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1.10.20

아프간 미군 철수 이후 한 달, 미국-아프간 전쟁을 돌아본다 ③

: 탈레반은 누구인가?

사회진보연대
아프간 미군 철수 연재의 마지막은 탈레반에 대한 심층 분석이다. 미국의 실패를 돌이켜 본 만큼 승전한 탈레반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탈레반의 전현대성에 대해서 주로 검토한다. 앞선 글에서는 탈레반을 아프간의 정부로서 인정하자는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런 주장은 당연히도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지 탈레반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자는 주장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탈레반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일각에서 주장하듯 탈레반이 미 제국주의에 맞서 아프간 민중의 해방을 가져올 세력인지에 대해서도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탈레반의 사상적 배경
 
탈레반의 사상은 크게 데오반디(Deobandi)주의와 와하브주의, 그리고 파슈툰족의 부족규율인 파슈툰왈리의 혼합이라 할 수 있다.
데오반디주의는 북인도의 데오반드 지방에서 무하마드 카심 나나타비 외 여러 종교지도자가 시작한 종교개혁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쿠란과 하디스(선지자의 말씀을 기록한 기록물)의 전통성을 강조하면서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의 관습법을 강조했다. 초창기 데오반디주의는 정치적 성격을 가지지 않은 운동이었다. 그런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넘어오면서 데오반디주의는 정치적 성격을 띤 정치적 이슬람으로 변모한다.(정치적 이슬람은 뒤에서 더 설명한다.)
이렇게 데오반디주의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된 주요한 원인은 와하브주의의 전파였다. 와하브주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 종교이념이자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로, 타우히드(신의 유일성)를 강조하면서 코란과 하디스의 엄격한 해석과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엄격한 적용 및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한다. 와하브주의가 전파되기 시작한 계기는 1979년 이란에서 일어난 이슬람혁명이다.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의 왕정은 타파되었고, 민주주의와 이슬람의 혼합 체제가 성립된다. 그런데 이웃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혁명의 여파로 자국의 왕정까지 타파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껴 왕정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종교이념인 와하브주의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탈레반은 이들에게 종교적 영향과 함께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매우 경직적인 이슬람 율법의 해석을 가지게 된다.
이렇듯 엄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에 탈레반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파슈툰족의 부족규율인 파슈툰왈리가 결합한다. 파슈툰왈리의 주요 항목은 환대, 용맹, 정의, 재산과 명예의 수호, 여성 명예의 방어, 그리고 복수다. 이 중에서 복수라는 덕목은 폭력에 대한 규범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파슈툰족 외의 다른 세력과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파슈툰왈리는 여성인권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된다. 파슈툰왈리의 여성 보호를 명목으로 여성은 남성에 완전히 종속된다. 여성은 남성의 허락 없이는 외출조차 할 수 없다. 여성이 부족의 명예를 실추했다 판단하면 여성을 살해하는 명예살인도 파슈툰왈리 아래서 빈번하다.
이렇게 형성된 탈레반의 사상은 이미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탈레반의 잔혹한 행동들로 나타났다. (부르카, 여성살해, 공개처형, 바미안 석불의 폭파 등) 그런데, 탈레반은 이렇게 형성된 자신의 사상을 아프가니스탄에 적용하여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대체로 정치적 이슬람이라 표현한다.
 
정치적 이슬람
 
정치적 이슬람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정치적 정체성과 행동의 기초가 되는 이슬람의 해석, 즉 이슬람이 종교적인 범위를 넘어 정치, 사회제도에 이슬람의 덕목을 함양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정치운동을 의미한다. 정치적 이슬람은 서구의 제도가 공격적으로 침투하면서 이슬람 전통사회가 급격하게 해체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했는데, 그 대응의 방향은 주로 이슬람의 패권과 이슬람 전통에 대한 수호를 위해 이슬람 교리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회피하면서 이슬람의 완벽함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미 이슬람은 여성을 해방시키고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서양보다 앞서 사회안전을 보장하고 있었다는 식으로 이슬람의 가치를 주장한다.
그런데 중동문제를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MERIP는 이런 그들의 주장은 이슬람 문화의 특정한 가치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그들의 힘을 과시하는 데 있다고 분석한다. 즉 정치적 이슬람은 이슬람의 가치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그 우월성을 근거로 모든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가 이슬람의 경쟁자인 서구에 반대하는 이슬람에 힘을 싣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오히려 더 비타협적이고 오만하게 힘을 과시함으로써 서구에 대한 패배와 무력감에 대응하는데, 그 과시의 대표적인 희생양이 바로 이슬람 여성이라고 말한다.
 
