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한국정치 | 2023.02.17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②, 비민주적 공천제도의 폐해

비민주적인 공천제도 아래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바랄 수는 없다

사회진보연대
 
지난 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당에 개입하는 형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반복할 뿐이며 오히려 한국 정치의 퇴행을 야기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동시에 의회와 정당의 기능 정상화를 꾀하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정당의 기능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정당제도 내부의 한계를 여당 내홍이 발생하는 또 다른 이유로 짚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비민주적인 공천제도의 문제다. 현재도, 과거도 언제나 당 대표 선거가 과열되는 이유는 국회의원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달린 공천에 당 대표가 실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비민주적인 공천제도 속에서 반복되는 공천 논란
 
이번 당 대표 선거를 비롯해 선거 때마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한국 정당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여당은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고, 야당은 이에 협조하든(‘관제야당’), 대립하든(‘선명야당’) 간에 그 역시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즉 여당, 야당 모두 정점(보스)을 중심으로 한 하향식 질서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이런 질서 아래 공천제도는 보스에 휘둘리면서 매번 대표가 교체될 때마다 상황 논리에 따라, 계파에 따라 원칙 없이 바뀌어 왔다. (매번 대표가 바뀔 때마다 공천에 대한 규칙이 바뀌는 걸 당내 게리맨더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공천 방식은 민주화 이후에도, 심지어 2004년 이후 외형적으로 정당개혁이 점진적으로 실행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과 그의 정당개혁으로 상향식 공천이 큰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상향식 공천(개방형 국민 경선)이 주요 정당에서 실시됐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후보를 낸 243개 지역구 중 84곳에서 경선을 치렀고(35.6%), 한나라당은 후보를 낸 228개 지역구 중 15곳에서만 상향식 공천을 치렀다(6.6%). 그러나 양당 모두 중앙당 운영위가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천권은 기본적으로 당 지도부가 보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상향식 공천이 한 곳도 진행되지 않고 두 거대정당 모두 당 지도부에서 구성한 공천심사기구에서 기준을 제시하고 그들이 결정하는 하향식 공천이 이뤄졌다. 그 결과 양당 모두에서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 속에 친이계가 대거 공천받았고, 이 결과 불복한 친박계 일부 인사가 탈당해 친박연대를 결성하여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기도 했다. 통합민주당 내에서는 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계, 박상천을 중심으로 한 구민주당계, 손학규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 이탈파가 대립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손학규 공동대표를 따르는 의원들이 대부분 공천받아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기도 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이전에 없던 여성 후보에 대한 가산점제도를 양당 모두 도입하고 상향식 공천이 다시 도입됐다. 새누리당의 경우 경선으로 선출된 비율은 19.1%(공천한 선거구 230곳 중 47곳)였고, 민주통합당의 경우는 44.3%(공천한 선거구 185곳 중 82곳. 야권단일화로 새누리당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공천 인원이 적었다.)였다. 그러나 개방형 경선을 다시 도입했음에도 공정성, 투명성 논란은 여전히 제기되었다. 여야 모두 최고위원회를 통해 공천심사위원을 임명하면서 이전과 같이 중앙당이 공천에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통합당 내부에서는 경선에서 조직 동원 논란,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서의 계파 갈등과 같은 혼란이 두드러져 총선 패배의 한 원인이 됐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깔끔했던 것은 아니었다. 현역의원 하위 25%를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으로 친이계와 친박계의 계파 갈등이 벌어졌고, 이런 규칙 아래서 친이계 후보가 대거 탈락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공천 결과가 만들어졌다.
 
