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0.09.24

법의 지배보다 민주당의 지배가 낫다는 여권의 신종 독재

추 장관은 사퇴하고, 권력기관 개혁안은 재검토하라!

사회진보연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정황상 추 장관의 아들이 ‘엄마 찬스’를 이용해 군 복무 기간 특혜를 입은 것이 분명한데도, 추 장관과 민주당은 사과는커녕 도리어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을 향해 역정을 내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은 공식논평으로 추 장관 아들이 안중근의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실천했다고 추켜세웠고, 황희 의원은 제보자 실명을 공개해 열성 지지자들에게 온라인 공격의 ‘좌표’를 찍어줬다. 박근혜 집권 시기 친박 진영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뻔뻔함이다.
 
추 장관과 민주당이 이런 막무가내 행동을 계속하는 근거는 조국 사태 때와 같다. 바로 검찰개혁이다. 의혹은 그 내용이 중요치 않다. 무엇이든 개혁에 저항하는 정치 공작일 뿐이다. 세상이 검찰개혁이란 정의와 이를 방해하려는 불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 민주당 세력의 세계관이니 말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추 장관 논란의 한복판에서 9월 21일 ‘제2차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전략회의)를 개최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공표하기도 했다. 개혁안의 내용은 1차 때와 같았다. 검찰의 권한을 상당 부분을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넘기는 것이다.
 

추미애 사수와 검찰개혁은 같은 믿음을 공유한다

 
조국, 추미애 두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묻지마식 지지와 현 집권세력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검찰개혁은 하나의 믿음을 공유한다. 민주당에서 ‘문빠’ 당원의 적극적 지지로 최고위원에 당선됐고, 추 장관 엄호의 선봉에 섰던 김종민 의원이 민주당 ‘권력기관 개혁 태스크포스’ 단장으로 선임됐다는 점도 둘이 하나의 맥락이란 점을 방증한다.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그렇다면 그 믿음은 무엇인가? 바로 ‘법의 지배’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지배’를 오랫동안 이어가는 것이 한국 사회의 개혁이라는 믿음이다. 얼마 전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이 20년 집권하는 게 정의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검찰개혁은 그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셈이다.
 

민주당과 경찰의 한국형 뉴딜

 
전략회의 안에 따르면 경찰은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수사를 개시하고,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직접 영장 청구권을 부여하진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수사 재량권'을 준 것이다. 경찰은 앞으로 검찰 지휘에서 대폭 자유로울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집권세력의 사찰에 악용됐던 '정보' 업무를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가져왔다. 정부와 여당은 비대해진 경찰을 통제할 장치로 경찰 조직을 국가, 수사, 자치로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도지사 소속 위원회에서 통제하는 자치경찰 업무는 생활안전, 교통, 경비 같은 수사와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수사업무는 신설되는 국가수사본부를 통해 중앙집권적 통제가 강해진다. 권력기관 개혁의 최종 결론은 “강한 경찰”이라 하겠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정부와 여당은 경찰 강화에 힘을 싣는 것일까? 검찰이 썩었다고, 경찰이 청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본질이 군대인 경찰은 행정부 수장, 즉 대통령과 명령복종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법무부 소속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법을 다루는 사법부와 관계한다. 단적인 예로 검사는 판사로 이동할 수도 있다. 대륙법계 나라에서는 검찰이 사법부 소속이다. 법을 다루는 검찰이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행정부와 항시적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반면, 내치를 담당하는 군대로서 경찰은 행정부와 한 몸이다. 검찰 약화와 경찰 강화는 권력의 배분 측면에서 보면, 행정부의 강화, 사법부의 약화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을 20년간 하려 든다면, 그들이 재집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가 이전보다 더 커진 셈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경찰 전반에 대해 엄격한 내·외부 통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한 강화를 요구하는 경찰과 현 집권세력의 유인(incentive)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경찰은 검찰 지휘 탓에 ‘민중의 지팡이’로서 수사를 공정하게 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얻을 수 있는 조직적 이득도 민중의 지팡이 역할에 있지 않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의 힘을 빼서 얻는 이득은 민주당에 적대적인 수사가 축소되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검찰개혁은 민주당-경찰의 ‘한국형 뉴딜’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재판하겠다?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공수처는 아예 그 뿌리부터가 집권세력의 도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수처는 사법부도 아니고, 행정부 내 사법을 담당하는 법무부 소속도 아니다. 독립기구라고는 하지만 처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구차한 수사들을 치우고 따져보면, 대통령 직속 기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지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사찰을 진행하는 제도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법기구는 원리적으로 봐도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재판”하겠다는 법질서의 타락일 뿐이다.
 
