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6.17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민주노총이 할 일은 무엇인가

사회진보연대
코로나19 노사정 비상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 20일 국무총리가 주관하는 ‘원포인트’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시작으로 실무논의 중이다. 정부는 ‘전국민고용보험’ 및 각종 고용정책을 주도하고 있고, 이번 노사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달성했다는 정치적 성과를 원한다. 3차 추경과 21대 국회 개원 등의 일정을 고려해 6월 안에 조속히 대타협선언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경총, 대한상의가 참여하는 자본 측은 정부의 기업지원 확대와 임금조정, 휴업수당(70%) 인하, 주52시간, 탄력근로제 조속 입법화 등 고용‧노동 유연화도 공세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과거 노사정 대화의 결과물을 돌아보았을 때 이번 원포인트 협상 역시 의미 있는 컨센서스를 만들 확률은 낮아 보인다. 자본과 노동 간의 첨예한 쟁점들이 실질적으로 논의되기보다는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성과에 기여하는 형국이 될 공산이 크다. 
 
한계가 분명히 있겠지만 사상초유의 고용위기 국면에서 노사정 협의에 임하는 노동의 입장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임금동결로 사회적 연대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노동의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노사정 대화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조가 임금동결 사회적 협의를 하거나, 역으로 대화를 거부하고 투쟁에 나선다 해도 사상 초유의 고용위기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현재의 위기는 조직노동이 포괄할 수 없는 외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기 위해 노사정 대화에 임하겠다는 목표를 실현하려면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는 민주노총의 전략이 제대로 세워졌는가를 평가해봐야 한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민주노총의 현 요구안은 위기국면을 능동적으로 돌파할 정세적 타당성이 부족하고, 노동계급을 대표할 수도 없다. 교섭전략과 의제선정이 좌충우돌 혼란을 겪고 있고, 조직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협의가 노동의 일방적 양보라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코로나 위기 시기, 정부와 자본이 대응하고 있는 고용안정제도에 대해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대안적 정책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노사정 대화에 임하는 민주노총 요구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덕분에 챌린지’를 함께 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석자들. [출처: 한겨레신문, 이종근 기자]
 

해고금지를 위한 현실적 대책

 
민주노총은 해고금지를 최우선 요구로 삼고 대통령이 해고를 금지하는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난 시기 사용자의 해고 남용을 제한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할 수 있으나 초법적인 긴급명령권 요구가 현실에서 타당한가?
 
먼저, 현재 고용위기는 사용자에 의한 ‘해고’보다 휴업‧폐업, 일용직/특수고용의 구직난 때문에 발생한 실직이 더 많다. 근로계약 만료 이후 통상적인 자동연장이 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사용자에 의한 고용관계의 해제가 아니라 외적 요인으로 인한 강제적 실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민주노총 요구의 맥락대로 총고용량을 유지하는 프로세스라면 대통령이 사용자집단에 해고를 금지할 문제가 아니라, 노사정이 공히 신규고용을 창출할 방안을 내놓는 것이 현실에 부합하다.
 
한편 사용자에 의한 해고는 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타격을 입은 산업분야(항공)의 다단계 하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사용자성이 부재한 상황에서 원청의 고용유지의 책임이 사라지고, 하청은 정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회피하고 무급휴직을 강요하며 거부 시 해고한다. 이러한 해고의 양상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발생하는 정리해고의 양상과는 다른데, 노동시장 이중적 구조 속에서 산업적 위기가 하청체계의 고용위기로 드러나고, 이를 규제할 법적 수단이 없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이나 고용유지지원금과 같은 정부의 제도가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이러한 해고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개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대통령의 긴급경제명령으로 노동시장의 구조를 당장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이번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해고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1) 정부의 지원정책이 하청구조에서 실질적으로 해고를 제한할 수 있도록 시급히 정책을 보완하고 강제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2) 향후 발생할 산업적 차원의 대량해고를 제어할 법제도적 근거의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먼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제도는 사용자들의 미신청, 지원금 편법수령, 자발적 퇴사로 조작, 위법 무급휴직 강요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규제하기보다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용자들의 유급 휴업/휴직 우선실시 의무는 건너뛴 채 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대폭 축소한 무급휴업/휴직 신속지원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또한 한 달 단위로 휴업/조업단축/교대제 개편 등의 고용유지 조치를 계획하기 어렵다는 사용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임금삭감을 통한 고용유지협약 체결 시 지원이라는 별도의 지원 항목을 신설했다. 이처럼 사용자 부담은 경감하고 고용불안은 사실상 방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시급한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
 
