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인터뷰 | 2022.03.13

“평화주의는 선택지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에티엔 발리바르 인터뷰

사회진보연대 국제이주팀

역자 해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의 원인, 해법, 전망을 놓고 전 세계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석학들도 분석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는 인터뷰에서 이 전쟁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 “평화주의는 선택지가 아니다”라는 과감한 주장을 던졌다.
 
그는 이 전쟁은 분명히 ‘유럽의 전쟁’이며, 유럽 밖의 러시아가 아니라 유럽에 포함되는 러시아의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비개입’은 답이 될 수 없으며, 실제로도 유럽연합은 이미 전쟁에 얽혀 있다고 보고 있다. 가장 절대적으로 시급한 것은 푸틴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원하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유럽이 치를 대가를 감수하면서라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논란의 한 축인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이번 전쟁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토는 본질적으로 미국이 유럽을 구속하는 제국주의 기구이며 1991년 이후로 나토가 러시아를 조금씩 포위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푸틴이 전쟁의 명분으로 나토의 위협을 내세우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며 러시아의 공격성이 오히려 주변국을 나토에 매달리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발리바르의 궁극적인 해답은 이 전쟁을 뛰어넘는 사고에 있다. 그는 푸틴이 시작한 전쟁에 맞서면서도 이것이 과거 냉전의 ‘블록’과 ‘철의 장막’을 다시 세우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원하는 동시에 푸틴에 반대하는 러시아 민중을 지원하는 국제주의적 연대가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징집되어 전쟁에 끌려나온 수많은 러시아 군인과 그 가족들, 위험을 무릅쓰고 푸틴과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러시아 민중들이 스스로 푸틴을 물러나게 하는 길을 돕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러시아 민중과 우크라이나 민중, 그리고 유럽 민중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유럽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개방적이고 거대한 유럽을 건설하여, “문명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다.
 
아래부터는 프랑스 언론 Mediapart에 3월 7일 게시된 발리바르의 인터뷰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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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발리바르는 자신이 “유럽의 전쟁”(une guerre européenne)이라고 정의한 것에 직면하여, 푸틴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상상했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지원하고, 또한 반체제적인 러시아 민중을 지원하는 것, 이것이 “블록의 재건”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출처: Mediapart]
 
에티엔 발리바르의 파리 연구실을 가득 채우는 책들 사이로 칼 마르크스의 흉상이 놓여있다. 알제리 전쟁에 대한 당의 입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81년 프랑스 공산당에서 출당당한 79세의 철학자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나침반 찾기를 이야기했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알티에로 스피넬리가 1941년 ‘벤토텐 선언’에서 정의한 유럽 연방주의를 지지한 그는, 유럽이 오늘날 불가피해 보이는 군사화의 비탈에 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그의 저서 『유럽, 미국, 전쟁: 유럽의 중재에 대한 성찰』(2005)에서 그랬던 것처럼, 에티엔 발리바르는 전쟁을 넘어서는 사고의 관점을 제시한다.
 
“블록의 재건”이라는 구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발리바르는 우크라이나 시민의 저항뿐만 아니라 체제에 반대하는 러시아 시민에 대한 지지를 통한 국제주의를 주장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전쟁은 정말로 “유럽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과 우리 사이에 도덕적 ‘철의 장막’을 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냉전, 세계 전쟁, 제국주의 전쟁 같이, 현재 상황에 정말로 맞는지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을 과거로부터 다시 불러왔습니다. 어떤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제가 군사나 지전략(géostratégique) 전문가는 아니라서요. 하지만 제가 속한 세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심지어 요즘 세대도 그렇듯이, 저 또한 전쟁과 평화, 민주주의와 독재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유럽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적 사건들은 피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유럽의 시민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성찰하겠다고 공언한다면, 능력 부족을 이유로 도망쳐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제 대답은 이것은 유럽의 전쟁이라는 겁니다. 유럽이나 그 경계에 속하는 영토에서 일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유럽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총체 안에서 벌어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여기에는 러시아도 포함됩니다.
러시아와 러시아 정권, 즉 일종의 ‘석유재벌 과두정치’ 독재에, 초군사화(ultramilitarisée)되고, 점점 더 경찰국가화되고 있으며, 러시아 제국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 러시아가 지금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적이고, 결과적으로 저처럼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지원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적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전쟁이 유럽, 그러니까 “작은 유럽”으로 축소된 유럽과 정의상 [유럽의] 외부로 규정되는 세력 간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유럽이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이고, 한층 더 확대될 수 있는 명백한 위험입니다.
 

