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09.30

아프간 미군 철수 이후 한 달, 미국-아프간 전쟁을 돌아본다 ①

: 미국-아프간 전쟁의 정당성문제 검토

사회진보연대
2021년 8월 30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 직후 성명에서 “아프간에서의 20년 주둔이 끝났다”고 밝히면서 미국-아프가니스탄의 20년 전쟁이 완전히 종결되었다. 탈레반은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전 세계의 많은 언론은 미국의 성급한 철수를 비판했는데, 성급한 철수로 인해 야기된 혼란과 탈레반의 재장악 이후에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반인권적 상황에 대한 우려가 그 이유였다. 실제로 탈레반의 재장악 이후 우려했던 상황들(탈레반에 비판적인 인사가 살해되거나 여성 인권에 대한 탄압이 벌어지는 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탈레반이 아프간의 정부로서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탈레반의 이와 같은 행보는 아프간이 처한 경제적 곤란이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탈레반의 노선이 테러리즘 그 자체보다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는 카불 함락 직후, 탈레반의 핵심 이익이 국제적 인정과 국제원조임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우간다, 르완다와 같이 작고 원조에 의존하는 나라의 경우 외국의 후원자에 대해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입증되었다. 비록 두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는 후퇴했지만 이는 서구가 두 이슈에 대해 덜 강조하는 대신에 반테러리즘과 다른 목적을 우선순위에 둔 결과였다. 탈레반은 이런 계산을 이해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면서 이 나라에 있는 IS와의 전투를 부각했다. (…) 그들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이라 보는지 여부는 그들의 개인적인 진정성뿐만 아니라 외부세계가 그들을 위해 어떤 인센티브를 마련하는지에 달렸다.” 또 《한겨레》는 전쟁의 완전한 종식, 포용적인 정부 구성 및 전후 재건이 아프간 국민들에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관여를 해야 한다, 이는 탈레반을 부정하고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내용을 칼럼을 실었다. 이 외에도 미국의 싱크탱크인 CSIS는 탈레반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지렛대로 삼아서 아프간 내의 여성인권문제 등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제한적이고 타협적이며 심지어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제안들은 탈레반을 아프간의 공식 정부로 인정하고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차라리 아프간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더 나은 방향일수 있다는 전망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20년간의 전쟁에서 아프간의 재건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했다. 미국 브라운대의 발표에 따르면 2조 2610억 달러가 전쟁자금으로 지출되었다. 막대한 전비지출에도 미국은 패전했고 미국에 의한 아프간 재건은 실패했는데, 이 큰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련해서 크게 세 주제로 나누어 1) 미국-아프간 전쟁의 정당성 문제, 2) 미국의 아프간 재건 실패, 3) 탈레반에 대한 심층 분석으로 나누어 검토하려 한다. 이번 글에서는 1) 미국-아프간 전쟁의 정당성문제를 검토한다.
 
[출처: 코리아데일리타임즈 2021.7.9.]
 
미국은 왜 아프간을 침공했고 왜 철수했나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직접적 계기는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9.11테러, 그리고 이들에 대한 신병인도를 거부한 탈레반에 대한 보복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아프간 침공을 통해서 얻는 것들은 단순히 테러에 대한 응징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었음은 자명하다.
미국은 1970년대 석유가 가지는 군사적 및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게 된 이후부터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 외적으로는 소련의 남하를 견제하고, 중동 내적으로는 이란의 패권을 견제하는 방식으로 중동지역에 대한 개입을 시작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소련이라는 외부적 위협이 사라졌기 때문에 중동 내적 요인의 관리, 즉 이란의 패권을 견제하고 나머지 국가들이 미국에 의존해야만 하게끔 개입한다. 아프간 전쟁도 이런 맥락에서 발발했는데, 미국이 중동에서 석유 통제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있어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한 빈 라덴과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테러리즘 조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중동지역에서는 미국의 억지전략이 점차 통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은 확실한 군사력의 우위로 정부를 전복하는 등의 전략을 수행할 수는 있었지만 수십 년간의 역사에서 헤즈볼라, 하마스 등의 비국가 무장집단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들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끈질기게 저항하며 그들의 영향력을 넓혀갔다. 중동에서 미국의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그만큼 부담은 증대되었다. 게다가 2010년대의 셰일가스 혁명은 중동에서 미국의 핵심이익인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대체할 수 있게 했다.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중동을 온전히 관리할 결정적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한편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노선이 변화한다. 즉 태평양으로의 선회가 시작된다. 미국은 일차적으로 경제회복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주목한다.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의 창설에 주목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로 2008년부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에 참여한다.
이런 움직임은 경제협력 강화를 통한 경제회복인 동시에 역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미국은 세계 어느 지역에나 자신의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그 위기감의 배후에 중국이 있었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한 뒤 세계 최대의 수출국이 되었음에도 자유주의적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군사력도 점차 키워가고 있었다.
중동은 미국에 있어 더는 사활을 걸고 확보해야할 지역이 아니게 되어간 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투사는 중국이 부상하는 만큼 중요해져갔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는다는 노선으로 전환하고 대부분의 역량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한다. 아프간 철수는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탈레반의 등장과 미국
 
