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인터뷰 | 2023.06.05

대만 사회운동의 새로운 희망, 대만연대전선노총 건설준비회 인터뷰①

사회진보연대
대만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 나라이자, 미중 전략경쟁 시대 한반도의 미래와도 관련이 깊은 나라다. 대만의 노동운동도 우리의 노동운동과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민주노총이 지금까지 13차례 진행한 연례 ‘아시아 노조활동가 교육 교류 프로그램’(LEAP)에는 대만 노조들이 꾸준히 참여해왔다. 2010년대에는 한국 하이디스 노동자들과 대만의 노조와 사회운동단체들이 결성한 ‘대만 하이디스 노동자 지지 전선’이 함께 한 연대 투쟁의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 알려진 대만의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에 관한 정보는 여전히 많다고 할 수 없다. 이 인터뷰는 앞으로 한국과 대만 사회운동의 연대가 확대되기를 기대하며, 현재 대만 사회운동의 가장 중요한 시도인 대만연대전선노총(臺灣工人鬥陣總工會) 건설준비회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5월 11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시에 있는 타오위안시승무원노조(桃園市空服員職業工會) 사무실에서 대만연대전선노총(臺灣工人鬥陣總工會) 건설준비회에 참여하는 여러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을 만나, 대만 노동운동의 역사와 새로운 전국 노총을 만들려는 까닭, 새로운 노총 건설 준비에 참여하는 노조들의 현황과 공동투쟁, 이후의 계획 등을 들었다. 인터뷰에는 타오위안시노총(桃園市產業總工會, TYCTU) 위원장 주메이쉬에(朱梅雪), 타오위안시노총 상무이사 스슈화(施淑華), 전국환경보호공무기관노총(全國環保公務機關總工會) 비서장 양쥔화(楊俊華), 중화민국(대만)소방관노동권익촉진회(中華民國消防員工作權益促進會) 비서장 천옌카이(陳彥凱), 국립대만대병원노조(臺大醫院職業工會) 비서장/타이베이시의사노조(臺北市醫師職業工會) 비서 치우위훙(邱宇弘) 씨가 참석했다. 중국어-영어 통역은 타오위안시승무원노조 비서 황스팅(黃士庭) 씨가 맡았다. 인터뷰는 사회진보연대 김진영 정책교육국장, 허지선 광주전남지부 조직국장의 질문과 대만 노조 활동가들의 답변으로 진행되었다.
 
* 대만연대전선노총(臺灣工人鬥陣總工會)이란 명칭 중 ‘鬥陣’은, 대만어(민남어)에서 ‘연대’를 뜻하는 ‘逗陣’의 ‘逗’를 발음이 같은 한자 ‘鬥’(싸울 투)로 바꾼 것이다. 한국어 번역은 ‘Taiwan Solidarity Front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라는 영문 명칭에서 따왔다.
* 대만에서 ‘비서’(장)이란 표현은 노조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는 상근자의 직책으로 흔히 쓰인다.
* 괄호 안의 설명은 사회진보연대가 인터뷰를 정리하며 덧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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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만연대전선노총 건설준비회를 결성한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대만에 자주적인 전국적 노동조합총연맹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평가 자체가 생소할 수 있습니다.

 
주메이쉬에: 현재 대만 노동부에 전국 차원의 조직으로 등록된 노조는 188개 있지만, 그중에서 ‘노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는 단 10개뿐입니다. 그중에서도 7개는 사실 직종별 노총이고, 여러 산업 노동자를 조직한 노총은 3개뿐입니다. 직종별 노총들의 주된 목표는 대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연금과 보험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전투적이라거나 독립적인 노조로 보기 어렵고, 실제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지 않습니다.
 
