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1.10.05

홍콩의 노동조합 탄압에서 세계 노동운동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홍콩의 자주적 노동조합주의에 보내는 비가(悲歌)

프로미스 리

역자 해설

 
지난 30년간 홍콩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으로서 한국 및 세계 노동운동과 연대해 온 홍콩노총의 집행위원회는 9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총회를 소집하여 조직 해산안을 제출할 계획을 밝혔다. 홍콩노총은 10월 3일 총회를 거쳐 결국 해산하였다. (홍콩노총 가맹조직 중 70여 개는 노총 해산 이후에도 네트워크를 유지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성명(“홍콩에서 노조 할 자유 실종을 개탄한다”, 9월 24일)에 따르면, 홍콩노총은 캐롤 응 전 위원장이 2020년 입법회 선거에서 범민주파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내부경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국가전복 공모죄’ 혐의로 구속되고, 리첵얀 사무총장이 2019년 송환법 반대투쟁을 이유로 ‘미허가 집회 주최 및 참여 선동’ 혐의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상황이었다.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리첵얀 사무총장에게 천안문 시위 희생자 추모행사 개최를 빌미로 ‘국가전복’ 혐의를 추가한 한편 홍콩노총의 국제노총(ITUC) 가맹 활동을 문제 삼아 홍콩노총을 ‘외세의 대리인’으로 몰아붙였다. 이러한 극한의 탄압 상황에서 홍콩노총은 해산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미 최근 몇 달 동안 홍콩의 많은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활동 종료를 강요당했다. 홍콩 교사 전체의 90%를 대표하는 홍콩교사노조가 정부당국의 심각한 탄압으로 자진 해산을 발표했고,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후 설립된 홍콩언어치료사노조 간부 5명은 아동 서적을 발행하여 국가전복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다른 노조에 대해서도 비슷한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는 당시 노동조합 결성의 물결을 일으켜이때 등록된 노동조합 수가 35%나 증가했지만, 탄압으로 인해 해산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법 위반 혐의가 종신형 선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올해 초부터 최소 29개 노동조합이 해산되었다.
 
이 글은 9월 27일 ‘라우산’(Lausan, 流傘) 웹사이트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 라우산은 홍콩 출신 작가, 번역가, 예술가, 활동가들의 모임이다. 홍콩이 서구와 중국 양자의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에 착취되어 왔다고 분석하며, 계급투쟁, 이주민 정의, 반인종주의, 페미니즘에 기초한, 초국가적 좌파 연대를 지향한다. 라우산(流傘)이란 이름의 ‘傘’(우산 산)은 ‘우산 운동’으로 상징되는 홍콩의 민주화운동과의 연관을 나타낸다. 라우산은 또한 광동어로 ‘디아스포라’란 뜻의 ‘流散’과 발음이 같은데, 이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라우산 멤버들을 상징한다.
 
이 번역글에는 의역, 생략한 부분이 있다. 영어 원문은 클릭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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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홍콩노총(홍콩직공회연맹, HKCTU) 지도부는 조직 해산 결정을 발표했다. 이는 홍콩의 조직적이고 자주적인(independent) 노동 운동에 수대에 걸쳐서 가장 큰 타격이다. 홍콩노총의 붕괴는 올해 홍콩 정부가 진행해 온, 길고 지겨운 탄압에 이은 것이다. 홍콩 정부는 2020년 6월에 제정된 가혹한 국가보안법에 따라, 정부의 통치에 반대하는 좌파에 대한 박해를 늘려왔다. 송환법 반대 운동은 베이징(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홍콩 정부에 대항하여 수개월 동안 집단적 투쟁을 벌였지만, 작년 초에 이미 심한 제약으로 침체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 대유행의 갑작스런 시작으로 운동이 봉쇄되었다. 국가보안법은 이 관 뚜껑에 마지막 못을 박는 격이었다. 올해 홍콩 사법부는 검찰, 새로운 국가보안부와 함께, 매주 그물망을 넓혀가며 이미 약화된 야권에 대규모의, 전례 없는 탄압을 했다. 구호를 외친 개인에서부터,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연합)과 같이 홍콩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비호전적인 기존 야권 단체들의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해산 압력의 대상이 되었고, 불법 혐의로 수감되었다.
 
