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3.02.10

사회운동의 엇갈린 시대인식

<신냉전 대결과 다극화로 향하는 세계, 한반도 평화의 과제> 토론회

사회진보연대
 
“미국 패권이 몰락한 다극화된 세계는 인류사적 진보이고 호혜와 평등의 세계질서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인데, 러시아 입장에는 서방의 침략 위협에 대응한 주권국가 최초의 반격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정목 통일시대연구원 부원장)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승리는 강대국은 유엔을 무시해도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을 받는다는 위험천만한 교훈만을 남길 것입니다. 침략전쟁을 개시한 러시아가 주도하는 ‘다극체제’가 어떻게 공존과 다양성이라는 말과 어울릴 수 있겠습니까.”(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2022년 한 해 동안 북한이 70여 발의 미사일을 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하는데,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켰나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4.27 판문점 선언,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서 북한은 전세계 비핵화를 위해서 싸워왔는데, 미국이 사전 합의를 번복한 것입니다.” (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편집위원장)
 
“최소한 1990년대 이후 북한의 행동은 미국에 반응적이라기보다는 핵보유 자체를 목표로 추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남한의 핵훈련이나 전술핵 배치 논의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나 전술핵운용부대 훈련을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지난 2월 8일, 전국민중행동과 민주노총 통일위원회에서 주최한 토론회 <신냉전 대결과 다극화로 향하는 세계, 한반도 평화의 과제>에서 나왔던 발언이다. (☞ 토론회 자료집 보기) 손정목 부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인류사적 진보라고 평가하는 데 반해, 임필수 실장은 위험천만한 세계질서로 돌입하는 국면으로 이해한다. 백철현 편집장은 북한이 전쟁위기를 고조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세계 비핵화를 위해서 싸워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임필수 실장은 북한이 핵보유를 추구하면서 평화를 위협해왔고 사회운동은 이를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 7일에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2023년 정세전망에 대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것을 단순히 미국 추종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나”,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는 왜 서술되어있지 않는가”라는 질의가 있었다. 이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민주노총도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함께 (전쟁 반대) 공동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답변했다. 또한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강령에서도 모든 핵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며, 다만 미국에 의한 지배전략을 고려하여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결과적으로 핵무기 반대를 명확히 서술하자는 취지로 제출된 수정동의안은 해당 내용을 정세전망에 포함하는 것으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가 사회운동의 뜨거운 감자임을 방증한다. 실제 2월 8일 토론회의 토론자로 나왔던 백철현 편집장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제출된 수정동의안은 “사실상 이견안”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가 논란이 되는 직접적인 이유는 최근 들어 강력해진 북한의 연이은 무력시위와 핵 위협 때문이다. 북한은 작년 9월 ‘핵무력 법제화’를 선포했다. 게다가 남한에 투하할 수 있는 전술핵을 실전 배치하고 운용하기 위한 훈련을 하면서 동아시아 핵전쟁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다. 오는 2월 24일 침공 1주년을 맞이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갈등적인데, “미 제국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사회운동 진영은 침공한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을 주되게 규탄하고 있다.
 
남조선 혁명론을 설파했던 60년 전의 북한과 “핵은 우리의 국체”라는 현재의 북한을 동일한 잣대로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사회운동은 북한의 핵 위협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월 8일 토론회는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에 대한 사회운동 진영의 인식에 대해 점검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날 정세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사회운동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가 커질 수 있는지를 확인한 자리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일으켰다?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원인에서부터 주 발제자와 토론자의 시각이 갈렸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네오콘의 대리전쟁”으로 규정하고, 나토의 동진을 전쟁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나토가 계속해서 동쪽으로 가게 된다면 전쟁이 난다는 경고는 이미 20년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손정목 부원장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처음부터 기획하고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패권이 위기에 처하자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동맹경제력을 자국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기획한 대리전”이라는 것이다.
 
반면 임필수 실장은 그렇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미국 부시 행정부 당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에 가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과, 프랑스가 반대하면서 실천적으로는 가입을 거부하는 결과가 나왔고, 그 후로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나토에 가입하기 위한 절차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쟁의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러시아의 국내적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푸틴은 권위주의적 통치와 경제위기에 따른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에서 크림반도 점령에 나섰고, 바로 여기에 전쟁의 기원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러시아가 느꼈던 외부적 위협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나토의 확대라기보다는, 러시아가 주변국 정치에 개입하는 현실에 저항하여 민주적 체제를 구축하려는 주변국 민중의 흐름이었다”고 보았다.
 