특별고용지원 업종의 경우 일반 고용유지제도를 선행 실시하도록 강제하고 무급휴직 신속지원제도가 최후의 신청수단이 될 수 있도록 규제해야 한다. 특히 아시아나KO와 같이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정부지원)를 거부한 곳은 특별감독과 고용유지 강제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 속에서 가장 취약한 다단계 하청부터 정부의 고용유지제도가 온전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신설된 무급휴직 신속지원제도 등으로 실질적인 고용위기 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한편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받은 산업에 고용유지 조건을 명시하고 있으나 하청에는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강제성이 떨어지고 위법적인 무급휴직과 휴업수당 삭감 등의 문제를 제어할 수 없다. 현재의 고용유지제도가 자본과 사용자의 편의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어, 실제 고용안정에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실을 폭로하는 것이 민주노총이 할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해고를 규제하는 제도가 한계적이라면 한시적 특별법 제정 또는 현행법상 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과 같은 법적 강제력을 고려해볼 수 있다.
 
다음으로, 향후 하반기 본격적으로 전개될 제조업, 항공사 등의 거대 산업의 구조조정과 대량해고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이 남용되지 않도록 노동위원회 심사기준 보완 등의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1998년 노사정 합의로 통과한 정리해고 요건 전면개정 등 경제위기 시기에 쉬운 해고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대통령 권한으로 ‘재난 시기 모든 해고금지’를 초법적으로 강제하자는 요구가 언뜻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 못 할 뿐만 아니라, 국회의 입법 권한을 무력화하고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에 의존하는 퇴행적인 요구에 불과하다. 해고를 제한할 실제 방법론 없이 상징적인 구호만 나열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위기에 취약한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를 폭로하고 고용위기의 세부현황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제도를 정부와 자본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번 원포인트 협의가 종료된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산업구조조정과 고용위기에 대해서 민주노총은 거시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각 산별 및 기업노조에서 산업구조조정과 해고에 대한 대응 정책을 수립과정을 지원하고 기업별로 전개될 고용안정과 관련 투쟁이 개별적, 단기적 이해에 매몰되지 않도록 총연맹 차원의 중장기적이고 사회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해고에 대한 민주노총의 조직적 태세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총연맹은 이번 원포인트 협의를 통해 향후 산업별 노정, 노사정 교섭 틀을 확보하고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산별노조들의 정책적 역량이 준비되어야 한다.
 
 

‘전국민고용보험’, 노동의 전략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재난 시기 고용보험 제도의 문제에 대해서도 주체적인 전략과 요구를 제기하기보다는 정부와 여당의 ‘전국민고용보험’ 프로세스를 뒤따른다. 강제적 실직상태에 처한 특수고용직 등 사각지대 노동자에게 긴급하게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하여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선언하고 있는 ‘전국민고용보험’은 사각지대 해소를 넘어 고용보험제도 근간의 변화를 의미한다.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슬로건이 현정부 임기 내 단기 성과만 내고 그 이후는 책임지지 않을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더라도, 민주노총은 이 제도가 노동자계급에 어떤 의미이며 단기적으로 필요한 것과 중장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제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전국민고용보험’의 실현 가능성과는 별도로 대중적 호응이 큰 이유는 오늘날 불완전 취업이 너무도 일반화된 상황에서 경제위기 시 이들의 생계를 보호할 사회안전망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오늘날 불완전한 취업 형태는 결국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양극화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전국민고용보험’은 노동시장의 분절적 이중구조 속에 완전 취업자가 불안전 취업자의 구직생계부담을 부담하는 의미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극심한 고용위기의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공공부문‧대공장 노동자들이 고용보험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보험적용을 위해 이 부담을 책임지는 계급적 연대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격차와 분절이라는 구조를 비판하지 않고 ‘전국민고용보험’을 지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또한 ‘전국민고용보험’에서 자본의 책임은 부차화된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현행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문제에는 사용자성을 회피하고 불완전 취업을 방치, 확대하려는 자본의 이해가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전국민고용보험’ 정치적 수사에 가려진 사용자와 자본의 책임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요구는 ‘전국민고용보험’의 세부 정책 내용에서는 절충적으로 제시하며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정치 구도만 부각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연일 ‘전국민고용보험’을 떠들고 있지만, 정책의 추진과정은 사각지대를 현실적으로 해소하는 대책에도 한참 미달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이 국회에 제출한 고용보험법 개정안(한정애 의원 대표발의)에는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 인정을 최대한 회피하기 위해 사용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할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예술인과 특수고용직은 예외적인 특례조항으로 규정하고 있어 한계가 많다. 실상 이 정책은 ‘전국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실제로 일하는 노동자의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단계에서조차 자본의 반발 등 여러 장벽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수사에 비판 없이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정책적 요구와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이번 노사정 협의에서는 단기적으로 특수고용직, 예술인 등 사각지대 노동자에게 온전하게 보험적용이 확대될 수 있는 합리적 정책요구가 강조되어야 한다. 그동안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인 2018년 고용보험위 의결안 그대로 21대 국회에서 우선 통과하라는 요구가 시작이다. 이러한 시급한 요구의 관철과 함께 고용보험제도에 대한 중장기적인 제도개선 방향에 대한 총연맹 주체적 입장이 필요하다. 고용보험제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노동 내부의 분절과 격차를 해소하는 전략적 방향을 명확히 세우고 고용보험적용 확대에 따른 노동과 자본의 재원 분담과 관련한 조세제도 전반의 개혁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방향을 고민할 수 있다.
 