그러나 홍콩노총의 해산은 중국공산당의 광범위한 탄압에 새로운, 파괴적인 최저선이 나타났다는 의미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의 노동 정치는 홍콩노총 산하 노조와, 그보다 규모가 큰, 친베이징 성향의 홍콩공회연합회(HKFTU) 산하 노조가 장악하고 있다. 후자는 1949년 중국혁명의 성공보다 1년 앞서 노동자를 조직하기 시작한 오랜 역사와 더 많은 조합원 수를 자랑하는 반면, 정치성을 심각하게 상실했다. 안정적 노사관계를 위해 노동자들의 투쟁적 행동을 막아온 역사가 깊다. 반면 홍콩노총은 홍콩의 자주적 노동자 정치의 중추 역할을 하면서, 조직노동, 사회운동 정치, 심지어 과거에는 선거 영역에서도 (자주적 노동자운동의) 가장 가까운 동맹 조직 역할을 해왔다.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 노총 중 홍콩노총이 유일하게, 자주적 노동자 조직이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홍콩노총을 탄압하는 것은 송환법 반대 운동 속에서 나타난 새로운 노조의 물결을 소멸시킬 것이 확실하다.
 
홍콩노총의 몰락과 홍콩공회연합회가 홍콩의 노동 정치를 완전히 독점하게 된 현 상황은, 우리가 자주적 노동자 조직을 어떻게 다시 그려보고, 지속해야 하는지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자본과 제국주의 세력이 현재 그들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다루는 것을 뜻한다. 비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국가들은 '반제국주의'와 '좌파'라는 미사여구를 정치적으로 옹호하면서도, 서구가 처음 형성한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와 철저히 결탁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홍콩노총과 홍콩공회연합회의 관계에 요약되어 있는 홍콩 노동 정치의 역사를 투명하게 훑어가며, 모순과 교훈을 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주적 노동자 조직은 홍콩과 세계 노동운동을 위한 진정한 해방 프로젝트의 중심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홍콩노총의 과거 성공과 함정에 대한 솔직한 평가로부터 미래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 홍콩의 노동 다원주의

 
1990년에 결성된 홍콩노총은 중국공산당과 국민당 양자로부터 독립적인 다양한 풀뿌리 노동조합, 좌파 활동가, 기독교 노동 조직, 지역 조직의 연합체로서 시작되었다. 홍콩노총 결성 이전, 1949년 이래로 홍콩 조직노동의 핵심 주체는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의 위성조직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홍콩공회연합회와 '홍콩/카우룽공단연합총회'(TUC)가 각각 그것이다. 냉전 시대 베이징의 공산당 정부와 중화민국의 망명 정부 간 광범위한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공회연합회와 공단연합총회의 정치적 경쟁관계는 노동 정치의 주축이었다. 1950~60년대에 홍콩은 소규모 상업 무역항에서, 제조업 부문의 성장을 본토로부터의 거대한 이주노동력이 받쳐주는 산업 수출 지향의 제조업 중심지로 변모했다. 1967년의 중대한 폭동 이후(역주: 1967년 3월부터 10월 홍콩에서 일어난 반영 폭동으로, 반영폭동, 6.7 폭동이라고도 불린다), 1970년대와 80년대 공회연합회는 노조의 기반을 확대하고 노동운동 내 다수 세력을 유지한 반면, 공단연합총회는 느린 쇠퇴를 시작했다. 이 물결로부터 새로운 현상도 나타났다. 사회서비스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공회연합회 또는 공단연합총회에 가맹하지 않은 독립 노조들과 기타 노동 조직이 나타났다.
 
