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19.10.08

안전운임제 시행과 최근 ILO 지침의 의의와 과제

임월산(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
 
요즘 노동자운동, 사회운동 내에 ‘임금’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다. ‘소득’과 ‘경제 성장’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함께 구조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수준 보장 목표와 경제·고용 안정성 확보 목표의 양립 어려움이 논쟁의 핵심에 있다. 더불어 이행적 목표로서 노동자 간 소득 격차 축소를 통해 계급적 단결의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임금요구(체계)에 대한 모색도 논쟁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제도’

 
이 논쟁에 집중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운수부문에 새로운 ‘임금’체계가 도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놓치고 있다. 특수고용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제도라고 할 수 있는 ‘안전운임제’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하 화사법)의 일부 개정안 형태로 작년 3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올해 7월부터 현재까지 최저임금위원회를 모델로 설립된 ‘안전운임위원회’에서 화주와 운수사업자, 화물차주(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공익위원들이 내년 컨테이너 트레일러와 벌크시멘트(BCT) 차량 등 일부 차종에 적용할 최저운임의 산출 모델과 수준을 놓고 교섭하고 있다. 개정 화사법에 의하면 올해 10월 31일 전에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안전운임을 공표해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로서 화물노동자는 임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안전운임제가 규제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라 운송서비스의 가격인 ‘운임’이다. 그러나 안전운임이 운송사업의 평균 운영비용(운송원가)에 더해 노동력에 대한 적정 보수로 산출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최저 소득 수준을 보장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국과 외국의 운임모델은 같은 원칙에 의해 구성돼 있지만 노무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다르다. 외국의 안전운임모델에서는 화물차주의 노동력에 대한 보수를 ‘노무비’로 산출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의 법제도와 관행의 한계로 인해 국내에서 이 구성항목을 ‘적정 이윤’또는 ‘적정 소득’으로 칭한다.)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제도와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는 안전운임제의 목적이다. 최저임금 제도와 달리 안전운임제는 소득수준 보장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 제고도 주요 목표로 삼는다. 화사법은 안전운임을 “화물 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의 보장을 통하여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으로 정의하여 과도하게 낮은 운임이 위험한 운전행위를 유도하여 화물차 사고의 위험성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적정운임 보장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운임과 도로안전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해외연구는 풍부하다. 이는 특히 호주의 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한 중요한 근거가 됐다. 최근에는 국내 화물운송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이광훈과 김태승(2017)은 한국 화물운송시장의 대표차종인 일반 카고형 차량 관련 자료를 이용한 회귀분석을 통해 운임이 1만원 상승할 때 사고발생횟수가 3.19% 감소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두 번째 차이는 최저임금제와 달리 안전운임제는 대기업의 공동부담을 강제하는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 화사법에 따라 안전운임위원회는 운수사업자가 화물차주(특수고용 화물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최소한의 운임(‘안전위탁운임’)뿐 아니라 도로운수 다단계 하청구조의 정점에 있는 최종 운수서비스 구매자인 화주가 운수사업자에게 지급해야하는 최소한의 운임(‘안전운송운임’)도 결정한다. 화주보다 영세한 운수사업자가 운영비용에 더한 적정이윤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안전위탁운임을 지급해야 하는 운수사업자의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다. 물론 안전운임 지급 능력이 없는 중간업체들을 시장에서 퇴출시켜 하청의 단계(운송서비스의 거래단계 또는 공급사슬의 단계)를 축소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중간업체의 퇴출이 이루어진다면 도로화물시장에 만연한 중간착취의 해소뿐 아니라 안전사고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광훈과 김태승(2017)의 분석에 의하면 운송서비스의 거래단계가 한 단계로 늘어나면 사고발생횟수는 30.78%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안전운임 모델

 
안전운임제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최근 10년 동안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많아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맥락과 도로운송시장 구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현재 호주와 캐나다, 미국의 일부 주, 그리고 네덜란드 전국 차원에서 안전운임제, 혹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들을 일반화하면 이상적 ‘안전운임 모델’을 추출할 수 있다. 그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운영비용 회수(cost recovery), 노동력에 대한 보수와 모든 노동시간에 대한 보수 지급이 보장된다. 즉, 한국의 안전운임제도와 마찬가지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위한 해외 안전운임제도들은 운수서비스의 운영비와 노무비로 산출된 운임모델을 포함한다. 또한 운전시간뿐 아니라 상하차와 대기시간을 비롯한 비운전 노동시간에 대해 보수가 지급되도록 규정한다.
 
