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3.04.07

인구감소·저성장 시대, 노동운동의 길 찾기

4월 4일 <등촌동 워크숍②> 참관기

사회진보연대
 
지난 4일 사회진보연대 공공운수노조 회원모임은 두 번째 <등촌동 워크숍> “인구감소·저성장 시대, 노동운동의 길 찾기”를 개최했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통계청의 2022년 인구동향조사 결과발표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추진방향 및 과제’ 발표로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시기에 열린 워크숍이었다.
 
 
 
 
세계적인 저출산과 한국의 초저출산
 
문설희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은 저출산은 세계적 현상이라는 이야기로 워크숍 발제를 시작했다. 고출산·고사망에서 저출산·저사망으로 인구변천, 상승세에서 하락세로 전환한 인구성장률은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인구대체수준을 훨씬 밑도는 낮은 합계출산율이 지속하고 있고 인구감소 속도가 매우 빨라 더욱더 문제라고 짚었다. 한 세대 전인 1991년과 비교하여 출산율은 1.71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출생아 수는 71만 명에서 25만 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하여, 실로 급격한 감소세를 보인다. 저출산이 야기하는 인구구조 변화 역시 심각한데, 생산연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고령인구가 빠르게 늘어나 50년 후에는 대한민국 국민 둘 중 한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될 전망이다.
 
문설희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
 
 
급격한 인구감소·저성장, 사회모순의 심화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론적 전환은 사회의 저성장 및 경제위기 심화로 이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와의 갈등에 성역할 갈등이 중첩된다. 한국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고, 상징적·제도적 수준에서 성평등이 달성된 듯 보이지만, 노동시장이 성별로 분리되어 있고, 여성 노동은 저임금 부문에 집중되어 있다. 게다가 가족 내 돌봄 노동은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특히 여성의 장기간 경력단절과 낮은 고용률로 인해 성별 임금격차도 크다. 그런데 청년 남성들은 재생산의 위기를 ‘남성성의 위기’로 체감한다. 남성이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전통적 성역할을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여성의 이중부담이라는 현실은 눈감은 채 재생산 위기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기도 한다. 문설희 사무국장은 인구변화라는 구조적 위기가 급격하게 나타나면서 또 다른 사회적 모순을 심화하는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인구감소·저성장이라는 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중요한 이유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은 인구감소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문설희 사무국장은 여성출산율 제고를 목표로 정책을 펼치는 것은 오판이며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대상화하는 입장과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출산율’이 아니라 ‘출생률’이 문제이며, 저출산 현상은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출산파업’이고, 따라서 성평등 정책이 해법이라는 입장 역시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인구감소 문제는 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아동노동의 중요성이 변화하고 가족제도 역시 생산관계에 적합하게 변모해온 역사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1인당국민소득·임금률·생활수준이 상승하면서 출산율·인구성장률이 하락했다는 것도 실증적으로 확인되는 바다. 성차별이 인구감소의 원인은 아니고, 성평등 실현으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여성의 사회적 노동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하는 정책은 인구감소 속도 완화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성평등 정책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인구감소를 역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으로 용어를 바꾸는 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 확산을 방지하고, 인구감소 책임이 여성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학문적으로 엄연히 다른 개념을 의도적으로 혼용하여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문제도 있다. ‘출산’(fertility)과 ‘출생’(birth)은 뜻하는 바가 달라, 인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를, ‘조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새로 태어난 아이의 비율을 의미한다.
 
한편 저출산 해결 프레임에서 벗어난 종합적인 인구 정책을 제시하는 입장은 출산율 높이기를 목표로 하기보다 여성경제활동참가율 제고를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윤석열 정부 정책이 여성의 노동권과 성·재생산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집행될 것인지는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손에는 마르크스주의, 다른 한 손에는 페미니즘, 두 개의 나침반을 들고 사회운동의 길을 모색합시다.”
 
자본주의의 외연적 성장의 한계를 뜻하는 인구감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적 구조에 대한 상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문설희 사무국장은 마르크스주의라는 나침반을 제안했다. 동시에 페미니즘이라는 나침반도 필수적인데, 인구감소·저성장 시대 여성이 처한 복합적 현실에 맞는 대응을 위해서는 성별화된 시민권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출산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고, 가족/교회/국가의 간섭 없이 임신의 횟수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며, 양육의 방식을 공동체와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고령 산모 비중 증가, 난임 환자 비율 급증과 같은 현실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문설희 사무국장은 ‘출산’과 ‘출생’을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성·재생산 권리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구위기와 공공부문 노동운동
 
 
향후 예상되는 재정위기, 경제 성장률 하락 상황에서 공공서비스, 사회복지의 유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사회안전망이 붕괴할 경우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및 국민경제도 파탄나고 인구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조건에서 공공서비스, 사회복지를 어떻게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를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선도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속가능성은 해당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 고용과도 직결될 문제이다.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두고 토론이 이어졌다. 인구고령화에 따라 노인 연령 및 무임승차 등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라는 의견이 오갔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은 한쪽이 다 책임지라는 식의 극단적 결론은 가능하지도 않고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킨다며 ‘세대 간 정의, 세대 간 연대’ 전략을 제시했다. 인구감소로 인한 조세문제가 쟁점이 되고 건강보험 재정위기, 국민연금 기금고갈 등 사회보험문제도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 다음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넘기지 않으면서도 현재 시점에서 공동의 투쟁으로 계급적 정의를 실현해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교육국장
 
박준형 교육국장은 토론문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라는 대안을 모색하는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1) 고령화에 따라 새롭게 필요한 노인 돌봄 등 공공서비스 영역의 확대를 요구하자.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확대는 물론 지역공동체 기반의 돌봄 서비스 확대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주로 가족 내 여성에게 전가되는 노인 돌봄 부담 경감, 종사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 효율적 전달체계 구성 등을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다.
(2) 아동·청소년 돌봄과 관련하여서는 고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공서비스와 노동조건을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여성의 부담을 줄이고 출산 및 양육이 더 용이한 사회로 나아가는 운동을 전개해보자. 각 영역의 사회적 지출이 서로 경쟁하거나 상충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를 노동조합이 주도해야 한다.
(3) 인구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기 전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필수 공공서비스 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고, △공공서비스 약화와 노동자 피해를 부르지 않으면서도 공공 지출이 지속 가능하도록 효율화하는 방법을 찾고, △재원 마련에 있어서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면서도 현실성을 고려하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사회운동으로 거듭나자
 
“인구감소에 대해 주변의 활동가들에게 의견을 구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정부나 자본가들이 해결해야 할 것이지 노동운동이 그런 문제까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변화하는 정세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거듭나는 데에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워크숍 사회자 한재영 공공기관사업국장은 인구감소 문제에 노동자운동이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짚었다. 박준형 교육국장 역시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이 객관적 변화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에 투입할 인적·재정적 자원의 부족을 맞닥뜨릴 경우 더 강력한 긴축의 백래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사회의 유지와 나아가서 발전이 가능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대안 세력으로 노동자운동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경제구조를 변혁해가는 대안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재영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인구감소·저성장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및 사회운동의 대응 방향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은 기관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등촌동 워크숍> 발제문과 발표자료는 홈페이지 공개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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