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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92호 | 2018.01.17

[건강보험②]건강보험 약화 부르는 보수언론의 공포마케팅

의료 체계 혁신 없는 건강보험료 인상은 재정 낭비만 가져올 뿐

보건의료팀
[출처: 김수찬, "건강보험 내년부터 적자?···“정부의 ‘공포 마케팅’ 꼼수”", 비즈넷타임스, 2017.03.15]


지난 글 '[건강보험①] 건강보험 적자위기론, 진실은 무엇인가?'에서는 건강보험을 둘러싼 쟁점은 한국의 경제사회구조와 의료체계 전반의 문제와 함께 다뤄야 함을 밝혔다. 이번 글에서는 의료비 지출 전망,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의료비 증가를 제대로 전망하려면?

의료비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먼저 소득수준이나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국민 의료비는 1970년 0.1조 원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86조 원에 이르렀다. GDP에서 국민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1970년 2.9퍼센트에서 2010년 7.3퍼센트로 증가하였다. 이 기간에 1인당 GDP는 8만6000 원에서 2374만 원으로 2만 달러 수준까지 급증했으며, 1989년에는 미흡하나마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하면서 국민들의 의료접근성이 개선되기도 했다. 한편 최근에는 의료비 증가의 원인으로 고령화가 주로 언급된다. 보험료는 내지 않고 급여를 많이 받는 노년층들의 증가가 미래 건강보험 재정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소득 증가, 의료 접근성 증가, 고령화 등은 정도나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OECD 국가 대부분이 공유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고령화 지표인 20~64세 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 지표는, OECD 국가 전체 평균으로도 1970년 18명에서 2015년 28명으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이 국가들의 의료비 지출 양상도 전부 비슷할까? 그렇지는 않다. 물론 지속적인 의료비 증가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공유하는 문제다. [그림1]은 OECD 국가들의 의료비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이 중 OECD 국가 평균치는 2003년부터 2016년까지 1퍼센트 정도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같은 기간 그 비중이 2.5퍼센트 증가했다. OECD 내에서도 미국의 의료비 증가 폭이 경제성장 속도보다 유난히 높다고 할 수 있다. GDP에서 의료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국가 간 격차가 크다. [그림2]를 보면, OECD 평균은 9퍼센트인데 반해, 미국은 17.2퍼센트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한다.

[그림1] OECD 중 일부 국가들의 국내총생산액 중 의료비 지출 비율 (2003~2016년)


[그림2] OECD 가입 국가들의 2016년 국내총생산액 중 의료비 지출 비율


이러한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고령화, 소득 증가, 경제성장 등의 요인도 의료비 지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영향은 제한적이다. 반면 의료기관 등 보건의료 제공자의 특성이나 보건의료 제공 체계(진료행태 변화, 신의료기술 유입 등 포함)와 같은 공급부문과 연관된 요인이 보건의료비 지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의료비 지출 중 3분의1에서 2는 이 같은 요인에서 기인한다. (김준현 외, 2016)

1970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과 나머지 OECD 국가들의 의료비 지출 총합을 비교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 크게 증가한 미국의 의료비 지출은 단순히 경제성장이나 고령화로 설명되지 않는다. 연간 1인당 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미국 4.3퍼센트, 미국 외 OECD 3.8퍼센트였다. 그런데 이중 1인당 GDP의 증가나 고령화로 설명되지 않는 의료비 지출 증가율(과잉성장률, excess growth)이 미국 2.0퍼센트, 미국 외 OECD 1.1퍼센트였다. 특히 1985년 이후 미국을 제외한 OECD 국가들의 과잉성장률은 크게 낮아졌지만, 미국만은 이전과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면서 그 격차가 벌어졌다. 1970년 이후 미국의 의료비 과잉성장률이 미국 외 OECD 국가들과 같았다면 2002년 기준으로 미국의 의료비 지출 중 436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이는 2002년 노인을 위한 의료보장인 메디케어(Medicare)와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에 들어가는 연방재정의 총합보다 큰 금액이다. (White, 2007)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 비중이 기관 수 기준으로 6.2퍼센트, 병상 수 기준으로 12퍼센트에 불과하다. (2014년 말) 민간 중심의 공급체계 속에서 주요 지불제도인 행위별수가제가 보건의료 제공자의 과잉진료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 급여행위와 비급여행위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대체 가능한 급여행위가 있음에도 비급여행위가 사용되면서 의료비가 증가하고, 안전성·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은 의료기술도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에 더해 몇 년 전부터 보건의료를 수익창출의 수단으로 여기는 정부의 시각은 보건의료부문에서도 규제 완화를 가속화했고, 이는 신의료기술에 대한 평가 기준을 약화시켰다. 기존 의료 기술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좋지 않은 신의료기술이라도 끊임없이 개발해 환자들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의료비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늘어나는 의료비 지출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지속해서 낮춘다. 보장성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과정에서 의학적 필요성이 불분명한 행위까지 건강보험의 급여범위로 들어오게 된다. 이에 더해 급여행위의 수가 결정 방식에서도 건강보험 재정 낭비가 유도된다.

