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민중건강과 사회 | 2020.08.28

공공의료로 분칠한 의대 증원 정책과 정부의 갈등 조장을 규탄한다

사회진보연대
 
 
 
우리는 이 글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실효성을 따져보려 한다. 특히 정책의 맥락을 문재인 정부의 다른 보건의료정책과 함께 분석해 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대 정원 증가 정책은 공공의료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공의료 강화에서 우선적 과제는 건강증진과 예방 차원의 일차의료 강화와 병원의 영리 추구 행위 규제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으며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만 늘어나면, 과잉진료와 비급여진료라는 ‘의사 유인 수요’만 늘어날 뿐이다. 정작 의료자본과 대립해야 할 어려운 과제는 피하면서, 코로나19 재유행이라는 위급한 시기 인기영합 정책만 추구하고 있는 정부의 행태를 규탄한다.
 
 

무턱대고 의사 수만 늘리면, 의사 유인 수요만 발생한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진실인가?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의사 생산성 때문이다. 의사의 절대적 수가 OECD 평균보다 적다는 건 사실이다. 대신 한국 의사들은 환자를 훨씬 더 많이 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2012년 한국의 의사 1인당 환자 수는 50.3명으로 유사한 의료체계를 가진 일본의 31명보다도 높으며, OECD 평균인 13.1명보다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오영호, 2016)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0년 의사 인력 공급이 여러 시나리오에 따라 과잉일 수도, 부족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의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여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사 인력 공급을 증가시켜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바로 의료공급체계와 지불보상제도 개편이다. (오영호, 2016) 전제가 필요한 건 의사 유인 수요 때문이다. 의사 인력 공급을 늘렸을 때 환자들의 의료 수요가 그대로라면, 의료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늘면서 의사가 유발하는 ‘의사 유인 수요’가 커져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증가한다면, 의료의 질은 향상되지 않고 의료비 지출만 증가한다.
 
의사 유인 수요는 의사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환자-의사 간 정보비대칭 때문에 발생하는 과잉 의료서비스를 뜻한다. 손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일반적인 감기에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데도 주사를 처방한다거나, 비슷한 효과를 가진 비수술적 치료가 존재하는 데도 척추 수술을 권유하는 경우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의사 유인 수요가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김창엽, 2018)
 
한국은 세 가지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의사 유인 수요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다. 첫째, 행위별 수가제다. 의료행위 수에 비례해 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사들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행위 수를 늘리게 된다. 둘째, 비급여 진료가 만연하다. 비급여는 가격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규제도 급여에 비하면 미미하다. 특히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으면서, 효과는 불분명한 비급여가 의사 유인 수요의 좋은 수단이 된다. 환자 몸에 위해는 최소화하면서 수입은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실손의료보험의 존재다. 앞선 두 가지 상황과 시너지 효과를 낸다. 불필요한 비급여 또는 급여 의료행위를 했을 때, 당시에는 그 경제적 비용을 의사도 환자도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후의 순간에는 환자에게 보험료 증가로 돌아오지만, 그걸 고려하는 환자는 많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의사 유인 수요를 증가시켜왔다

 
 
보건복지부는 증가하는 의사들이 지역에서 10년 의무복무 해야 해서 부작용은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0년 의무복무에는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기간 4~5년이 포함되어 있다. 의무복무는 경험을 쌓는 기회로 쓴 뒤, 수도권에 가서 미용·성형의원을 개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결국 5~6년의 지연기간만 있을 뿐, 공공의료와 무관한 의사 수를 4천 명 더 늘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공공의료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의료공급체계, 지불보상제도, 실손보험 개혁부터 먼저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대해 문재인정부는 특별히 한 게 없다. 의료공급체계 개혁에서 중요한 건 일차의료를 강화하고,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의 난립을 통제하고, 고가 의료기기를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발표한 공공의료 발전 로드맵인,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에는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불보상제도 개편은 이전 정부들부터 하고 있던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을 확대한 것 외에는 별로 한 게 없다. 실손보험 개혁 역시 실망스러운데, 실손보험료를 인하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포기했다. 민간보험사에게 보험료 인상폭 축소를 ‘권고’했을 뿐이다.
 
오히려 의사 유인 수요를 더 촉발하는 정책만 시행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문재인케어의 ‘예비급여’다.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신의료기기를 부분 급여화 해주었다. 이는 의료기기 업계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해주기 위한 정책이다. 신의료기기를 이용한 의료행위는 대부분 비싸다. 따라서 의사들이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 삼기 쉽다. 부분적일지라도 급여화 되면 신의료기기 사용량이 증가한다. 신의료기술 사용량 증가는 의사 유인 수요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에머리대학교, 펜실베니아 대학교 연구팀에 의하면, 수입이 의료행위의 횟수에 비례하면 의사는 효과는 비슷하지만 싼 기존 기술보다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신의료기술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Howard et al., 2019)
 
신의료기기 허가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혁신성이 큰 ‘혁신형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트랙’을 통해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허가해주겠다고 한다. 혁신형 의료기기 지원방안에 대해 정부는 2018년에 연구용역을 진행했는데, 연구책임자 두 명 중 하나가 2019년 식약처장으로 임명된 이의경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다. 연구용역 보고서에서는 ‘혁신의료기술’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했지만, 정책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한편 민간보험사에게는 환자 개인건강정보가 넘어가는 건강관리서비스를 허용해주었다. 이를 통해 축적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민간보험사들은 더 성장할 것이며, 의사 유인 수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의료기기 기업과 민간보험사들을 지원해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진행되었다. 2019년 7월에는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건강보험 재정으로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기업을 지원해주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일도 있었다. 전반적인 보건의료정책 기조는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다. 문재인케어와 같은 간판 보건의료정책은 이런 치부를 가리기 위한 방패막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지지율을 위해 방역을 희생시킨 문재인정부를 규탄한다!

 
 
많은 시민들이 정부와 의사 간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걱정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의사 유인 수요로 인한 한국의 과잉의료 현실에 대한 자기 성찰이 없다. 시민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사태의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문재인정부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지금, 굳이 의사들과 대립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고수할 명분은 전혀 없다. 어차피 부실한 정책이기 때문에, 폐기하고 나중에 다시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중환자실과 간호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엔 전혀 대응하지 않다가, 지금 시점에서 이 정책을 던진 것은 명백한 오판이다.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심각한 무능이고, 의도가 있었다면 더 큰 문제다. 의도가 있었다면, 지지율 상승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는 코로나19를 앞둔 상황에서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을 하기 어려울테니 정책이 관철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시민들의 생명을 걸고 어설픈 패로 도박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악마화 된 적을 만들어 지지자를 재규합하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는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지지율과 같은 자기 진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도리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기본 원칙을 망각한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치는 코로나 2차 대유행 대응의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 실패의 대가는 환자와 사망자의 증가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창보 (2002), 우리나라 의원에서의 의사유인수요 가설 검증,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김창엽 (2018), 건강보장의 이론, 한울.
오영호 외 (2016), 보건의료 환경 변화에 따른 중장기 의료 인력 추계와 정책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Howard, D. H., Hockenberry, J., & David, G. (2019). 8 physicians’ financial incentives to personalize medicine. Economic dimensions of personalized and precision medicine (pp. 217)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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