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국제동향 | 2022.01.11

두테르테 정부 하의 위기, 그리고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한 계속되는 투쟁

조셉 푸루가난

역자 해설

 
국제노총(ITUC)과 국제산별노련은 ‘세계 인권의 날’인 2021년 12월 10일을 ‘필리핀 연대 국제 공동행동의 날’로 제안했다. 국제노총 ‘노동기본권 지수 보고서’에서 필리핀은 4년(2017~2021년) 연속 10대 노동기본권 최악의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필리핀의 노동권과 인권 탄압은 ‘레드 태깅’(red tagging), 즉 일종의 ‘빨갱이’ 낙인찍기와 그에 따른 살인, 폭력 사건의 증가라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까지 와 있다. 공식적인 노총들과 노조들이 ‘빨갱이’, ‘국가전복세력’로 규정되고, 노동조합 활동가, 인권운동가들이 살해되고 있다. 활동가 개개인의 사진과 이름을 나열하며 ‘테러리스트’라고 지목하는 대형 현수막이 나붙는 분위기에서, 초법적 살해와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국제노조조직협의회(Council of Global Unions, CGU)에 따르면, 2016년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된 이래로 적어도 50명의 노조 활동가에 대한 초법적 살해가 있었다. 적어도 17명 이상의 노조 지도자가 국가에 의해 ‘레드 태깅’되었고, 16명이 체포·구금되었고, 노조 해산을 강요받거나 단결권을 침해한 사례가 12건이 있다. 이러한 환경은 노동자의 권리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두테르테 정부는 노동조합이 공산주의 무장반군과 연루되어 있으며, 이들이 또한 마약조직에 연루되어 있다며 노조 활동가들의 사망을 불러온 폭력적 탄압을 정당화하고 있다. ‘지역 공산주의 무장분쟁 종식을 위한 국가대책위원회’(NTF-ELCAC)를 창설하여,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개입과 레드 태깅을 담당하게 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 테러 조직’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경찰이나 군대가 쉽게 노조 활동가를 구금하거나 심문하고 있다. 2021년에는 호텔, 레스토랑 등 노조들의 국제조직인 IUF에 가맹한 필리핀 FCCU-SENTRO 산하의 기존 코카콜라 노동조합을 약화하기 위해 사측 주도의 노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군이 FCCU를 신인민군(NPA)의 무장투쟁과 연결 지으며 개입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2020년 7월 두테르테 대통령이 서명한 ‘테러방지법’은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반대 세력 전반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국제노총과 국제산별노련이 제안한 2021년 ‘필리핀 연대 국제 공동행동의 날’ 홍보물. 두테르테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필리핀에서 노조 활동가 50명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리며 "얼마나 더 많이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건설산업연맹이 2021년 12월 10일 이태원동 필리핀대사관 앞에서 ‘필리핀 연대 국제 공동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출처: 《노동과 세계》]
 
