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0 여름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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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제로’를 넘어서 ‘G 마이너스 2’의 세계로?

임필수 | 계간사회진보연대 편집장
인도의 경제학자 아빈드 수브라마니안은 오늘의 세계가 ‘G 마이너스 2’의 세계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그의 논지를 따라가보자.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짧은 시기는 경제적 측면에서나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수렴’의 시대였다. 서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세계는 개방적 자유질서가 번영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이라고 합의했다. 20년간 이어진 ‘황금시대’의 특징은 초세계화였다. 세계 GDP에 대비한 무역액의 비율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나아가 개발도상국의 생활수준이 선진국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 초세계화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사실 이러한 질서는 사실상 미국이 창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1930년대의 대불황과 세계대전이라는 대란을 겪은 후 미국은 브레튼우즈에서 전후 질서를 재건할 일종의 ‘세계적 공공재’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제공하는 긴급금융이고, 또 하나는 세계은행이 공급하는 장기대부이며, 세 번째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통한 개방된 시장이었다. (물론 미국이 그저 ‘이타적’으로 행동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제도는 철저히 미국의 전후 세계전략에 부합했다.) 이때는 미국이 유일무이한 패권국(hegemon)이었고, 이를 G1의 세계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의 세계는 G1의 시대도 아니고 ‘수렴’의 시대도 아니다. 1978년 이후로 화려한 성장을 해온 중국이 미국 다음으로 지배적인 경제권력으로 부상했다. 유럽은 여전히 탈중심적이고, 전략적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내부적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결정적인 측면은 무엇이 바람직한 경제질서이냐는 문제에 대한 합의가 붕괴했다는 점이다. 

미국과 서구 국가는 일련의 부정적인 경제적 흐름에 직면했다. 성장 속도의 둔화, 불평등의 증가와 사회적 이동성의 하락, 경제권력의 거대한 집중화 등. 이런 문제는 세계화가 주는 이익이 무엇이냐는 강력한 문제 제기를 낳았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스타일의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을 잠식했다. 

또한 중국의 부상은 세계화에 대한 미국 내 비관주의를 부추겼다. 광범위한 미국인은 중국이 미국의 호의를 악용해 환율을 조작하고, 지적재산권을 훔치고, 스파이 활동을 하고, 강제적인 기술이전을 강요한다고 믿는다. 나아가 국가 통제주의나 정치적 억압을 강화하는 중국의 행동이 미국적 의미의 공동 번영이라는 이상에 대한 배신이라고 받아들인다. 

