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7.15

최종안 찬반 논쟁, 민주노조운동의 자성에서 출발하자

총노동의 전략을 결정하는 단위로서 총연맹의 부재가 문제다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의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는 사실상 실패했다. 조직적 신뢰가 파괴된 상황에서 노사정 최종안의 부결은 불가피하다. 최종안이 ‘취약노동자의 우산’이 된다는 김명환 위원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사회적 대화에서 정작 취약한 미조직 노동자의 현실은 쟁점조차 되지 못했다. 한편, 이번 사회적 대화가 ‘노동자를 죽이는 야합’이라는 일부 정파의 선동도 사실 왜곡과 억측에 불과하다. 이번 최종안은 기존에 발표된 정부 정책을 사회적 대타협처럼 포장했을 뿐이다.
 
최종안을 둘러싼 민주노총 내 극심한 상호비방과 갈등은 향후 선거를 앞둔 자중지란이자,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정작 한국 사회와 미조직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의 갈등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우선 논의해야 할 것은 최종안에 대한 찬반보다 진중한 자기반성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정확히 무엇을 실패한 것인가.
 
 

코로나 고용위기, 총노동의 전략이 존재했는가

 
코로나 고용위기는 기업의 휴‧폐업으로 인한 강제적 실업의 양상을 띤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4월 시점에는 노조 밖 취약노동의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졌다. 물론 이런 문제는 조직된 노동까지 향후 확산될 것이다. 그러나 7월 현재 고용위기는 여전히 미조직, 취약노동의 문제이다. 사회안전망 확충, 고용보험 적용확대와 같은 민주노총의 요구는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려 했으나, 사실 비상한 정세에서 취약노동과 연대한다는 막연한 선언적 수준에 가까웠다.
 
교섭이 진행되면서 이 당위적이고 선언적 요구들은 총연맹 의결기구 내에서 별다른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 합의과정에 이 나열적 요구가 어떤 식으로 반영될 것인가를 두고 인식의 차이가 민감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결국 총연맹이라는 총노동 기구가 고용위기에 대응할 때, 현장의 개별 기업별 노동조합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와 연관되어 있었다. 고용위기가 이미 발생한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또는 조합원들도 위기감을 느끼는 현장과 아직 그렇지 않은 현장에 따라 정부, 자본과 합의하고자 하는 내용이 달랐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노동체제의 균열이 더 심화하는 상황에서, 조직-미조직 노동자가 어떻게 보편적인 고용대책을 함께 만들 것인지가 문제였다. 민주노총 내적으로는 기업별 대응 중심의 시야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현재 노조운동은 총연맹이 총노동의 전략을 결정하는 단위가 아니라 현안을 지원하는 ‘공투체’ 정도로만 사고하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고용위기에 대한 총노동의 대응이 개별 기업별 투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어떤 전략도 개별 투쟁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에 임하는 총노동의 전략을 기존 노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남는다.
 
 

사회적 대화의 취약한 여건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상기해보면, 노사정이 적절한 협상을 해 본 경험이 없고, 상호 신뢰가 매우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한 위기에 맞서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노동이 교섭을 주도하려면 상당히 많은 역량과 준비가 갖춰져야 했다. 정책의제, 교섭전략, 조직적 권한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코로나 정세에 필요한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 한국사회 양극화된 노동이 코로나 고용위기에 대응하여 어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했다. 정부 고용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비판할 수 있는 총연맹의 거시적 관점은 여전히 공백이다. 그럴듯한 취지와 명분을 앞세워 노사정 협의에 나섰지만, 정세에 부합한 의제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 사안별 협의가 아닌 전체 노동시장에 이슈에 대한 총연맹의 교섭 경험은 거의 없다. 기업별 교섭권만 보장되는 현행 제도에서 총연맹에게 대정부, 대자본 협상 권한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는 1998년 노사정 합의의 후과로 인해, 이후 민주노총이 주요 법제도에 개입할 때마다 사회적 대화를 배제하고 투쟁으로만 돌파하려는 관성이 생긴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런 제약조건을 넘어서려면, 무엇보다 기업별 시야를 넘어서 총연맹으로 힘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사회적 대화는 정세적 필요로 인해 총연맹 중앙위원회의 공감을 바탕으로 결정되고 추진되었다. 그러나 교섭권한의 위임과 관련한 사항을 명확히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총연맹은 조직적인 권한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김명환 집행부의 무능과 예정된 갈등

