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인터뷰 | 2019.07.30

[계간 사회진보연대 발간 기념 인터뷰]우리 시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잃어버린 것

인터뷰 정리: 김진영(정책교육국장)
 

<페미니즘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필자 김유미 인터뷰

 
 
2016년 즈음부터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다. ‘메갈리아’의 탄생,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행동, 소라넷 폐지,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인기를 경유하는 그 과정은 매우 갑작스러웠고 이전과는 단절적으로 느껴졌다. 김유미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팀장이 계간 사회진보연대 2019 여름호에 발표한 <페미니즘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는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에서 가장 가시적이고 강력한 형태를 ‘전투적 여성주의’라고 명명한다. (글 전문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전문보기 클릭)
 
또한 오늘날 한국의 페미니즘 열풍을 2008년 이후 여러 국가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긍정적인 표상이나 낙태권·성폭력 등을 이슈로 한 광장 시위가 나타나는 세계적 현상의 일환으로 파악한다. 이는 경제위기로 인해 빈곤과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지만, 다양한 불만이 사회변혁운동보다는 포퓰리즘 정치로 수렴하는 현 정세의 특징 속에서 이 운동의 성격과 효과를 분석한다.
 
김유미 팀장에게 글의 주요한 분석과 논지를 살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번 글에서 최근 한국 페미니즘 열풍의 특징을 ‘전투적 여성주의’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명에는 어떤 근거가 있나요?

 
‘전투적 여성주의’는 특정한 학술 연구에 근거한 개념은 아닙니다. 영영페미, 넷페미, 래디컬(페미니스트) 등의 말보다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 열풍의 특징을 잘 담아내는 표현은 없을지 고민하다 생각해 낸 것입니다. 엄밀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이런 측면을 고민해 보자’는 제안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노동운동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전투적 경제주의’ 개념과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 노동운동의 특징이라 불리는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또는 ‘전투적 경제주의’는 강력한 파업 투쟁을 통해 임금 등의 경제적 보상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페미니즘 열풍을 보면, 상당히 공격적인 구호나 실천 방식이 특징적입니다. “재기해”라는 표현부터, 남성 대상의 몰카를 찍거나 남성 살해를 예고하는 등의 게시물이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죠. 한국 남성들의 폭력과 여성혐오를 여성들이 ‘더 세게’ 되갚아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러한 전투성의 배경일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전반의 변혁과 함께 여성해방의 전망을 고민하기보다 여성 당사자의 이해를 즉각 대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예를 들면 2018년에 불편한용기가 여섯 차례 주최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불법촬영(이른바 ‘몰카’) 이외의 사안을 다루는 것은 금지하고, ‘생물학적 여성’으로 참가자를 한정하고, 개인이 아닌 정당이나 단체의 참여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여성들이 겪는 불법촬영이라는 문제를 탈정치적이고 배타적인 문제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페미니즘 이념과 운동이 대부분 인권의 보편성, 사회 구조적 변화와 정치적 운동의 필요성 등을 전제해 온 것과는 좀 다른 양상인데요. 그런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노동자주의 그 자체는 아니듯이, 페미니즘 역시 단순히 ‘여성을 대변해서 여성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쨌든 무엇이라고 명명할 것이냐는 주된 특징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와 직결되는 거겠죠.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 열풍에서 제가 중요하게 보는 특징들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계승, 남성·조직·정치에 대한 배타성과 분리주의, 여성(문제) 우선주의, 온라인에 기반을 둔 전투적인 직접행동의 강조 등입니다.
 

‘전투적 여성주의’의 경향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집단인 워마드, 불편한용기, 비웨이브 등을 한국의 페미니즘 열풍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볼 수 있을까요? 페미니즘 열풍 내에 훨씬 다양한 입장과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도 존재하지만, 극단적인 입장을 비판하는 데에 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인지?

 
페미니즘 열풍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여성들 전부를 단일한 경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예를 들면 워마드, 불편한용기의 입장이나 실천 방식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사건들을 계기로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숫자로는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변화가 갖는 사회적 힘이 당연히 있을 거고요.
 
하지만 페미니즘 담론이나 실천에 ‘전투적 여성주의’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에서 특징적이고, 페미니스트라면 필연적으로 이 현상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2008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성폭력, 젠더폭력, 낙태죄 폐지, 성별임금격차 등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를 바탕으로 대중시위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과 같은 구도로 사회적 논쟁이 진행되지는 않았어요.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야”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게도 페미니즘 운동은 각국의 역사나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갖고 전개됩니다. ‘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열풍은 이런 양상으로 진행되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거죠. 본문에서 다루고 있듯이 그건 한국에서 청년 여성·남성들이 처한 갈등적 상황, 여성운동이 취해 온 위로부터의 제도화 전략, 2008년 이후 대중시위의 양상 등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투적 여성주의’ 경향을 대변하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래디컬(급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있는 만큼,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처했던 딜레마나 한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요.
 

