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 2015.05.26

왜 지금, 다시 ‘기업살인법’인가?

안전의무 위반한 조직에 의한 모든 사상사고를 강력히 처벌하자

보건의료팀
현대사회에서의 위험은 기업이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업에게 위험관리의 책임을 지우거나, 다수의 위험과 직접 관련된 부문은 공공에서 다루게 된다. 현재의 기업들은 위험을 비용으로 취급한다. 이들은 위험 관리 업무를 규제로 간주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방식이나 외주 하청 방식으로 사업화되는 것은 규제완화의 혜택 중 일부이다. 국가의 규제완화는 기업에 대한 책임을 제거하는 효과를 낳았다. 국가 역시 각종 규제완화, 보험시장 활성화 속에서 자신의 위험 규제 역할을 방기하였고, 결국 시장으로 포섭되지 못하는 위험관리대상은 방치되었다. 노동자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인 안전 보호 기능들은 제거되고, 사적인 안전 보호기능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위험요인들은 통제되지 않은 채 노동자 시민들 주위에 상존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규제되지 않은 자본과 대안도 없이 ‘공적인 안전’ 기능을 해체하기 시작한 국가의 무능·무책임이 낳은 위험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 중 하나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대형사고가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돌이켜 보기도 했다(박상은, 2015). 그 사고들의 원인이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닮은꼴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위해, 기업과 국가가 만들어낸 위험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미온적 처벌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이윤을 위해 안전을 도외시한 채 무리한 운행을 강요한 청해진 해운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고 초기에 정부 측은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을 지목하며, ‘엄벌’에 처하겠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한국의 법체계는 사고를 유발한 조직에 엄벌을 내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지 못하다. 김한식 청해진 해운 대표이사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지만, 고법재판에서 징역 7년으로 형량이 낮춰졌다.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배임횡령 등의 죄목이 다 합쳐진 형량이다.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기업의 책임자에게 현재의 법제도가 물을 수 있는 책임의 한계가 이 정도이다.

세월호 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기업이나 정부 관료가 의무사항을 소홀히 해 인명과 환경에 피해가 발생해도 이들이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형사고 직후에는 기업과 경영책임자, 담당 정부 관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며 처벌 수위 또한 낮았다. 씨랜드 화재 참사에서는 대표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서도 기관사·관제사 등만 처벌받았으며, 공사 사장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청업체의 산재사망 사고에 대해 원청업체 사업주가 책임을 지는 경우도 거의 전무하다. 2013년 대림산업의 여수산단 가스폭발사고, 삼성전자의 화성 불산유출사고, 청주SK 폭발사고 등에서 원청 사업주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영책임자 처벌자체가 어려운 법률적 한계

청해진 해운의 대표이사는 낮은 형량이라도 처벌을 받았으나,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처벌된 것 자체가 국내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최고경영진이 처벌받은 거의 유일한 다른 사례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다. 이 사건에서는 최고경영진이 옥상 증축공사를 직접적으로 지시했고, 천정 균열에 대한 후속조치를 지시하는 등의 사실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이 가능했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대표이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적용된 것은 경영진들이 화물과적을 지시·용인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사고발생에 직접 개입이 명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이들에 대한 형사책임, 기업에 대한 조직적 책임과 처벌은 전무하다. 보통은 기업의 하위직 직원이나 현장관리책임자 정도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지우는데 그치게 된다. 204명의 사상자를 낸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건의 경우 기소된 사람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자는 리조트 사업본부장으로 금고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고를 단순 자연재해가 아닌 건축물 인허가, 시공, 관리 등에서 총체적으로 부실이 드러난 인재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건축물 신축 계획과 인허가를 담당했던 코오롱건설측과 담당공무원은 전혀 책임지지 않았다. 대림산업의 여수 산업단지 폭발 사고(6명 사망, 부상 11명)에서는 대림산업 석유사업부 여수공장의 공장장, 현대제철 당진공장 가스 누출 사고(1년 동안 10명 사망)는 생산본부장 정도가 기소된 사람 중 가장 높은 직책이었다. 처벌의 수준이 이 정도에 머무르는 이유는 법인의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조직체계와 구조가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책임자, 기업자체의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자체에 대한 처벌은 어떨까?