이러한 상황에서 2021년 ‘포커스 온 더 글로벌 사우스’(Focus on the Global South)는 <두테르테와 그가 끼친 피해>(Duterte and the Damage Done)라는 주제로 연속 기사를 게재했다. 포커스 온 더 글로벌 사우스는 신자유주의, 군사주의, 기업 주도 세계화에 맞선다는 기치로 1995년 창립된 비영리조직으로, 태국, 필리핀, 인도 등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의 학자,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라 불리는, 주로 적도 부근과 남반구 개발도상국의 정세와 사회운동에 주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글은 연속 기사 중 첫 번째인 「두테르테 정권 하의 위기, 그리고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한 계속되는 투쟁」 (Crisis and the Continuing Struggle for Social Justice and Human Rights under Duterte)을 번역한 것이다. 영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포커스 온 더 글로벌 사우스는 2000년대 초 글로리아 아로요의 임기 이래로, 필리핀의 연례 국정연설(State of the Nation Address, SONA)을 분석해왔다. 연례 국정연설이라는 이 민주주의 전통은 미국을 모방한 것으로, 역사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주: 필리핀 1987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매년 7월 네 번째 월요일에 연례 국정연설(SONA)을 할 의무가 있다.] 이 연설은 의회의 초청으로 대통령이 국회의원과 국민에게 국가의 상태를 보고하는 중요한 정치 행사이다.
오랫동안, 취임 시의 연례 국정연설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6년 임기를 시작하며 통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새 정부의 계획과 우선순위를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반면,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연례 국정연설은 [해당 정부가 후대에 남길] ‘유산’에 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의 주요 업적뿐만 아니라, 더욱 진보한 나라를 건설한다는 장기적 열망을 충족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대해 전체 임기를 되돌아보고 재구성할 기회인 것이다. 또한 퇴임하는 정부가 다음 정부가 고려해야 할 중요한 통치 과제들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평화적 정권 이양을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어떤 이들은 필리핀이 두테르테 정부의 지난 5년 동안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2020년 국정연설 평가에서, 우리는 두테르테 정부를 ‘빈사 상태의 정권’으로 묘사했다. 특히 전례 없는 위기의 시기에 리더십의 명백한 실패로 인해 죽음의 순간에 놓였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판데믹 한가운데, 즉 감염 증가, 의료 시스템 과부하, 임박한 경제 불황으로 점철된 시기 속 필리핀의 상태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과 정부에 국민이 우리 앞의 거대한 장애물들을 극복하도록 이끌 지도력뿐만 아니라 용기와 결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대통령의 5번째 국정연설에서 그러한 것을 전혀 보고 들을 수 없었다.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정반대였다. 무능과 심각하고 위험천만한 리더십 부족이었다.”
[그리고 2021년,] 모두가 기대했던 ‘유산’에 관한 국정연설은 없었다. 대신, 우리는 두테르테가 그의 이전 국정연설 패턴대로 또 다시 대본에서 벗어나, ‘마약과의 전쟁’, ‘과두정치와의 싸움’과 같은 일관된 안전지대로 빠져드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주제들은 그에게 활력을 주고, 그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며, 특히 강경한 발언과 범죄와의 전쟁, 엘리트들의 지배에 맞서는 ‘스트롱맨’ 이미지 때문에 그를 뽑은 지지층을 겨냥한 것이다.

따라서 포커스 온 더 글로벌 사우스 필리핀 팀은 두테르테의 마지막 국정연설을 평가하는 대신, 두테르테 정부가 국가에 끼친 피해를 강조하며 주요 우려 지점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들을 기획했다. 첫 글은 지난 2021년 6월 30일 포럼 아시아, 필리핀인권옹호동맹(PAHRA), 국제프란치스코회가 주최한 제47차 UN인권이사회 부대행사에서 iDEFEND(인권·존엄성옹호운동)를 대표해 발표한, 두테르테 정부 하 인권위기와 지속되는 사회정의 투쟁에 관한 글이다.
 
 
[필리핀의] 인권 실적에 대해 커져가는 우려를 완화하고 국제적 압박을 회피하기 위해, 2020년 두테르테 정부는 자체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UN인권이사회, 유럽의회와 같은 국제 공간에서 다양한 개인과 단체가 필리핀의 인권 상황이 나쁘다는 그림을 그리며 제기하는 쟁점들은, 사실이 아니거나 심하게 과장되었다는 서사를 발전시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동의 노력은 소수의, 그러나 [국외로부터] 자금 지원을 넉넉히 받은 공산주의 테러 단체들이 거짓말과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는 대(對)반군, 대테러라는 렌즈를 통해 필리핀의 인권에 대한 논의를 구성하려는 시도다. 이는 인권 침해와 억압의 희생자인 국민과 지역사회,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에 맞서고 반대를 표하는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부정한다.
 