홍콩의 경제 성장은 1980년대에 둔화되었고, 실질임금이 전반적으로 평행하게 하락했다. 그러나 홍콩공회연합회는 지속적인 성장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임금 삭감 증가, 실업 증가, 고용 안정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홍콩에서 나타나는 데 맞서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중국공산당이 시장개혁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1980년대 덩샤오핑 행정부가 (홍콩 반환에 대해) 영국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홍콩의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해진 때였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홍콩공회연합회는 조직의 기풍을 누그러뜨렸다. 로윙상 교수의 보고에 따르면, 심지어 1970년대 중후반에도 친중공 시민사회단체들은 (1967년 이래) 지난 십 년의 반제국주의 운동과 그에 따른 투쟁적 대중 기반 조직 모델에서 이미 후퇴했다. 노동자 조직을 서비스 중심의 복지 모델로 대체하고, 민족주의 교육과 선전 활동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이 시기, 친중국공산당 단체들이 기층 회원을 대상으로 중국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문화작품을 계속 전파하고, "중국으로 돌아가기" 여행을 장려하는 동안, 자주적 노동 단체들은 계속해서 힘을 키워, 신자유주의 정부 프로그램에 직면하여 풀뿌리 노동자를 동원하는 데 있어서의 공백을 메웠다. 전 중국공산당 당원 제토 와는 1980년대 홍콩교육전업인원협회(홍콩교사노조)를 홍콩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 단체로 만들었다. 홍콩기독교공업위원회(HKCIC)는 노조는 아니지만, 여러 풀뿌리 노조와 노동 단체를 지원,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결국 홍콩노총의 핵심 조직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국보법 위반 명목으로 수감된 리첵얀 홍콩노총 사무총장은 홍콩기독교공업위원회 출신이다.) 이 기간 동안, 다른 중요한 노동자 투쟁은 식민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자주적 노동자들에 의해 일어났다. 공무원을 포함하여, 이 자주적 노동자들은 나중에 홍콩노총과 함께 하게 되었다.
 
한편, 홍콩공회연합회는 급속히 타락했다. 노동자 조직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전통적인 온정주의 정치에 의지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제 과도기적 홍콩 이양 과정의 안정성을 보장하라는 새로운 홍콩 정권에 대한 새 지시에 따라, 노동계 내 반동 세력으로 행동했다. 계급투쟁을 고용주들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으로 대체했다. "홍콩의 진보와 안정을 위해 모든 사회 계층과 함께 노력하자"고 1985년 한 노조 대표가 선언한 바와 같이 말이다. 1980년대 홍콩공회연합회는 대부분의 시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로써 식민정부의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이 가능하도록 근본적으로 도운 셈이었다. 또한, 중국공산당의 압력 아래 식민정권이 홍콩인의 제한된 투표 특권을 확대하기 위한 선거 개혁에 반대할 때, 홍콩공회연합회는 기업 및 전문가 그룹(BPG)을 통해 기업들의 조직적인 이해관계에 결탁하여, 일반 참정권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홍콩공회연합회는 "양곡배급표는 찬성! 투표는 반대!"(Yes to rice coupons! No to ballots!/寧要飯票,不要選票!)라는 구호를 내걸고, 노동자들이 선거 개혁을 멀리 하도록 조직하는, 불명예스러운 활동을 했다. 홍콩공회연합회가 일관되게 노동자의 요구를 비정치화하고 거부한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이 모르고 넘어가진 않았다. 1989년 12월, 홍콩공회연합회 산하 200명이 넘는 버스 운전사들이 고용주에 대한 노조의 회유 태도에 항의하며 탈퇴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홍콩노총은 지난 10년간의 노동 투쟁 속 다양한 주체들의 연합체로 형성되었다. 평조합원 조직화와 입법 추진 활동을 결합했다. 1990년대 내내 홍콩노총은 홍콩민주동맹(1994년 이후로는 민주당) 및 기타 단체들과 함께 새로 형성된 야권으로 연합하여, 홍콩 반환 직전에 처음으로 홍콩 시에서 단체교섭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웠다. 레오 탕 홍콩노총 부위원장이 지적했듯이, 이 동맹에는 대가가 따랐다. 최근 몇 년간 홍콩노총은 다음과 같았다. (노동자들을 대표하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대중의 친민주주의 캠프를 대표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노조가 '노동자의 친민주주의적 목소리'를 대표하려고 할 때마다, 이미 관료화된 범민주파에 의해 무시될 운명이었다.
 
