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 2013.06.05

제주도가 오매불망 기다린 영리병원이 '싼얼병원'?

무리한 영리병원 추진의 결과, 중국 자본이 세우려는 피부미용 병원

보건의료팀
영리병원에 대한 반대 운동은 지속될 것이다. 2009년 당시 기자회견 사진.


지난 5월 16일, 제주도는 중국 의료기업인 (주)CSC(China Stem Cell)가 ‘외국 의료기관(영리병원) 설립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보건복지부에 사전심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귀포시 호근동 제주혁신도시 동쪽 9839㎡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싼얼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48병상 규모로 성형·피부·내과·가정의학 등 4개 진료과목을 두고 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피부미용이나 항노화관련 진료를 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경제자유구역과 더불어 국내에서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경제자유구역에 설립되는 영리병원의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 도지사의 허가만 받으면 된다. 단, 허가 전 보건복지부가 해당 병원이 적법한지 등을 사전심의토록 하고 있다. 현재는 투자 업체의 자본 조달 방법 등 사업계획서 상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 보건복지부 측에서 추가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중국 자본이 영리병원 설립을 요청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정부가 그려왔던 국제병원의 상은 해외 우수의료기관과 국내 우수의료기관의 합작 법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이명박 정부 내내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해 온 송도가 아니라 제주도에서 소형 중국 영리병원이 먼저 개원하는 것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은 영리병원을 도입하여 해외 환자를 유치하고 국부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허황된 것임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논란과 갈등을 반복해 온 제주도의 영리병원 추진
정부는 외국인 정주여건 개선과 외국인환자 유치를 이유로 2005년에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허가한 바 있으며, 2006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을 제정하여 제주도 내 설립도 허가하였다. 다만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상법' 상 법인이어야만 하고, 외국인 투자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법 제정 이후 국내 유력병원이 해외 투자를 받는 방식의 사업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현재까지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실화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2008년 국내 의료기관도 제주도 내에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게 하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법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7월 도민 여론 조사결과 찬성 38.2%, 반대 39.9%로 반대가 높게 나타남에 따라 김태환 도지사는 법안 추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2009년 7월, 이 법안은 도의회를 통과하여 보건복지부의 동의를 얻은 후 국회에 제출되었다. 국회 통과에는 실패했지만 이후에도 수차례 국회에 상정되었으며 그 때마다 폐기되기를 반복하였다.

의료산업선진화의 결과가 싼얼병원?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각각 ‘의료산업화’, ‘서비스산업선진화’라는 제목을 내걸고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해왔다. 골자는 의료산업을 한국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영리병원 도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로 국·내외 우수 의료기관 유치, 의료관광을 통한 도민 소득향상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CSC는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중심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해 피부미용이나 항노화 관련 진료를 할 예정이다. 일단 ‘우수 의료기관’과는 거리가 멀며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사업계획서에는 국내 병원과 협력을 한다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라고 밝혔기 때문에 ‘도민 소득향상’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현실은 이렇다. 제주도의 주된 관광객은 단연 중국인이다. 2013년 1월부터 5월까지 제주도를 찾은 50여만 명의 관광객 중 36만 명이 중국인이었다. 의료관광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14일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주중 공관에서 발급한 의료관광 사증은 3천여 건으로 재작년에 비해 77%나 증가했다. 중요한 점은 여성의 성형수술 수요가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실제 2012년 기준으로 제주도에 등록된 외국인 환자 유치등록 의료기관 21개 중 5개가 성형외과와 피부과 의원이었다. 그런데 피부과나 성형외과 환자를 유치하는 데 정부가 이상적 모델로 제시했던 수백 병상짜리 최첨단 종합병원은 필요 없다. 현재 존재하는 개인 성형외과 의원에서도 수술과 회복이 가능하고 시설과 서비스에 신경을 쓰면 해외 환자 유치도 충분하다. 결국 의도했던 영리병원이 현실화되지 않는 과정에서 제주특별자치도는 외국계 피부미용 병원을 세울 기회만 준 셈이 되었다.