2020년, 필리핀 인권 상황에 대해 제44차 UN인권이사회 총회에 제출된 UN 인권최고대표 보고서는 “불법 마약 반대 캠페인과 관련된 살인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마약에 대한 정부의 유혈전쟁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각별히 주목하면서, 테러와 갈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 인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보고서는 “국가보안법과 정책, 그리고 특히 레드 태깅 현상을 통해 시민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원주민, 농민, 국내 실향민들의 상황을 특히 강조했다. 강력한 기업 및 정치 행위자들이 토지 분배와 농업 개혁에 대한 노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방해해 왔는지와, 이미 국내법과 국제법 모두에 반영된 원주민의 권리를 완전히 실현하는 데 문제가 되는 제도적 걸림돌과 취약점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케손 지역의 칼리와 댐 사업과 주 당국자들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위협한 사례 등, 토착 지역사회가 동의하지 않은 대규모 사업에 대한 우려를 반영했다. 토지 및 환경 권익 옹호자들에 대한 살해와 지속적인 공격에 대한 심각한 우려도 보고서에 담겼다.
iDEFEND는 마약과의 전쟁, 처벌 없음, 민주적 공간의 축소,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ESCR) 침해와 관련된 평가와 권고를 여러 차례 제출하여, 고등 판무관 보고서에 내용을 제공했다. 특히 우리는 ESCR과 사회정의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며, 사회정의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ESCR 위반에 관심을 모은 여러 상징적 투쟁을 강조했다.
두테르테 정부는 수많은 상징적인 사건에서, 인권 침해를 직접 자행하거나 기업들의 인권 유린에 공모하여 비난받아왔다. 예를 들어, 농민과 원주민 공격과 살해, 칼리와 댐과 같은 거대 인프라 사업 추진이 있다. 또한 누에바 비스카야 주 디디피오 광산과 남코타바토 주 탐파칸 금광 프로젝트 사례에서와 같이 광산 회사들을 처벌하지 않고 넘어간 일, 남코타바토 세부 호수 ‘타마스코’의 사례와 같은 군사화와 기업의 악행이 있었다. [역주: 디디피오와 탐파칸 광산에 대해서는 광산 개발이 지역 주민의 삶의 터전과 환경을 파괴한다는 저항이 있다. 타마스코(TAMASCO)는 술탄 쿠다라트 주와 남코르바토 주의 원주민 단체로, 기업들의 토지 강탈과 유린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2017년 12월 3일, 타마스코의 다투 빅터 다냔 의장과 7명을 필리핀 보병대대가 살해했다.]
 
슬프게도, 폭력과 인권침해는 우리가 강조했던 이 사건들에서 지속되어 왔다. 게다가, UN인권최고대표 보고서에서 제기한 우려 사항들은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악화되었다. 농부, 어부, 농촌 여성, 원주민과 그 공동체는 그들의 권리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공격과 위협은 시민의 권리를 훼손하는 데에 법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기업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대개 지방 및 국가 정부 공무원들의 묵인 하에, 주택 철거와 강제 이주로 이어질 법원 명령을 확보했다.
이러한 위협은 다름 아닌 바로 정부 기관과, 정부의 초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의 지지자들로부터 나온다. 이들은 ‘자유롭고, 사전적이며, 정보에 입각한 동의’(FPIC, 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 즉 FPIC 과정이나 환경 규정 준수 인증(ECC)과 같이, 시민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을 우회하려 한다. 이 프로젝트들의 반대자들은 반테러/반혁명 서사와 깊이 연관된 “반(反)진보 급진주의자”로 공식 보고서에서 낙인찍힌다. [역주: FPIC는 2007년 UN총회에서 통과된 ‘원주민 권리 선언’(UNDRIP)에 명시된 원주민의 권리다. 원주민의 삶이나 영토에 영향을 미칠 정책 프로젝트에 동의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원주민은 강압 없이 자유롭게, 프로젝트의 재가나 착수에 앞서, 충분한 관련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로 결정할 권리를 가지며, 이후의 어느 단계에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필리핀 법은 광업, 농업, 건설업 등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분야의 프로젝트에 대해 환경천연자원부의 환경관리위원회로부터 환경 규정 준수 인증(ECC)을 받도록 한다. ECC는 환경관리위원회가 해당 프로젝트는 필리핀 환경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때 발급되며, 환경 보호를 위한 구체적 조치나 조건이 부과되기도 한다.]
 