유럽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요? 유럽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요?

 
이렇게 이야기하기 위해선 유럽이라는 공간에 대한 넓은 정의가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고르바초프가 “유럽 공통의 집”이라고 불렀던 그 유럽입니다. 케인즈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출간한 유명한 책, 『평화의 경제적 결과』(1919)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케인즈의 테마는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들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우리가 독일인들을 뭉개버린다면, 결국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역주: 케인즈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독일에 지나치게 많은 전쟁배상금을 강요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을 예견한 셈이다.] 그리고 케인즈가 독자들에게 본질적으로 말하는 것은, “여러분은 영국 사람(케인즈)이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을 걱정하고 있다는 게 놀랍겠지만, 나는 스스로 유럽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입니다. 유럽에 대한 열린 정의가 필요합니다. 유럽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말이죠.
이것이 제가 러시아는 유럽의 일부라고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영국이나 터키와 마찬가지로요. 역사적 유럽은 내부적 경계에 따라, 때때로는 폭력적 방식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유럽과 외부를 구별하는 경계는 다른 문명과 접하는 지역이라는 의미 외에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없습니다. 남쪽, 서쪽, 동쪽 어디를 봐도 말이죠.
 

러시아를 유럽에 포함시키셨는데, 2022년 2월 21일 푸틴 대통령은 침공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했는데요. 이런 공격적인 제국주의가 이러한 유럽이라는 전망을 저해하진 않을까요?

 
푸틴은 공산주의의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제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무언가에 집착합니다. 그것은 1922년 내전이 종식된 후 소련이 결성될 당시, 소련 내에 우크라이나라는 국가 주체가 자치 공화국을 구성한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책임이 바로 레닌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푸틴은 레닌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 재앙적인 양보를 했고,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소련이 붕괴할 때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민들 스스로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러시아의 일부라고 여겼을 테니까 그렇다는 것이죠. 이는 결국 레닌에 반대하고, 스탈린을 옹호하는 입장이 됩니다. 물론, 저는 레닌이 그의 유명한 “민족 문제”(question des nationalités)에서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대(大)러시아 쇼비니즘”이라 불리는 문제는 레닌을 끊임없이 괴롭혔어요. 하지만 크든 작든, 민족주의는 전쟁, 위기, 학살을 통해서 부상하기를 원할 뿐이라는 건 이후의 일들이 증명하지요. [역주: 레닌은 러시아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민족을 뛰어넘은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했다. 소련의 정식 명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USSR)’에는 지역이나 민족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레닌은 단일한 언어(러시아어)를 국가공용어로 정하는 데 반대하고, 소수민족들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장려했다. 이러한 다민족 정책은 스탈린이 정권을 잡은 뒤 역전된다.]
러시아 제국과 다른 유럽 제국들의 역사를 보면 더 오래된 뿌리들도 찾을 수 있지만, 제 생각에 지금 진행 중인 사건은 상당 부분, 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러시아 혁명 뒤에 일어난 유럽의 대분할 때문입니다. 물론 나치즘과 냉전이 뒤따랐고요.
제가 여기서 도출한 결론은,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사람들과 우크라이나 사람들, 그리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유럽의 재구성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국가와 민족이라는 문제가 완전히 다시 검토됩니다.
1920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유럽의 집단적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려면, 유럽의 내부적 분할이라는 긴 궤적을 따라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분적으로 알려 줍니다.
 
이 전쟁에 대한 유럽연합의 현재 대응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확전이 두려우신가요?
 
