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3.05.30

정규직 양보론을 넘어, 노동자 단결을 위한 연대임금

5월 27일 사회진보연대 기획 강좌 참관기

사회진보연대
 
지난 5월 27일 사회진보연대는 기획 강좌 “정규직 양보론을 넘어, 노동자 단결을 위한 연대임금”을 개최했다. 한국 사회와 노동운동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동자 간 격차 문제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사회진보연대는 노동자 간 격차를 축소하고 노동자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현시기 노동운동의 전략으로 연대임금을 제안하고 토론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
 
 
강사로 나선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국장은 현재 노동운동 내에서 연대임금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차근차근 확인하고 합의 지반을 쌓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강좌를 시작했다. 서로의 차이만을 강조하며 아무런 쇄신과 혁신도 시작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작더라도 지금 시도할 수 있는 바를 함께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오기형 국장은 임금 격차의 현실과 원인에 대한 인식을 그러한 합의 지반의 시작점으로 짚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노동자 간 임금 격차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는데, 오기형 국장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오기형 국장은 첫째로 1987년 대기업 노조 활성화, IMF 위기, 2008년 금융위기라는 계기를 거치며 확대된 기업 규모 간 임금격차, 둘째로 수출재벌이 노동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제조업 자동화율을 높이고 외주화를 심화한 산업구조의 변화, 마지막으로 연공급제라는 임금체계가 특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편중된 현실에서 연공급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 간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노동조합이 노동자 간 임금격차 확대에 기여했는가 아닌가를 둘러싼 쟁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현실에 존재하는 임금격차 축소를 위해 노동조합이 다양한 시도를 수행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오기형 국장은 노동조합의 격차 축소 시도를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틀로 ‘노동조합 임금정책의 트릴레마’를 소개했다. 이는 노동조합의 임금정책이 ‘임금극대화’(노동소득분배율 개선)-‘임금평준화’-‘완전고용’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으며,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나머지 한 가지 목표의 달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틀을 바탕으로 오기형 국장은 스웨덴, 이탈리아, 일본의 임금격차 축소 시도를 소개했다.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국장
 
먼저 스웨덴은 ‘완전고용-임금평준화’를 목표로, 특히 2차대전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적 교섭 체제 아래에서 평등임금 이념을 통해 임금경쟁을 억제하는 연대임금 전략을 펼쳤다. 이는 1960년대 임금격차를 상당히 해소할 수 있었지만, 결국 고수익 부분 기업과 노동자의 불만을 초래했고 이들의 이탈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는 1969년 ‘뜨거운 가을’이라 불리는 투쟁을 계기로 노총 간 연대가 활성화되면서 ‘임금평준화’를 주요 목표로 ‘임금극대화’를 가미한 임금물가연동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용 구축효과가 발생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노총 간 연대가 깨지고 임금평준화에 반발하는 여러 자율노조가 등장했다.
 
오기형 국장은 스웨덴과 이탈리아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로 단순히 임금수준 압착(평준화)에만 집중하는 임금평등 일변도의 정책은 실패한다는 점을 짚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라 분배적 불평등에 주목해 직무나 숙련을 고려하지 않고 임금 자체의 균등화를 추구하는 ‘임금평등’ 개념과 마르크스의 평등개념을 따라 직무와 숙련에 따른 임금격차를 인정하되 직무평가, 직무 간 이동성과 노동강도 조정 등 작업장의 평등주의적 전환을 지지하는 ‘직무평등’ 개념이 대립하다가, 결국 임금평등적 정액인상 방침이 승리했다. 스웨덴의 연대임금 정책도 처음에는 과학적 직무평가를 통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목표했지만,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산업간 임금비교를 통한 임금수준 압착에 집중했다. 그러나 임금수준 압착에 초점을 둔 임금정책은 초기에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의 통합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생산직과 사무직의 갈등,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의 갈등, 남성과 여성의 갈등, 민간과 공공의 갈등 원인으로 작용했다. 오기형 국장은 이러한 교훈이 ‘직무평등’ 개념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한국 노동운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은 스웨덴이나 이탈리아 같은 포괄적 산별노조가 부재한 기업별 노조 체제라는 조건에서 각 노동조합이 봄에 일제히 임금인상 요구를 제출하고 서로 조정하는 ‘춘투 시스템’을 통해 임금인상의 전국적 조율을 시도했다. 또한 아주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일본 노동조합은 기업별 격차 축소를 위해 직무급, 능력급 등의 기업횡단적 임금률 도입을 시도해온 바가 있고 그 결과 산업별 (초임)최저임금이 평준화되었다. 오기형 국장은 이러한 일본 노동조합의 시도가 한국 노동조합 운동에 반성적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즉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과 산업별 교섭의 부재라는 조건이, 현재 노동조합이 임금정책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현실을 변명하는 논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오기형 국장은 한국 노동조합과 관련해 금속노조와 공공부문의 사례를 제시했다. 금속노조는 금속산업 최저임금과 표준임금체계 구축을 통해 임금격차를 축소하여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금속산업 최저임금의 의의에 대해서는 ‘2023년 금속산업 최저임금 투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사회운동포커스》, 2023년 5월 19일을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산별임금체계 구축은 지지부진했는데, 이는 현장의 편차가 매우 큰 현실을 도외시하고 하나의 원리에 기초한 임금체계 모델을 구성하려는 시도로 인해 수용성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완성된 임금체계 모델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통합하고 표준화할 수 있는 임금정책부터 해나가는 장기적인 과정으로서 표준임금체계를 구축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무기계약직 표준임금체계 모델과 직무성과급이 쟁점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환되는 주요 직종의 직무등급과 임금수준을 결정해 내놓은 표준임금체계는 노동운동 내에 비정규직 근속(연공) 반영 문제, 정규직 임금체계와의 비교 문제, 기본급 산정 기준 문제 등 수많은 쟁점을 낳았다. 한편 정부가 지속해 추진하는 직무성과급은 초기업적인 임금기준이나 교섭구조를 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단지 현존하는 기관(기업)별 임금체계에서 연공급제를 약화하는 방향의 개편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러한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하지만, 초기업적 성격의 대안적 임금체계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저성장 고령화 국면에서 연공급의 지속가능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기업별 임금체계에 머무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대응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갈등과 쟁점에 취약했다. 오기형 국장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초기업적 노사관계를 통해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방향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했다.
 