 

위기에 대응하는 민주노총의 준비

 
노사정 협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정부는 6월 중 합의문 발표를 목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6.3)을 통해 3개 장 45개 항목의 요구안을 확정하였는데 해고금지와 ‘전국민고용보험’ 제도 관련한 문제 이외에도 초유의 경제, 고용위기 시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의제들이 뒤섞여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민주노총이 제기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전태일법)과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의 요구가 이번 협상의 요구안으로 그대로 포함되어 있는데 취약노동자를 보호하고 자본의 책임을 묻는 취지는 의미가 있겠으나 이러한 주장은 현재의 정세에서 실현 불가능한 요구다. 중소‧영세 자영업이 파산‧폐업하고, 재벌‧대기업조차 유동성 고갈로 인해 정부 금융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기존 사업 기조를 정세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으며 노사정 협의의 핵심 요구가 선별될 필요가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정부가 해야 할 추진과제로 확대재정정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민간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최종적 ‘대부자’, ‘지급자’, ‘공급자’로 기능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취약, 빈곤층에 대한 과감한 재정 지급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정정책은 국가채무급증, 통화가치 하락 등의 제약요인을 충분히 판단해 실행되어야 한다. 거시 경제적 측면에서 어떤 고려도 없이 정부와 여당의 포퓰리즘적 현금 지급정책에 확대재정정책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대책 없는 정책에 동조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정책적 역량의 한계나, 준비상태와는 별개로 이번 노사정 대화는 민주노조운동이 경제, 고용위기에 대해 노동계급의 대표조직의 책임을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위기 시기 노동자운동의 주도적 전략이 부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번 원포인트 노사정은 정부가 설계한 고용유지지원 확대 정책을 보완하는 수준 이상 민주노총이 교섭 의제를 주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계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이번 노사정 협의를 시작으로 장기화할 코로나 정세에서 노동자운동이 지향해야 할 전략을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시급하게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해고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고용유지정책의 정비되어야 하고, 향후 발생할 산업 구조조정을 예비하는 법‧제도 정비 방안과 총연맹과 산업별 대사회 교섭틀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전국민고용보험’과 같은 포퓰리즘적 정책 프레임을 비판하고 노동의 주체적 전략을 중심으로 고용안정대책에 대한 현실적으로 실효성 있는 의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추상적인 임금동결론이나 원칙적인 투쟁중심론을 내세우는 것은 현실의 문제 해결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노동자운동의 계급적 연대를 통한 단결의 확대는 단기적인 처방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조직노동운동의 체질을 변화시키는 문제다. 노사정 대화에 임하는 민주노총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재벌과 공공부문의 조직노동운동이 단기적, 경제적 이해를 넘어서서 미조직, (반)실업, 취약 노동을 인식하고 현실적인 구제방안을 통해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고용안정제도를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주제어
정치 경제 노동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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