2016년 3월 2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잘못된 공천을 바로잡기 위해 5곳에 대한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의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직후 김무성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로 내려갔는데, 그 때 언론에 보도된 사진이다. [출처: 《JTBC》 2016.4.14.]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 전면 도입, 더불어민주당은 시스템 공천과 같은 공천제도 민주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공천과정은 전혀 달랐다.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을 적용할 것을 명시했으나 친박계의 반발로 사실상 전략공천과 다름없는 우선추천제가 도입됐다. 당내에서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이른바 ‘옥새파동’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2015년 문재인 대표 시절에 마련된 시스템 공천, 즉 현역의원 하위 20% 강제 컷오프를 두고 친문과 비문세력 간의 갈등이 벌어졌다. 다만 이미 반문세력은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기에 새누리당만큼 갈등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시스템 공천은 2016년 초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선 뒤 사실상 무력화됐기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2020년 21대 총선은 탄핵정국 이후 미래통합당의 쇄신이 주요 이슈였다.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에 한해 여론조사 100%를 반영하는 경선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현역 물갈이’를 위한 것이었는데, 기존 중진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고 공천잡음이 이어져 오히려 정당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자 253명 중 111명(43.9%)이 경선으로 선출됐고, 미래통합당은 235명 중 83명(32.8%)을 경선으로 선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전 총선에서 경선 선출 비율 24.3%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 특징적이었다.
 
이렇듯 삼김시대가 종료된 이후에도 공천과정에서 잡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됐으며, 공천에 있어 당 대표와 당 지도부의 권한이 절대적인 현실 역시 큰 틀에서 변하지 않았다. 이는 공천관리위원회가 당 지도부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 외부인사를 영입한다 해도 영입 주체가 다시 당 지도부이므로 결국 당 지도부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 이름만 바뀔 뿐 ‘전략공천’이 계속 유지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정당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공직에서 일할 인물을 추천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직에 나설 후보를 가려내는 공천과정이 비민주적인 상황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정당 공천 혁신을 위한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외국의 공천제도 – 미국, 독일, 영국의 사례
 
관련해서는 미국, 독일, 영국과 같은 외국 사례를 참고할 수 있겠다. 독일, 미국에서는 공천제도부터 공직선거 절차로 간주하고 공천을 법제화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는 당 자율로 맡기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경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유세모습. [출처: 《국민일보》 2020.3.14.]
 
우선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애초 미국의 공천제도는 정당지도자의 모임인 코커스에서 정당의 공직 후보자를 지명하는 것에서 출발했으나, 1820년대에 들어 비민주적이며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코커스에서 전당대회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전당대회 역시 정파 간 갈등, 보스의 지배 등이 문제로 드러나 주민투표를 통한 예비선거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1904년 위스콘신주에서 최초로 의무적인 예비선거제가 도입된다. 이때 예비선거는 주법하에서, 즉 정부가 감시하는 선거에서 정당의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절차다. 이렇게 예비선거를 통해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게 됐으나, 주로 미국 남부 주에서 흑인의 투표권을 배제하는 예비선거제를 시행하자 위헌성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정당 내부 문제지만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이 인정돼 공천과정에 대한 국가(주)의 통제를 인정했다. 최근에는 공직선거 절차라기보다는 정당 내부의 사항이라는 측면이 강조됨에 따라 법적 규제를 최소한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추세지만, 예비선거제도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큰 틀에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원내각제하에서 공천제도를 법제화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선거제도에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각각 표를 행사한다. 따라서 정당은 지역구당 1명의 후보자와 각 주당 하나의 정당명부를 제출한다. 이때 지역구 후보와 정당명부는 연방선거법이 후보추천기구로 규정한 당해 선거구 당원총회나 대의원회의 투표를 거쳐야 한다. 또 정당법과 연방선거법에서는 상향식 후보 선출 과정을 통해 공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당 지도부의 거부권을 명시하고 있다. 선출된 후보에 대해 지도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투표를 통해 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영국은 정당공천을 입법적으로 규제하지 않으며 각 정당의 정치적 관행에 의해 자율적으로 규제된다. 공천과정은 상향식으로 지구당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이 기본이나 중앙당에 의해 어느 정도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경우 중앙당이 전국에서 입후보 지원자를 모집하고 객관적인 심사를 통해 리스트를 작성한다. 이 리스트를 지구당에 통보하는데, 각 지구당은 리스트를 엄격히 심사해 6명 정도로 압축하고, 다시 면접을 통해 3명으로 추린다. 이들에 대한 지구당 당원들의 질의응답을 거친 뒤 당원 전원의 비밀투표로 최종 후보자가 결정된다. 노동당의 경우 중앙당이 통보한 리스트를 지구당에서 5~15명으로 압축한 뒤 지구당 당원 전원의 비밀투표로 결정한다. 그런데 노동당은 최종적으로 중앙당 전국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경우에 따라 거부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간혹 당내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외국 공천 제도의 시사점
 
