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2.03.17

2022년 20대 대선 평가

대선 결과가 한국사회 정치 세력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사회진보연대

1.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586식 진보를 넘어서야

 
3월 10일, 20대 대선의 최종결과가 나왔다. 투표율은 77.1%이었고,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7.83%,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48.56%,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37%를 득표했다. 1, 2등 격차는 0.73%였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낙승하고, 2018년 지자체 선거, 2020년 총선에서 연거푸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자, 이제는 운동장이 민주당에게 유리하도록 기울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8년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0년 집권, 나아가 50년 집권을 말하기도 했다. 집권 초기, 기세등등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오래지 않은 동안 큰 변화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를 두고 모든 언론이 민주당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성적표라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 인사 실패에다가,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과 독선, 내로남불이 총체적으로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는 말이다. 이런 일반적 분석은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주류도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나. 송영길 대표는 해단식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역대 최고의 47%가 넘는 득표율, 1600만 명이 넘는 지지,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래 가장 근소한 24만 표의 격차”를 강조했다. 물론 선거운동원을 격려한다는 의도로 볼 수도 있겠으나, 자칫하면 민주당이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 사실 반성할 게 별로 없다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정봉주 민주당 정개특위 위원장의 발언은 좀 더 위험해 보인다. 그는 3월 10일 MBC 100분 토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승리한 패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승리라 말할 수 없는 위험한 승리”라고 말했다. 즉 민주당은 패배지만 승리이고, 국힘은 승리지만 패배라는 주장이다. 민주당 주류 386세대의 인식이 이와 같다면, 즉 선거결과가 지시하는 바를 냉철하게 인식하지 않으려 한다면 또 다시 오만과 독선을 낳을 것이다.
 
다른 한편, 선거가 끝나고도 또 다시 상대편 당선자를 근거도 없이 비난하는 흑색선전이 떠돈다는 보도도 있었다. 윤석열 후보 당선으로, 예를 들어 의료보험과 최저임금이 사라질 것이다, 이런 루머가 출처도 알 수 없는 채로 SNS를 통해 퍼졌다. 만약 이런 악의적 비방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퍼져 나온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행위는 정치를 흑색선전으로 물들이면서, 한국 정치의 양극화, 극단화를 밀고나가는 위험천만한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나. 선거가 끝나고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는 ‘586 용퇴론’을 내놓았다. 또한 이재명 후보가 약속한 것처럼, 다당제가 가능한 정치개혁을 당장 실천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는데, 우선 6월에 실시될 지방자치체 선거에서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라는 요구도 포함되었다. 실제로 과연 민주당이 자신이 말한 약속을 실천할지 모두 지켜볼 것이다.
 
이러한 언론의 주문에 더하여 몇 가지 더 언급해야 할 바가 있다. 첫째, 왜 586 용퇴론이 나왔을까. 무엇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학생운동 경력이 곧 영원한 선이라는 믿음이 문재인 정부 시절을 거치며 깨졌고, 그들이 오히려 내로남불, 위선의 세력으로 보이는 현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학생운동 출신 인사 ‘개인’이 이제 기득권이 되어 구태를 반복한다는 평가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586 용퇴론의 함의는 좀 더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더 넓은 틀에서 보면 586세대의 현실인식, 행동방식이 더 이상 ‘진보’로 통용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586세대의 현실인식은 군부독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악이고, 그에 저항하여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정당하다는 도덕적 선악구도를 깔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인식 틀은 수십 년이 지나 현재에도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었다. 즉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비판을 가하는 입장이나 세력은 겉으로 아무리 좋아보여도 결국 기득권의 편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진영논리가 굳건했다. 그래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판하면 결국은 검찰 기득권 옹호이고, 윤미향 의원을 비판해도 결국은 친일 기득권 옹호라는 사고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20년 유시민 이사장의 발언, “저 같은 사람은 보수정당에서 세종대왕님이 나오셔도 안 찍어요”라는 말도 그런 생각을 잘 보여주었다.
 
