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19.12.10

물 건너 일본에서도 “우리 동년배들 다 노조한다”

일본 생협노련 청년부 모임을 만나다

이준혁(조직국장)
 
 
한국에서도 일본 청년들의 삶에 관해서는 꽤 알려진 바가 있다. 보수 신문에서는 일본 대졸자 취업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는 찬양(?) 섞인 기사가 쏟아지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다수 젊은 층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불안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정규직으로 취업하더라도 ‘블랙기업’에서 몸도 정신도 황폐화된 뒤 일을 그만두거나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본의 청년들은 저항하지 않고 그냥저냥 살아간다는 인상이 강하다. 오죽하면 2010년대 이후 희망도 의욕도 없이 정치나 사회에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는 ‘사토리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까.
 
이런 가운데서도 노동운동으로 희망을 일구려는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바로 ‘전국생협노동조합연합회全国生協労働組合連合会’, 줄여서 생협노련이라는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이다. 이 노조는 특히 ‘계층 별 모임’으로 여성, 대학부와 더불어 ‘청년부 모임’을 따로 운영할 정도로 청년 문제에 관심이 깊었다. 지난 10월과 11월,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던 생협노련과의 만남을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생협노련을 소개합니다

 
 
우선 생협노련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생협노련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생활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다. 생협노련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7년 도쿄대학 생협노조의 결성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이후 전국조직으로 전국대학생협노동조합협의회(1957년)과 일본생협노동조합협의회(1960년)가 각각 설립되었다. 이 두 조직이 1968년 통합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생협노련이다. 출범 당시 조합원은 6,094명이었다고 한다. 50여 년이 지나는 사이 조합원은 거의 10배 넘게 증가해 65,6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있다.
 
이들과 인연이 닿은 것은 지난 5월이었다. 5월 30일~31일 개최된 <비핵‧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포럼>에 70여 명의 일본 활동가들이 서울을 방문했다. 이 포럼은 2017년 이후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한일 국제연대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그리고 때 맞춰 전국학생행진에서 이 분들과 함께 반핵 평화 운동의 고민을 나누는 간담회가 열렸다.
 
그런데 포럼 섹션마다, 그리고 간담회 장소에서도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가 눈에 띄었다. 스스로를 ‘유튜버’라고 소개한 그는 일본에서 젊은 청년들의 집회 동영상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그가 바로 생협노련에서 일하고 있는 마카베 타카시真壁隆라는 분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한국 젊은이들이 진지한 자세로 사회운동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번에는 일본 생협노련에서 사회진보연대와 전국학생행진과 교류를 해보고 싶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여름을 거치며 한일 간의 외교 관계가 더욱 악화되기도 한 터라, 나로서도 어떻게든 일본의 활동가들과 만나는 자리를 늘리고 싶었다. 그렇게 도쿄로 향했다.
 
 

우리는 비정규직 대표 선수!

 
 
10월의 어느 주말, 도쿄에서 생협노련 활동가들을 만나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는 한국 측 방문단과 생협노련 단체 소개를 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생협노련은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이른바 ‘젠로렌’에 소속되어있다. 젠로렌은 공무원, 교사, 의료계 노동자를 주력으로 삼는 약 100만 명 정도의 내셔널센터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노조라고 하면 주로 탈이념적이고 노사협조주의를 표방하는 700만 명 규모의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익히 알려져 있는데, 젠로렌은 공식적으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을 표방하는 등 성격이 다소 다르다고 한다. 특히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전쟁하는 국가 만들기’ 저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어떤 정당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일본공산당과 관련이 깊은 노총이다.
 
이러한 젠로렌 내부에서도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여성 노동자의 ‘대표 선수’로 활동하는 곳이 바로 생협노련이다. 사실 생협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 자체가 대체로 비정규직, 단시간 노동이기는 하다. 일본의 생협은 조합원 규모만 3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다. 그 중 소매, 물류, 운수, 개호(간병) 등의 업종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인데, 여기서 생기는 일자리들이 거의 전부 저임금-장시간에 시달리는, 즉 ‘인기가 없는 일자리’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그 자리는 직접 고용 정규직보다는 자회사, 위탁, 개인 도급, 파견 노동자들이 채우게 된다. 특히 생협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형 매장’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80~90%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생협노련은 더더욱 비정규직 조직화에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생협노련은 무려 1974년(!)에 ‘파트(타이머)‧아르바이트 조직화’를 선언하고 1980년에는 내부 특별기구로 ‘파트 부 모임’를 설립하기도 했다. 생협노련의 노력은 젠로렌 전체에서도 비정규직 조직화에 힘쓰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져, 젠로렌 내에서 파트타이머, 임시직 노동자들의 운동 센터인 ‘젠로렌 파트 임시노조연락회’ 설립(2000년)으로도 이어졌다. 덕분에 생협노련은 6만 5천 조합원 중 62%인 4만 명 가량이 단시간 노동자이고, 또 65%인 4만 2천 명이 여성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아쉽게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위원장도 여성 단시간 노동자 출신이라고 한다. 생협노련이 당당하게 ‘비정규직의 대표 선수’로 자임할 수 있는 이유다.
 
