필요 없다. 나의 도덕성만이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히틀러 이후 국제법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와 이란 전쟁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은 ‘국제법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하자 트럼프 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 관계자들을 제재했고, 이후에는 국제형사재판소 해체까지 공언했다.
 
그렇다면 국제법은 결국 힘의 논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강대국은 자국에 유리할 때는 국제법을 내세우고, 불리할 때는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국제법의 내용 자체가 강대국의 이해를 반영하므로 약소국은 언제나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국제법이 강대국보다 약소국에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 제약도 받고 싶지 않을 강대국에게 국제법은 일정한 제약을 가한다. 강대국이 국제법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을 펼치면서까지 자국이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강대국조차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제멋대로 행동하기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여전히 국제법이 강대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제법이 사라지면 더 많은 무력 사용이 일어날 것이며, 그런 행위를 비판할 언어도 사라진다. 세찬 빗줄기 속에서 우산이 비를 완전히 막아주지 못한다고 우산을 던져버리고 맨몸으로 비를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 세계가 무법으로 빠져드는 것 같지만, 사실 과거 세계는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일이 많았다며, 이를 통제하는 국제법의 역할은 역사적으로 점차 확대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규칙을 통해 국제 질서를 지키는 흐름이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제법의 실패 차원을 뛰어넘어 인류 문명의 실패로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초강대국도 국제법을 막무가내로 무시하지 못하는 예들을 들었다. 국제법이 필요 없다고 말한 트럼프조차도 호르무즈 해협에 관해 통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제법에 따라 합의하자고 이란에 제안했다. 소련도 미국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뒤 결국 얻은 것 없이 철수했다. 세계대전 이전과 달리, 국제법의 틀을 벗어난 제국주의적 무력행사로 결과를 내기 어려운 세상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국제법의 현실을 판단할 때에는 개별 분쟁에서 국제법이 즉각 모든 문제를 해결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국제법이 수백 년에 걸쳐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만들어 온 과정 자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법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인류가 전쟁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 온 중요한 질서이며, 모든 전쟁과 분쟁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각국이 상호 협력하고 충돌을 줄일 규칙을 제공해 왔다고 강조했다.
 

우리 삶과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국제법

 
국제법의 역할은 전쟁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제법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안전과 편리성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제법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지만 인류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 같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국제법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보여준다.
 
1) 만국우편협약: 우리가 우표만 붙이면 세계 각국으로 우편물을 보낼 수 있는 것은 1874년 만국우편협약(베른조약) 덕인데, 여기에 1900년 가입한 것이 조선(대한제국) 최초의 국제기구 가입이었다. 1949년 대한민국이 그 지위를 승계했다.
 
2) 담배규제기본협약: 편의점에 가면 담배가 계산대 뒤쪽에 따로 진열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해 2003년 채택한 ‘담배규제기본협약’이 있다. 세계 최초의 보건 분야 국제협약인 이 협약은 담뱃갑의 유해성 경고문 삽입, 미성년자 판매 금지, 판촉 활동 제한, 금연 장소 지정, 담배의 독성 성분 공개 등을 지시한다. 한국은 2005년 협약에 가입했으며, 현재 183개국이 함께하고 있다.
 
2002년 5월 8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 주재 일본 총영사관으로 진입을 시도한 탈북자 일가족이 중국 공안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
 
3)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앞 사진은 중국의 일본 총영사관에 탈북자 장길수 씨와 그의 가족들이 진입하려 하자 중국 공안이 이를 저지하는 모습이다. 이들이 총영사관에 들어가려 했던 것은 외교공관의 불가침성을 보장하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193개국 가입) 때문이다.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국제법상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이 2015년 9월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된 모습이다. [출처: 《연합뉴스》]
 
4) 범죄인 인도 제도: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한 1997년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한국인 대학생을 살해한 용의자는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를 한국으로 송환하고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간 범죄인 인도 제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어 발생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들이 국제법을 통해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5) 해외여행: 우리가 크게 어렵지 않게 여권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서 차량을 빌리고, 국제운전면허증을 이용해 운전할 수 있는 것 역시 국가 간의 합의와 국제법 덕택이다. 세계 여러 국가의 교통표지와 신호체계가 국제적인 규범과 협약에 기반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 등은 ‘2022 오존층 감소에 대한 과학적 평가’ 보고서를 내어, 1989년 발효한 몬트리올 의정서에 따라 인류가 유해 물질 사용을 줄인 덕분에 오는 2040년까지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오존층이 완전히 복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처: 《국민일보》]
 
6) 몬트리올 의정서: 1987년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 프레온 가스 등의 생산과 사용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오존층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 노력한다고 해결될 수 없기에 모든 국가의 공동 대응이 필요했다.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고 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도 국제법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처럼 국제법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전쟁을 막거나 분쟁을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 명예교수는 이러한 국제법이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는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세계가 함께 규칙을 정하고 각국이 이를 준수한다면 서로에게 편리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이는 마치 교차로에 교통경찰이 없더라도 차량들이 일정한 규칙을 지키며 원활하게 통행하는 것과 같다. 국제법 역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국가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질서를 제공한다.
 
