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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4호 | 2016.03.24

박근혜 정부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 무엇이 문제인가

보건의료팀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10일 공공의료기관장연석회의에서 ‘제1차(2016~2020년)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확정,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보건의료법)이 전면 개정된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의 공공의료정책을 종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에 따라 관계기관들은 매년 공공보건의료시행계획을 세운다. 또한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등 각 공공의료기관은 매년 공공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정부는 공공보건의료계획의 시행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보조할 수 있고, 비용 보조 과정에 공공보건의료계획 시행결과에 대한 평가를 반영할 수 있다. 이러한 운영방식은 이전에 정부가 공공의료에 대한 종합적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공공의료기관의 운영과 재정에 대한 책임을 체계적으로 확보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한걸음 나아간 것이다.
문제는 기본계획의 실질적인 내용이다.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는 부실한 계획이 대다수라서 실망스럽다. 게다가 일부 과제는 공공의료를 파괴하는 계획들이고 그러한 계획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기본계획의 문제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기능 중심의 공공의료

기본계획은 5대 추진 전략으로 △지역 간 균형 잡힌 공공보건의료 제공체계 구축, △필수의료서비스 확충 및 미래수요에 대한 선제적 대응,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강화, △공공보건의료지원 기반 확충 및 서비스 질 제고, △공공의료기관 운영 효율성 제고를 제시한다. 이 중 앞의 3개는 새로운 공공보건의료법이 정의하는 공공보건의료사업과 일치하며, 나머지 2개는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제1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


2012년 전면 개정된 공공보건의료법은 공공의료를 소유가 아닌 기능 중심으로 정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즉, 과거에는 공공의료를 ‘국·공립 의료기관이 행하는 일체의 활동’으로 정의했다면 이제는 ‘국민의 보편적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해, 민간의료기관의 활동도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경우 공공의료로 보는 것이다.
공공보건의료법이 명시하는 공공보건의료사업은 첫 번째로 보건의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 및 분야에 대한 의료 공급, 두 번째로 보건의료 보장이 취약한 계층에 대한 의료 공급, 세 번째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필요한 질병의 예방과 건강 증진이다. 그 외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업까지 포함할 수 있다.

새로운 것 없는 부실한 계획

기본계획은 2020년까지 37곳의 분만 취약지를 해소하고 12곳의 응급의료 취약지 중 6곳을 해소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계획을 언론에 가장 많이 홍보했다. 그러나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은 이미 2011년부터 5년 동안 하고 있는 사업이다. 게다가 그동안 성과가 높지 않았다. 정부는 효과가 반감되는 원인으로 매년 새로운 취약지가 발생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기본계획에는 새로운 취약지 발생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빠져있다. 또한 현재 지원수준은 최소 인력에 대한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도 없다. 분만 수가를 가산하겠다는 것이 유일하게 제시된 방안인데, 이는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건강보험에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분만실, 응급실, 중증외상진료센터, 국가지정음압격리병상 등 기능 중심으로 병원 인프라를 확충하는 계획은 최근 5년에서 길게 보면 10년 이상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민간병원의 소극적 참여로 성과는 미미하다. 민간병원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수익이 적고 손실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에 참여한다고 해도 이익이 되는 부분만을 선택하여 참여하는 등 한계가 뚜렷하다.
세 번째 과제로 제시된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은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기본계획은 여타 다른 과제에서도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을 중복 활용하고 있다. 공공의료를 기능 중심으로 정의한다는 명분으로, 이미 존재하는 계획을 원론적 수준으로 언급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계획을 중복 활용하는 등 새로운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부실 계획이 기본계획의 민낯이다.

공공병원 발전방안은 없어

기본계획은 앞으로 5년간 공공의료기관, 즉 공공병원이 공공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데 근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계획은 공공병원의 운영에 대해 어떤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을까. 기본계획의 5대 전략 중 네 번째인 ‘공공보건의료지원 기반 확충 및 서비스 질 제고’ 전략이 바로 그러한 청사진인데, 역시나 실망스럽다.
공공의료정책과 관련해서는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시·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 등 이미 존재하는 공공의료정책 지원조직을 확충하고 강화할 계획이지만, 실제 기능을 수행할 인력과 예산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없다.
공공의료기관의 기능 정립방안은 더욱 추상적이다. 국립대병원의 경우 교육·연구·인력 양성이라는 기본적 역할을 하는 한편, 권역 내 공공보건의료를 선도하고 지방의료원 등 지역 내 공공의료기관의 후견 기능을 수행하도록 한다는데,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과정이 제시되지 않아 정부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부 국립대병원이 하고 있는 시·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위탁사업을 전국에 확대하겠다는 계획 정도만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계획은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이후 국정조사위원회가 발간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에서 이미 권고되었던 내용들이다. 3년이 지났으면 당시 권고되었던 방안인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 간 연계 강화를 실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의 해결책, 공공의료전달체계를 실질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5년간의 단계적 방안 등이 제시되었어야 한다.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너무 협소하게 규정한 것도 문제다. 대부분 수익성이 낮아 민간이 기피하는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역할로 공공병원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방의료원의 경우 ‘필요 공공의료 기능강화 기본원칙’이라는 별도의 표로 ‘민간과의 경쟁분야는 축소하고, 대상·분야별 전문화, 보건복지연계, 건강증진 등 특화 기능 강화’를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돈 안 되는 사업만 하되, 돈을 벌어라?

