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4.05

미얀마 쿠데타: 부패한 군부와 중국의 대외확장

군부의 쿠데타와 시민 학살을 규탄한다!

사회진보연대
미얀마 군부는 작년 11월 8일에 치러진 미얀마 총선결과에 불복하며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이 구금되었고 의회와 정부를 해산하여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바로 다음날부터 군부의 쿠데타에 반발하여 항의시위를 벌였고 군부는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했다. 심지어 군부는 비무장 시민을 상대로 발포까지 감행했다. 진압군과 시위대 사이의 격렬한 충돌이 계속되어 3월 30일 현재까지 최소 510명이 사망했고 최소 2900여명이 체포되었다. 미얀마 쿠데타가 발발한 직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성명이 발표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쿠데타를 규탄하며 추가적인 제재조치를 경고하기도 했다.
 
유엔은 2월 2일 즉각적으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으나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규탄성명을 발표하지는 못했다. 2월 5일에 이르러서야 사태와 관련한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 유엔 안보리 성명의 수위가 조절된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쿠데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고, 더불어 추가적인 조치를 경고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는 최근 그들이 북한, 이란 등 16개국과 함께 유엔 내에서 무력사용 및 일방적 제재 조치에 반대하는 이른바 “유엔 헌장을 수호하는 친구들의 그룹” 결성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과도 맞닿아 있어 보인다. 이 그룹에 참여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다시 다자주의적 질서로 복귀해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들을 압박하자 이에 맞서 권위주의 국가들 나름의 다자주의적 틀을 형성한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과 러시아의 미온적인 태도, 특히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와 관련하여 이번 쿠데타의 배후에 중국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중국은 “완전히 터무니 없다”고 반박하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듯, 중국 배후설 의혹이 제기되는 여러 이유를 포착해볼 수 있다.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

 

중국의 대(對)미얀마 인프라 투자

 
중국과 미얀마는 오랜 기간 우호국가였다. 1962년 네 윈의 쿠데타 이후 버마사회주의계획당이 집권하면서부터 였다. 1988년 8888항쟁으로 버마사회주의계획당이 해체된 이후에도 미얀마 군부와 중국의 친밀한 관계는 유지되었는데, 특히 경제분야에서 밀접한 교류가 이뤄졌다. 이는 미얀마의 외채 규모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총액 91억 달러의 외채 중 42%에 해당하는 38억 달러가 중국에 대한 부채이다. 그리고 이 부채의 97%가 1988년에서 2011년 사이에 발생했다. 전 세계 최빈국으로 지정될 정도로 좋지 않았던 미얀마의 경제상황이 8888항쟁의 이유 중 하나였던 만큼, 군부는 199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여러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 군부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취약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장 기반 개혁도 시도했다.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법을 도입했고, 국제 무역과 해외 투자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미국과 EU는 군부의 민주주의 탄압을 이유로 미얀마에 각종 경제제재를 부과한 상황이었다. 미얀마 군부는 더욱 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역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1980년대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로 중국은 해외로 공간을 넓히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그 최신 버전이 일대일로다.) 중국은 1990년대 미개발 지역이었던 중국 서남부를 개발하는 동시에 더 싼 임금노동자를 찾아 국경이 직접 맞닿아있는 미얀마로 진출을 시도했다. 1990년대 양국은 다수의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고 석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 아시아 횡단 철도, 고속도로 건설 등의 투자가 이뤄졌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는 경제협력과 관련한 최소 75개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중국의 일대일로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미얀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력공급망 건설로 양국의 전력망을 연결했고 이야라와디강 개발을 통해 새로운 수로도 건설 중이다.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특별경제구역 및 산업단지에도 투자했다. 나아가 2018년에는 중국-차이나 경제회랑(CMEC)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는데, CMEC는 중국 윈난성과 미얀마의 중부 만달레이, 서부 벵갈만에 위치한 짜욱퓨(Kyaukphyu) 항구, 동부의 경제 수도인 양곤을 연결하는 약 1700㎞에 달하는 회랑 건설 프로젝트다. 이로써 중국은 미얀마의 최대 투자국이자 최대의 무역파트너로 등극했다.
 