이런 인식은 사회적 쟁점에 관한 입장, 정책을 자꾸 도덕적 문제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낳았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강한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정책이 실패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든, 검찰개혁 정책의 실패나 대북정책의 실패든 간에 어쨌든 우리는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자기 주문을 반복할 뿐이었다. (물론 부동산 내로남불은 그들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얼마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요약하면, 우리가 586 용퇴론에서 주목해야 할 바는 586식 세계관에 입각한 그들의 ‘진보’가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내놓은 정책은 과연 '진보'일까. 이재명 후보 개인의 미래 행보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의 여러 공약은 민주당의 공식적인 약속으로 남아 있으므로 두고두고 숙고해야 할 바다. 이재명 후보가 내세운 다양한 ‘기본 시리즈’(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는 2010년대 야권연대의 승리 공식 중 하나였던 ‘무상 시리즈’의 확장판이었다. 정부가 이미 실행하는 다양한 사회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이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는데, TV토론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략적인 예산소요 추산도 불확실했다. 또한 이재명 후보에 가해진 비판 중 하나는 그렇게 줄곧 비난을 하다가 결국 상대편 후보의 부동산 정책이나 코로나 손실보상 정책을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이 둘을 종합하면 결국 이재명 후보가 내세운 정책은 마구잡이식 재정지출과 ‘발 빠른 모방’이 혼합된 것인데, 여기서 어떤 정책적 방향성과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이는 문재인 정부 정책이 현실적합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요약하면, 민주당은 이제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상태에 처했다.
 
셋째, 586 용퇴론은 시민운동 출신 민주당 정치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몇 해 전, 최장집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운동이 파당적으로 재편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가와 시민운동 사이에서 “특혜와 지원을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관계(후견주의)가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공론장은 “더 이상 정당 간 경쟁이나 갈등 라인을 초월하여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존립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아가 “21대 총선은 특정 시민운동 출신들이 선거를 위해 급조된 정당의 후보로 선거 경쟁에 나서고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시민운동이 곧 정당이고, 정당이 곧 시민운동인 현상이 현실이 되었다.” 최 교수는 이렇게 해서 시민운동은 국가에 흡수되고 타락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586 용퇴론은 파당적으로 재편된 시민운동 전반이 어떻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비판세력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것이냐는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넷째, 586이 용퇴하면 누가 오는가. 물론 유능하고 참신한 인물이야 찾으면 많겠지만, 문제는 민주당 주류와 강성 지지층이 이를 수용할 수 있겠냐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2021년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크게 패배한 후, 초선의원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자 이를 두고 ‘초선 5적’이라고 찍어 누른 강경 민주당 지지층이 존재했다. 이런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누가 오더라도 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민주당 내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점차 바뀌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즉 한국 정치가 새 세대 정치지도자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냐는 문제가 엄존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통령 ‘단핵’을 중심으로 운영되므로, 의회에서 정치인이 성장할 조건이 취약하다. 이번 대선에서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후보끼리 맞붙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회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치제도 개혁을 중장기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종합하면, 민주당의 미래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586세대 정치인 몇몇이 용퇴하는 게 아니다. 586식 세계관, 현실인식, 진보 관념을 총체적으로,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아가 대통령이라는 ‘단핵’과 그 핵심 강성 지지층으로 구조화된 정당,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건전한 비판자로서 시민운동이 자기 역할을 찾는, 매우 큰 폭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냐에 달려 있다.
 
 

2.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 힘: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통합·협치의 기준일 수 없어

 
모든 언론이 낙선한 민주당에 대해 ‘뼈를 깎는 반성’을 주문했다면,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두고는 한결같이 ‘통합’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한겨레》도 ‘국민통합이 최우선 과제다’라고, 《동아일보》도 ‘통합과 미래가 새 정부의 시대정신이다’라고 사설을 냈다. 《한국일보》는 ‘협치·통합은 국민 명령’이라고 못 박았는데, “그를 지지한 유권자가 절반에도 못 미쳐 승리라 하기 무색하다”, “압도적 승리를 안기지 않은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득표 결과를 두고 절묘한 표심이라는 언론의 논평도 매우 많다. 당선자 측이 결코 오만할 수 없도록, 처음부터 낮은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결과로 해석한다. 이러한 분석도 타당할 터인데, 윤석열 후보가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 중에서조차 결국 설득하지 못한 층이 상당히 많다는 게 득표결과로 드러난 분명한 사실이고, 설사 그에게 투표를 했더라도 윤 후보 개인이나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강하다는 진단도 많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3월 10일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젠더 갈라치기’ 전략에 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런 식으로 오해도 받고 공격도 받았지만... 그런 것 없으니...”라고 답했다. 본인은 오해와 공격이라고 말했으나, 윤석열 캠프와 국민의힘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을 필두로 그러한 전략을 목적의식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당선자는 진정으로 통합을 지향하는 지도가가 되고자 한다면, 선거운동 기간에 제기된 여러 우려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특히 이재명, 심상정 후보 지지층이나 사회운동이 거듭 비판한 사안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그 책무를 다해야 한다. 몇 가지, 대표적인 문제만 다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첫째, 이른바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적폐수사 해야죠’라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그 우려를 폭발시켰고, 수습책으로 내세운 검찰 독립성 강화 방안(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청의 독자 예산편성권)이 도리어 검찰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검찰 독립성을 강화하여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함으로써, 권력형 사건을 시스템에 따라 처리해 나간다는 게 그의 대체적인 구상으로 보이는데, 청와대가 권력형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의지를 검찰 인사부터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 그가 당선되면 한반도 긴장이 더 높아진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할 경우 ‘선제타격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발언이 논란을 낳았다. 문재인 정부나 역대 정부의 한국형 킬체인 구상에 선제타격 능력 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통령 후보나 당선자의 발언은 그 무게감이 다르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들어 북한이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중단한다는 모라토리엄 약속을 뛰어 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즉 현재 한반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북한이 새해 들어 거듭 미사일 실험을 이어나가는 문제는, 물론 문재인 정부도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난제인 게 분명한 사실이지만, 새 정부의 대처 방향에 대한 공론을 형성해야 한다.
 