 
노동조합의 임금격차 축소 시도 사례를 종합하면서 오기형 국장은 연대임금 전략이 완성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시점에서 연대임금 전략의 몇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기업 내부노동시장이 발달하기 어려운 산업이나 숙련·경력 중심 산업은 숙련·경력 중심의 임금체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내부노동시장이 있더라도 노동력 이동이 빈번한 직무형 노동시장은 직무급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업 내부노동시장이 발달한 곳은 중장기적으로 접근하되 근속급 비중을 줄이고 경력·숙련·직무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고정급을 설계하고 신입 초임을 평준화할 필요가 있다.
 
강연 이후에는 참석자들의 질의와 논의가 이어졌다. 먼저 공공운수노조의 경험과 금속노조의 경험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과 논의가 제기되었다. 공공운수노조의 경험과 비교할 때 금속노조의 단계적 접근이 인상적인데, 현재 어떤 단계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는 질문에 대해, 오기형 국장은 현재 1단계이며, 우선 노동시간 표준화를 시도하고 있고 초임을 평준화하는 산별임금을 올해 요구안에 담고 모든 사업장에 강제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표준임금체계 논의가 시기별, 대상별 논의가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악 구도로 논쟁이 전개된 점을 반성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면 공공부문에서는 단기적으로 임금체계와 관련해 어떤 지점을 통제하고 표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도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오기형 국장은 명확한 협약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관행으로 존재하는 ‘표준화’가 진전된 부분을 발견하고 비슷한 부분들을 연결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과거와 달리 노동운동 전반에서 임금의 연대성에 대한 합의지반이 후퇴한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여, 현재 공공운수노조 내에서 합의하고 있는 영역을 확인하고 최소한 시도할 바를 제안해보는 방식이 가능하겠다고 답했다.
 
기타 공공기관에 속하는 국립대 병원도 병원별 임금체계 차이가 큰데, 직무급제 수용은 금기시된 상황에서 어떻게 표준임금체계 도입이나 격차 축소 문제의식을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오기형 국장은 정부가 도입하려는 직무성과급은 사실상 성과급이기 때문에 반대해야 하는 게 맞지만, 노동운동 내에서 기업 간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공통 기준으로서 직무에 주목하는 데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연대임금 전략의 필요성과 현장의 유인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연대임금 전략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한국의 저성장과 임금격차 현실을 함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또한 현장에서부터 연대임금 전략의 유인과 동인을 잘 만들어야 할 텐데, 어떤 제안이 유효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오기형 국장은 연대임금 문제의식을 임단협 요구안에 구체화하고, 그에 대한 교육과 토론을 현장에서 함께 하며 질서를 만드는 게 필요함을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오기형 국장은 이날 강연 전반을 ‘솔직해지자’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며 마무리했다. 즉 임금격차라는 현실에 솔직해지고, 현재 노동조합이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지금 할 수 있는 바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현시기 노동운동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참석자들의 솔직함을 담은 이번 강연이 연대임금 전략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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