 

청년부 모임과의 만남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같은 자리에 계셨던 청년부 모임 분들이었다. 딱 봐도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년배’들 분들이 우리의 발표를 흥미롭게 듣고 계셨다. 사회진보연대가 ‘연대임금-연대고용’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에는 “굉장히 동감합니다”라면서도 “어디서 그 정신을 현실화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받기도 했다. 뒷풀이 자리에서도 국적은 달라도 비슷한 나이대의 활동가들끼리라 그런지 편하게, 또 신나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렇게 ‘첫 만남’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어느 날, 청년부 모임 분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양국의 청년 노동운동 활동가’들끼리 만나 ‘청년들의 노조 활동’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11월 말, 또 한 번 도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시 만난 자리, 얘기의 시작은 양국 청년들이 놓인 상황에 관한 것이었다. 청년부 모임 분들은 ‘자기책임론’이란 문제를 꺼냈다. 일본에서는 청년들이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저항하기보다는 스스로 감내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청년들이 부당한 상황에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촛불집회나 노동조합 집회 영상을 보면 젊은이들이 많아 보여 부럽다는 솔직한 감상도 덧붙였다. 하지만 사실 한국의 청년들도 그렇게 다른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일본에서 말하는 ‘자기책임론’ 같은 건 사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힘든 직장이 아닌 안정적인 일을 하려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또 직장의 문제는 감내하고 작은 취미나 혼술 등의 ‘소확행’으로 스스로를 달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청년부 모임 분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비슷한 상황이라 공감이 많이 된다고 하셨다.
 
생협노련 청년부 모임은 바로 이런 청년들의 문제를, 생협 직장 내의 문제에서부터 개선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위해 청년부 모임은 우선 18세에서 45세 사이의 상대적으로 젊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접하는 ‘입구’가 되려는 모임이라고 한다. 한국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청년 조합원들은 ‘베테랑 활동가’들에 비해 노동조합 활동 경험이 부족한 편이기에, 노동조합 활동의 경험이나 기본적인 운영 방법 등을 서로 배우고, 또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병들지 않는 직장, 그만두지 않는 직장”을 만들자

 
 
일본의 청년, 특히 생협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의 현재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생활협동조합이라는 직장 자체가 대기업 중심의 자본주의적 소비보다는 지역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곳이 아닌가. 때문에 생협에 취업하는 상당수의 청년들이 그런 착한 소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생협이라는 직장은 오래 일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실제 대학 졸업 후 바로 생협에 취업한 젊은이들 중 20% 정도가 취업 후 3년 안에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파트타이머의 경우 그 비율은 39%까지 치솟는다. 물론 여기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더불어 과도한 실적 압박, 이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의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청년들의 경우 여기에 ‘앞으로의 커리어의 전망’이 없다는 호소도 상당했다.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생협의 청년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이 상황을 바꿔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노동조합이 그러하듯, 생협노련 역시 조합원 중에서 중장년층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청년들의 요구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는 아니다. 생협노련이 굳이 청년들의 모임을 따로 조직해서 활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협노련 청년부 모임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병들지 않는 직장, 그만두지 않는 직장’의 실현 모토로 여러 활동을 벌여왔다.
 
더불어 청년노동자들의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일본의 많은 청년노동자들은 이른바 ‘장학금’ 문제에 시달린다. 이는 우리로 치면 학자금 대출인데, 일본 대졸자의 반 이상이 각종 장학금 대출로 학비를 충당한다.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 200만에서 400만 엔 정도(원화로는 대략 2,100만 ~ 4,300만 원)의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 빚을 갚는 데만 해도 평균 15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생협노련 청년부 모임은 장학금 대출 제도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청년들의 저임금 문제가 해결되어야 장학금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동조합도 바꿔야 한다!

 
 
이렇게 ‘병들지 않는 직장, 그만두지 않는 직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건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협을 그만두는 청년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청년부 모임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청년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너무 멀고, 또 직장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의 상징’이 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이에 청년부 모임에서는 일단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함께 싸우는 청년 동지들을 늘리는 것’이라 답했다. 특히 이 자리에 모인 청년부 모임 활동가들은 최근에는 여러 새로운 조직화 기법들을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라 답했다. 자세한 걸 물어보니 다 같이 열심히 읽고 있다며 <직장을 바꾸는 비밀의 레시피 47>이란 책을 보여줬다. 미국 레이버노트에서 발간한, 원래 제목은 ‘Secrets of a Successful Organizer’라는 책이다. 그러면서 노동조합 활동에 ‘조직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단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무작정 노조 사업이나 교육이 있으니 오라고 조직했었는데, 이제는 조합원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그들의 고민이 뭔지, 또 지금 힘들어하는 부분이 뭔지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위치에서 필요한 노조 활동을 제안하고자 노력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새로운 조직화 기법’을 말하는 청년부 모임 분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한다. 이전에도 청년부 모임은 젊은 조합원들을 노조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몇 번인가 ‘노동조합에 대해 알아보자’며 입문강좌 같은 사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강의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여도 돌아가서는 여전히 노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겨우 찾아가 얘기를 들어보면 상당수가 ‘노동조합은 가르치려고만 한다’, ‘높은 분들이 일방적으로 이끌어가기만 한다’는 인상만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진짜 노동조합의 힘이 강해지려면 노동조합의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아직까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청년부 모임에 임원, 간부 말고는 아직 참여가 미비한 편이고, 이런 부분은 아직 고민이라는 솔직한 토로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지금은 노동조합에서도 젊은 청년들과 속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 예컨대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서로 참가하고 또 실천해보는 워크숍, 배움의 자리가 있다는 걸 알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한일 양국의 청년 연대가 필요해

 
 
이렇게 두 번에 걸친 짧은 만남이 끝났다. 양국의 젊은이들이 ‘청년노동자의 현실’과 ‘노동운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만남의 자리마다 나눴던 얘기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한일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아무리 나빠지더라도 시민들, 운동들 간의 연대는 유지하고, 오히려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술기운에 몇 번이고 이런 얘기를 하면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지금까지 서로 공통점들을 발견하고 또 공감하는 대화를 한 만큼, 그 때의 그 대화처럼, 앞으로도 양국 청년들의 활동과 연대를 고민하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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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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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노동 일본생협노련 젠로렌 사토리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