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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88호 | 2017.07.19

심뇌혈관계 질환 예방, 장시간 노동 철폐부터!

보건의료팀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집배원 근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통 우체국으로 알고 있는 우정사업본부는 2016년에 6명, 2017년에만 벌써 12명이 사망한 중대재해 사업장이다. 배달 중 사고가 3명, 자살이 5명, 과로사로 추정되는 돌연사가 10명이다. 이에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자 고용노동부는 “공무원은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실태조사만 실시했다. 2016년 노동자운동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집배원들은 월 77시간 초과노동을 하지만 그 중 20시간은 임금을 받지 못한 무료노동이었다. 하지만 실태조사에서 초과노동시간은 57시간으로 나타나 무료노동을 제외한 것으로 추측된다.

증거는 충분하다

과로사로 추정되는 돌연사 중 상당수가 뇌졸중, 급성 심근경색 등 심뇌혈관계 질환이다. 2015년 저명한 의학 잡지인 란셋은 노동시간과 심뇌혈관계 질환의 연관성에 대해 분석한 논문을 실었다. 심뇌혈관계 질환이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뇌혈관과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되어 생기는 질환을 뜻한다. 치사율과 후유증 발생 비율이 매우 높다. 2014년까지 출판된 모든 코호트 연구에 대해 체계적 분석 후 연구 20개를 종합해 약 6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주 35-40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주 55시간 이상 일한 경우, 관상동맥질환은 13% 증가했고 뇌졸중은 33% 증가했다.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뇌졸중 위험은 증가했는데 주당 41-48시간 일한 경우 10%, 49-54시간 일한 경우 27%, 55시간 이상 일한 경우 33% 증가했다.

비슷한 주제로 발표된 개별 연구의 결과들도 살펴보자. 1991년 일본 연구에서 203명의 과로사 사례를 분석한 결과 2/3 이상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했다. 1999년 스웨덴의 쌍둥이 연구에서는 주 5시간 이상 초과 근무하는 사람은 5년 이내 사망할 가능성이 2배였다. 일본에서 급성심근경색 발생 한 달 전 근무시간을 분석했더니 주당 60시간 일한 경우 심근경색 발생이 1.9배 많았고, 휴일근무를 한 경우 2.9배 높았다. 또 하루 11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 7-9시간 근무하는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 발생 위험은 2.94배에 달했다.

예견 가능했던 참사, 집배원 과로사

앞서 란셋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 집배원들의 초과노동시간에 따른 심뇌혈관계질환 위험도를 따져보자. 초과노동시간을 월 57시간(주 13.2시간)으로 치더라도 주 53.2시간 노동으로 뇌졸중 위험이 27% 증가하며, 월 77시간(주 17.9시간)으로 계산하면 주 57.9시간 노동으로 뇌졸중 위험이 33% 증가한다. 또 『우정사업본부 노동자의 최근 3년간(2011~2013) 재해발생경위내역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집배원 노동자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비수기에 57.6시간, 폭주기 70.2시간, 특별기에는 85.9시간에 달하여 장시간 노동이 심각한 수준이다. 그 결과 전체 노동자에 비해 집배원들의 심뇌혈관계 질환 유병률은 19.3배나 높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2015년 기준 2위다. OECD 평균보다 연 347시간이 많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과로사망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고용노동부의 산재사망 통계에서 과로사망의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인 심뇌혈관계 질환 사망 300명(2016년 기준)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2015년 사망을 포함한 심뇌혈관계 질환 산재신청은 1,970건, 산재인정 462건이며, 2016년에는 산재신청 1,911건, 산재인정 421건으로 22-23%의 낮은 인정률을 보이고 있다. 산재 인정률이 낮아 신청을 포기한 것과 집배원을 포함한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의 보상 통계는 포함되지 않은 것까지 고려하면 실제 심뇌혈관계 질환 산재와 사망 건수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의료행위와 보건정책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심뇌혈관계 질환은 우리나라에서 사망 원인 2위로 매년 증가 추세이다. 심뇌혈관계 질환의 교정 가능한 위험인자로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흡연, 운동부족, 비만 등을 꼽는다. 간혹 정신사회적 원인을 꼽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스트레스 정도만 문제 삼는다. 보건복지부 공식 블로그의 뇌졸중 예방관리를 위한 생활수칙에도 금연, 절주, 건강한 식단, 적절한 운동, 적정체중 유지,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치료, 스트레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어느 곳에도 없다.

보건복지부 공식 블로그. 장시간 노동에 대한 언급은 없다.


국가건강검진에서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를 할 때에도, 개인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을 때에도 술, 담배, 운동,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여부에 대해서만 묻는다. 평소 일이 얼마나 힘든지, 노동시간이 얼마나 긴지, 야간노동을 하는지 등은 묻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개인 중심의 생활습관에 대한 처방은 결코 노동자들의 심뇌혈관계 질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잔업과 야근이 일상화된 한국 노동자들은 출퇴근시간을 포함하면 평일 하루 절반을 생산 현장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지친 노동자에겐 운동할 시간도, 건강한 요리를 먹을 시간도 부족하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시간도 앗아간다. 의료전문가들은 퇴근 이후의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시간에 대해서도 반드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보건복지부도 심뇌혈관계 질환 예방 대책에 노동조건 개선을 포함시켜야 한다. 스웨덴은 국가 공중보건 정책 목표에 건강한 노동생활을 포함시켰다. 영국 정부 건강형평정책의 향후 방향을 제시한 마못 리뷰는 건강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란셋 논평은 심뇌혈관계 질환 예방 활동이 생활습관 관리와 약물치료에 집중되지만, 이런 개인적인 접근은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좋은 사람들의 성공률은 높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성공률은 낮기 때문이다. 이어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개입이 보건정책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난 10일부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은 무기한 연좌농성 및 1인시위를 시작했다. 우정노동자의 과로사 재발 방지를 위한 국민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인력충원 및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위험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장시간 노동을 해소할 제도를 만들고, 보건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의 첫 걸음은 바로 이러한 실천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노조할 권리,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강화하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곧 건강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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