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3.09

윤석열의 정치가 아니라 민주당의 법치 파괴가 쟁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와 중수청 설립 시도에 대한 논평

사회진보연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추진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당이 만들려는 중수청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모두 이관받는다. 말 그대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기관이다.
 
윤 전 총장은 얼마 전까지도 부패 수사 완수를 위해 임기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었다. 하지만 이번 중수청 설립은 지금까지와는 수준이 다른 문제라고 판단한 것 같다. 사퇴의 변에서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저의 마지막 책무”를 다하려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제부터는 정권 수사의 완수 여부가 아니라, 법치주의 존립 여부가 문제라는 것이다.
 
집권 세력의 중수청 설립은 정치적 의도부터 노골적이다. 중수청에 연일 목소리를 높이던 여당이 윤 총장이 사퇴하자마자 속도 조절론을 꺼내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검찰이 정권 비리 수사를 밀어붙이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수청은 그 시작부터 느닷없었다. 중수청은 따로 공론화 과정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올해 1월 말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추미애 장관이 추진한 윤 총장 징계가 법원에서 막히고, 김학의 출금 관련 법무부의 위법 행위가 폭로된 이후였다.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자, 윤 총장 찍어내기에 실패했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아예 ‘검수완박’을 추진한 것이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집권 세력의 파렴치함보다 윤석열 사퇴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식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참여연대는 윤 총장 사퇴가 검찰 기득권 방어용이라고 평가했고, 정의당은 윤 총장이 정계 진출을 위해 중수청을 핑계로 사퇴했다고 비난했다. 둘은 중수청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판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의도가 무엇이든 검찰이란 거악을 처단하는 게 결과적으로 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여러 개혁에서 봤듯,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개혁은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 가는 도로”가 되기 십상이다. 검찰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이미 민주당식 검찰개혁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비판한 바 있다. 요점만 말하면 다음과 같다. 검찰의 선택적 권력 부패 수사보다 공수처의 대통령 청부 부패 수사가 더 위험하고, 준-사법부 성격의 검찰이 저지르는 권력 남용보다, 준-군대 성격의 경찰이 저지르는 폭력이 더 무섭다. 즉,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 독점을 완화하는 것이 긍정적 효과를 가지려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분산과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개혁은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힘만 키우고 만다.
 
문재인 시대 대통령 권력은 박근혜 시절 이상으로 커졌다. 문 정부에서 역대 최강의 경찰도 탄생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가 생겼고, 행안부 산하 경찰은 수천 명의 정보 경찰을 그대로 보유한 채로 국정원 대공 수사권도 가져왔다. 검찰개혁의 전제조건을 파괴한 민주당이 추진하는 중수청은 이런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집권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법 질서를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말이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집권 세력도 이번 전례를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법 질서를 또 만들게 될 것이다. 한 번 바꾼 것 두 번이 안 될 리 없다.
 
한편, 검찰총장 사퇴 이후 윤석열은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3월 8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씨의 지지도는 32%로, 2위 이재명(24%), 3위 이낙연(15%)을 크게 따돌렸다. 컨벤션 효과를 고려해도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집권 세력의 ‘내로남불’에 지친 여론이 법치 원칙의 아이콘이 된 윤 전 총장에게 몰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의 사퇴 직후 LH공사 직원 땅투기 사건이 폭로되었다. 정부가 구성한 대응반에는 검찰이 빠져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른 결과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수사를 맡는다. 윤 전 총장은 이전부터 검찰의 반부패 역량 약화는 국민적 손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다. 경찰이 꼬리 자르기 수사로 사태를 봉합하거나 무능으로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윤 전 총장에 대한 지지는 더욱 상승할 것이다.
 
물론 윤 전 총장의 정치권 진출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검찰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현 정세에서 그의 정치권 진출 여부가 핵심 쟁점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집권 세력의 막무가내 검찰 파괴에 대한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윤 총장 사퇴 사태는 그의 정치 진출 여부가 아니라 현 집권 세력의 법치 파괴가 무엇인지를 두고 쟁점이 되어야 한다. 조국 사태, 울산시장 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기, 월성 원전 사태 등등 현 정부는 온갖 비리에도 사과 한마디 없이 이 모두가 검찰 탓이라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리고 이 억지는 검찰 개혁이란 명분으로 계속돼왔다. “오직 나에게만 공평한 법”을 만드는 걸 법치주의라 우기고 있는 꼴이다. 정치인 누가 지지율을 더 얻느냐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것에 시민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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