셋째,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세대포위, 젠더 갈라치기 전략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도 선거가 끝난 후에도, 국민의힘 내에서는 이러한 전략 덕분에 청년층에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식의 옹호론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대표적으로 하태경 의원은 “2012년 대선과 비교하면 거의 2030 지지가 없던 저희 정당이 아주 높은 지지를 받게 된 면에서 큰 성과”라고 말했다. 젠더 문제를 매우 부적절한 갈등 구도로 이끄는 전략은 치유하기 어려운 파괴적 효과를, 그것도 매우 오랜 기간 발휘할 게 너무나 분명하므로, 반드시 반성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넷째, 윤석열 당선자의 노동 정책은 노동신축화를 추구하면서 노동자 간 임금 격차, 노동조건 격차를 확대할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당선자가 선거기간에 했던 말을 종합해보면, 그의 정책은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거나, 유연근로제(선택적 근로시간제,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확대하자는 데 강조점을 두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우회적인 최저임금 억제 정책으로, 특히 취약업종,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하여 임금 격차를 더욱 벌일 위험성이 매우 높다. 유연근로제 확대 역시 특히 중소·영세·비노조 사업장에서 사실상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시간을 신축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임금 격차, 노동조건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우리의 관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런데다가 윤석열, 안철수 후보는 민주노총이 보낸 정책질의서에 답변도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입장이 당선자 측의 정책구상과 어떤 분명한 차이가 있더라도, 당선자는 노동조합을 존중하는 성실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윤석열 캠프는 노동정책을 구체화할 때 “현장의 의견을 듣겠다”고 말했는데, 그 현장의 목소리에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부동산 가격이 다시 뛸 조짐이 있는데, 이를 자극할 정책을 한 번에 쏟아내면 문재인 정부 때와는 또 다른 양상으로 심각한 우를 범할 것이다. 또한 주식양도세 폐지나 복수의결권 주식제도도 공약으로 내놓았는데, 사회 형평성에 어긋나고 부의 세습을 확대할 위험이 매우 크다.
 
또한, 윤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미·중 전략 경쟁의 긴장 속에서 글로벌 외교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선거 운동 기간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외교 이슈가 선거쟁점으로 얼마간 부상하기는 했으나 충분히 공론화되어, 유권자의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미국 백악관은 새 정부의 외교정책에 관해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이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새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의회와 언론에 더 상세히 설명하고 공론을 모으는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종합해보면, 윤석열 당선자 본인도 “통합·협치하라는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국민의힘, 즉 보수당 정부가 통합·협치를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고 있다. 과거 보수당 정부를 상징했던 대표적 표현을 상기해보면, 이명박 정부의 경우 ‘명박산성’이었고, 박근혜 정부의 경우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둘 다 ‘불통의 리더십’을 꼬집은 것이었다. 당선자가 “기자 앞에 자주 서겠다”는 약속만 지켜도 과거 정부보다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따라서 윤 당선자가 말한 통합·협치는 이러한 우려나 비판에 대해 얼마나 성실히 응하느냐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민주당의 미래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문제를 꺼냈던 것처럼, 새 정부와 새 집권당도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보통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면 ‘국민통합’을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로 환원해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즉 많은 국민이 나를 지지하므로 곧 국민통합을 달성했다는 식으로 인식하려 든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아니라 의회 정치의 활성화가 통합·협치의 기준이 되도록, 정치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형태, 다양한 수준의 노정협의, 노사정협의와 같은 사회적 대화 메커니즘에 대한 존중도 반드시 필요하다.
 
 

3.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시작할 때의 정신으로

 
선거결과, 민주노총이 지지한 3개 진보정당의 경우, 정의당이 803,358표(2.37%), 노동당이 9,176표(0.02%), 진보당이 37,366표(0.11%)를 얻었다. 기본소득당은 18,105표(0.05%)를 득표했다.
 