 
러시아의 승리가 더 나은 미래인가
 
이해영 교수는 “이미 루한스크주는 100% 러시아로 넘어왔기 때문에, 러시아군이 전략적 고지인 바흐무트를 점령하여 남은 두 도시를 장악하면 돈바스 해방이 완성된다”며 러시아의 전쟁 승리가 목전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오콘 프로젝트의 좌절은 미국의 패권적인 단극체제의 약화 혹은 균열의 다른 말이다. 이것이 내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이해영 교수의 주장대로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우세한 상황에서 전쟁이 마무리된다면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는 “단극체제가 신자유주의, 네오콘,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해 온 만큼, 이와는 구분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당장은 공존과 다양성 이상을 말하기 어렵다”라고 전망했다.
 
더 나아가 적극적인 의미에서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환영하는 토론자도 있었다. 손정목 부원장에게 미 패권이 몰락하는 전환기는 “인류사적 진보이고 호혜와 평등의 세계질서”였다. 이는 자주와 예속의 대결인데, 왜냐하면 “예전 영미 패권 전환기와 달리, 패권 자체를 없애는 전환”이기 때문이다.
 
반면, 임필수 실장은 상반된 평가를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유엔의 집단안보 시스템이 작동했어야 할 사례였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평화를 유지해야 할 일차적 책임을 지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도리어 명백히 국제평화라는 정신을 파괴하고 유엔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강력한 규탄 대상이 되며, 이는 미국의 이라크전쟁과 비견할 만한 일이라고 보았다. 침략전쟁을 개시하는 국가가 주도력을 행사하는 세계가 어떻게 호혜와 평등, 공존과 다양성의 세계가 될 수 있겠냐는 지적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주권국가가 아니다?
 
이해영 교수는 “흔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권을 침해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지켜주러 개입했다는 소리인가”라며 반문했다. 국가의 생존이 미국에 달렸는데 과연 우크라이나에 주권이 있냐는 물음이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와 같은 민족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우크라이나는 1922년에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라는 푸틴 대통령의 논리를 되풀이했다.
 
한편 이해영 교수는 마지막 발언에서, “러시아가 주권 불가침을 어긴 것은 맞다. 그러나 돈바스 민중들의 자결권을 해친 것은 우크라이나 나치들이다. 주권 불가침이나, 민족자결권도 국제법이니 둘 다 지켜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주권국가인가? 그런 나라를 주권국가로 부를 수 있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소 모순되는 발언처럼 들리지만, 우크라이나는 주권국가로 볼 수 없고, 만약 주권국가라고 간주하더라도 그렇다면 돈바스의 두 공화국도 주권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두 공화국은 국제법상 국가로 승인된 적이 없으며, 러시아가 이들의 독립을 승인하며 전쟁을 시작했다.)
 
사회진보연대 임필수 정책교육실장
 
임필수 실장은 우크라이나 민중을 그저 서방의 대리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시점에 조선과 같은 식민지를 독립시킨다는 강대국의 합의를 순수한 의도로 보아서는 안 되고, 각국의 국익에 따른 냉철한 계산의 결과라고 주장한다면 그에 완전히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식민지 민중의 해방운동이 강대국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던가, 그래서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든가 하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우크라이나에 개입하는 서방의 의도에 대해서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과, ‘국제적 민중연대’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플로어 토론에서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이해영 교수는 전쟁 전부터 우크라이나는 파쇼 일당 독재국가였기 때문에, 탄압이 극심해 젤렌스키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은 불가능해 보이고, 우크라이나 민중이 스스로 조직화해서 다른 대안을 제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발언했다.
 
반면, 임필수 실장은 “여론조사를 보면 젤렌스키 정부의 전쟁 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여론이 70~80% 정도 나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물론 우크라이나의 사회운동 같은 경우도 전쟁을 빌미로 노동억압적 조치를 도입하는 데에 강력히 반대한다. 하지만 이와 분리해서 젤렌스키가 러시아에 취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사회운동의 현황에 대해서는 2022년 노동운동포럼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사회운동의 과제> 지상중계강연 영상을 참고할 수 있다.)
 
 
한반도 전쟁위기에 정녕 북한의 책임은 없는가
 
<위기의 한반도, 한반도 평화 해법을 찾다> 발제자 문장렬 전 국방대학교 교수
 
토론회에서는 한반도 전쟁위기의 원인은 미국에 있으며, 오히려 북한의 행보는 그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같은 군사적 조치에 대해서 반응적이다. 항상 선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정목 부원장은 현재 전쟁위기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원진욱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은 ‘북핵’문제와 군축문제는 “미국의 한반도 지배전략이 초래한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백철현 편집장은 한반도 위험의 책임이 남과 북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있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 “진보진영이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에 놀아난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임필수 실장만이 북한의 핵무장을 단순히 미국에 대한 반응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핵보유 자체를 목표로 했던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에 핵무기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겠냐는 토론회 참가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북한 체제 특성상 불가능했다”고 답변한 문장렬 교수와 달리, 임필수 실장은 다른 길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남북기본합의서, 제네바합의, 9.19 공동성명에 대한 이행의 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러한 합의 이행이 위기에 빠졌던 원인을 보았을 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 제네바 합의가 이행되는 과정에 있어서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개연성이 사후적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핵 감축 단계에 대해서 기존의 합의를 부인하고 오바마 정부 때 난데없이 미사일, 핵실험을 했던 상황을 생각했을 때도 그러하다. 최소한 1990년대 이후의 국면에서 북한은 단순히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카드로 핵개발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표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임필수 실장은 사회운동이 북한의 행태에 대해서 비판해야 하며, 이제는 정말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이유
 