3개의 노총 중에서는 2000년에 설립된 전국산업총공회(全國產業總工會, TCTU, 이하 ‘전산총’)가 그나마 진보적이고, 다른 두 개는 활동적이지 않습니다. 사실 대만의 많은 노조는 국민당(KMT)이 대만으로 퇴각한 뒤에 국민당의 후원으로 세워졌습니다. 당시 국민당은 자신들이 중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기에 정권을 잃고 대만으로 물러나게 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국민당은 대만 내에 기업별, 산업별 노조들을 만들고 이를 통제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런 노조들은 지금도 전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전산총은 독립적인 노조들을 모으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전산총에 소속된 노조 대부분은 국가 소유의 기업, 은행 노조이고, 이들의 고용주는 정부입니다. 이는 대부분 기업이 민간 중소기업인 대만의 현실과 괴리되어 있습니다. 전산총은 거리에서 집회, 시위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동자 전체에게 중요한 노동권 관련 정책이나 최저임금, 연금 체계와 같은 전국 차원의 정책 요구를 제대로 내놓지 않고, 변혁적인 전망이 없습니다.
 
타오위안시노총 위원장 주메이쉬에 씨.
 

“자주적이고 전투적인 전국 노총을 새롭게 건설할 것”

 
치우위훙: 대만의 노동조합은 크게 두 흐름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국민당이 후원하는 보수적 노동조합들의 총연맹인 중화민국전국총공회(中華民國全國總工會, CFL)가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이러한 기존 노조 질서를 반대하며, 자주성, 진보성을 지향해온 노동조합들이 있습니다. 1994년 이래로, 타오위안시노총과 같은 진보적 노조들이 실제로 전국 각지에서 기존 노조들을 대체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모여 2000년에 전산총을 결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국영기업 노조 출신인 전산총 초대, 2대 위원장은 민주진보당(민진당, DPP)에 합류하여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투쟁하는 대신, 주류 정치권에 진출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전산총이 체제 내 개혁 위주의 노선과, 대형 국공영기업 노동조합을 주요 세력으로 하는 운영방향을 선택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모두, 우리 생각에는 자주적인 전국적 노총이 맡아야 할 기능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방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적이고 전투적인 전국적 노총을 새롭게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국립대만대병원노조와 타이베이시의사노조에서 활동하는 치우위훙 씨.
 

새로운 전국적 노총을 건설하려는 시도를 구체화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기존 노조가 아닌 독립노동자들과 사회운동의 투쟁”

 
주메이쉬에: 대만 노동운동의 중요한 국면들에서, 전산총은 치열하게 투쟁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당시 의류, 섬유산업 기업이 대거 문을 닫았습니다. 이에 해고된 노동자들이 철로 위에 드러눕는 등 격한 저항이 있었는데,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정부는 이 보상금은 노동자들에게 대출해준 것이지, 무상으로 지급한 것이 아니므로 노동자들이 이를 갚을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타오위안시노총은 격렬한 투쟁을 벌였고, 이것은 당시 대만 노동운동에서 가장 큰 투쟁 중 하나였습니다. 2015년의 국도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투쟁도 중요합니다. 정부가 요금 수납 업무를 자동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해고에 대한 보상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벌어진 큰 투쟁은 2010년대 대만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전산총은 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타오위안시노총과 같은 지역 차원의 노조들이 투쟁의 주된 주체로 나섰습니다. 2012년부터의 투쟁에 더해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자, 정부는 해고 보상금이 ‘빌려준 돈’이라는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기존의 기업별 노조 덕분이 아닙니다. 실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독립노동자들과 사회운동의 투쟁입니다.
 
2014년 11월 10일, 국민당 중앙당사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 투쟁'을 선언한 대만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들. 머리띠에 '절식'(絕食)이라고 쓰여있다. [출처: 고로망(苦勞網)]
 
대만 노조 대부분은 단일기업 내에 조직된 기업 노조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활동은 주로 임금 인상, 상여금 지급 등을 요구하는 것에 그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급한 대표적인 투쟁들의 사례를 보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이나 의류산업 노동자들은 이미 해고되었거나 직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노조 조합원이 아니었고, 하나의 기업 안에 묶인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투쟁을 조직한 것은 하나의 노조가 아니라, 여러 진보적 노조와 사회운동의 활동가들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기업별 노조의 테두리 안에서만 쟁취하는 자기이익적 경제투쟁으로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중요한 투쟁들도, 그 배경에 있는, 총체적 노동자의 현실도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노조 대다수가 기업별 노조인 구조에서는 노조들이 최저임금, 연금 체계와 같이 국가 전체에 적용되는 정책에 대해 연합하여 정책 변화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국 차원에서 새로운 진보적, 독립적 노총을 건설하려는 주된 이유입니다. 새로운 전국적 노총을 만들면, 우리는 노동기준법 개정 등 정책 결정에 개입하고, 최저임금 결정 협상을 실현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대만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노동법이 좀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롭게 노동자를 규합하려는 시도는 대만 사회운동의 희망”