탈레반 집권기의 행태
 
그렇다면 탈레반은 어떨까. 탈레반 역시 매우 경직적이고 비타협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사상에 따른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에서 정치적 이슬람의 조류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그들이 집권하던 시기의 행태를 살펴보면서 탈레반의 한계를 살펴본다.
먼저 탈레반도 서구의 모든 제도를 거부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에 탈레반은 통치제도에서도 서구의 것을 거부했는데, 서구의 제도를 거부한 탈레반 집권기의 정부는 정부라 말하기 부족한 모습이었다. 탈레반의 지도자인 오마르는 선출이 아니라 무함마드와 초기 무슬림이 그러했듯이 충성맹세를 통해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장관이나 지방행정관은 이슬람 교리를 학습한 물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통치에 있어 필요한 전문지식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했다. 일례로 재정담당부서에는 예산도 없고 경제학자도 없었으며, 재정이 필요한 경우 지도자인 오마르가 모금하여 충당하는 식이었다. 그런데도 탈레반은 지식인과 기술자를 배격했는데, 이들이 서구의 지식을 배웠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심지어는 탈레반의 지도자인 물라가 경전과 율법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문맹률이 매우 높았던 아프간에서 신학교에 입학한 대부분도 문맹이었는데, 이로 인해 신학교에서는 대부분 구전되는 교리를 학습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경전과 율법과는 거리가 있는, 자의적 해석이 가미된 규범일 뿐이었다.
또 탈레반은 어떤 이슬람 근본주의보다도 더 경직적이었다. 경직성은 TV시청 금지, 여성에게 부르카를 강요, 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공개처형하는 등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게다가 탈레반은 과거에 설정된 규범에 대한 경직성에 그들이 자의적으로 새롭게 설정한 규범만을 인정하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금지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탈레반은 운동경기 중 박수치기, 연날리기, 수염 정리 등을 금지했는데, 이는 쿠란과 샤리아에서도 찾을 수 없는 조항이라 비판받기도 했다.
 
아프간을 재장악한 탈레반, 아프간 민중의 해방군일까
 
정치적 이슬람과 탈레반 집권기의 행태에 대해서 살펴봤다. 이들은 사회의 정화를 위해 과거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그렇게 건설된 사회는 그들의 생각에는 이상사회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모습이 과연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힘의 과시로 인해 억압받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사회 전반의 퇴행이 이뤄진 모습이라 평가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민플러스》는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에게 탈레반은 곧 이슬람의식, 자주독립의식의 표상이고 깃발이었다”면서 “다시금 아프간 민중들이 미제국주의를 축출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되찾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보도했다. 이런 주장은 타당한가.
지적했듯 탈레반의 행태는 현대화된 정부라 보기 어렵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맹세로 공식적인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는 현대국가가 어디 있는가. 오히려 전제군주에 충성을 맹세하고 그 대가로 관직을 하사받는 봉건제 국가에 가까운 형태다. 그런데 아무리 서구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마르크스도 인정했듯 자본주의는 봉건제보다 진보한 체제다. 따라서 현대적 시민(市民)이 전현대적 신민(臣民)으로 퇴행하는 것을 해방이라 말할 수는 없다. 서구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 민족의 자주권 확보라는 그들의 숭고한 대의는 오히려 민중들의 삶이 퇴행하고 있는 현실을 가리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다음 날인 2021년 8월 31일 아침, 아프간 시민은 “오늘 아침 모든 것이 끝났다. 거리에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인터뷰했다. 아프간 여성은 더는 입을 수 없는 청바지를 불태우고 가족 내 남성이 사다 준 부르카를 강제로 입게 되었으며, 홀로 외출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아프간 민중이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게다가 탈레반은 마약거래를 통해 아프간 인간안보의 위기를 야기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양귀비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6억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동안 마약거래 조직 및 테러조직은 2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테러리즘과 마약거래는 상호 상승작용을 통해 국가의 위기를 만든다. 테러리즘은 활동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마약거래 세력과 결탁하거나 직접 마약을 거래함으로써 확보한다. 또 테러리즘은 국가의 법 집행력을 약화시키는데, 이로써 마약거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탈레반의 주된 자금 출처가 마약거래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탈레반은 정확히 이런 과정을 활용해 자신의 세를 키웠다. 법 집행의 공백 속에 초래된 안전보장의 공백을 이용해 지역의 가장 큰 무력을 가진 집단으로서 지역을 장악해갔다. 그리고 그 무력을 바탕으로 농민의 양귀비재배를 종용했고, 이익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은 아프간 농민을 매우 가혹하게 대우했으나, 농민은 안전보장 및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제휴했다. 그 결과 아프간은 전 세계 아편의 84%(2020년 기준)를 공급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국가 건설에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작금의 상황에서 아프간 정부의 무능함이 매우 큰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탈레반은 정부의 무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것에 불과하다.
한편 2021년 아프간을 다시 장악한 탈레반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거론하고 국제적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등 자신들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드물다. 탈레반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기반이 전혀 없다.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도 아예 없을 것”이라면서 “아프간에 어떤 정치 체제를 적용해야 할지는 논의조차 필요 없다. 이미 명백하다”라며 “바로 샤리아(이슬람 율법),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여성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물라가 결정할 일이며, 아프간 율법을 따라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고위관계자의 말로 미루어볼 때, 국제적 인정을 위해서라도 탈레반 사상의 경직성은 얼마간 완화할 수 있겠으나 큰 틀에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안타깝지만 아프간의 해방은 요원해 보인다.
지금까지 미국-아프간 전쟁을 3차례에 걸쳐 검토했다. 미국-아프간 전쟁은 어떤 명분이든 그것이 전쟁으로는 달성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노동자운동은 이 교훈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길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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