현행 법체계에서는 기업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였더라도 개인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지만 ‘기업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에선 ‘법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기타 법률에서 양벌규정이 있는 경우 기업 처벌이 가능하다. 양벌규정이란 행위자만을 처벌하는 것이 형벌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일정한 관계가 있는 타인(법인)에 대하여도 동시에 처벌하도록 하는 규정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단서가 붙는다. 법인의 대표자나 종업원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법인이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실질적인 고용관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특수고용형태, 도급용역, 하청노동자의 경우는 기업이나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묻기 어렵다.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겠다는 판단은 특정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규모가 거대해지고, 활동방식이 자체의 조직문화 등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기업에 대한 처벌은 단순하게 그 종업원에 대한 감독상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을 위해 안전조치를 등한시하는 기업의 정책, 관행 등 조직문화가 핵심 문제이다. 현재의 양벌규정 방식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외국의 기업살인법 사례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안전의무 방기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어려운 현행법체계의 한계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 실제 ‘기업살인법’이 입법화되었다. 영국은 기업 경영진이 ‘운영실패’를 한 경우 해당 기업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처벌의 요건으로서 운영실패란 기업 내부에 적절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지 여부 또는 기업이 사업수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적절히 관리 가능한지 여부이다.

호주 수도 준주에서는 안전을 무시하거나 안전관리를 등한시하도록 조장·묵인하는 ‘기업문화’를 중시한다. 기업문화가 고위경영진의 경영방침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떠나, 그것의 존재 자체를 근거로 하여 기업의 형사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기업만이 아니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모든 단체 및 조직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범죄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업살인법

국내에서도 기업살인법(살인기업에 대한 처벌법)에 대한 논의는 2003년부터 꾸준히 진행되었고, 법의 제정은 노동안전운동에서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기업처벌을 강화하고자 하는 입법안이 3건 발의되었다. 이 법안들은 현행 양벌규정의 틀을 유지하고, 벌금을 가중하는 방식이나 과징금을 높이 부과하는 방식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기업처벌의 방식을 산업안전보건법에 기초하여 양벌 규정에 의존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를 포괄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벌금액의 상한을 높이는 것 이상의 처벌이 어렵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보다 전향적으로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기업살인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의 기업살인법 논의 참여자들은 노동자 사망을 유발하는 원인과 시민이 겪게 되는 사고의 원인이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기업의 책임 분산 조직구조로 경영책임자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점, 경영책임자가 처벌될 경우에만 양벌규정으로 기업자체를 형사 처벌할 수 있다는 현행법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이를 넘어서는 법안을 구성하였다.


안전의무 위반, 안전무시한 조직에 의한 모든 사상 사고를 강력히 처벌하자

법안에서는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사업수행이나 사업장관리에서 안전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를 위반하여 사고와 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토록 하고 있다. 또한 사기업뿐만 아니라, 안전의무가 있는 모든 ‘주체’를 처벌대상으로 포괄하여, 공기업, 공공기관, 국가 행정기관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적용대상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소에 국한 없이) 및 사업장뿐만 아니라, 다중이용시설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안전의무 위반으로 노동자, 지역주민, 이용자에게 사상이 발생한 경우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 상의 고용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특수고용형태, 도급용역 하청노동자가 재해를 당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기업처벌의 이론적 근거는 ‘위험을 방치하는 조직구조 또는 조직문화’에 두었다. 법인처벌과 관련하여 기본적으로는 양벌규정을 취하되, 안전조치의무 위반을 직접 지시하거나, 위반이 행해지고 있음을 알면서 방치・묵인・조장한 경우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였다. 형량을 강화하여, 2명 이상이 사망한 경우에는 벌금형을 없애는 방향으로 하였다. 또한 행정상의 제재로 영업정지와 허가취소 가능해졌으며, 법무부장관으로 하여금 처벌사실을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살인법 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위험에 대한 비용은 노동자·시민 모두에게 전가되고 있다. 기업의 탐욕에 밀려 안전이 낭떠러지로 추락한 순간, 산재사망과 재난사고가 발생했다. 생명과 안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 관료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책임을 묻는 과정이 분명해져야, 위험이 전가되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이를 위해 사고를 유발한 기업과 정부에 조직적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입법 관련해서는 국회입법과 청원 등이 진행되는 동시에, 대중 캠페인으로 참사 유가족과의 연대, 산재·재난사고 대응, 살인기업 선정과 언론대응 등이 필요하다.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인 세상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주제어
보건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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