원주민에 대한 공격도 가차 없이 이뤄지고 있다. 코르디예라 민중동맹(Cordillera Peoples Alliance, CPA)의 자료에 따르면 두테르테 정부(2016~2020) 하에서 총 76명이 초법적 살해(Extra-judicial Killing, EJK)에 희생되었고, 약 137명이 초법적 살해 시도 실패를 겪었으며, 원주민 182명이 불법 체포, 구금, 납치되었으며, 27명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CPA는 원주민 6명의 강제 실종 사례 또한 보고했다.무슬림 민다나오 방사모로 자치구에서 모로 족이 아닌 원주민들이 살해와 강제 이주를 겪고 있다는 우려스러운 소식도 있다. [역주: 민다나오 무슬림 방사모로 자치구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있는 자치구다. 독립을 요구하는 모로 족 무슬림 세력과 필리핀 정부의 평화협정으로 설치되었다.]
 
풀뿌리 지역사회 지도자들과의 토론에서, 우리는 현장의 암울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개발] 프로젝트에 저항하고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옹호하는 지역사회는 세 측면에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 대(對)반군 활동을 명분으로 ‘지역 공산주의 무장분쟁 종식을 위한 국가대책위원회’(NTF-ELCAC)가 주도하는 군대 증원과 군사화다. UN 인권최고대표 보고서는 NTF-ELCAC를 설치하기로 한 행정명령 제70호가 시행되는 것에 이미 주목하고 우려한 바 있다.
UN 인권최고대표 보고서 이후 우리는, 중앙부터 지방까지 정부 전체가 공산주의 동조자로 의심받는 자들을 공격하는 데에 더욱 공격적으로 동원되는 것을 목격해 왔다. ‘레드 태깅’(Red tagging, ‘빨갱이’ 꼬리표 달기)은 [활동가를] 실질적인 증거 없이 공산주의자나 테러리스트로 분류하는 전술로, 정부의 탄압 각본에 핵심 요소가 되었다.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이 또한 경고했듯이, “이러한 공적 꼬리표”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예를 들어, 2020년 12월 동네그로스 주에서, 레드 태깅을 당한 의사와 그녀의 남편은 백주 대낮에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괴한들에 총살당했다.
 
2019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 필리핀 노총 SENTRO 소속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서 손 떼라", "레드태깅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걸고 시위에 나섰다. [출처: IUF]
 
2021년 1월, 페이스북 페이지 ‘필리핀 정보 교환 무장군’은 필리핀대학 졸업생 27명의 명단을, 신인민군(NPA) 일원이 되어 죽거나 생포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허위로 작성했다. 이 거짓된 목록에 이름이 오른 많은 사람들은 이 일이 치명적인 파장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여, 오명을 씻기 위해 공개 성명서를 발표해야만 했다. [역주: 신인민군은 1968년 필리핀 공산당이 창설한 반군 단체다.]
한바탕의 레드태깅은 전염병에 대한 시민의 자발적인 행동과 대응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NTF-ELCAC는 상호 원조를 위한 시민의 이니셔티브로 싹튼 지역사회 식량창고의 배후에, 공산주의 저항세력이나 동조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상원의원의 표현대로 NTF–ELCAC의 ‘이러한 부끄러운 레드태깅 행태’는, 이러한 관행을 금지하는 법률의 제정에 대한 의회 청문회로 이어졌으며, 의회가 NTF–ELCAC의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요구를 촉발시켰다. 대(對)반군을 명분으로 정부가 내세운 전술이 국민과 의회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두테르테 정부는 이러한 행동을 더욱 강화할 작정으로 보인다.
 