입법 추진 활동을 넘어선 강력한 노동운동이 없다보니, 모든 노동자 친화적 성과가 홍콩 반환 후 몇 주 만에 중국 정부에 의해 즉시 역전되었다. 홍콩노총과 홍콩공회연합회 사이의 역학관계는 2019년 송환법 반대 운동까지 지속된, 비교적 안정적인 경쟁관계로 굳어졌다. 베이징이 이끄는 새 홍콩 정부는 1997년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없애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했다. 홍콩입법회 내 홍콩공회연합회 대표들은 이 계획에 찬성하거나 기권했다. 식민 시대 말기에 개발된 계급협력주의로 이루어진, 이제는 국가가 뒤를 봐주는 홍콩공회연합회는 아마도 이런 종류, 즉 어용노조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어용노조 중 하나일 것이다. 가장 많은 조합원 수를 자랑하는 홍콩공회연합회는 중국공산당이 노동자를 분열하는 데 이용하는 핵심 수단이다. 국가 자원을 활용하여, 산하 노동자들을 안정시키고 비정치화한다. 그동안 중국공산당은 세계 신자유주의 질서의 패권을 노리며 미국에 도전하기 위해, 국내외 기업의 힘을 빌린다.
 
홍콩공회연합회, 그리고 홍콩공회연합회와 동맹관계의 정부 기구들은 입법회 직능 선거구 의석 중 노동계 할당 의석(3석)을 독점하여 모든 종류의 반노동 정책을 조직했다. 반환 이후, 홍콩공회연합회는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확보를 추진하는 홍콩노총과 다른 동맹세력들의 시도에 계속 맞서 싸워왔다. 2000년대에 홍콩공회연합회는 논란이 된 선전-홍콩 고속철도 연결 사업에서(역주: 이 사업이 중국 본토의 선전 시를 키워 홍콩의 위상을 약화하려는 목적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노동자 보호책을 더욱 줄이자고 하면서 최저 임금 인하, 육아 휴직과 장애인 복지 반대, 파업 중단, 임금 인상 요구 축소, 국가의 다양한 민영화 계획 지지 등을 주장했다. 조합원 출신으로 비타소이(음료 업체) 트럭 운전 노동자를 조직하는 토 치쿠엔 씨는 일터의 동료들과 그 밖의 노동자들에게는 홍콩공회연합회가 "노동자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인식이 흔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2008년, 파업을 하기 위해 홍콩노총으로 조직을 옮겼다. 이와 비슷하게, 2013년 홍콩공회연합회 소속 부두 노동자들은 환멸을 느끼고 역사적인 부두 노동자 파업을 시작하는 데에 도움을 받기 위해 홍콩노총과 다른 시민사회단체들로 옮겨갔다. 송환법 반대 운동 기간, 홍콩공회연합회는 버스를 대절하고 지역구에서 표를 매수하는 부정선거행위를 공공연히 저질렀다. 140명이 넘는 홍콩공회연합회 계열의 기수(Jockey) 클럽 노동자는 "우리 노조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뒤 《스탠드 뉴스》 기자들은 운동 기간 동안 자주적 노조의 역사적인 급성장에 위협을 받은 홍콩공회연합회가, 60개 이상의 새로운 부문에서 홍콩노총에 가입한, 새롭게 설립된 정치적 노조들에 대응하기 위해 가짜 노조들을 등록한 것을 밝혀냈다.
 
2010년대의 부두 노동자들과 호이라이(홍콩의 주택단지 이름) 청소 노동자들부터 송환법 저항 운동에서 출현한 새로운 노조에 이르기까지, 홍콩노총은,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적인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다. 홍콩노총은 공개적으로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자금 지원을 받아왔다. (역주: 그러나 홍콩노총에 따르면 홍콩노총은 NED로부터 자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노총(AFL-CIO)의 솔리더리티 센터로부터 받는다.) NED는 미국 정부가 배후인 기구로, 글로벌 사우스(주로 적도 부근과 남반구의 개발도상국) 지역에서 사회 불안정을 일으키는 여러 미국 제국주의 이니셔티브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협력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홍콩 시민사회 속 요새화된 홍콩노총의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 홍콩 사회에서 노동자 정치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오랫동안 분열되고 해산되어왔고, 노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다는 것 또한 고려해야 한다. ‘외세의 개입’ 또한 홍콩노총의 실상을 넘어선 혐의다. 중국공산당은 홍콩노총이 NED로부터 "검은" 자금을 받아왔다고 비난하지만, 같은 출처의 자금은 친베이징 단체들에도 지원되어 왔다. 이 친베이징 단체들은 한때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금 지원 대상자였던 홍콩노총의 종말을 응원하고 있다. 게다가 홍콩의 불특정 다수의 노동 단체가 나눠가진 결과 (각 단체별) 연간 NED 자금 총액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부 노조에서는 운영비에 보탬이 될 만하지만, 중국공산당이 노동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서구 자본과 대규모로 사실상 결탁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중국공산당이 홍콩노총을 "외세의 사주를 받은 전복 세력"이라고 위선적으로 비난한 것은, 소위 "반제국주의"의 파산을 보여준다. 중국공산당은 반제국주의 미학이란 나팔을 큰 소리로 불면서, 자신들이 세계 제국주의 질서와 결탁한 것을 가리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홍콩노총의 약점, 즉 관료적 성격, 상근 조직 활동가와 노동자 사이의 격차, 일터 안팎에서 평조합원 간부를 양성하고 유지하는 데 겪는 어려움은 홍콩노총의 고유한 죄악이 아니다. 그보다는 식민 지배와 중국공산당 통치 하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노동자 탈정치화 현상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자주적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 노동자들의 유일한 길이었던 홍콩노총을 비난하고 거리를 두기 보다는, 우리는 홍콩 정권이 만들어온, 척박한 노동 환경이 어떻게 그러한 불리한 정치적 결정을 낳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미래의 노동자 투쟁을 위한 씨앗을 심자