 
김명환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되었지만 경사노위 참여 건은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에서 사회적 대화의 여건이 취약하고, 민주노총의 관성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엄중히 인식했다면, 민주노총 지도부는 조직 내 각 주체들의 이해와 입장의 차이를 좁혀가려는 특단의 노력을 더더욱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김명환 집행부는 협상참여 자체에 의의를 두고 언론플레이에 집중했다. 사회적 대화에 임하는 총연맹의 전략적 목표와 요구안 모두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조직적 합의를 만들려는 노력도 사실상 불필요했던 것이다. 노사정 대화를 청와대의 선의로 인식하고 쉽게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 낙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안일하게 노사정 교섭에 참여하다 합의 시점이 임박하자 최종안에 대한 강력한 내부 반발에 직면하고 말았다. 사회적 대화의 취지에 대한 조직적 동의에도 불구하고 최종안의 내용은 여러 측면에서 심도있는 조직적 조율의 과정을 필요로 했다. 6.29 중집의 요구는 특수고용 법적규정이나 경사노위와 같은 문제, 법제도적으로 현장에 민감한 쟁점들은 해당 조직들과의 적절한 논의가 더 많이 요구되므로 교섭을 더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입장에 휩쓸려 왔던 김명환 집행부에게 합의에 임박해 정부, 자본에 교섭력을 발휘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김명환 위원장이 내부합의를 포기하고 합의를 강행하는 길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민주노총의 총체적 무능이 예정한 결과였다.
 
 

일부 정파의 행동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최종안은 기존에 발표된 정부 정책을 사회적 대타협처럼 포장해 놓고 있다. 노사정의 대화와 협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용정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에 발표된 정부 정책을 재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합의 강행을 반대하는 일부 정파들은 최종안에 독소조항이 심각하여 자본은 아무런 고통도 분담하지 않고 노동자만 죽이는 내용이라 비난하는데, 과도하다. 코로나19로 인한 휴폐업으로 고용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고용지원 관련 제도에 대한 노사의 조정과 합의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고용위기 대책의 문제를 바로잡거나, 현행 법제도의 노동 배제적인 성격을 바꾸려는 노력은 필요했다. 예를 들어, 고용유지 지원사업은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낮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정부의 지원이 실행되더라도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노동자의 생계보장 여부가 결정되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제도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대책을 마련하려는 개입이 민주노총이 원포인트 교섭에서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나아가 ‘모든 노동자를 위해’ 법‧제도적 제약을 받는 사각지대 노동자가 긴급한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여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도 필요했다.
 
최종안을 반대하는 정파 중 일부는 이번 합의에 총연맹의 정세적 요구와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해고금지같이 매우 추상적 수준의 최대요구가 관철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현실적으로 미조직 노동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는건 오히려 외면하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주객관적 한계를 더욱 키우는 것이 일부 정파의 무책임한 반대이다. 노사정 합의에 대한 민주노총의 트라우마를 복기하며 모든 교섭은 무용하다는 주장만 앞세운다면 고용위기에 대한 민주노총의 초기업적 대응은 더욱 무력해질 것이다.
 
 

최종안 폐기는 불가피하나, 전투적 조합주의도 폐기해야

 
이번 최종안의 폐기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라는 특수한 정세에서 사회적 대화는 노동자 운동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앞으로 민주노총이 구조적 경제위기에 유능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주체적 역량을 제대로 갖춰야 할 것이다. 특히 기업별 고용안정 투쟁을 절대적 가치로 삼는 민주노총의 전투적 조합주의로는 당장 들이닥칠 고용위기를 더 이상 버텨 낼 수 없다. 고용의 극단적 파괴를 막고 산업적 대안을 만들기 위한 총노동의 중장기 전략의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최종안 찬반논쟁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보다 절실한 것은 총노동의 역량을 만들고 조직 내부의 합의를 형성하려는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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