확전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핵무기 문제를 포함해서요. 확전은 두려운 일이고, 분명,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화주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돕는 것입니다. “비개입”으로 또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전쟁에 얽혀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기는 보내고 있지요. 그리고 저는 유럽연합이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것도 개입의 형태입니다.
두 번째로, 유럽의 군대는 경계 태세에 있고, [러시아와 가까운] 접경 지역으로 파견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차례로 러시아 군대들이 접경으로 다가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서방 내의 유럽연합은 경제적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제 조치가 실제로 취해지고 효과를 낸다면, 전쟁을 수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되고, 이는 러시아의 보복을 부를 수 있습니다. [역주: 하이브리드 전쟁은 재래식 화력만이 아니라 사이버전, 심리전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새로운 전쟁 양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큰 의문은 그 때 중국이 무엇을 할지입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것은, 러시아가 서구세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중국이 이득을 볼지언정, 중국은 러시아를 따라갈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진영”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푸틴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방법을 갖고 있을까요? 그건 더욱 불명확합니다.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얼마 전 노암 촘스키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도와야 한다고 하면서도, 푸틴에 대해서는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또 경제 제재가 러시아인들의 과도한 반발을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경의에도 불구하고, 저는 촘스키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푸틴을 물러서게 하려면 강력한 타격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경제 제재는 양날의 검인 것이 사실이고, 가스나 석유, 밀의 공급이 안 되어서 유럽인들이 고통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도 치솟겠지요. 세계 금융에는 “체계적 위험”(risque systémique)이 될 지도 모릅니다. [역주: 체계적 위험이란 전체 금융 시스템 또는 전체 시장의 붕괴를 낳을 수 있는 위험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위기라는 신호가 켜진 건 매우 오래 되었습니다. 푸틴이 시작한 전쟁에 개입하는 방법은 여러 형태가 있지만, 그게 비용이 들지 않거나 위험이 없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우선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푸틴에게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푸틴 본인도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푸틴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입장인데, 바로 그게 무서운 것입니다.
 
