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06.24

전국민고용보험 이전에 국민 절반의 고용불안부터 해결해야

정부 고용보험 확대 정책의 결함과 노동조합의 과제

사회진보연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전국민고용보험 추진을 선언했다. 소득주도성장 시즌2의 핵심 정책이라 불러도 될 만큼 힘도 실었다. 물론 매번 그렇듯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전국민고용보험은 취업자 모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험 가입이 어려운 단시간 노동자부터 고용보험에서 배제된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취업자 모두를 보험에 포괄하자는 것이다. 얼핏 보면 취지는 좋다. 실업은 누구에게나 큰 고통이니, 보험 혜택이 있다면 나쁠 리 없다. 하지만, 문제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 어떤 상태가 실업인지,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지, 그리고 보험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 등등 정책의 거의 모든 내용이 쟁점이다.
 
생각해보면, 3년 내내 문재인 정부는 “선의만 있을 뿐 결과는 나쁜” 정책을 여럿 실행해 왔다. 전국민고용보험 역시 그럴 소지가 다분하다. 노동운동이 그 선의만 믿고 정부를 지지할 일이 아니다. 본 글은 전국민고용보험의 쟁점을 살펴보며, 노동운동의 과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고용보험의 계급적 의미

 
실업보험은 19세기 말 노동조합의 자발적 공제기금으로 시작해 20세기 들어 정부가 일정 요건을 갖춘 노동자 모두를 참여시키는 강제 보험으로 발전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급증한 것이 실업보험이 크게 발전한 계기였다. 당시 정부는 체제의 유지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실업자를 지원해야 했다. 지배계급은 실업자가 러시아처럼 급진화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런데 실업자를 무작정 지원하자니 정부와 기업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때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강제적 실업보험이었다.
 
강제적 실업보험은 국민경제의 총임금 중 일부를 실업자 소득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묶어 둔 것이다. 실업보험료는 사실 인건비 총액의 일부분일 뿐이다. 실업보험 일부 또는 전부를 사용자가 부담한다고 해서 사용자가 보험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보험료 탓에 기업 인건비가 급증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보험료가 급증할 때 다른 항목의 인건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실업보험 제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그럭저럭 잘 작동됐었다. 전후 고도성장으로 실업률이 매우 낮았고, 심지어 선진국 정부 대다수가 완전고용을 경제 정책 기조로 삼았던 덕분이었다. 실업보험은 경기 순환이나, 직장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경제침체가 만성화되었고, 심지어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이동한 탓이었다. 완전고용은커녕 두 자릿수 실업률이 일상이 됐다. 그리고 실업보험은 개혁의 대상으로 비판의 표적이 됐다. 넉넉한 실업수당이 실업률을 높인다는 주장이 경제학계와 정치권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신자유주의로 불린 일련의 개혁은 보험의 목적을 실업자 소득 지원에서 재고용을 위한 지원으로 바꿔놓았다. 수당의 보장률과 지급 기간이 축소됐고, 재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이 강화됐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개혁이 21세기에도 이어졌다.
 
물론 실업보험의 근본적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실업자 관리의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실물 경제에 투자되지 않는 자본의 팽창과 자본에 고용되지 못하는 인구의 증가를 야기한다. 보통 전자를 금융화, 후자를 구조적 실업이라고 부른다. 20세기 후반부터 기업들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취업과 실업 사이에 다양한 중간 지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개혁된 실업보험은 실업자가 비정규직 같은 불완전한 일자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핵심 목표였다. 이것이 이른바 유연안정성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에 실업보험이 처음 도입됐다. 한국의 실업보험은 시작부터 신자유주의적 목표가 강조됐다. 실업에 대비한 보험이 아니라 (재)고용을 위한 보험으로 고용보험이 시작됐다.
 
이런 계급적 맥락에서 볼 때, 전국민고용보험은 지배계급의 궁여지책 이상은 아니다. 취업과 실업 사이에 너무 많은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코로나19로 다시 한번 드러나자, 부랴부랴 대책을 세운 것에 불과하다. 실업과 반실업의 관리를 위해서 더 큰 기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국민고용보험의 숨겨진 취지다.
 