1997년 민주노총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표방한 이래 민주노총 지지 정당의 득표수와 지지율을 보면, 1997년 국민승리21(권영길)이 306,026표(1.19%)를 얻었다. 그 후, 2002년에는 득표와 지지율이 크게 늘어 민주노동당(권영길)이 957,148표(3.89%)를 받았다. 그 다음 2007년에는 다시 감소하여 민주노동당(권영길)이 712,121표(3.01%)를 얻었다.
 
그 후, 2010년대는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가 발생해 진보정당이 쪼개진 데다가, 야권연대라는 강한 바람이 불어 지형이 복잡해졌다. 2012년에는 진보정의당(심상정), 통합진보당(이정희) 후보가 모두 사퇴했고, 2017년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민주당의 낙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의당(심상정)이 2,017,458표(6.17%), 민중연합당(김선동) 27,229표(0.08%)를 얻기도 했다.
 
후보단일화나 탄핵이라는 특수한 계기를 논외로 한다면, 여러 진보정당의 2022년 득표수, 득표율은 2002년에 못 미치고, 득표율로만 보자면 2007년보다도 낮아서, 1997년 민주노총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처음 도전할 때를 얼마간 넘어서는 수준과 비슷하다.
 
이러한 대선 결과가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가. 물론 진보정당의 성과를 단지 득표라는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경우,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거대 양당구도라는 압력 속에서도 끝까지 완주하고, 선거운동이나 TV토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에 대해 정확하고 적절한 문제제기를 하며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노력에 비해, 결과에 큰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심상정 후보는 1월, 칩거에서 돌아온 후 “정의 없는 정의당이라는 말이 가장 뼈아프다”, 나도 “비호감의 일부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국 사태 때 정의당이 보인 태도가 진보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자신에 대한 ‘비호감’으로 이어졌다는 뼈아픈 반성의 표현이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 들어가기 전, 사회진보연대는 2010년대 이후 10여 년간 이어진 전략적 야권연대가 오히려 진보정당의 전략적 위기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2010~20년 10년의 야권연대, 역사와 교훈」, 《계간 사회진보연대》, 2021년 가을호.) 2010년대 정의당은 정치개혁, 핵심적으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구하며 민주당과 협력구도를 형성했다. 2012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는 ‘새정치선언’을 내놓고 사퇴하기도 했다. 이는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 정부에서 패스트트랙 연대로 이어졌으나, 결국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정의당이 민주당의 ‘배신’에 무력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2010년대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당이 오히려 ‘진보정당’의 대표주자가 되고, 정의당은 ‘틈새정당’쯤으로 축소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한 축으로는 진보정당이나 민주노총, 다른 한 축으로는 여러 시민운동의 아젠다를 선택적으로 흡수했다. 또한 반복되는 야권연대를 통해서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 조합원이 민주당에 투표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만약 한국에서 노동자·노동조합의 집단적 투표, 즉 ‘계급투표’가 존재한다면, 이제 그 대상이 민주당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
 
민주노총도 이런 상황이 큰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2017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민중경선을 통해 진보정당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난 대선처럼 최종적으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2007-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나,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파행 이후로 진보정당 간 인식과 노선의 차이가 크기도 하고, 민주노총이 단일화나 통합을 강제할 뚜렷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처해 있는 정체 상태, 교착 상태를 한 순간에 돌파할 수 있는 묘책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선거 결과로만 볼 때, 2000년대 초반과 유사한 상황이라면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가, 그 당시의 정신을 되돌아보는 게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 당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민주당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민주당과 다른 진보를 그려내려고 했다면, 지금은 앞서 언급한 586식 진보 관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진보의 길을 제시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그 길은 현실 쟁점과 멀리 떨어진 그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판단과 선택을 요구하는 과제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찾아나갈 수 있다. 최근 두드러진 하나인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중대한 사태가 터져 나왔지만, 한국 진보운동의 대응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차갑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진보운동이 586세대 식의, 구래의 국제정세 인식이나 진보 관념(곧 반미 민족주의라면 그 정권의 성격이 무엇이든 간에 곧 진보라는 관념)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려한다. 그런 진보 관념으로는 이 사태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운동 과제를 도출할 수도 없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 사태도 그냥 그렇게 넘어간다면, 한국사회 진보운동의 국제정세 인식은 무엇이고, 현 시대의 진보란 바로 이것이라고 한국 사회 전반에 분명히 각인시킬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정리해보면, 민주노총은 대선 논평에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침몰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정자가 민중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겠으나, 우리는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은 누군가의 배를 밀어주거나 뒤집어엎는 역할을 넘어서, 스스로 배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이 시대의 진보란 무엇인가 분명한 색깔을 보여줄 때,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 진보정당 운동이 현재의 교착상태를 극복할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태그
반전 페미니스트 여성의날 러시아 러시아페미니스트 우크라이나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