해외 사례를 소개할 때 2018년 초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수잔 왓킨스의 글 ‘어떤 페미니즘인가?’의 내용을 많이 참고하고 있는데요. 수잔 왓킨스의 ‘글로벌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글로벌 페미니즘’이라는 틀의 분석이 지금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수잔 왓킨스는 현재 세계적인 페미니즘 정치학에는 헤게모니적 형태가 있으며, 그게 바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페미니즘’이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글로벌 페미니즘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①제도권 정치·경제에서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차별반대 접근법과 성주류화 전략), ②학계의 포스트 페미니즘(교차성이론), ③법률 영역에서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성별 이분법과 엄벌주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세계 각국의 주류적인 페미니즘 정책, 연구, 실천이 이러한 가이드라인 속에 움직이고 있다는 건데요.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지형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페미니즘’의 내용과 그것이 형성되어 온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바로 지금 시대(정세)에 대한 인식과 사회 변혁의 전망입니다. 페미니즘 운동이 갖고 있던 역동적 에너지와 근본적인 문제의식들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효과적으로 순치되고 변형되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새로운 운동을 만들 수 있는지는, 얼마나 참신한 실천을 하느냐에 달린 게 아니라 이전 세대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넘어서느냐에 달려 있어요. 예를 들면 2세대 페미니즘은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참정권만 얘기한 것을 1세대 페미니즘의 한계라 보고 사적 영역이라 여겨지던 문제들을 드러냈죠.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에 다시 부활한 페미니즘 운동에도 앞 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 핵심은 ‘글로벌 페미니즘’ 비판이라는 수잔 왓킨스의 주장에 저는 매우 동의가 됐어요. 그래서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2008년 이후 세계 각국의 페미니즘 대중시위가 활발하게 벌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스페인, 인도, 폴란드,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스웨덴, 이탈리아…. 놀라울 만큼 많은 국가에서 페미니즘적인 의제를 가지고 대중시위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벌어질 주요 대중시위의 내용이 페미니즘이 될 것이라고는 저도 상상해보지 못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까지 나온 분석들보다 앞으로 나와야 할 이야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21세기라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시간대가 찾아왔지만 불평등과 불안, 폭력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심해졌다는 ‘감각’을 지금 시대 젊은이들이 공유하고 있는데요. 그 퇴행을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이슈가 바로 여성 문제인 것 같아요. 경제위기 속 기업의 보수화는 고용에서의 여성 차별로, 남성들의 불안과 박탈감은 여성혐오나 폭력으로 표출되니까요. 여성의 삶에 대한 긍정적 전망 속에 어느 세대보다 많이 교육받은 20~30대 여성들이 막상 성인이 되고 맞닥뜨린 현실에 강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입니다.
 

본문에서 미국, 라틴아메리카, 유럽의 페미니즘 대중운동 사례를 살펴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미국의 사례로는 캠퍼스 성폭력 반대 캠페인, 워싱턴 여성행진, 미투 운동을 살펴봤는데요. 그 사례들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게 정치권(민주당의 전략)에 포섭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캠퍼스 성폭력 반대 캠페인과 미투 운동은 성폭력 문제를 가시화 시켰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음에도 형법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죠.
 
반면에 라틴아메리카와 남부 유럽의 사례에서는 긍정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여성들 스스로 거대한 규모의 대중 시위와 토론을 진행하며 아래로부터 운동의 역동성을 만들었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특히 이탈리아에서 두드러지는데요. 성폭력에 대한 엄벌주의를 지양하고 여성의 권리와 주체화, 직장·학교·지역 등 공동체의 변화를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긴축 반대, 의료민영화 저지 등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의 사회운동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이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에도 아주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다양한 운동세력의 교류, 공동의 토론과 실천이 운동을 보다 풍부하게 발전시키리라는 점에서 그렇고요. 지금 젊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이 세계적인 경제위기라는 조건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고려했을 때도 관련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이나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이라는 쟁점을 다루더라도, 일터에서 여성들의 지위, 여성과 남성 노동자 모두를 포괄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국가가 돌봄 노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책임지는지 등의 다양한 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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