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3.04.28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무다

더불어민주당,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의 전도된 인식을 비판한다

사회진보연대
4월 2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결정될 것인지가 관심을 모았으나, 한미 정상이 러시아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협력을 약속하는 선에서 끝났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전쟁이 장기화되는 속에서 언제든 다시 의제에 오를 수 있으므로, 한국 사회운동의 대응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최초로 시사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힘에 의한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언급도 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윤 대통령에게 발언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전쟁지역에 살인을 수출하는 국가’가 무슨 염치로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를 요청할 수 있겠나”라고 발언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에게 뺨 맞고, 미국에 발등 찍히고도 왜 그렇게 비굴합니까? 주요 산유국 러시아, 최대 교역국 중국과 긴장을 고조시켜 얻을 이익은 무엇입니까?”라는 논평을 냈다.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등 주요 민중운동진영 단위도 21일 비슷한 논거로 성명을 냈다. 두 성명이 공유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미국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국 정부가 꼼수까지 동원하여 전쟁무기를 지원하는 배경에는 결국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국익과는 무관하게 동맹의 이익만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윤석열 정부는 안보를 이야기 할 자격이 없다.” “굴욕적이고 굴종적인 외교”라고 평가했다. 전국민중행동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가능성, 남북 핵전쟁, 대만 문제까지 미국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로써 ‘오로지 미국’을 향한 윤석열 정부의 충성심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썼다.
 
둘째, 이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을 사는 것은 남한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과 전국민중행동은 “‘가치 외교’를 표방하며 한미 동맹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윤석열 정권은, 러시아를 적국으로 돌리며 한국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고 있을 뿐 아니라, 자국의 실리와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똑같은 문장이 두 성명에 포함되었다.) 전국민중행동은 “한국과 인접한 러시아와 중국을 적국으로 돌리면서까지 미국의 편에 서서 우리가 취할 국익은 대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셋째, “살상무기 지원”은 그 자체로 전쟁을 확대하는 부도덕한 행위라고 묘사한다. 민주노총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그 어떤 곳에도 전쟁을 위한 살상무기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이유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전국민중행동은 “기만적인 전쟁 살상무기 우회 지원”, “국민들은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전쟁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썼다. 참여연대, 전쟁없는세상 외 9개 단체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적대와 폭력의 악순환만을 불러올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국제사회와 우크라이나의 대응을 부당하게 평가한다고 본다. 세 가지 주장 각각에 대해 우리의 판단을 아래에 담았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미국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인가?

: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책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어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부담이 커진 만큼,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강하게 요청했으며, 윤 대통령의 발언도 이를 고려한 것이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전적으로 ‘미국의 압박’에 따른 ‘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UN헌장과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불법 침략 전쟁이다. UN헌장 1장 1조에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 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할 것이 명시되었듯, 한국을 비롯하여 국제사회는 이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할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대처할 책무가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원칙대로라면 UN의 집단안보 시스템이 발동했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침략의 주체인 러시아와 이를 옹호하는 중국이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현실 때문에,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 가로막은 UN의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살인 수출국”이라거나 “미국의 압박에 대한 굴복”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그러한 주장은 부당한 침략을 겪고 있는 나라가 침략국에 맞서 싸우는 것을 지원할 책임이 국제사회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셈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을 사지 않는 것이 “국익”인가?

: 러시아의 침략전쟁 승리는 전 세계와 한반도에 치명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다른 국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이나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 반대’를 언급하는 것을, 물론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력에 의해 영토를 변경하는 행위를 반대하고, 이러한 행위를 공동으로 저지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향후 세계에 중대한 문제다. 만약 러시아가 전쟁에 승리한다면, 그 파급력은 가히 세계사적일 것이다.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국경과 현상 상태를 바꾸려는 시도의 성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붕괴를 가속하고 세계 각지의 권위주의, 팽창주의 세력에 비슷한 군사적 모험을 부추기는 효과를 낸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여기에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3연임을 확정하며 대만과의 “통일 추진”을 전면에 내세우며 “무력사용 포기를 결코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북한은 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선제 핵공격이 가능하다는 법을 만들고 남한 전역을 타격권에 두는 전술핵무기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 위협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 정부의 발언에 유독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들의 이해에 반하는 발언 자체 탓만으로 볼 수 없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이 우크라이나 침공, 홍콩보안법,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과 같은 문제들에 원칙에 따라 단호한 행보를 취하기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의 눈치를 봐온 것이 오히려 문제다. 예를 들어, 독일, 프랑스는 홍콩보안법을 규탄하고 신장 위구르 인권 침해 성명에 동참하는 등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으로서 러시아뿐만 아니라 최초로 중국을 ‘위협’으로 규정한 ‘2022년 전략 개념’ 문서를 채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 지원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독일, 프랑스 정상은 최근 중국 방문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이 주창하는 ‘다극 세계’ 구상이란, 세계를 각 지역 강대국 관할 하의 여러 지역으로 나누는 ‘세력권 분할’이다. 이러한 구상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며 UN을 창설하고 미국과 소련, 중국이 함께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맡은 전후 세계질서에 역행한다. (최근 러시아, 중국 정권이 자국이 ‘제국’이던 시절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침공을 개시했다. 이어 러시아는 올해 발표한 새 ‘대외정책개념’ 문서에서, 이전과 달리 세계를 9개 지역으로 나누고, 구소련 국가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근외’ 개념을 부활시켜 구소련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는 세계 질서를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에서 중국과 미국의 양극체제로 재편하자는 구상으로, 사실상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국의 관할로 인정하라는 요구다. 이러한 구상 속에서 중국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미래는 중국의 ‘천하’에 종속하는 것일 공산이 크다.
 

