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7.24

민주노총의 제 역할을 찾지 못하면 노동운동 미래도 없다

노사정합의안 부결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합의안이 부결됐다.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집행부의 몫이다. 무능하고, 무력하며, 무용하기까지 한 김명환 집행부의 지도력이 민주노총의 코로나19 대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합의안이 가결됐어도 혼란은 가중됐을 것이다. 부결 후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다만, 민주노조 운동은 노사정합의안을 둘러싼 혼란에 대해 다시금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집행부의 무능만큼이나, 합의안 반대를 주도했던 일부 노동운동 세력의 관점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 김명환 집행부가 물러난다고 민주노총의 곤란함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번 같은 혼란이 이후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뒤틀리고 왜곡된 합의안 찬반의 쟁점을 차분하게 재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〇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나?

 
문제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무엇을 대화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노사정 협의가 시작된 탓이었다.
 
4월 중순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화를 제안했을 당시, 민주노총의 요구는 사실 황당무계했다. 집행부는 21대 국회가 출범했음에도 해고금지를 대통령의 긴급경제명령으로 당장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100만 원씩 모든 국민에게 수개월 동안 지급하라고도 요구도 표현만 달리해서 반복했다. 하지만 이는 민주정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제학적 합리성도 없었던 요구들이었다. 집행부의 태도는 코로나19 사태를 단기전으로 생각하고 생색낼 수 있는 정책을 이것저것 던져 보자는 식이었던 것 같다.
 
즉, 요구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부터 덜컥 제안된 꼴이었다는 것이다. 위원장의 개인적 욕심이었고, 현 집행부가 출범 때부터 보였던 친정부 행태의 연장선이었다.
 
적합하게 짜이지 못한 요구로 인해 집행부는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의 첫 번째 요구는 해고금지였다.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합의안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해고금지 요구를 기준으로 볼 때, 합의안은 당연히 한참 부족했다. 해고금지라는 선정적 요구를 앞세워 노사정대화의 모티브를 만든 현 집행부의 자승자박이라 하겠다. 더욱이 집행부는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맹, 산하 조직들과 긴밀하게 협의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이 제안한 판에서조차 정부 조정안만 쳐다보는 종속적 태도 때문이었다. 그 결과 합의안 내용 역시 정부가 원래 하려던 것을 약간 손본 정도로 제출될 수밖에 없었다.
 

〇 진보보다는 퇴보에 가까웠던 현장파의 합의안 반대 논리

 
민주노총의 더 큰 곤란은 집행부만큼이나 합의안 반대를 주도한 일부 세력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점이다. 소위 ‘현장파’로 불리는 의견그룹들은 합의안에 해고금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일부는 합의안이 1998년 정리해고제 같은 대량해고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그야말로 침소봉대였을 뿐이다. 코로나19로 경영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휴업을 일부 유연하게 지원한다고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합의안 반대 프레임에는 전통적인 기업별 고용안정 투쟁의 관성이 있었다. 더구나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정세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이들의 운동이 민주노총에 관철될수록 민주노조 운동이 기업별 고용안정 투쟁에 정세와 무관하게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정세에서 고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한계기업의 문제이다. 코로나19는 항공업을 비롯해 다수 업종에 이전 상태로 복구할 수 없을 만큼의 타격을 입혔다. 일시적 해고금지가 아니라 영구적 해고금지를 도입한다고 해도 일자리를 보존할 방법이 없다.
 
이런 정세에서 현장파 의견그룹은 밑도 끝도 없이 투쟁하자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국유화 요구도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정세에서 노사정 교섭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그 투쟁과 요구가 불가능한 사업장들, 즉 투쟁할 대상과 내용이 사라지는 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국유화를 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업종의 고용을 다른 경제 영역에서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예로 주기장에 서 있는 수백 대의 항공기는 국유화된다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 항공기에서 일하는 노동자 역시 강력한 투쟁을 한들 이전처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사회적 대화, 또는 노사정 교섭은 이런 코로나19의 특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현장파 의견그룹의 주장은 평시에, 그것도 지불능력이 있는 사용자를 상대로 한 투쟁을 코로나19 정세에 그대로 가져와 비판의 논거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대상은 코로나19 정세에서 외통수에 내몰린 노동자를 위한 대책이었음에도 말이다.
 
민주노조 운동이 현장파 그룹의 주장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민주노총이 움직이면, 결국에는 대기업, 공공부분 노동자의 투쟁에 민주노총 자원을 모두 동원하는 꼴이 된다. 여러 계급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들의 주장은 대기업, 공공 정규직 노동자를 암묵적으로 전제한 채 기업별 투쟁에 갇힌 민주노총의 관성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〇 당분간 총노동 투쟁전선은 쉽지 않다. 코로나19 정세와 민주노총 역할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는 것이 차선이다.

 
김명환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대위가 꾸려지면, 민주노총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수개월의 시간을 허비한 터라 민주노총 요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조차 합의지반이 약하다. 그럼에도 민주노조 운동이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하려면, 산별노조 중심으로 필요한 일들을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영세사업장, 자영업자의 고용위기 최전선에 있는 총연맹 지역본부 역시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총연맹에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코로나19 정세와 민주노총의 역할에 관한 조합원 토론이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합의가 안 되는 조직을 가지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다음 집행부에서라도 총노동 전선을 만들려면 위원장 선거 전후에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우선,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만드는 방법에 관해 토론해야 한다. 2020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가 확정적이다. 경제규모가 축소되는데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방법은 없다. 더욱이 한국의 이중적 노동시장은 코로나19에도 건재한 상층 노동자와 끝도 없이 추락하는 하층 노동자로 양극화되어 있다. 임금과 고용을 노동자 사이에서 연대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더욱 심각한 양극화로 갈라질 것이다. 한계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는 노동자의 주동적 역할을 찾지 않으면 ‘자본 탓’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재정이 화수분이 아닌 만큼 모든 것을 정부에게 해결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노동자의 자구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의 역할에 관해 토론해야 한다. 이번 혼란에서도 드러난바, 민주노총 내에는 여전히 총연맹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합의가 없다. 위원장을 직선으로 뽑은들 총연맹이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 합의하지 못하면 리더십이 형성될 수 없다. 민주노총이 총자본을 상대로 교섭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아니면 단지 현장 투쟁을 지원하는 공동투쟁체일 뿐인지, 총자본에 대한 교섭이 필요하다면 그 형식과 내용은 무엇인지, 공동투쟁체라면 왜 위원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인지 등을 토론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초기업적 조직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금속, 공공운수 같은 산별노조의 역할과도 연관된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토론이 필요하다. 중앙집행위의 파행적 운영, 일부 노동단체의 회의 방해, 대의원대회 개최 논란, 집행부 측의 정파책임론 등등 지난 3주간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갈등과 혼란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내부 갈등의 소지가 있는 내용을 다룰 때 간부와 조합원들이 어떤 과정으로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야 하는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해놓아야 한다. 25년 역사의 민주노총이 이것도 정리하지 못한다면 ‘민주’의 이름에도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원포인트 노사정대화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 혼란이 혁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민주노조 활동가들이 다시 한번 분골쇄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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