따라서 의료비 지출 전망은 저성장이나 고령화라는 조건에서도 공공병원 확충, 포괄수가제 확대나 혼합진료 금지, 신의료기술에 대한 규제 강화 등 의료체계의 제도적인 요인의 변화를 반영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의료체계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지 않은 채 고령화만을 강조하는 의료비 지출 전망은, 지금의 의료체계를 고수하려는 의도를 숨긴 채 건강보험을 약화시키는 공포마케팅에 불과하다.

[그림 3] 건강보험료 및 정부 지원금 비중 [출처: 김준현 외, '건강보험 급여비 및 국민 의료비 관리를 위한 보험자의 역할', 2016, 39쪽]


건강보험 재정, 누구의 부담을 늘려야 하는가

흔히 한국의 건강보험이 ‘저부담 저보장’ 구조이기 때문에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부담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출산과 저성장이 지속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근거도 덧붙인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은 정작 중요한 쟁점은 감추고 있다. 바로 ‘누구에게’ 부담을 더 지울 것이냐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부담 주체는 노동자 외에 국가와 기업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먼저, 국가는 국민건강보험법 및 국민건강 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퍼센트를 정부지원금으로 내야 한다. 그런데 2000년 이래로 건강보험 수입에서 정부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감소하면서 최근에는 10퍼센트 초반에 머물러있다. 정부지원금 증가율이 보험료 수입 증가율보다 낮기 때문인데, 2001~2015년 동안 보험료 수입 증가율은 12.2퍼센트지만, 같은 기간 정부지원금 증가율은 7.4퍼센트에 그쳤다. 이는 ‘예상’ 수입액이 기준이라는 허점을 이용하여 정부가 항상 법적 기준에 미달하는 규모를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2007~2015년 동안 누적된 정부지원금 미지급 금액은 12조 3000억 원에 이른다.

정부지원금에는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을 보완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국가가 건강보험 재정을 더 많이 책임질수록, 의료비 절감과 건강 수준 향상을 동반하는 보다 효율적인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려는 동력이 발생하고, 국민들의 질병 예방과 조기 치료에 중점을 두는 통합적 의료공급체계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지원금이 법적 기준을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정부지원금 규모를 확대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부담 주체에는 기업도 포함된다. 한국에서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의 경우, 기업(사용자)과 개인(노동자)이 50퍼센트씩 부담한다. 이는 고정적인 것이 아닌데, 가까운 사례로 대만의 경우 60퍼센트는 기업주, 30퍼센트는 노동자, 10퍼센트는 정부가 부담한다. 프랑스는 2차 대전 직후에는 노사가 50대50으로 분담하였으나, 이후 사용자 부담이 점차 늘어났다. 사용자가 13.1퍼센트, 노동자가 6.04퍼센트를 부담한다. 2014년 기준 프랑스의 보험료율은 13.85퍼센트인데, 노동자 0.75퍼센트, 사용자 13.1퍼센트이다. 한편, 사회보장분담금(CSG) 부과율 중 건강보험 배정분은 근로소득의 5.29퍼센트이다. 따라서 근로소득에 부과되는 건강보험재정 총부담률은 노동자 6.04퍼센트, 사용자 13.1퍼센트가 된다. 사용자가 노동자의 2배를 부담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은 국민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용자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자 하고, 이는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증가시킨다. 산재보험이 별도로 있긴 하지만, 사실 건강상의 변화가 산재로 인정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노동자들의 육체적·정신적 부담은 상당 부분 건강보험의 영역이 된다. 한편, 기업의 생산 활동은 수질오염·대기오염 등으로 지역주민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활동이 적절히 통제되기보다는 산업발전이라는 핑계로 오히려 규제가 완화되기 일쑤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해서 하락했다는 사실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의 기업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더 많은 부담을 져야만 한다.

건강보험 적자 논쟁과 문재인 케어

지금까지 의료비 전망과 건강보험 재정의 수입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정부와 언론이 지속해서 거론하는 고령화가 의료비 증가의 요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제도적인 요인에 의해서 증가속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한국의 건강보험이 ‘저부담 저보장’이라는 주장에 대해, 국가와 기업의 저부담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적자 논쟁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입장은 명확해진다. 공급부문을 통제하지 못하는 의료체계가 혁신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료를 올려도 낭비되는 재정만 늘어날 뿐이다. 지속해서 급여범위를 확대하지만 보장성은 답보상태인 현재의 건강보험 상태가 이를 증명해준다. 특히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지우지 않는 건강보험료 인상은, 낭비될 재원을 노동자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만들겠다는 말과 같다. 이는 건강보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오히려 건강보험의 약화를 부를 것이다.

헌데 작년 발표된 ‘문재인 케어’에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다. 공급부문 통제와 관련하여 ‘예비급여’를 통해 비급여 통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신의료기술 평가와 비용 효과성 평가가 강화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의료행위에 재정이 낭비되는 통로가 될 뿐이다.
반면 건강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8년 건강보험료율은 2.04퍼센트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되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료체계의 혁신과 함께 건강에 대한 보편적이고 계급적인 인식의 강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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