20년간 미국의 전쟁 상대였던 탈레반은 누구인가? 그들은 미국이 소련과 아프간 공산정권과의 대결을 위해 이슬람 전사들을 육성하는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미국은 1970년대 말부터 소련을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소련과 전쟁 중이던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다. 그렇게 미국은 반소 저항전쟁을 수행할 7개 단위의 이슬람 세력을 창출했는데, 이렇게 7개 단위로 나눈 것은 오로지 이슬람 세력을 각각 분할·통제하려는 전략적 의도에서 였다. 미국은 각각의 세력이 경쟁적인 관계에 놓여 서로 의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원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슬람 세력 간에 경쟁이 격화되었고 심각한 내분에 빠지게 된다. 1989년 소련군 철수 이후 미국은 이 이슬람 세력을 통합하여 아프간에 임시정부를 구성하려 시도했으나 이미 이슬람 세력 각각은 이미 준정부기구 급의 체계과 군대를 갖추고 있었고 그들 간의 감정의 골도 매우 깊었다. 또 각각의 조직은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주변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대립했고 결국 아프간 전 지역이 심각한 내전상태로 돌입한다.
탈레반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다. 탈레반은 내전으로 인한 아프간의 무정부 상태에 분노하여 군벌주의의 척결과 사회정화를 내걸고 아프간 인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탈레반은 아프간 민족구성상 40~45%로 다수민족을 차지하는 파슈툰족이 주도했다. 권력투쟁으로 내전을 치르던 7개의 이슬람단체가 오히려 소수민족이었다. 탈레반은 1996년에 카불을 점령하며 결정적인 성공을 거둔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 미국은 신중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까지 미국은 이란, 러시아 등 미국의 경쟁자들과 거리를 두면서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탈레반 정권과 공존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라 여겼다. 그러나 1998년 케냐,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에 대한 공격에 빈 라덴이 개입했다는 클린턴 정부의 발표 이후 미국은 아프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는 등 상황이 급변한다. 그러던 중 9.11 테러가 발생해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고, 반탈레반 세력이었던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이렇듯 미국이 이슬람 세력을 분할관리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탈레반이 등장했고 미국은 그들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
 
아프간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나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일 때마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아프간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주장하듯이 정의로운 전쟁이었는가.
우선 정의로운 전쟁은 중세 가톨릭계열 학자들에 의해 개념화된 것으로 전쟁은 기본적으로 살상과 파괴를 동반하기에 바람직하지 않지만 전쟁의 시작, 수행, 종식에 있어서 원칙과 규범, 도덕성을 만족한다면 정의로운 전쟁이 가능하다고 본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서양의 전쟁연구자들은 정의로운 전쟁이론에 대해 전쟁 선포의 정당성, 전쟁 수행의 정당성, 전쟁 종식의 정당성이라는 세 측면으로 접근한다. 특히 현대적인 정의로운 전쟁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평가를 받는 마이클 윌저는 인권개념을 바탕으로 정의로운 전쟁의 기준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는 전쟁선포의 정당성과 관련해 1) 정당한 명분 2) 올바른 의도 3) 적절한 권위와 공개적인 선언 4) 모든 평화적 방법이 무산되고 분쟁을 해결할 마지막 수단 5) 승리 가능성 6) 손실보다 큰 이득(비례성의 원칙)을 기준으로 제시한다.
대체로 아프간 전쟁이 정당했다는 주장은 반복적인 (테러)위협을 줄이기 위해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모든 대응이 필수적임을 명분으로 삼는다. 그리고 나아가 이런 위협이 동맹국 등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제거하고 안정적인 정부를 수립한다는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 아프간은 UN이 승인한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작전영역이므로 국제법상으로도 적절하며 승리 가능성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아프간 전쟁이 정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의도가 정당했느냐다. 의도가 정당한지 따지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공격목표가 누구였는가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미국의 공격목표는 테러를 직접적으로 수행한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결과적으로 이들의 신병인도를 거부한 탈레반 정부도 공격목표로 설정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짚을 수 있다. 우선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군사작전의 대상으로 적법한가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국가가 아닌 테러행위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테러는 무력공격이 아니라 테러 행위자의 공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UN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의 무력공격을 승인하지 않은 이유다. 또한 테러행위는 전쟁행위와는 다르다는 점에서도 전쟁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은 이런 쟁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테러를 전쟁행위로 간주하여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벌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 탈레반 정부가 한 행위는 범죄자 신병인도 거부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력공격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게다가 미국은 9.11테러발생 이후 약 2주일 동안 즉각적인 공격을 명령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빈 라덴의 인도 문제를 두고 탈레반과 비밀협상을 벌였다. 이는 미국이 탈레반 정권과 빈 라덴을 분리하여 처리하길 원했을 뿐만 아니라, 탈레반이 빈 라덴의 배후가 아니라는 점을 가리킨다. 따라서 미국의 무력공격은 명분과 적절한 권위라는 측면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 무력공격 외의 다른 수단이 없었는가에 대해서도 반론이 존재한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테러행위자, 즉 범죄자이기 때문에 국가와 같은 취급을 받지 않는다. 즉 범죄자로서 국내 형법 및 국제조약에 의해 인도되어 ‘처벌’받아야 하지 전쟁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 대신에 범죄인 인도를 통해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인계받아 이들을 처벌하고 사건을 종료할 수도 있었다. 이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더해서 비례성의 원칙이라는 측면에서는 애초부터 약점일 수 있다는 분석들이 존재했다. 결과적으로 미군 사상자 수는 물론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의 수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비례성의 원칙이 완전히 충족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즉 미국의 공격은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로운 전쟁의 원칙에 위배되는 부정의한 전쟁이 된다.
 
이처럼 미국-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중동개입 전략으로 인해 발생한 측면이 상당한 데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 역시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 게다가 아프간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세계적으로 적극적인 호응을 얻지 못해 ‘항구적 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중 아프가니스탄 작전(OEF-Afghanistan)은 결국 미-영 합동군과 아프간의 북부동맹 정도만 참여했다.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는 반전시위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미화했다. 이는 전후 재건의 실패와도 연결된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의 전후 재건과정에 대해서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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