② 최저임금(운임) 및 관련 노동조건의 보장이 가능하도록 최종 운송서비스 구매자(화주)를 비롯해 다단계 하청구조에 참가하는 모든 사업자(‘공급사슬 행위자’)에게 ‘강제적 실천 의무’(mandatory due diligence)가 부여된다. 나라마다 방법이 다르지만 해외 안전운임제도들은 특수고용노동자와 직접 계약하거나 피고용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자 뿐 아니라 공급사슬 위 단계에 있는 다른 사업자들도 규제한다. 화주나 다른 운수서비스 구매자가 맺은 계약의 조건이 화물노동자에게의 적정 임금(운임)의 지급을 불가능하게 만들면 사후적인 처벌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화주가 내는 운임을 정하는 한국 안전운임제처럼 일부 경우에는 사전적 의무도 부여된다.
 
③ 안전운임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감독제도 및 위반에 대한 신속한 시정이 가능하게 하는 분쟁처리와 처벌제도가 존재한다.
 
④ 노동조합이 안전운임제의 준수를 강제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일부 나라에서는 감시·감독기관으로서 노동조합의 기능이 법 또는 단협에 의해 제도화된다. 예컨대 호주의 일부 주에서는 법령과 운수노조와의 단협에 따라 화주와 물류회사들이 계약관계 및 구매한 운수서비스에 관한 주요 자료 모두를 노조에 공개하도록 돼 있다.
 

운수부문 양질의 일자리와 교통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

 
안전운임제의 세계적 확산에 발맞추어 국제사회에서도 안전운임제의 국제 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Transport Workers’ Federation, 이하 ITF)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논의는 최근에 운수부문에 관한 ILO 전문가회의를 계기로 한층 구체화되었다.
 
지난 9월 23~27일, 스위스 제네바 ILO 본부에서 진행된 이 회의는 ‘운수부문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이하 ILO 지침)을 논의하고 채택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5일 동안 ILO를 구성하는 노사정 그룹들이 ILO 사무국이 제출한 초안을 바탕으로 지침의 세부내용에 대한 협상을 벌였고, 9월 27일 밤에 최종 지침의 모든 조항에 합의했다.
 
세계 운수노동자의 대표조직으로 ITF는 노동자그룹을 구성했다. 사용자그룹은 국제사용자기구(IOE)와 국제도로수송연합(IRU) 및 두 조직에 속한 국가별 회원조직들로 구성됐다. 정부 그룹에는 폴란드, 호주, 브라질, 카메룬, 칠레, 핀란드, 인도, 케냐 대표들과 20여 개국에서 파견된 참관인이 참가했다.(한국 국토부는 참관인으로 회의에 참가했다.)
 
지침은 도로운수부문의 분절화와 하청화가 야기하는 산업보건안전과 교통안전 문제들을 규명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사용자, 노동조합 및 ‘도로운수 사슬 행위자’(road transport chain parties)가 취할 수 있는 모범 정책(best practice)을 제시한다. 화물 및 장거리 여객부문에서 일하는 ‘임금을 받는 상업용자동차 운전자’(wage-earning commercial motor vehicle drivers, 피고용인 또는 직영차 운전자에 상응하는 개념, 이하 WE CMV 운전자)와 ‘임금을 받지 않는 상업용자동차 운전자’(non-wage-earning CMV drivers, 한국의 특수고용노동자에 상응하는 개념, 이하 ‘NWE CMV 운전자)의 결사의 자유권을 비롯한 ‘일터에서의 기본적 원칙과 권리’(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 at work), 산업안전보건(OSH), 보수 지급(payments)과 노동조건, 모집/교육/훈련 등 다양한 의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보수 지급과 관련된 지침의 내용은 위에 서술한 안전운임 모델을 다룬다. NWE CMV 운전자의 ‘모든 운영비용 회수’와 ‘모든 노동시간에 대한 보수 지급’이라는 원칙에 기반해 ‘지속가능한 운임 지급’(sustainable payments)이라는 개념을 신설하고, 각국 정부가 지속가능한 운임 지급을 ‘독려’하기 위해 ‘사회적 파트너’(노사) 및 ‘도로운수 사슬 행위자’가 참여하는 메커니즘을 설립하도록 한다. WE CMV 운전자의 지속가능한 임금에 관해서도 비슷한 내용을 포함한다. 또한 지속가능한 운임(임금)이 적용되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모든 도로운수 사슬 행위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위반사항에 대응할 권한 있는 감시·감독제도의 설립을 권고한다.
 