대중국 ‘부채의 함정’과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

 
미얀마의 중국 의존도는 상당하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미얀마의 목줄을 틀어쥐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치명적 문제다. 예로 양국의 전력망이 연결되어있는 상황에서 모종의 이유로 중국이 전력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미얀마에는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사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나아가 인프라 건설로 인한 ‘부채의 함정’ 문제가 있다. 현재 건설하고 있는 도로와 철도가 완공된다면 미얀마가 떠안게 될 부채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 건설로 제기된 바 있는 ‘부채의 함정’에 미얀마 역시 빠질 수 있다. (함반토타항은 중국 국영 기업의 주도로 건설됐는데, 스리랑카가 비용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자 항만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양도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국가에 인프라 투자를 명목으로 빚을 지게하고 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거래를 한다고 하여 부채의 함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중국이 미얀마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말라카 해협에서의 위협에 대한 헤징이다. 말라카 해협은 아시아 국가들의 주요 석유수입 통로이며 전 세계 운송량의 20%가 이 해협을 지난다. 만약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우회해야 한다면 막대한 추가 유통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곳을 활용할 수 있는가가 국제무역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태평양 지역의 주도권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이 위협에 대비해 미얀마에 각종 인프라를 건설해 벵골만과 중국을 직접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말라카 해협에서의 위협을 헤징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벵골만의 짜욱퓨 항구의 지분도 70% 소유하고 있다. 만약 미얀마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면 짜욱퓨 항구의 운영권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부채의 함정이다.
 

미얀마는 왜 중국과 협력했는가

 
그렇다면 미얀마 군부는 왜 이런 인프라 투자를 진행했을까. 일단 경제성장이 시급한 과제였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경제를 개방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불가피했고 그 틈을 중국이 공략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나마 민정이양이 이뤄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서방의 제재가 해제되면서 서방의 자본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중국이 제1투자국이라는 조건은 변화하지 않았다. 더욱이 2017년 로힝야 사태 이후 서방 국가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더욱 중국과의 관계가 가까워졌다. 경제회랑 건설은 이런 조건 위에서 합의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건과 별개로 중국과 경제 합작에 있어서 군부 고위 인사와의 개별적인 유착 정황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프라 구축에 관한 경제협정을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미얀마 측 주체(협력기업)가 군부 고위 인사의 개인 기업인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국제싱크탱크 트랜스내셔널인스티튜트(TNI)에 따르면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승리했음에도 중국의 관리들에게는 여전히 땃마도(미얀마 군)-통합단결발전당(USDP) 정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미얀마 내 지배 엘리트층, 그들과 가까운 기업은 이미 중국의 경제전략에 합류한지 오래라는 것이다.
 
TNI의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웅 윈 카잉의 만달레이묘타산업개발(MMID)의 사례는 미얀마 군부와 중국의 유착을 잘 보여준다. 윈 카잉은 2011년에 중령으로 진급한 뒤 카렌 주의 한 보병사단 지휘관으로 복무하다가 2014년에 은퇴했다. 그 후 MMID의 회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만달레이지역 근처의 묘타 산업단지에 투자를 유치했는데, 주된 대상은 중국 투자자였다. 이를 위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산업단지 조성 당시의 주 미얀마 중국대사인 홍량 역시 이곳을 방문해 홍보에 힘을 보탰다.
 
물론 아직까지는 미얀마 군부가 중국기업과의 합작에 관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수면위로 드러난 사례가 많지 않다. 다만 대중에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깜깜이’ 사업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관련해서는 미얀마 내의 시민단체들도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위와 같은 유착관계가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미얀마 군부는 자칫 국가의 경제주권을 침해당할 수도 있는 부채의 함정이라는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익을 추구한 세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지금껏 살펴본 여러 조건들은 중국과 미얀마 군부가 현 상황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를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사실 앞서 살펴본 중국의 대외정책은 제국주의시기 열강들의 팽창정책과 유사하다. 즉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주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한다는 의미다.
 
한편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의 NLD정부는 기대와는 다르게 군부 및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다. 로힝야 사태와 같이 군부의 소수민족탄압을 막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NLD정부에 기대한 민주주의의 진전은 그다지 큰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군부의 재집권이 그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1962년 이후로 군부는 무능과 사익추구로 미얀마를 세계 최빈국으로 만들었다. 군부( 및 쿠데타)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은 일각의 주장처럼 서방 언론들의 데마고기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미얀마 군부는 그 뿌리가 독립군이었고 사회주의를 표방했었던 역사가 있기에 정당하다는 진보진영 일각의 주장 역시 어불성설이다. 현재 군부가 시위대에 발포하는 모습을 보라. 군대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허용될 수 없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와 시위대 강경 진압을 규탄한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하루빨리 종식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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