 

국제법과 한국

 
그렇다면 국제법은 한국에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결코 작지 않다. 한국은 경제 규모 13위(2023년), 무역 규모 6위(2022년), 인구 29위(2023년)의 국가이며, 세계에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도 14위(2019년)다. 이처럼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으며 수많은 국가와 복잡한 국제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국가에게 국제법은 더욱 중요하다. 국제법은 명시적으로 국가 간 주권 평등의 원칙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중국 사신이 천자의 칙서를 전달하면 조선 왕이 무릎을 꿇고 이를 받았다. 그러나 현대 국제사회에서는 양국의 국력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표면적으로는 ‘서로 대등한 주권 국가’라는 원칙을 세우고 만난다.
 
정 명예교수는 한국은 이른바 ‘강소국’들의 사례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강소국들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지정학적으로 불리하다. 안정적인 국제관계의 확보가 중요한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평화, 인권과 같이 국제법이 담고 있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며, 자국이 이를 존중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공들여 쌓아왔다. 이들은 국제법을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하고, 일부 국가는 국제법을 헌법보다 우위에 두기도 한다. 일례로,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국제법의 강행규범에 위반되는 내용의 헌법 개정은 허용되지 않는다.
 
저자가 말했듯 국제법이 한 국가의 발전과 안보를 전적으로 보장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질서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국제법은 야만으로의 회귀를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평화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세계 시민의 공통어다. 특히 한국과 같이 강대국이 아닌 국가에 국제법은 자국의 권익을 지키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수백 년에 걸쳐 인류가 조금씩 만들어 온 규칙과 질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인류의 지혜와 희망을 담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국제법이다.
 

질의응답

 
질의응답에서는 국제법의 현재와 미래, 한국의 역할, 시민사회의 역할 등에 관한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참가자들의 질문과 저자의 답변을 일부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Q. 국제법과 더불어 국제기구들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국제기구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은 국제기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A.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는 지금 흔들리고 있지만, 애초에 인류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해외여행을 가지 말고 국내 여행만 다니라고 하면 만족할 수 있겠나. 지구 문명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국제법과 국제기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국내 정치다. 국내 정치가 잘 작동해야 세계 무대에서도 발언권이 강해진다. 집권 세력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일관성 없는 대외 정책으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아직 미숙하다.
 
Q. 독도·간도·녹둔도 등의 문제를 보면 지나친 민족주의적 접근이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토나 역사 문제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A. 민족주의적 접근은 사회를 결집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나, 그것이 보편성을 무시하면 자칫 국수주의가 되고, 오히려 민족과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당시 일본인들은 일본 군부가 애국심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잘못된 애국, 극단적인 애국은 결국 사회를 망가뜨린다.
 
특히 국제 문제에서는 자신의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국민감정에 맞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자제할 수 있는 사회가 현명하고 성숙한 사회다. 국민감정에만 관심을 가지면 여론을 오도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어 결국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다. 국제법은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주장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
 
Q.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보이듯, 우리는 오랫동안 국제 규칙을 만들기보다 ‘받아들이는’ 입장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 앞으로 한국이 국제법을 더욱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국제 규범의 형성과 발전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A. 우리가 특화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다. 예를 들어, 한국이 당장 지구 환경 보호라는 대의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환경을 오염시키더라도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후자를 택한 일이 많다. 그러나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려면 한국도 국제적 가치에 걸맞게 실천해야 한다.
 
한편, 국제법 연구도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국제법 연구가 무기나 반도체 생산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국익에 큰 효용을 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럼에도 국제법 연구에 대한 투자가 아주 부족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Q. 최근 세계가 인공지능(AI)의 군사적 사용을 규제하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이미 어느 정도 사용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국제법과 국제적 합의로 이를 규제하는 것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A. 법의 변화를 이끄는 바탕에는 과학기술의 발전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환경이 변화하면 이를 규제하기 위한 법의 내용 역시 변해야 한다. 그간 AI의 군사적 이용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국제법적 논의가 오고 갔다. 그런데 최근 AI가 전쟁의 양상을 크게 바꾸면서 법적 규제의 공백이 생겼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법의 발전은 항상 느리기 때문에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다.
 
핵무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겠다. 세계는 화학무기와 생물무기를 금지했지만,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아직 완전히 금지하지 못하고 있다. 핵무기 금지는 법의 문제를 넘어 결국 인류의 문제다. 인류의 의지에 달려 있다.
 
Q.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반전·평화,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민과 노동자, 그리고 사회운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A. 우선 시민들이 자국 중심의 사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국제관계에서 ‘우리는 정의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은 지양해야 한다. 사실 우리도 잘못할 때가 많다. 국제 문제에서 감정이 과잉될수록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늘 살펴야 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커진 만큼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운동의 역할도 매우 크다. 오늘날은 SNS의 발달로 소수의 활동가도 전 세계와 소통하며 순식간에 호소력 있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여기에 드는 비용도 거의 없다. 환경과 인권 분야에서는 웬만한 국가 이상으로 활동하는 단체도 많다. 군축 분야에서도 사회단체의 활동이 활발하다. 과거 세계보건기구(WHO)가 핵무기의 사용이 국제법상 허용되는지에 관한 판단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요청한 것도, 사회운동이 WHO 내 의사들을 조직한 덕분이었다. 대인지뢰금지협약 등도 사회단체들의 활동으로 만들어졌다. 정부나 언론이 국제법을 잘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단체도 늘고 있다. 사회운동의 역할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 국제법에 대한 정인섭 명예교수의 더 자세한 설명은 K-MOOC ‘국제법 길라잡이’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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