지역사회가 직면한 두 번째 위협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다. 대표적인 사례인 칼리와 댐과 디디피오 광산 프로젝트는 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강행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중요 인프라 프로젝트로 지정하는 것 또한, 이에 저항하는 지역사회의 투쟁에 또 다른 어려움을 낳는다. ‘테러리즘’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새로 통과된 테러방지법은, 위해를 가하려는 행위뿐만 아니라 중대한 인프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를 하겠다는 위협도 테러행위로 간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이 지역사회들은 코로나19 판데믹의 영향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농부, 어부, 원주민의 생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정부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구호(救護)는 제한적이었다.
코로나19와 별개로, 기본 산업 부문은 쌀농사를 짓는 지역 농가의 생계를 무너뜨린, 쌀 무역 자유화법과 같은 농업 정책의 영향 또한 직면해야 한다. 양돈농가는 아프리카 돼지독감의 영향으로 휘청거리고 있고, 육류 수입을 늘리자는 제안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회복 프로그램은 기존 정책 방향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면서 풀뿌리 지역사회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즉, 회복을 명분으로 더 많은 자유무역협정, 더 많은 외국인 직접 투자, 더 많은 인프라 투자와 거대 댐, 광업 및 플랜테이션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이미 코로나19로부터의 회복이라는 명목으로 신규 광산 허가 금지가 해제되는 것을 보았다. 대규모 어업인이 시영(市營)수역 내에서 어획을 할 수 있도록 수산정책을 수정하자는 제안도 회복을 명분으로 나왔다. 그리고 농부들이 ‘포괄적 농업 개혁 프로그램’(CARP)으로 얻었던 토지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농업 개혁도 역전되었다. [역주: 필리핀의 ‘포괄적 농업 개혁 프로그램’(CARP)은 사유지와 공유지의 재분배를 통해 소규모 독립농가를 육성한 정책이다.]
헌법 개정으로 소위 ‘민족주의 경제 조항’을 없애 경제를 더 자유화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자는 제안도, 토지와 천연자원을 둘러싼 갈등을 늘릴 수 있다. [역주: 필리핀 1987년 헌법은 필리핀 경제에 대한 필리핀인의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해 외국인에게 ‘제한적인’ 경제 조치를 허용하는 조항을 포함했다. 두테르테 정부는 헌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조항을 수정하여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실현된다면 두테르테 정부의 친중적 행보와 맞물려 필리핀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필리핀의 ESCR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현재의 과제를 대략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주된 주장은 2020년 6월 UN 인권최고대표 보고서 이후, 전반적인 인권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권침해는 정부의 불법 마약 반대 운동이나 대(對)반군 프로그램 강화뿐만 아니라, 친기업적 개발 의제를 끈질기게 추구한 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칠레 피노체트 독재 정권 하 인권 문제에 관해 글을 쓴 칠레 외교관 고(故) 올란도 레틀리에는 1976년 발간한 에세이에서, 이미 우리에게 “인권 침해, 제도화된 야만의 체계, 고전적인 제한 없는 ‘자유 시장’ 정책에 대한 모든 형태의 유의미한 반대 의견을 과격하게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을 서로 연관 짓지 못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레틀리에의 말을 지금 상황에 적용해보면, 우리는 두테르테 정부의 경제정책을 공개적으로 찬양하고 지지하는 동시에, 초법적 살해와 마약과의 전쟁으로 생긴 ‘나쁜 국제적 이미지’에는 유감을 표하는 식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UN 인권이사회가 필리핀의 상황에 지속적 경계를 보낼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필리핀에 인권위기가 없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두테르테 정부의 말을 각국이 믿지 말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UN 인권이사회가 악화하고 있는 필리핀의 인권 상황을 포착하기 위한 조치를 지속할 것을 호소한다. 시민·정치적 권리 침해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의 침해에도 주목해야 한다. 필리핀의 광범위한 인권운동과 지역 사회, 국가 책임 요구, 희생자에 대한 정의 실현을 위한 여러분의 지지를 구한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사회 정의와 인권, 존엄성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면서, 지금의 인권위기를 계기로 세계적인 연대를 계속 구할 것이다.
 
주제어
국제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