질도 나쁘고 가격도 비싼 영리병원
설령 인천 송도에서 추진하는 것과 같이 미국 유명 대학병원과의 합작 법인 병원 형태로 영리병원이 세워진다 하더라도 문제는 많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과 달리 병원에서 얻은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있다. 영리병원이 투자자의 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잉진료와 높은 의료비를 유발한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들은 이미 많다. 데버로 등에 의하면 미국 영리병원의 사망률은 비영리병원의 사망률보다 2% 가량 더 높다. 전문가들은 영리병원이 병원의 이윤을 확대하기 위해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연구 개발이나 교육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력을 줄이거나 인건비를 낮춤으로써 의료 인력의 노동강도를 심화시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 캐나다의 한 연구에 의하면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평균 19% 정도 가격이 더 비싸다. 영리병원은 행정 관리비와 마케팅 비용의 규모가 크고, 약제비와 의료 장비 이용료가 비싸며, 입원 환자들이 이용하는 부가 서비스의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공공의료를 약화시키는 영리병원
영리병원은 자체로도 결함이 많지만 공공의료를 약화시키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영리병원을 도입한 국가들은 의료 인력이 공공병원에서 민간 영리병원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로 의료관광 수입을 노린 영리병원이 급속히 늘어난 태국의 예를 들어보자. 태국에서는 민간병원 의사의 월급이 공공병원 의사의 6~11배에 이른다. 태국 보건부에 의하면 2000년 이후로 의대졸업자의 수는 일정하지만 공공병원 의사 수의 감소 추세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민간병원으로 인력이 몰리면서 공공병원에 부족한 의사 수는 2005년에 6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반면 민간병원 의사 수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3325명에서 4309명으로 29.6%나 증가했다.
의료비 지출도 전체적으로 증가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태국에서 외국인 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데 드는 자원은 내국인 환자의 4~5배에 이른다. 자원이 많이 들면 가격도 비싸진다. 인도 정부 자료에 의하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인도 도심부의 입원료는 물가변동을 고려했을 때 공공병원에서 9% 증가한 반면, 영리병원에서는 36.5% 증가했다.
위 사례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한국에 적용시켜 보자. 먼저 공공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의료 인력이 영리병원으로 빠져나가게 되면서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2009년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개발연구원에 발주한 연구용역보고서에 의하면, “영리병원 도입 시 추가로 필요한 의료인력(의사·간호사·의료기사·약사)의 공급에 있어 비영리병원으로부터의 이동은 불가피하며, 도미노 현상에 의해 현재 의료인력 공급 취약 지역의 의료인력 수급 어려움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봤다. 이 보고서는 의료비 지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고 있다. “현재의 개인병원이 영리법인 의료기관으로 20%만 전환하여도 국민의료비가 약 1조5000억 원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리병원 막아내고 흔들리지 않는 공공의료를 만들어가자!
최근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를 확대 강화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태국과 싱가폴 같은 국가들은 모두 공공병원 비중이 전체의 75%를 초과하는 국가들이다. 그런데도 의료관광을 빌미로 한 영리병원 도입으로 상당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반면 공공병원이 10%도 안 되는데 있는 공공병원마저 폐업시키는 한국에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그 해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경제자유구역법과 제주특별자치도법을 개정하여 영리병원 도입을 막아야만 한다. 나아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철회시키고 공공의료를 발전시켜 민중을 위한 보건의료를 실현시켜야 한다.

참고자료

송도 겉도는 사이 中자본 제주에 영리병원1호 신청 - 머니투데이, 2013/05/15
투자개방형 병원 국회 입법화 전력 - 제주도정뉴스, 2010/01/04

중국인 한국 의료관광 작년 77% 증가 - 연합뉴스, 2013/01/14
Y.Y. Brandon Chen and Colleen M. Flood, "Medical Tourism’s Impact on Health Care Equity and Access in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Making the Case for Regulation", Journal of Law, Medicine & Ethics. 2013 Spring;41(1):286-300.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