기본계획의 5대 전략 중 마지막인 ‘공공의료기관 운영 효율성 제고’ 전략은 공공의료 발전 전략이 아니라 파괴 전략이다. 2014년부터 추진 중인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지방의료원 운영평가에 수익성 지표를 포함하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경영수익 증가율, 단체협약 개선율, 진료비 감면지침 이행률 등 경영개선 지표를 추가 발굴·반영’ 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공공병원에서 경영수익을 평가하는 순간 애초 공공보건의료법이 지향했던 공공보건의료 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단체협약 개선율 항목은 그동안 기재부가 해온 공공기관 평가에 비춰보면 노사간 자율적 단체교섭을 무력화하고 정부의 지침을 강제하도록 하면서 노동조합과 노동 기본권을 약화하려는 계획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공공병원에 성과주의 도입을 강요한다. 이번 기본계획은 문제점 현황으로 ‘국립대병원의 비효율적·비합리적 경영’, ‘지방의료원의 만성 적자와 부채 누적’ 등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의료를 기능 중심으로 정의해 놓고 정작 공공병원이 그러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공공보건의료사업은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이다. 그래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계획은 공공보건의료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해놓고, 정작 공공의료기관에는 수익성을 강요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행태는 공공의료를 기능 중심으로 재정의하고, 민간의료기관까지 포괄하면서 공공의료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계획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민간병원도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로 공공병원의 발전과 확충을 포기하는 근거로만 활용되는 꼴이다. 최근 국립대병원들은 임금체계 내에 성과급을 도입하기 위해 불법적인 취업규칙 변경을 서슴지 않고, 이것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을 막무가내로 탄압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SK와 영리자회사인 헬스커넥트를 설립·운영하는 등 앞장서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병원은 개인의료정보를 돈벌이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SK는 환자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기본계획은 보건소·보건진료소에서부터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는데(현재 시범사업 중), 이는 공공의료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공공의료정책 전면 재편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공공보건의료법을 전면 개정하고 그 법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기본계획은 기능 중심의 공공의료 정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계와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공공의료를 기능으로 정의한다면 그 기능이 무엇인지 다시 재논의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분만 취약지나 응급의료 취약지에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도록 유도하고, 감염·재난 의료서비스 등 필수의료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을 민간의료기관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하려면, 일방적인 재정 지원과 단편적인 평가만 해서는 안 된다. 의료기관 운영체계 자체를 공개적으로, 지역주민과 노동조합 등 폭넓은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 공공적이라는 것은 공익에 기여한다는 의미와 함께 공적으로 운영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공공병원은 지금 이중적 위기에 처해 있다. 양적으로도 너무 부족해서 실제로 공공적 성격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수익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의료민영화를 앞장서서 추진하는데 공공병원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공의료의 확대 방안으로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면, 공공병원 확대가 아니라 민간병원이 공공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면서 논의를 왜곡해버린다.
문제는 의료공급체계 전반에 있다. 이번 기본계획은 의료공급체계 전반의 문제점을 내버려 둔 채 개별 의료기관의 공공보건의료 사업에만 중심을 두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추상적인 계획만 제시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기본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공공보건의료법은 보건의료발전계획을 먼저 수립하고 그에 따라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보건의료발전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 기본계획이 공공의료에 대한 큰 그림 없이 생색내기 식의 파편적 계획만 제시하고 있는 이유다.
부실한 기본계획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삼아 공공의료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과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공의료의 기능을 다시 포괄적으로 재정의하는 한편, 공공병원의 중장기적 발전 방향을 수립하고 그 방향 속에서 5년간의 단계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공적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의료기관에 대한 민중적 통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양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기능적으로 왜곡되고 있는 공공병원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획기적이고 전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국립중앙의료원,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보건소 등으로 이어지는 공공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확립해서 현재 한국 의료의 고질적 문제인 의료이용의 왜곡을 바로잡는데 공공병원이 앞장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병원 간 협력을 통해 1차 의료부터 3차 의료까지, 예방에서 치료, 재활까지 표준적이고 적절한 수준의 의료를 공급해 민간병원에 대한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비교우위를 통해 개별적으로 분산된 채 과잉진료로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병원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서는 우선 보건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등 제각각인 공공병원 소관부처부터 일원화해야 한다. 공공의료를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한 모색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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