한번 따져보자. 공수처가 행정부와 입법부 권력을 가진 여당 세력을 수사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겠는가. 없다. 감사원의 예를 보자. 최근 최재형 감사원장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의 타당성을 감사하려 들자, 여당과 지지자들이 그의 신상을 털고 감사원 내부를 흔들었다. 청와대가 감사위원에 친정부 인사를 꽂아 넣으려다 마찰을 빚기도 했다. 감사원장이 소신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감사원 소속 공무원들은 긴 공직생활에서 다양한 유형의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결코 청와대와 여당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조건에서 감사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권한이 큰 공수처가 세워지면 당연히 몇 배 큰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권력과 맞서기 위해 감수해야 할 위험은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고, 권력에 밀착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그만큼 클 것이다. 더구나 공수처는 법원이나 검찰이 가지고 있는 헌법상의 권한도 없다. 살아있는 권력이 포획하기 좋은 사법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헌법을 개정해 유신독재를 감행했지만, 이제 민주당은 그런 무리수를 두지 않고도 검찰개혁이란 이름으로 장기 집권의 권력을 쌓을 수 있게 됐다. 여론 압박에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사수하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속내도 바로 이런 것일 터이다. 민주당이 20년을 집권하려 달려든다면, 이제부터 아래는 경찰로, 위는 공수처로 협박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과 공수처는 법의 지배를 그야말로 민주당의 지배로 뒤바꾸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 추 장관은 왜 물러나야 하는가?

 
자유와 평등은 법의 지배를 통해 현대에서 구현됐다. 현대의 법은 명목상 평등하고, 특정 사람들의 네트워크에서 독립된 비인격적(impersonal) 제도이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대신 법에 따라 갈등을 조정하고, 범법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이런 법의 평등성과 비인격성 덕분이다. 법이 특정 세력에게 포획되어 불평등하고 인격적으로 변질하면, 사람들은 법에 의지하는 대신 사적인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거나, 리바이어던 같은 절대권력이 폭력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두 상태 모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당의 법의식은 이런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저들은 법의 보편적 효용 대신 특수한 도구로서 성격에 집착한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이 솔직하게 고백하는 검찰개혁의 목표인데, 이때 운동장 양편에는 전통적인 두 거대정당이 있을 뿐이다. 법의 지배가 아니라 권력 게임이 개혁의 목표란 것이다. 물론 이는 보수세력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민들이 민주당을 박근혜 탄핵 이후 압도적 지지로 당선시킨 이유는 보수세력의 다른 분파로 성장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사실 박근혜 탄핵이 없었다면 민주당 집권은 확실하지도 않았다.
 
법을 도구로 삼아 권력을 유지하려는 엘리트가 늘어나면, 권력이 없는 시민의 삶은 더욱 비참해진다. 본질적으로 법이 지배계급의 통치 도구라 하더라도 평등한 법이라는 명분마저 사라지면, 시장과 정부에서 힘을 가진 엘리트들이 미조직된 시민 개개인을 이전보다 더 쉽게 착취하고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가 계급적 지배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세우는 평등과 비인격성은 피지배계급이 좀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고 불평등한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민주당은 이제 그 자그마한 민주주의의 근거마저 타락시키려 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운동 조직들은 추미애 사퇴를 요구하고, 권력기관 개혁안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법의 지배를 민주당의 지배로 바꾸려는 현 집권세력의 시도는 노동자 민중에게도 불리한 변화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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