보험조차 확대가 어려운 한국의 노동시장

 
한국의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는 2천8백만 취업자 중 절반이 되지 않는다. 갖가지 형태의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서다. 한국은 실업부조 제도가 부실한 가운데, 고용보험의 포괄범위도 지극히 협소하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가 4백만 명 가까이 되고, 아예 가입이 안 되는 자영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도 9백만 명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1천4백만 명의 완전 취업자와 나머지 1천4백만 명의 불완전 취업자, 실업자로 양분되어 있다. 불완전 취업자는 일종의 반실업 상태로 고용이 보험의 대상조차 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정하다.
고용보험을 취업의 최소 수준 ‘완전성’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국은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불완전 취업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불완전 취업자는 경제위기 때마다 가장 먼저 쓰러졌고, 가장 오랫동안 복구가 안 되었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국민고용보험의 취지는 이들 불완전 취업자에게 어느 정도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연성의 조건인 안정성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라 하겠다.
 
그런데 전국민고용보험이 지속 가능한 제도인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고용보험 성격상 잦은 실업을 경험하는 불완전 취업자는 보험료를 낸 것보다 큰 혜택을 얻는다.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완전 취업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고용보험을 매개로 한 취업자와 실업자 간의 연대라고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만약 완전 취업자가 계속 감소하고, 불완전 취업자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완전 취업자의 보험료가 불완전 취업자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게 증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을 내는 취업자는 줄고, 혜택을 얻는 취업자는 증가하니, 비용의 증가분이 가속한다.
 
즉, 전국민고용보험은 노동시장이 양극화되어 있는 노동시장에서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불완전 취업자가 감소하거나 적어도 증가하지 않아야 제도가 지속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나 경제학자들이 예상하는 앞으로의 한국경제는 지금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 베이비붐 세대의 계속되는 정년퇴직과 불완전 취업자로의 전환, 저성장 흐름의 고착화, 플랫폼 노동의 확대 등은 하나 같이 모두가 완전 취업의 감소와 불완전 취업의 증가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전국민고용보험은 시작과 함께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따져보면, 전국민고용보험 제도는 사실 발상 자체가 모순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자영업과 특수고용이 다른 선진국보다 많은 이유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적극적으로 고용을 회피한 결과였다. 이 두 부분의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은 나머지 부분의 저임금, 불완전 취업을 전제한다. 한국 노동시장은 이런 식으로 극단적으로 분절되어 있고, 양극화되어 있다. 여기서 전국민고용보험제도는 분절된 노동시장을 보완한다. 하지만 앞서 봤듯 분절된 노동시장이 강화될수록 전국민고용보험제도는 더욱 유지가 어려워진다. 전국민고용보험이 유지되려면 분절된 노동시장이 완화되어야 하고, 분절성이 약화하면 전국민고용보험은 그 필요성이 점점 없어진다. 전국민고용보험은 취지 자체가 자기 모순적이란 이야기다.
 

고용보험은 현실적 확장으로, 노동조합은 연대임금/연대고용의 강화로

 
이런 점에서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 문제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그 분절성이라 하겠다. 고용보험 이전에 노동시장의 격차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엄청난 격차와 분절성을 그대로 두고서는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국 노동시장 상황을 보면 전국민고용보험은 ‘선의로 포장된 무기력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정책은 당연히 중요하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특수고용노동자를 중심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려는 논의가 여러 곳에서 진행된 바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정부와 여당은 전국민고용보험을 이야기하면서 이마저도 제대로 입법을 하고 있지 않다. 전국민고용보험이란 캐치프레이즈만 덩그라니 내놓은 상황이다. 고용보험과 관련해서는 이미 할 수 있다고 검증된 부분부터 빠르게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 공공부문 노동조합도 이 과정에서 보험 기금 확대에 이바지해야 한다.
 
노동조합 운동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자신의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격차를 줄이고 단결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진보연대가 이미 여러 차례 대안을 제출한 바 있으니 본 글에서는 생략한다. 계간 사회진보연대의 관련 글들(링크)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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