 
양쥔화: 저는 계엄령(1949~1987년)이 1987년 해제된 직후에, 중국시보(대만 4대 신문 중 하나)에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측과 싸우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계엄령이 해체된 바로 다음 해였기 때문에, 사회의 정치적 분위기는 매우 억압적이었습니다. 정부는 직접적으로 노조를 파괴하려고 했고, 실제로 비밀경찰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산총 설립에도 참여했습니다. 아까 이야기 나왔듯 그때 당시 전국 차원에서 조직된 노조들은 모두 국민당의 영향 아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 했습니다. 그러나 대만 법에 규정된 노총과 산별노조 설립 조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전산총은 고용주가 단일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조직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이러한 방식으로는 노동자의 단결을 이루기 어려웠습니다. 전산총이 친민진당으로 기운 뒤, 저는 타이베이시노총이나 제가 지금 활동하는 전국환경보호공무기관노총과 같은 노조들을 조직하는 데에 힘을 쏟았습니다.
 
1990년대를 돌이켜보면, 계엄령이 막 해제된 상태라 아직 노동 관련 기준이나 법적 제한이 많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명확한 노동법이 없었다는 뜻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을 제한하는 규제들이 적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가 오히려 지금보다 사회운동이 활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온갖 법과 조정 과정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제한합니다. 전산총 또한 친민진당 경향이 강해지며 독립성, 활동성을 잃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에서 새롭게 노동자를 규합하려는 시도가 무척이나 중요하며, 사회운동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만연대전선노총 건설 준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만연대전선노총 건설준비회는 현재 차이잉원 민진당 정권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양쥔화: 기본적으로는 민진당에 ‘노동정책’이란 것이 아예 없다고 봅니다.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노동운동이 먼저 제기한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정책을 만들면, 민진당은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이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민진당이 선거에 이기고 나면 그 약속을 깨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3년 전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은 쓰레기 수거 노동에 예산 7억 대만달러를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선 뒤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이런 행태는 민진당 정부든, 국민당 정부든 다르지 않아요.
 
2018년 1월 8일~9일, 대만 사회운동은 노동기준법 개악안 통과를 앞두고 입법원 주위와 타이베이 시내에서 개악안 반대 대규모 시위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타이베이 역 철로에 누워 항의행동을 벌이기도 했다(오른쪽 아래). 1월 10일, 의회 과반수를 차지한 민진당이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출처: 2020工人鬥總統(공인투총통) 페이스북 페이지]
 
치우위훙: 민진당이 국민당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진당은 선하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하죠. 그래서 최저임금을 인상했고, 산재 관련 법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개정했습니다. 그러나 자본가 대 노동자라는 근본적인 갈등 구도에서 보면, 민진당도 다르지 않습니다. 민진당 정부는 2016년 당시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해 노동시간 규제와 초과노동수당을 완화하고, 국가공휴일을 연간 19일에서 12일로 7일 삭감하는 노동기준법 개악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상당수의 노동운동단체, 사회운동단체, 학생조직이 한데 모여 타이베이 시내에서 강도 높은 거리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민진당은 결국 의회에서 수적 우위로 밀어붙여 개악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일은 대만 전역의 노동운동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국가 차원의 정책을 놓고 여당과 대치하려면 전투적인 전국적 노총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노동조합 설립 조건을 완화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업장 내 노동자 30인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로, 전체 기업의 90% 이상이 3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고용된 노동자 규모 자체가 30명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이러한 법적 요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이 법을 고칠 것을 오랫동안 요구해왔지만, 민진당 정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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