 
세계 금융질서와의 철저한 통합으로 경찰국가의 기반시설을 지탱해 온 중국 정부는 자주적 노동자 조직 해체에 오랫동안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명목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로서, 서구 "자유주의" 정권에 비해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더 민감하다. 그래서 (비록 약화되고 있지만) 적어도 사회 복지 안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계급적 독립을 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중국공산당은 또한 자신들의 권력이 집단적으로 도전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고립된 홍콩 독립운동이나 반공 디아스포라 반체제 인사들의 로비가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부터 당의 깊숙한 개입에 맞서는, 일터와 국경을 넘어 연결된 일반 노동자들의 힘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모든 측면에 대한 광범위한 억압에 더해, 홍콩노총의 몰락과 홍콩공회연합회의 현재 노동 정치 독점은 공산당이 자주적 정치를 위한 모든 조직화된 수단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신호이다. 국제좌파와 노동운동의 통상적인 자주적 노동 패러다임은 홍콩에서 쓸 수 없게 된 셈이다. 중국 본토에서와 마찬가지로, 억제할 수 있는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직접 노동쟁의행위를 넘어서는 자주적 조직은 전부 불법이다. 그러니 노조 개혁을 위한 정치연합이든, 과도 조직이든, 외부로부터 자주적 노동자 정치를 지지하기 위한 지원 조직이든, 기층 투쟁으로부터 대중적 기반을 발전시켜려 하는 좌파 선전단체든 간에, 이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은 이렇게 암울한 정치환경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좌파는 "좌파" 정권에서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전략을 개발한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역사상 어떤 공산주의 국가도 직접적으로 혁명적인 대중운동에 의해 무너진 적이 없다. 자본의 힘이 서구 자유주의 정권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의 반자유주의 국가들을 통해서도 뻗어나가는 세계화된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주적인 노동자 조직의 잠재력에 바탕을 둔 새로운 변화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홍콩인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 교육과 선전선동을 지속하기 위해 몸을 낮춰야 한다. 비공식적인 학습 세포를 만들고, 정치 기술을 연마하고, 조직 경험을 공유하며, 홍콩 경제의 중심에 있는 전략 산업에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계속해서 재고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2019~2020년의 눈에 잘 띄는 송환법 반대 운동 대신에, 투쟁은 새로운 국면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홍콩에서의 우리의 싸움은 망명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겪은 선거권 박탈과 억압은 냉전 시대 식 "자유"와 "권위주의" 간 단순한 분쟁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 간 경쟁과 협력의 교차점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을 전략적으로 심어야 한다. 홍콩노총 해산 선언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떨어지는 꽃이 무정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봄이 오면 흙이 되어 더 많은 꽃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落紅不是無情物, 化作春泥更護花)" 홍콩노총을 떠나게 된 상근 활동가들은 홍콩노총이 자주적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을 인식하는 동시에, 자주적 노동조합주의의 정신은 자주적 노동자 정치가 결코 홍콩노총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자가 있는 곳에서는, 투쟁도 있을 것이다. 그 투쟁 속에서 우리는 홍콩노총의 유산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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