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12.08

민주노총, 북한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10기 민주노총 임원선거 분석(3)] 맹목적 통일운동인가, 반전반핵평화인가

사회진보연대
 
기호1번 김상구 후보조와 기호3번 양경수 후보조가 결선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두 후보조는 우리가 이번에 다루려 했던 주제(한반도 문제)에 대해 입장이 비슷하다.
 
기호1번은 대중적 일상적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하겠다며,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투쟁과 남북노동자 교류, 남북 평화철도 잇기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현 문재인 정부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기호3번은 통일담론의 확장(<민플러스> 인터뷰)외에 구체적 공약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 후보는 ‘(민주노동자)전국회의’로 불리는 자민통 의견그룹에 친화적이다. ‘전국회의’는 통진당-민중당-진보당으로 이어진 흐름과 함께하는 세력이다.

 

민주노총 통일운동 이대로 괜찮은가

 
과연 민주노총의 통일운동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오랫동안 ‘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통일위원회는 사실상 자민통 계열의 의견그룹들이 운영해왔다. 한반도 위기를 미국 책임론에 입각해 분석하고 한미워킹그룹 해체, 한미군사훈련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꾸준하게 주장해왔다. 물론 이런 요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 전략은 항상 비판의 대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맥락이다. 1번, 3번 두 후보조 노선이 밀월하던 시절의 김명환 집행부 통일위원회는 2018년에 “노동자가 알아야 할 북녘 이야기”라는 소책자를 발행했다. 내용은 황당함을 넘어 끔찍했는데, 김정은 3대 세습과 군부에 의한 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붕괴 직전의 북한 경제까지 미화했기 때문이다. 팜플렛은 발전하는 평양으로 시작해 김정은 위원장의 업적으로 끝난다. 그의 업적이란 핵 무력 완성이다.
 
2020년대 한반도 정세에서 북한 핵무장을 비판하지 않고, 조건 없는 남북교류나 무조건적 미국 비판에만 집중하는 건 한반도 평화에 도리어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는 한, 한반도 평화가 주관적 희망에 불과하다는 점은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이 보여준 결과에서 정확하게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없더라도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대북 정책에 접근했다. 심지어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 정권의 비핵화 의지가 시험대에 놓였을 때도 갖가지 남북협력 이벤트만 벌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 올해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다. 연락사무소는 정식 수교를 수립하지 않은 국가 간에 외교관계를 위해 설치한다. 실질적으로 대사관 등 외교공관이나 다름없다. 이런 비상식적 처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9월에는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에서 사살됐다. 참고로, 문재인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남북군사합의 1조는 다음과 같다. “남북은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인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
 

북한 핵무장의 성격

 
자민통 등 민중운동 일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미국의 군사 압력에 대항하는 자위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민주노총 내에서는 기호3번과 친화적인 전국회의가 그런 태도가 강하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의 역사적 성격은 영토점령이 목적이기보다 자유무역·자유기업 질서를 확장하는 데 있었다. 냉전이라는 말 자체가 열전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것으로, 전쟁을 억지하는 가운데 경제적 차원의 체제경쟁을 벌인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보면 한반도 전쟁위기는 1990년대 탈냉전 분위기에 역행해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하면서 고조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NPT를 탈퇴하거나, 핵미사일 실험을 함으로써 1994년 클린턴 정부가 정밀타격을 검토하고 트럼프 정부가 ‘코피전략’을 검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미국도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핵이 동아시아 핵 개발 도미노를 부추기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의 핵무장 시도는 북한 핵이 중요한 명분이다. 남한에서도 핵무장론이 심상치 않게 나온다. 미국에서는 남한과 일본을 상대로 한 나토(NATO) 방식의 ‘핵 공유’가 거론된다. 핵 공유란 나토 회원국에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핵무기 사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미국이 갖지만, 관리 운용에 대한 전략을 공유하고 훈련도 함께 하는 방식이다. 중국과 미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민감하게 대결하고 있고, 호전적인 일본 우익도 성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비교하면 동아시아가 1차 세계대전 직전의 발트해 같은 화약고가 되는 셈이다. 그것도 핵무기를 보유한 채 말이다. 동아시아 민중의 공멸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유를 불문하고 누구도 동아시아에서 핵 개발의 유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오히려 김정은 체제의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어떤 의미에서도 긍정적 면을 찾을 수 없다. 3대 세습이라는 봉건적 권력 계승이 어떤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당의 독재도 아닌, 혈연에 기반한 개인, 가족독재란 사회주의에 한참 미달하는 건 물론이고 자유주의와도 무관하다. 파탄이 난 경제 문제도 그렇다. 미국의 제재도 영향을 끼쳤지만, 부패한 독재 정권의 비합리적이고 반민중적 정책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당과 군의 비공식적 특권경제가 공식경제(인민경제)의 우위에 서고 그로 인해 인민경제가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민통 세력은 통진당 시절 제기된 북핵·북한인권·3대세습 문제에 대해 일반적인 대중의 상식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민주노총을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방향으로 이끌지 않을까 매우 우려스럽다.
 

진정 놓치지 않아야 할 쟁점

 
2021년 미국 민주당 정통파라 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보다 훨씬 더 북핵 폐기 원칙에 충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갈등은 형태만 바뀌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북한 김정은 정권은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시험 같은 북미 간의 암묵적 ‘레드라인’을 넘는 행동도 불사할 수 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문재인 정부는 대북 성적표를 부풀리기 위해 더 북한에 매달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려스러운 흐름의 반대편에는 ‘핵무기금지조약’이 발효될 예정이다. 내년 1월 22일, 사상 최초로 전세계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핵무기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국제조약이다. 이미 80개 이상 국가가 핵무기금지조약을 서명 혹은 비준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등 미국의 핵우산 안에 있는 국가에서도 진보좌파들이 자국의 조약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도 한반도에서 이런 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오히려 국제주의와 평화의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길을 우리 운동의 방향으로 내세워야 한다.
 
그렇지만 10기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기호1번 후보조는 관성적 수준에서 남북교류를, 기호3번 후보조는 '통일담론'의 확장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동향과 동아시아 핵 도미노의 문제에 맞선 민중운동의 대안에 대한 토론은 없다. 반전, 반핵, 평화라는 민중운동의 원칙이 북한의 3대 세습과 핵무장에 대한 맹목으로 인해 변질되어선 안 된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서 놓쳐선 안 되는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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