‘살상무기 지원’은 그 자체로 전쟁을 확대하는 부도덕한 행위인가?

: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원하는 것이 곧 전쟁 확대라는 주장은 비약이다

 
좌파와 평화운동 세력은 군비증강에 반대하고 무기 수출에 비판적인 활동을 해왔다. 무기 지원 문제가 민감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 그러나 군축 요구를 방어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무조건적 비폭력주의로 환원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일체가 문제라는 주장은 타국의 부당한 무력행사에 대한 주권국가의 방어권 자체, 그리고 방어권 행사 과정에서 살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진행 중인 전쟁 폭력에 대한 책임을,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이를 지원하는 국가들에 돌린다.
 
그러나 폭력의 책임을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양자에게 동등하게 지울 수 없다. 러시아는 주권국가를 불법 침략하였으며, 도시 전체를 섬멸하고 민간인 밀집 지역을 폭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이 침략에 맞서 싸우는 것은 UN헌장 51조가 규정한 ‘개별적 자위권’(자국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방어를 위해 무력행사를 할 권리)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점령지 확대를 막고 러시아 점령 하의 자국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싸운다. 양측의 명분과 군사 행위의 양상이 명확히 다르다.
 
좌파 평화운동 내에도 방어적 무력행사를 인정하는 흐름이 있다. ‘평화헌법’(일본국 헌법 9조. 전쟁 포기, 전력 포기, 교전권 부인) 수호와 일본의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핵심 과제로 두는 일본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은, “러시아의 불법 침략 전쟁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무장저항은 UN헌장, 국제법상 합법적이고 정당한 싸움이다”(2022년 4월 24일)라고 주장했다. 시이 위원장은 평화헌법도 ‘무저항주의’가 아니며, 개별적 자위권은 평화헌법 하 일본에도 존재하는 ‘자연권’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이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일본공산당은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미국의 침략을 패퇴시키기 위해 싸우는 베트남 민중과 연대했다고 덧붙였다.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 ‘사회주의 운동’ 등의 러시아 반전운동도 우크라이나의 방어권을 옹호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요구한다.
 
한편, 참여연대 외의 성명은 “전쟁이 길어지고 무기 사용이 늘어날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방산업체뿐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폭력을 지속하는 방법으로는 민주주의도, 자유도, 인권도, 평화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희생을 낳고 군수업체를 배불릴 뿐이며 무망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전쟁이 어떠한 방식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회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진다. 즉,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완전히 철군하고 우크라이나 민중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정부가 통치하느냐, 우크라이나의 일부분이 러시아의 점령 통치를 받는 식으로 분단이 되느냐,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적용되고 친러 정권이 수립되느냐는 우크라이나 민중에게 결정적인 문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민중이 항전하는 이유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사회운동과 노동조합은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베트남전쟁, 알제리전쟁과 비견할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며, 러시아군의 전면 철수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세계 좌파는 이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대응은 침략 행위 중단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세계 사회운동의 대응은 침략전쟁을 개시한 러시아와, 러시아를 직간접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규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운동에서 이러한 활동은 처참할 정도로 과소하다. 항전을 지원하는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는 왜곡된 묘사가, 침략전쟁에 대한 원칙적 반대를 압도하고 있다. 침략국 러시아를 ‘미국 주도의 세계를 넘어 다극 세계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나라로, 대러시아 제재를 우회하여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돕는 나라들을 ‘미국의 대러 포위 압박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들로 평가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이라크 전쟁 당시 남한 사회운동은 침략전쟁을 개시한 미국과, 이를 지원하는 각국 정부를 규탄했다.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규탄이 포함되었다. 여러 단체들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비판 성명이나, 한미정상회담 대응의 일환으로 열린 4월 25일 전국민중행동 촛불(“불법도청 주권침해 미국사죄 받아내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반대한다! 굴욕적 한미동맹, 윤석열 규탄 촛불”)을 보면, 마치 이러한 대응을 당시의 이라크 파병 규탄 행동과 같은 맥락에 두는 듯하다. 일부 표현은 마치 전쟁 범죄를 주도하는 것이 서방 국가와 한국인 듯 보일 정도다. 대응의 적극성도 차이가 난다. 민주노총은 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침략을 규탄하고 러시아 철군 요구, 우크라이나 노동자와의 연대를 표명한 성명을 발표한 반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언급 비판 성명은 이틀 만에 발표했다. 전국민중행동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했을 당시, 이를 규탄하고 침공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기자회견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성명을 낸 적도 없다. 
 
그러나 이는 사태를 완전히 거꾸로 보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침략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침략에 맞서는 항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명확한 차이를 인식하지 않는 실천은, 부당한 침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민중과 어떠한 연대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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