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7.07

실패한 사회주의, 한계에 부닥친 자본주의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지난 7월 1일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었다. 시진핑은 기념 연설에서 “중국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포했으며, 자신의 정책이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 어디에도 마르크스가 쓴 《공산주의자 선언》(공산당선언)의 결론,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자기 자신의 과제여야 하며,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없었다. “만리장성 앞에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외국 세력과 위대한 중화 민족만 있었을 뿐이다.
 

공산당에 의한, 공산당을 위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진핑의 100주년 연설은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배경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중국 현대 역사를 공산당 창당 이후 100년간의 구시대와 앞으로 나아갈 신시대 100년으로 나눴다. 마오쩌둥이 수천 년 중국 역사를 구(舊)중국과 신(新)중국으로 나눴던 걸 따라 한 것인데, 신중국의 국부(國父)가 마오쩌둥이었다면 신시대의 국부는 이제부터 시진핑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성취하는 신시대는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건설해,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시대다. 불평등 해소,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재편, 부패 척결, 중국식 세계화 등이 이를 위한 과제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그럴듯한 말들의 안쪽에 숨겨진 내용이다. 이 모든 걸 성취하는 주체가 다름 아닌 공산당이란 점! 19차 당대회의 선언 중 하나는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이었다. 시진핑은 100주년 연설에서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본질은 공산당의 영도력”이라고 강조했다. 공산당의, 공산당에 의한, 공산당을 위한 신시대! 그리고 그 공산당의 유일무이한 권력인 시진핑! 이것이 공산당의 또다른 100년을 위한 비전인 셈이다.
 

독재가 지속가능할까?

 
중국은 세계에 개방되어 있음에도 정치, 사법, 언론 등에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통제가 이뤄지는 나라다. 국민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거대 권력의 감시를 받는다. 당연히 불만이 크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공산당이 독재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경제성장으로 국민의 불만을 관리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은 어떤 경우에도 고용과 소득증가를 포기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시진핑과 공산당의 독재를 위한 비용이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충당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미래는 밝지 않다. 경제성장은 둔화하는데, 시진핑의 독재가 가지는 모순은 계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우선, 중국 경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는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개발도상국의 추격성장 모델은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며 대규모 자본투자와 인구 동원으로 고도성장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델은 자본집적이 어느 정도 증가한 후에는 필연적으로 생산성 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때 경쟁, 소유, 분배 등의 제도를 제대로 개혁해야 생산성 하락 속도를 늦추며 선진국 도약에 필요한 역량을 축적할 수 있다. 이런 개혁에는 정경유착, 대마불사 등으로 표현되는 지대 추구(rent-seeking)를 목적으로 한 기득권 동맹이 최대 장애물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추격성장 시기의 만들어진 지대 동맹을 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단적인 사례가 국유기업 문제다. 국유기업 생산성은 민간기업보다 한참 낮다. 국유기업 생산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하락했지만, 이들의 부채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특히 국유기업 부채는 시진핑 집권 이후 급증했는데, 시진핑의 ‘중국몽’을 실현하는데 국유기업이 동원된 결과였다. 심지어 지방정부와 결탁한 지방 국유기업들의 부실 상태는 정확히 확인되지도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상황도 엉망이다.
 
공산당의 정경유착과 국유기업의 대마불사는 한국의 1990년대를 느리게 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을 계기로 1990년대 초중반 재벌의 대마불사형 과잉투자가 급증했고, 87년 민주화 이후 대규모 선거자금을 매개로 금권정치가 만연했다. 그 결과 국가가 부도나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중국은 한국 같은 국가부도를 겪지는 않겠지만, 위기의 규모가 거대한 만큼 ‘함정’에 더 오랫동안 갇힐 가능성이 크다.
 
물론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진다고 곧바로 공산당의 위기가 닥치는 것은 아니다. 공산당의 우군 역할을 하는 거대한 국유기업들, 정부의 촘촘하고 고도화된 통제 시스템, 중앙통제가 가능한 금융,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농촌, 당의 통제하에 있는 노동조직 등등. 중국에서 공산당의 영향권을 벗어난 정치 공간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공산당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그럭저럭 통치력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영도력이 지속해서 대중적 의심을 받는다면, 중국의 리바이어던 역시 힘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과 세계화에 익숙해진 중국은 북한 같은 세습적 봉건왕조 체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독재와 성장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균형을 찾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하향식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체제는 아래로부터의 자기 조정적 기제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어떤 임계점을 넘는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미국과 체제 경쟁을 하던 소련이 1970년대 찾아온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다가, 십여 년 만에 느닷없이 붕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회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

 
한편, 중국공산당의 지속가능성과 별개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주의의 타락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억압과 빈곤을 철폐하자며 50여 명의 당원과 10여 명의 대표자로 창당했다. 공산당은 反제국주의, 反봉건주의, 反관료자본주의의 기치로 대중을 모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했다. 공화국의 노선은 신민주주의였다. 신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한동안 동행할 수밖에 없다는 노선이다. 정치 혁명을 완수했다고 자본주의적 관습과 세력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점진적으로 사회주의적 제도와 관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신민주주의 노선은 추진 몇 년 만에 폐기됐다. 공산당 주도로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사회주의적 방식으로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자는 대약진운동이 추진됐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1960년대에는 지금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문화대혁명이 발발했다. 공화국이 사회주의로 진입했다는 선언은 있었지만, 대약진운동 실패의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도대체 그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두고 논란이 커진 것이 계기였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에 반하는 세력과 문화를 척결하자는 대중운동이 확산했고, 마오쩌둥이 이를 지지하면서 일파만파로 운동이 커졌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비판의 대상이었던 관료적 공산당은 도리어 더 강해졌고, 대중운동으로 사회주의적 구상이 성숙해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는 오랫동안 중국 사회주의를 짓눌렀다.
 
신민주주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의 연이은 실패 속에서 1970년대 말부터 개혁·개방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공산당 독재라는 유산을 제외하면, 사회주의 세계와 관련한 고민은 정치의 중심에서 사라진다. 30여 년의 항일투쟁과 내전, 그리고 30여 년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 실험을 거쳐, 40여 년의 자본주의 개도국으로서 추격성장이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의 신시대 규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은 어떤 점에서도 대안 세계와 연결고리가 없다. 자유, 평등, 풍요 모든 면에서 중국은 기존 자본주의 선진국에 한참 미달한다. 현재 중국공산당은 창당 당시의 목표와 정반대로 제국주의, 독재, 국가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렇게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는 국가화된 당, 당에 복속된 국가가 가질 수밖에 없는 모순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시장이 가진 모순만큼, 당의 계획이 가진 결함과 공백도 크다. 국가폭력에 의한 변화는 시민의 자유와 성숙을 보장하지 못한다. 시장보다 우월한 생산자조직, 국가의 폭력보다 우월한 시민의 자치,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는 사회운동이 대안 세계 건설의 전제조건임을 중국공산당 100년사가 증명한다.
 
주제어
정치 국제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