외국 공천제도를 봤을 때 특징적인 점은 상향식 공천이 기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상향식 공천의 주체가 주로 당원이다. 주체로서 당원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보장되며, 보장된 만큼 책임감 있는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법에 따라서는 일반 유권자가 예비선거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으나 당원의 참여가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정당 민주주의가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모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원들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고 시민들이 당에 가입해 자신의 참정권을 행사하는 모델은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또 다른 특징은 공천제도가 정당 내부 규칙, 혹은 법으로 정해져 있고 이 규칙이 지도부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선거 때마다 공천 기준이 달라지거나 비슷한 기준을 제시해도 지도부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매번 논란을 낳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검토한 외국 사례의 경우 정해진 규칙이 일관적으로 적용된다. 정당 지도부가 거부권을 갖거나 공직 후보자에 대한 자유로운 지지 표명이라는 형태로 상향식 결정과는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도 정해진 규칙 내에서 행사될 수 있다. 사실 간단한 원칙인데, 공천제도는 공직 후보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의 규칙이고, 게임의 규칙을 플레이어 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외국의 사례는 기본적인 상식이 지켜지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것에서부터 정치문화와 관습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공천을 정당 자율에 맡기는 방향이다. 그런데 앞서 살폈듯 한국에서는 지속해서 당내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졌다. 이로 인해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공천 법제화라는 방식의 공천제도 혁신이 19대 국회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후보자 추천 시 정당 경선을 의무화하는 방안, 별도의 경선일자를 정해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예비선거를 실시하는 방안 등.) 그러나 자유로운 정치활동과 국가의 개입, 통제는 언제든 충돌할 수 있는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공천을 정당이 자율적으로 하면서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편이 더 나은 방향일 것이다. 당연히 보스 중심의 하향식 정치문화가 오랜 관습으로 자리 잡은 한국에서 한순간에 달성하기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렇지만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정당 내부의 제도를 설계하고, 게임의 규칙을 플레이어 간의 합의 없이 바꾸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수준의 원칙을 유지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겠다.
 
 
한국정치의 과제
 
지난 글에 이어 여당 당 대표 선거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다. 다시 정리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여당 개입을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고 해도 그 방식이 정치개혁에 역행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개혁의 궁극적 비전은 무엇인지, 로드맵은 어떻게 되는지 소상하게 제시한 바도 없다. 그 결과 현재 여당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은 이전 보수 정부의 친이/친박 간의 공천 학살, 진박 논란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 당 대표와 당 지도부를 정점으로 하는 비민주적 공천제도 역시 이번 논란의 주요 원인이다. 불투명한 공천제도로 인해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이른바 ‘공천학살’ 논란이 반복되어 왔다. 공직에서 일할 인물들이 비민주적 과정을 거쳐 선출되는 현재와 같은 제도 아래서 성숙한 민주주의가 달성될 리 만무하다. 공천제도의 민주화가 중요한 이유다. 국회로의 권한 이전을 통한 의회와 정당의 기능 정상화, 민주적 공천 제도를 포함한 당내 민주주의의 제고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남아있다.
 
주제어
정치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