푸틴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로부터 위협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마치 이 전쟁이 미국과의 제국주의 경쟁의 산물인 것처럼요. 그런 논리를 양분삼아 자라나고 있는 “진영 논리”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런 논리가 이 전쟁을 계기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저는 나토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라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해체와 함께 말이지요. 당시에 서방은 “체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생각에서, 경제적, 이념적, 군사적, 그 모든 면에서 승리의 결실을 거두려 했습니다. 서구세계가 유지한 것 중에는 나토가 있는데, 나토에는 외부적 기능도 있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구 진영을 길들인다고까지는 말 못하더라도 서구 진영의 규율을 잡는 기능입니다.
이 모든 것은 확실히 제국주의와 연관이 되지요. 나토는 넓은 의미에서 유럽이 미 제국으로부터 진정한 지정학적 자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장하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이게 냉전 이후에도 나토를 유지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 세계에 재앙이었습니다.
나토는 독재정권들을 나토의 영향권 안으로 받아들였고, 모든 종류의 전쟁을 은폐하거나 용인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반인도적 범죄를 포함한, 극도로 잔혹한 전쟁이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이러한 점에 대한 제 생각을 바꾸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공격성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예를 들어, 발트 해 연안 국가들의 시민에게는 나토만이 유일한 보호책으로 보입니다. 그 지역에는 러시아어 사용자가 30%에서 40% 가량 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항상 바다에 대한 접근권을 원했습니다. 남쪽과 북쪽 바다 모두에서요. 리가(라트비아의 수도) 사람들은 크림반도와 같은 운명을 겪을까 걱정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는 이미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곳은 대대로 내려온 민족주의가 강력하고, 독소 조약의 트라우마도 남아 있는 곳입니다... [역주: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은 직후 함께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를 통해 독일과 소련은 1944년까지 폴란드를 반으로 분할하여 각각 통치했다.]
유럽이 스스로 영토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지는 것, 그리고 효과적인 국제안보 체계를 갖추는 게 최선일 것입니다. 효과적인 국제안보 체계란, UN(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부터 자유로운, 민주적으로 개조된 UN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토가 안보 체계로 부상할수록 UN은 쇠퇴합니다. 코소보, 리비아, 그리고 무엇보다 2003년 이라크에서 미국과 나토의 목표는 UN의 중재, 제안, 화해, 국제 정의를 위한 역량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민중이 침략에 맞설 수 있다는 보증이 무엇이 있을지 자문한다면, 나토는 특정한 경우에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그게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나토의 “보호”와 함께 세계 제국주의의 전략적 분쟁에 휘말려 들게 되니까요.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나토의 위협은 분명히 푸틴의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푸틴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것은 나토의 공세가 아니에요. 그러나 1991년 이후 러시아 주위를 침식해 들어오는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지도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저항뿐만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도 엄청난 위험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하고 연대를 보여주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푸틴을 물러서게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저도 그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무엇이 푸틴을 멈출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첫 번째 대답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도움을 받는다는 조건 하에서요. 두 번째 대답은 러시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시달리고 있는 억압적인 국가장치의 폭력에도 불구하고요.
러시아 사람들 대다수가 현 체제보다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방향을 가리키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푸틴이 문화적, 정치적 공간이 러시아와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얽혀 있고, 부패라는 동일한 문제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 정신이 널리 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생각합니다.
푸틴이 2012년 재선되었을 때, 푸틴에 대한 저항 시위가 일어났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푸틴은 그때 큰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는 조작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런 여론이 러시아에 있는 것이죠. 비록, 과거의 위대한 러시아를 부활시키겠다는 푸틴의 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 아래서요. 슬라브인들이 지배하는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파시스트적인 신화는 훨씬 위험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매달리고 있는 또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과 러시아 군대를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군대에는 전문 군인들이 있고, 러시아 “특수부대”는 이미 다른 곳에서 증명된 것처럼 최악입니다. 하지만 러시아 군대에는 징집병들도 있고, 그 뒤에는 그들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 군인들의 어머니들은 항의하려 집을 나섰었지요. 그렇다면 큰 물음표가 달립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러시아 사회에는 어떤 낙담과 정치적 논쟁이 확산될 수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제 오래된 마르크스주의적 방식입니다. 엥겔스는 징병제 군대의 경우 그 안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전쟁에 반대해 들고 일어날 것이라 주장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로 드러났지만, 적어도 싸우길 요구받았던 전쟁에서 소극적인 저항을 보였던 군인들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저의 첫 생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습니다. 하지만 이 군대 뒤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요? 질문은 이제 이렇게 됩니다. 어떻게 이들 또한 도울 것인가? 틀림없이, 그들을 고립시켜서는 안 되고, 그들과 우리 사이에 도덕적 ‘철의 장막’을 치는 것도 안 됩니다. 이것이 국제주의자로서 제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분쟁 해결은 부분적으로 국제주의를 통해서 가능할까요?

 

민족주의가 득세할 때 국제주의자가 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국제주의가 스며들 수 있는 작은 틈이 있습니다. 전장의 양편에 서 있는 민중과의 연대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연대가 대단히 중대한 것은, 푸틴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거나 영감을 받은 민족주의자 또는 “주권주의자”들이 국내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역시 역설적으로 일종의 인터내셔널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집착하는 것은 어떻게 상반되는 세력의 단결을 실천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푸틴이 우리에게 걸어온 전쟁에서 러시아 군대와 푸틴에 맞서는 동시에, 블록의 재건이 아닌 방향으로, 이 전쟁을 넘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푸틴을 물러서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더 흥미로운 목표가 있습니다. 러시아 민중이 푸틴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더 큰 야심이 있습니다. 세계에 열려 있는, 다언어, 다문화의 거대한 유럽을 발명하는 것입니다. 유럽연합의 군사화가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해 보이더라도, 이를 우리 미래의 방향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앙이 될 “문명의 충돌”을 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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