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07.22

한국판 뉴딜, 160조원짜리 대국민 사기극!

사회진보연대
정부가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5년간 160조 원을 사용해 디지털과 그린 산업을 육성하고, 190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집권 초 ‘소득주도성장론’이 그러했듯 말만 거창하지 알맹이가 없고, 심지어 경제학적 근거도 부실하다. 자칫 김대중의 벤처 육성 때나, 박근혜의 창조경제 때처럼 정부의 눈먼 돈을 챙기는 사기꾼들만 성행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당연히 현 집권세력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권을 챙길 것이다. 불을 보듯 뻔하다.
 
향후 몇 년 간은 코로나19 사태를 수습하는 데 많은 재정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 재정 1원이 아까운 상황이다. 이런 시국에 발표된 160조 원짜리 부실 계획은 국민 모두에게 또 다른 경제적 재난이 될 수 있다.
 

〇 한국판 뉴딜의 내용과 문제점

 
정책은 디지털 투자, 그린 투자, 사회안전망 투자로 나뉜다. 디지털, 그린 관련 10대 과제를 살펴보면, 데이터 댐, 지능형(AI)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그린 스마트 스쿨,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국민안전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 산업단지,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이다.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 대부분이 기존 정책에다 디지털, 그린이란 말을 덧붙인 정도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도 대부분 있는 것들이다.
 
전문가들은 투자 효과라도 누리려면, 차라리 범용기술의 적용보다는 장기적 기술진보를 목표로 연구개발과 교육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예로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고성능 와이파이를 구축하고, 교육용 태블릿 PC를 지원하는 것이 디지털 기술혁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기술의 문제점은 물리학, 수학 같은 고급 자연과학에 기반한 코어 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그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는 당장 관련 기업이나 지역에 이득이 가는 것만 나열되어 있다. 고등교육기관 개혁이나 국책 연구에 관련된 것은 극소수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퍼주기 정책이다.
 
사회안전망의 경우 고용보험 확대,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 특고 산재보험 적용,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긴급복지 확대 등인데, 이 역시 새로운 것은 없고, 이미 추진하던 것들을 나열한 것에 그쳤다. 더구나 이 정책들은 단계적 도입, 검토 후 도입, 시범사업 후 판단 등으로 시행 시기와 방법이 모호해, 실제 실행이 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사회안전망 혁신의 성패는 충분한 정부 재정과 더불어 전국적, 산업적 노사관계에 달려있다. 한국의 사회안전망 문제는 ‘안전망’조차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은 기업 내 단체협약으로 고용안정, 기업복지, 퇴직 후 소득 등을 누리는 데 반해, 나머지 노동자는 기업으로부터도, 정부로부터도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노동시장 격차 축소 정책은 단체협약의 포괄범위를 넓히고 교섭의 집중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안전망과 관련해 노사관계 변화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정부의 모호한 사회안전망 정책은 그마저도 반쪽만 커버하는 정책이란 것이다.
 
정부 정책에서 가장 구체적인 것은 일자리 개수다. 디지털 투자로 90.3만개, 그린 투자로 65.9만개, 사회안전망 강화로 33.9만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같은 정부 기관 내에서도 숫자 채우기 용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단적인 예로 디지털화는 필연적으로 일자리 감소를 동반하게 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매출액 500대 기업 중 25%가 산업구조의 디지털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 정책으로 9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강조하지만, 감소하는 일자리의 규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그린뉴딜도 사정은 비슷하다. 예로, 2016~18년에 태양광 설비용량은 2.6배 성장했고, 풍력을 포함한 전체 신재생 에너지 설비용량은 2.2배 성장했지만, 고용 인원은 오히려 5.1%나 감소했다. 그린에너지를 통해 창출하겠다는 3.8만개의 일자리는 어떻게 산출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〇 뉴딜인가, 캐치업인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는 입만 열면 뉴딜을 외쳤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상황이 1930년대의 대공황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버티기’, ‘일어서기’, ‘개혁’이라고 요약한다. 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정책, ‘구제’(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을 슬쩍 단어만 바꾼 것이다. 그런데, 문 정부는 말만 가져다 썼을 뿐 1930년대 뉴딜의 핵심은 놓쳤다. 그야말로 얼치기라 하겠다. 미국 뉴딜 정책의 핵심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다.
 
대공황 직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 다른 국가들과 달리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미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1919~1927년 사이에 53.5% 증가했다. 2차 산업혁명의 효과였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대공황이 터졌다. 이유는 간단히 말해 제도가 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해서였다. 당시 경제 제도의 핵심 결함은 금융에 있었다. 생산은 폭발하는데, 금융시장 제도의 미비로 유휴자본은 증가했고, 주식시장을 비롯해 금융투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는 주가 폭락이 적절한 규제제도나 안전장치도 없어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로 이어졌고, 결국 은행도산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이런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확장되어 대규모 실업과 기업도산이 이어졌다.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은 이런 대공황에 대처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이었다. 개혁은 제도 미비로 끊긴 민간 경제의 성장 경로를 다시 잇는 것이었다. 다만, 경제 체력이 바닥나다 보니, 구제와 복구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직후 3차 은행위기를 저지하기 위해 전국의 은행 업무를 일시 중단한 후, 통화 공급, 예금자보호법 제정 등의 비상조치를 발표했다. 또한, 신용과 증권을 구별하여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제도적으로 분리했다. 중앙은행 관련 제도도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 힘은 이른바 뉴딜연합으로 불리는 사회적 합의로부터 나왔다. 이 연합의 촉매는 경쟁을 제한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한 전국산업부흥법과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농업조정법이었다. 이 법률들은 이후 사회보장법, 누진세제, 와그너법(전국노동관계법) 등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한국에서 뉴딜의 상징처럼 소개되는 테네시강 유역 개발 사업은 실업자들의 불만을 관리하려는 것이었지 경제적 의미가 큰 것은 아니었다.
 
요컨대, 1930년대 루스벨트의 뉴딜은 2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초중반 자본주의에 적합한 시장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연히 핵심은 금융 제도 개혁이었다. 더불어 노동시장 개혁도 이뤄졌는데, 새로운 노사관계(노동관계법)와 노정관계(민주당과 미국노총 관계)가 이때 만들어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개혁을 위한 제반 조건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국가 주도로 성장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개혁은 아예 목표로 제시되지도 않았다. 정부가 디지털과 그린에 대규모로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선도한다는 것이 한국판 뉴딜이다. 이는 애당초 뉴딜이라 불릴만한 정책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시대착오적 정책이기도 하다. 1960~80년대 추격성장(catch-up) 시절에나 적합했던 국가 주도 투자계획을 2020년대에 반복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〇 한국판 뉴딜 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한국판 뉴딜 정책은 160조원짜리 대국민 사기극이다. 정책의 정합성도 없고, 정책의 이론적 근거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대처에 사용해야 할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 저성장 고령화라는 장기 흐름에 대비해야 할 시간도 허비하고 있다. 이렇게 2020년이 지나면, 정부의 무능, 무책임, 무력한 태도에 노동자만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집권세력의 주변에서는 정부의 눈먼 돈으로 부를 축적할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보다 몇 배나 큰 실패가 예상된다. 소득주도성장은 선한 의지만 갖고, 경제학적 근거도 없이, 그것도 엉성한 정책 패키지로 실행되다가 문 정부 집권 초기 경제정책을 망쳐놓았다. 현재 정부는 같은 방법으로 다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멍청한 짓이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국민 모두가 정부 정책의 재고를 요구해야 한다.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