문장렬 교수는 그간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해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보수정부는 박정희의 ‘7.4 공동성명’, 노태우의 ‘남북기본합의서’, 김영삼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라는 업적을 무시했고, 진보정부는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며 과감한 실천을 주저하고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최은아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장은 “2018년 북미, 남북 간의 합의 이행의 과정을 보더라도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4년간 유지했다. 반면, 한국과 미국정부는 한미훈련 중단 약속을 1년 만에 파기했다. 문재인 정부는 합의 이행에 공을 들이기보다 한미동맹 강화 정책을 선택해 왔다”고 평가했다. (소위 ‘북미 모라토리엄’, 즉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과 북한의 핵, 장거리 미사일 실험 중단이라는 암묵적 합의는 2022년 3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으로 인해 파기되었다. 최은아 자통위원장은 규모 불문 일체의 한미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것이 북미 간의 합의였다고 전제하는데, 2018년 싱가포르 선언과 2019년 하노이 회담 사이에도 소규모 훈련은 진행되었다.)
 
그러나 임필수 실장은 1990년대 이후 남북관계의 흐름을 단순히 남한 정부의 성격이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에 따라 굴곡을 겪었다는 식으로 단순화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이 실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네바합의나 6자회담에 따라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즉 한반도 비핵화의 진척과 남북관계의 탈냉전화가 밀접히 연관되었다”고 설명한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남북관계의 완전한 동결은 6자회담 프로세스의 좌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거둔 성과가 미미한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반도 비핵화 없이 전쟁위기 극복이 가능한가
 
문장렬 교수는 북한의 선 비핵화는 불가능함을 전제한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비핵화를 먼저 해야 대규모의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데, 불가능한 것을 먼저 하면 가능한 것을 나중에 해준다는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비판했다. 동시에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할 해법으로 북한과 대화할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선 비핵화 조치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손정목 부원장도 한미연합훈련부터 중단해야 새로운 협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전제로 하여 군축협상에 들어가자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임필수 실장은 두 토론자의 해법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남북기본합의서가 서명, 발효될 수 있는 조건이 바로 ‘한반도비핵화선언’이다. 한반도비핵화선언이 함께 있어야만 남북기본합의서가 합의되고 작동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지, 한반도비핵화선언 없이 남북기본합의서만 합의, 작동될 수는 없었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또한, 북한식 ‘조선반도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노딜’을 통해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음을 짚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미국의 외교 원칙일 뿐만 아니라, 유엔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원리”라고 강조했다. 비핵화는 현실에서 단계적으로 실행될 수밖에 없지만, 이는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고,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을 신고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폐기해 나가기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는 과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임필수 실장은 이러한 과정을 생략한 핵동결이나 부분적 핵감축 협상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를 수용한다면, 곧 NPT 체제가 붕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게 되면 ‘불량국가’ 취급을 받을 것이고 경제가 망가져 ‘실패한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장렬 교수의 주장에 대해, 임필수 실장은 “동의한다. 그렇다면 북한 역시 비핵화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불량국가, 실패국가라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문장렬 교수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실패국가냐는 질문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인민들은 지금 지상낙원에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지표들을 보면 상당히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현재 상태에서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에 반해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 특히 대외의존성이 높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임필수 실장은 “한국정부와 사회운동이 북한식 ‘조선반도 비핵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북에 보낸다는 자체가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즉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북한이 실현할 수 있다는 북한의 그릇된 믿음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는 곧 북한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불량국가, 실패한 국가로 남아있게 할 효과만을 발휘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흔들리는 국제질서는 호기가 아니다
 
토론회는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조금씩 다른 말을 했음에도, 고조되는 전쟁위기는 다 같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사회자의 말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사회운동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북한의 실질적인 핵보유를 진정 위기라고 여기는지 심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오히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몰락하는 호기로 파악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사회운동은 국제정세의 변동을 엄밀하게 인식하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고조되는 전쟁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전세계 평화운동이 견지해온 대원칙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임필수 실장의 발표 내용을 상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핵무기는 명백히도 불특정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남한 대중의 관점에서는 현실적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반핵운동은 핵무기가 어떤 식으로든 ‘정의의 무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비핵지대를 연결하는 전망만이 반핵과 평화를 향한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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