지침의 한계

 
국제기구 중 ILO는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 대표들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조직이다.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라는 ILO의 독특한 의사결정구조는 국제노동기준 제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발언권을 보장해주는 반면 ‘단체행동’이 담보되지 않는 삼각협상을 강요한다. 따라서 사용자와 정부보다 우월한 논리를 구사하고 두 그룹 사이, 또는 두 그룹 내에서의 균열을 만드는 것이 노동자그룹이 입장을 관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렇게 노사정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지침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운임제도의 이름이다. 노동자그룹이 20년 동안 축적되어온 연구결과를 근거로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그룹은 끝까지 운임(임금) 수준과 도로안전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따라서 ‘안전운임’이라는 이름을 지침에 명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사용자대표들은 운영비용보다 낮은 운임이 밑바닥 경쟁을 야기하고 산업을 지속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논리에 설득되었다. 따라서 안전운임제의 주요 내용을 ‘지속가능한 운임’이라는 이름으로 지침에 포함할 수 있었다.
 
구속력 있는 운임제도와 위반에 대한 강력한 처벌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한 것도 지침의 한계다. 안전운임 모델의 일부분인 ‘노동조합의 감시감독 제도’를 대신해 지침은 근로감독기구와 노동조합 간의 협력 지원을 권고한다. 또, 특수고용과 비공식 부문 노동자의 결사의자유권 보장 의무도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언급한다.
 

지침의 성과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ITF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유의미한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한국 운수노동자의 입장에서 지침이 특수고용노동자의 보수(운임) 기준을 제시한 것은 특히 의미가 크다. 일부 운송품목과 차종에만 적용하고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안전운임제의 연장과 확대를 위한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제노동운동의 입장에서 지침이 경제의 분절화와 하청화가 야기하는 건강과 안전문제를 인정하고, ‘도로운수 사슬 행위자’를 정의하며 보수지급과 노동조건,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이들의 책임을 규정한 것은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지침은 '도로운수 사슬 행위자'를 화주를 비롯해 다단계 하청구조에 참가하는 모든 사업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ILO 지침은 ‘공급사슬 책임’ 원칙을 인정한 최초 사례다. 한국 노동운동에 익숙한 표현으로 그 의미를 정리하자면, 지침은 도로운수산업에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원청(화주)과 하청업체의 공동사용자성을 제시한다.
 
ILO 지침은 구속력이 없지만 노사정 그룹들에 의해 합의된 내용이기 때문에 구속력 있는 기구의 제정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현재 지침과 비슷한 개념을 바탕으로 한 ‘세계 공급사슬과 양질의 일자리’ 협약의 제정 필요성이 ILO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용자그룹의 극심한 저항으로 논의가 큰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노사정이 지침에 합의하면서 반대를 고수하기는 어려워졌다. 또한 ‘노사정에 의해 합의된 문구’(agreed tripartite text)로 지침의 주요 내용을 다른 ILO 기준에 포함하기도 수월해졌다.
 
안전운임제와 다른 영역이지만 이번 지침은 운수산업에서 여성의 고용 증진, 폭력 없는 노동환경, 깨끗한 무료 위생시설의 제공과 이를 사용할 휴식시간의 보장, ‘젠더,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장애 여부, 지리적 기원, 민족과 출신 국가’를 포함하는 다양성 존중 교육의 실시를 권고하는 의미 있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향후 과제

 
지침의 채택으로 한국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 투쟁과 세계 공급사슬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노동운동의 투쟁이 더욱 긴밀히 연결되었다. 새로운 입법이 없다면 3년 후 안전운임제가 폐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지침은 제도가 지속·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물론, 지침이 단순한 문서로 남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적용되고 실천되어야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반면 안전운임제의 성공사례가 존재해야 지침의 주요 내용을 구속력 있는 기준에 포함할 근거가 생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안전운임제의 안착화는 한국 화물노동자만이 아니라 세계 공급사슬·하청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직접적 당사자인 화물연대본부뿐 아니라 ITF와 세계 운수 노동조합들은 물론이고 한국 노동운동에서도 안전운임제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검토되어야 할 몇 가지 주요의제를 제시할 수 있다. 우선 운임 인상에 대한 화물노동자의 절박한 요구와 제도의 안정성 확보의 필요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화물노동자의 소득 표준화를 통해 경쟁을 해소하고 단결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안전운임의 실질적인 현장 적용과 적용범위 확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안전운임을 기반으로 한 교섭 전략과 감시·감독기관으로서 노조의 현장 개입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안전운임 도입이 교통안전과 화물노동자의 삶의 질, 도로운수산업의 구조 등 주요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분석하고 그 결과를 국내외에서 외화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전운임제의 주요 내용을 다른 도로운수 업종과 특수고용, 하청으로 확대할 수단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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