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 2015.11.05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사회적 해결만이 답이다

삼성은 교섭 파기 사과하고, 조정위에 성실히 임하라!

보건의료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이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노숙 투쟁 중이다. 삼성이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지난 7월 발표한 권고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조정위 구성을 제안한 것은 삼성임에도 불구하고, 권고안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게 나오자 이를 무시하고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보상위원회’(이하 보상위)를 따로 꾸렸다. 반올림은 조정위를 통한 사회적 해결에 성실히 임하라며, 매일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사회적 해결을 위한 24시간 이어 말하기’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각계 인사들의 지지방문과 연설이 이어지고 있고, 연대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처: 반올림 페이스북]

일부언론에서는 삼성전자가 보상위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대적으로 보상을 시작하면서 반도체 직업병에 대한 논란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떠들고 있다. 그런데, 왜 반올림은 굳이 30일간이나 노숙농성을 하고 있을까? 삼성전자에 맞선 8년간의 투쟁 경과와 현재의 쟁점에 대해 살펴보고, 기업이 이윤을 위해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행태에 대한 사회적 해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8년의 투쟁, 진통 끝의 조정안과 삼성의 거부

2007년 3월, 故황유미 씨가 숨을 거뒀다.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기 전에 입사하여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한지 1년 8개월 만에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건강했던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납득할 수 없었던 황상기 님(故황유미 씨의 아버지)의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2007년 여러 노동·시민단체가 모여 시작된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8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0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린 故 황유미 등 5인에 대한 산재 인정 소송이 시작됐다. 삼성은 직·간접적인 개입을 통해 법적 공방을 이끌었고, 담배가 몸에 해롭지 않다고 담배회사 편에선 외국 전문가 단체를 초빙하기도 하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압박·회유함으로써 대응했다.

2012년 11월,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피해자 측에 대화 제의를 했다. 그렇게 삼성과 피해자 대표자로서 반올림 간 협상이 시작되었고, 1년여 간의 실무 협상 끝에 3가지 교섭 의제(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가 정해졌다. 2013년 12월, 삼성과 반올림은 드디어 본 교섭을 시작했으나 삼성이 일방적으로 “반올림은 교섭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여 파행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이 개봉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2014년 5월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이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직업병 피해자·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해 반도체 직업병 문제의 해결이 보이는 듯 했다.

교섭은 재개되었으나 여러 견해차로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2014년 8월, 반올림 교섭단에 속해 있던 6인의 피해가족들이 별도로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를 꾸렸다. 2014년 9월 삼성과 가대위의 주도로 조정위(조정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출범하였고, 우려가 되긴 했지만 12월에 반올림도 조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올해 7월 조정위는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조정권고안에는 ‘공익법인 설립’과 ‘보상 기준 및 절차’, ‘재발방지대책’, ‘사과 내용 및 방식’ 등의 내용이 담겼다. 권고안은 보완해야 할 지점은 있으나,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해 반올림이 요구하는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이라는 3가지 의제가 모두 담겨 있다.

그러나 권고안 발표 직후, 삼성전자는 조정권고안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9월에 돌연 자체 보상위를 꾸려 피해자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 조정위 권고안의 핵심인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은 빠져 있고, 보상 범위와 대상자도 축소되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해자이자 책임자 격인 삼성이 보상절차 전반을 직접 총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수미 의원에 의해 폭로된 ‘수령확인증’

최근 삼성전자가 진행하는 보상 절차의 본질이 드러났다. 은수미 의원에 의해 ‘수령확인증’이 폭로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피해신청자는 보상금 수령 후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 제기를 하면 안 되고 모든 사실을 비밀로 유지해야 하며, 위배 시 수령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삼성이 통큰 결단을 했다며, 일제히 환영 기사를 복사하듯 찍어냈다. 반올림에 대해서는 과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에 대처하는 방식 : 삼성-허베이스피릿호 사건

사회적 문제에 대처하는 삼성의 독선적 행동은 삼성-허베이스피릿호 사건(태안 기름 유출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삼성-허베이스피릿호 사건은 2007년 12월 7일, 삼성 예인선단이 끌고 가던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 부선의 와이어가 끊어져 바다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충돌해 한국 최대의 기름 유출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은 삼성 예인선단에 있었다. 삼성 예인선단이 기상악화 예보를 무시하고 출항한 데다 지역 해양청의 충돌위험 무선 경고까지 무시하고 무리하게 운항하다가 빚어진 인재였으며, 사고 후에는 무선 경고를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항해일지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삼성은 해경과 검찰의 비호 아래 아주 미약한 법적인 책임만 부담했다. 7,341억 원에 달하는 예상 책임액 중 56억만 책임진 것이다. 광범위한 오염으로 장기간 환경영향을 미친 사고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기름 유출 사고로 언급되는 1989년 미국의 엑슨 발데스호 사건에서, 엑슨사는 손해배상금 5천억 원과 징벌적 손해배상금 5천억 원을 내야했다. 엑슨사는 200% 책임을 물었지만, 삼성은 1%도 채 되지 않는 책임만을 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삼성은 대형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키고도 가장 적은 피해보상액을 내놓은 세계적 기록을 가진 기업이 되었다. 게다가 삼성중공업에 안전관리체제를 갖추도록 개선을 권고한 법원의 결정마저도, 삼성은 사고가 하청업체의 책임이라며 개선권고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소송을 벌였다.

