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1.10.08

아프간 미군 철수 이후 한 달, 미국-아프간 전쟁을 돌아본다 ②

: 미국의 아프간 재건 실패 검토

사회진보연대
미국의 전후 정책은 어떠했나
 
지난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후 미국의 아프간 재건의 실패에 대해서 검토한다. 아프간 전쟁을 돌아볼 때, 미국의 전후 정책을 떼어내고 생각하기 어렵다. 전쟁이 20년에 이르는 장기전이 된 데에 있어서 이 부분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실패 1. 목표의 모호함
 
미 국방부 산하 아프간재건특별감찰관의 2021년 보고서에 “전후 임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은 없었다”는 증언이 포함되어있을 정도로 아프간 재건 계획은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했다. 이는 아프간 전쟁의 목표가 모호했다는 점과 관련된다. 아프간 전쟁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체포 및 섬멸과 탈레반 축출 및 아프간 재건이라는 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목표가 혼재되어있었다. 이전 글에서 짚었듯 탈레반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신병인도를 거부한 것뿐인데, 알카에다와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축출되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 알카에다의 제거는 그것을 끝으로 철군을 해도 무방했을 수 있겠지만, 탈레반 정부를 붕괴시킨 시점에서는 아프간 정부의 재건이라는 문제를 회피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아프간 재건 역시 목표로 설정되었는데, 이 부분에서 치밀한 계획이 부재한 채 안일하게 사고했다는 것이다.
우선 대체로 전략에 대한 전문성과 현지의 상황파악은 국방부가 갖추고 있었지만 경제나 거버넌스를 재건하는 데 있어서는 국방부가 아니라 국무부가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아프간 재건을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 및 자원을 가진 단일기관이 없다는 의미였다. 이로 인해 아프간에서의 전략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서 움직이지 못하고 1년짜리 새로운 계획이 20번 제출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
게다가 미국은 2003년, 아프간은 나토 및 국제보안지원군에 일임하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침공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싱크탱크 CSIS는 너무 빠르게 분쟁이 종결되었다고 낙관하여 철군을 위한 조건을 만들거나 아프간에서 적절한 연합을 구성하는 문제를 방기한 결과 미국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이미 분쟁이 끝났다는 판단도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는데, 2020년까지도 아프간을 가로지르는 산맥이자 탈레반의 근거지인 힌두쿠시 산맥에서는 꾸준히 전투가 지속되었고 심지어 빈도가 증가했을 정도로 보안이 안정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막대한 자금지출의 대부분은 군사분야에 집중되었다. 앞서 브라운대학교의 추산치인 2조 2610억 달러는 군사부문 지출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아프간 재건사업에 지출된 금액은 1320억 달러(2019년 기준)에 불과했다.
 
[출처: 《The Economist》]
 
미국의 전략적 실패 2. 현지 조건 파악의 실패
 
그런데 미국이 아프간의 미시적 조건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프간 재건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파병된 미군 지휘관들은 사비로 아프간의 역사나 지형에 대한 책을 구매해서 읽었어야 했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프간 재건에 있어서 안일한 구상은 이런 현지 조건 파악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아프간은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졌던 몇 년을 제외하면 근대적인 민족국가의 경험이 거의 없다.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도 아프간의 지리적 조건이 매우 험준하여 중앙의 권력이 지방 곳곳까지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아프간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부족적 정체성이 매우 강했다. 심지어는 대부분의 부족이 접경지대에 위치하여 주변국의 부족들과 일종의 친척관계를 형성해 아프간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아프간 국내정치에 개입되어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했다.
게다가 아프간에서 종교는 매우 분파적이고 부족 간 폭력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었다. 아프간은 문맹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2002년 기준 성인 남녀의 문맹률은 각각 70%, 90%에 달했다) 아프간의 이슬람은 대체로 경전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촌락중심의 이슬람이었고, 부족적 전통과 지역의 풍토와 결합해 부족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종교를 이유로 한 갈등도 빈번히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소수민족이 중심이 된 북부동맹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아프간 전쟁을 수행했고, 전투가 종료된 뒤 수립한 정부 역시 다수민족인 파슈툰족을 배제하고 북부동맹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이 당시 대통령에 선출된 하마드 카르자이는 파슈툰족 출신이기는 했지만 국내에 세력기반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해외를 떠돌며 反탈레반 운동을 펼치던 친미 인사일 뿐이었다. 그런데 부족적 성향이 강한 정치지형에서, 배제된 다수민족의 불만은 충분이 예견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북부동맹 자체도 내전을 일으켰던 세력인 만큼 통합적이라기보다는 파당적인 성격이 강했다. 아프간 정권 수립 그 자체가 아프간 내부의 갈등을 촉발할 계기가 될 여지가 충분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족적 성향이 강한 아프간의 정치지형과 강한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아프간 정부의 조합은 아프간의 지역 곳곳을 장악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2006년 중엽부터 이 공백을 다시 탈레반이 비집고 들어왔다. 탈레반은 다시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했고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회복했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소련이 그랬듯이 카불과 그 인근을 제외한 외곽지역에는 자신의 영향력을 투사하지 못해 ‘카불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소련과 마찬가지로 패전하여 철군했다.
 
재건의 실패, 녹록지 않은 아프간 민중의 삶
 
미국의 아프간 재건은 실패했다. 그들이 이식하고자 했던 서구의 민주적 제도는 불과 2번의 선거 만에 부정선거 논란으로 침식되기 시작했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 추락했다. 또 경제적으로도 아프간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계최빈국에 머물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농민인데, 오랜 전쟁으로 토지가 황폐화되어 마약을 재배하지 않고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실패에 있어 미국의 책임뿐만 아니라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지적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이런 지적 역시 타당하다. 카르자이 정부와 뒤를 이은 가니 정부는 미국에서 지급하는 재건비용의 상당부분을 가로채 사익을 추구했다.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고 카불을 포위하자 거액의 현금을 챙겨 도주할 정도로 무책임했다. 부정부패가 판치는 가운데 아프간 보안군은 임금을 지급받지 못해 무기를 암시장에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들이 제대로 훈련되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탈레반이 쳐들어왔을 때, 아프간 군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하거나 전향했다. 아프간이 불과 두 달여 만에 탈레반의 수중에 완전히 떨어지게 된 큰 요소라 하겠다.
그렇지만 미국의 재건전략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전망을 그려주지 못하는 가운데, 긍정적 전망을 그리지 못한 아프간 정부와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프간 정부의 고위인사들은 사익추구를 선택했고 이것이 나쁜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아프간 민중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더 나은 체계임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지역에서는 탈레반이 다시 그 영향력을 넓히는 상황에서 자신들에 더 익숙한 생활양식을 공유하고 인정해주는 탈레반과 그들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전통과는 전혀 다른 서구의 제도를 관철하려는 미국과 아프간 정부라는 선택지뿐이었다.
결국 반테러리즘 전쟁,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전쟁 등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전쟁을 통한 명분의 실현은 쉽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미국은 아프간에서 실천적으로 보여줬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 자체에 문제가 많았음에도 이런 방식으로 전쟁을 미화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내세우는 데 집중하면서 재건에 있어서는 구멍을 만들었다. 즉 아프간의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이에 따라 치밀하고 현실적인 목표설정 및 계획수립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명분이 옳으니 당연히 아프간 국민들이 미국을 지지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아프간 국민이 지지하는 민주적인 정부가 세워져 아프간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안일한 대응을 반복한 것이다. 이로써 재건은 처음부터 실패를 노정했고 현재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어질 마지막 글은 탈레반에 대한 심층분석이다. 탈레반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들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미 제국주의에 맞서는 해방세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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