삼성은 법정 소송을 통해 사고 책임을 최소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면서도, 기름 유출 사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태안주민들의 법정 소송에는 검찰의 비호와 막강한 변호인단을 통해 대응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집단행동을 통한 사회적 이슈화에는 피해자의 일부를 푼돈으로 포섭하여 피해자들을 분열시켜 사회적 목소리를 잠재웠다. 이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해결 과정에서 산재 소송 피해자들에게 정부·검찰의 비호와 막강한 변호인단으로 대응하면서, 피해자 일부를 포섭하여 집단행동을 분열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에 대처하는 방식 :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

이런 독선적이고, 사고의 책임을 부정하는 삼성의 태도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 누출 사고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사고는 2013년 1월, 삼성전자 공장에서 불산 공급탱크 하부 밸브에 균열이 생겨 불산이 누출되었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장시간 동안 무리한 보수작업을 하던 중 5명의 사상자(사망 1, 부상 4)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불산이 누출된 지 7시간이 넘도록 당국에 신고하지 않으면서 은폐를 시도했고, 송풍기로 불산 가스를 공장외부로 유출시켰다.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특별근로감독 결과 2000여건이 넘는 법위반 사실이 지적되었고, 삼성이 기본적인 안전 법규조차 지키지 않은 무법지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고용노동부는 삼성 반도체 공장(기흥, 화성, 온양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종합진단을 실시했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 대한 종합진단 보고서(산업안전보건공단. 2013년)

“외부점검, 안전진단을 통하여 문제점을 발굴하겠다는 자세보다는 문제가 없다고 하거나, 문제점 축소를 지향하는 왜곡된 문화가 상당히 강함”(640쪽), “회사의 안전보건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외부지적에 대한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의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근본적인 개선과 발전에 상당히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음.”(652쪽)

그런데 이 종합진단 보고서는 ‘영업비밀’이라는 명목으로 미공개 상태로 있다가, 자료를 입수한 jtbc의 보도를 통해서야 세상에 그 실체가 공개됐다. 삼성은 노동부의 조사과정에서 지적된 사항과 문제점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해당 공장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지역사회, 시민들에게 개선사항에 대해 알리고 그 과정을 설명해야 했다. 이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소송에서 증거채택을 위한 자료제출 요구에도, 노동부가 ‘영업비밀’이라며 삼성을 비호하며 제공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동자들과 지역주민들의 안전과 삶을 위협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삼성은 재벌 대기업이라는 힘을 이용해 공식적으로 지적된 문제조차 부정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에 대처하는 방식 : 메르스 사태

메르스 사태에서도 삼성의 독선은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총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사망자가 37명에 달했으며, 누적 격리자가 2,000여명에 이르렀던 메르스 사태의 중심에는 삼성이 있었다. 삼성 서울병원은 의료진의 메르스 확진 사실과 병원 내부의 감염 위험 상황을 은폐했다. 삼성병원은 메르스 확진자(14번 환자)에게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격리조치 했다고 발표했으나, 감염된 삼성병원 직원들(의사, 환자 이송요원 등)이 14번 환자와 접촉 후 확진판정을 받기까지 격리되지 않은 채 병원 업무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4번 환자 확진 이후 보건당국의 역학조사관은 병원으로부터 현장조사조차 거부 당하기도 했다.

또한, 정부의 ‘확진자 발표’에서 삼성병원 의사(35번 환자)가 누락되었고, ‘격리 대상자 발표’에서도 삼성병원의 자체 격리 대상자들이 누락되었다. 정부가 삼성 서울병원 내에서의 메르스 대응을 삼성 측에 전적으로 맡겼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삼성병원에서 70명이 넘는 메르스 집단 감염이 발생하였다. 삼성 서울병원은 2차 유행의 진원지, 감염 차단과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감염을 확산시킨 공간이 되었다. 삼성은 사회적 문제를 비밀리에 독선적으로 해결하려다 결국 전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다.

[출처: 반올림 페이스북]

삼성은 조정위에 성실히 임하고, 사회적 해결에 나서라

얼마 전 방한한 UN 인권이사회의 바쉬쿠트 툰작 인권·유해물질 특별보고관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한 삼성전자의 중재과정에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삼성전자의 많은 노동자가 인권보다는 이윤 추구에 우선순위가 있는 문화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들에게 필수적인 치료부담을 기업이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해야 할 재발 방지 조치, 안전한 화학물질 사용과 개발이라는 기업의 책임을 어느 정도 우회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눈앞의 이윤을 위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짓밟는 삼성자본에게 스스로 제대로 된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보상위를 통해 하고 있는 피해자 일부 보상도 이 국면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일 따름이다.

기업의 안전보건관리는 단순히 일개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업장 안전보건문제는 해당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거나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에서도 삼성의 편에 서서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래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이 중요하다.

조정위의 권고안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권고안은 공익법인을 통해 직업병 피해자들에 대해 보상하고, 재해예방대책을 마련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권고안이 공익법인 설립을 통한 해결을 제시한 것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단지 삼성이 피해자에게 보상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더 이상 이 땅에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독립성과 감시기능을 갖춘 기구가 기업 외부에 투명하게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공익법인을 통한 투명한 진단과 해결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독선적인 삼성에 맞선 반올림의 투쟁은 노동자•시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그 위협을 숨기는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중요한 과정이기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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