G2의 세계에서 나타난 이러한 불협화음, 특히 이데올로기적 수렴의 종말은 경제적 수렴의 종말을 낳을 것이며, 특히나 이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경제사가 킨들버거는 개방된 시장이라는 핵심적인 세계적 공공재를 제공할 책임은 패권국에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오늘의 미국과 중국은 공공재(public goods)가 아니라 공공악(public bads)을 제공하고 있다. (‘public bads’는 부[負]의 공공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환경오염과 같이 외부불경제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서로 관세와 무역규제를 부과하는 행동은 세계 무역을 뚜렷하게 감소시키며 이는 개발도상국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렇지만, 미국과 중국이 제공하는 가장 결정적인 ‘공공악’은 훨씬 더 미묘하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조치는 브레튼우즈가 탄생시킨 제도를 공격하며 이는 국제협력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파괴한다. 반면 중국은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로 매력을 세계에 보여준 적이 없다. 한마디로, 중국은 조지프 나이가 말한 ‘소프트 파워’가 없다. (나이는 소프트 파워가 ‘강제나 보상이 아닌 설득과 매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국가는 효과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고, 자발적인 지지자를 모을 수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패권국은 개방된 시장을 제공해야만 하는데, 중국은 빈국에게 충분한 수출시장을 제공하지 못한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국내의 국가대표 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수입의 급격한 감소를 추진한다. 중국이 계속 보호주의적 태도를 추구한다면, 중국은 개방된 시장이라는 핵심적인 세계적 공공재를 빼앗는 것이고, 따라서 결코 자애로운 패권국이 될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이 유일 패권국인 G1의 세계는 오래전에 사라졌고, 미국과 중국이 패권국의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G2의 세계 역시 소멸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G 마이너스 2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 유럽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더욱 암울한 전망을 보여준다. 즉 유럽의 통합 프로젝트는 종말을 향하고 있고, 미국은 내적 통합력을 잃고 작동 불량에 빠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국가와 시민 간 암묵적 합의가 파괴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유럽을 살펴보면, 2010-12년 유로존의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균열이 발생하는 단층선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수십 년간 역동성을 잃었고 재정적으로 취약하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유럽이 구원하기에는 너무 크고, 또한 그냥 무너지게 내버려두기에도 너무 크다. 이탈리아는 심각한 보건 위기를 겪었지만, 유럽 파트너들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인민주의가 번성할 기회를 창출한다. 반면, 유럽연합의 현실도피적 테크노크라트는 보통 사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알파벳 조합을 쏟아냈다. 예컨대 ESM(유럽안정화메커니즘), OMT(전면적 통화거래), MFF(다년도재정운영계획), PEPP(팬더믹 긴급매입프로그램) 등등. 또한 유럽의 지도자들은 갈팡질팡했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 총재 라가르드는 회원국 국채 간 이자율(곧 차입비용) 스프레드가 확대될 경우 대책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스프레드를 좁히는 것은 ECB의 임무가 아니다”라고 무심하게 말했고, 유럽 채권시장은 그에 반응해 즉각 혼란에 빠졌다. 또한 유럽연합 공동채권이나 코로나19 구제기금을 두고 회원국 간 언쟁이 벌어졌다. 나아가 5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유럽중앙은행의 수량완화(QE) 프로그램 중 하나인 국채매입프로그램이 권한을 초과한 조치라고 판결했다. (독일 헌재는 유럽중앙은행이 그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에 3개월 안에 그 프로그램에 따른 국채 매입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 모든 흐름이 유럽통합에 타격을 입힐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의 쇠퇴를 예측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믿는 사람은 그보다 적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도 이미 미국의 핵심적 제도가 퇴락하고 있다는 신호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도무지 자제력이란 존재하지 않고, 의회는 2010년 이후로 공화당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 조정(즉 게리맨더링)이 이뤄진 상태고, 연방대법원은 정치화되어 있으며, 연방주의에는 균열이 발생하고 있으며, 규제기관은 사적 이해관계에 포획되어 있다. (다만 미국 연준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쇠퇴를 부정할 것이다. 즉 미국의 비(非)국가적 제도들, 예를 들어 대학, 미디어, 기업가정신, 기술적 우위가 두터운 버팀목이 되며, 무엇보다 달러가 세계적 패권을 누리기 때문에 미국은 여전히 복원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은 유행병에 대처하는 데 최악의 결과를 보였다. 미국은 세계 인구 중 비중이 5% 미만이지만, 6월 9일 현재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중에 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8%(총 11만여 명), 확진자 중 비중도 28%(총 200만여 명)에 이른다. 미국의 신뢰성과 지도력은 이라크 전쟁과 2007년 금융위기, 2017년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을 거치며 이미 큰 상처를 입었으나,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면서 또 한 번 강한 타격을 입었다. 아직 완전한 치명상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어떠한가? 덩샤오핑 시대 이후로 중국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즉 시민이 자유의 제한을 감내하고 정치적으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중국공산당이 확고히 통제하는 국가는 질서와 번영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는 이러한 암묵적 합의를 파괴했다. 첫째, 중국 정부는 유행병의 초기 대응에서 형편없었다. 특히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창궐했을 때 진실을 억압했다. 이는 정권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국가가 시민의 기본적 안녕, 특히나 생명 그 자체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과거에 존재하던 합의는 무너질 것이다. 중국에서 사망자 통계에 관한 진실은 언젠가는 밖으로 드러날 수 있다. 또한 대만이나 홍콩과 같이 자유로운 사회에서 유행병에 모범적으로 대응했던 사례와의 분명한 비교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세계가 코로나19의 여파로 탈세계화의 길을 추구한다면 다른 국가는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자 할 것이며 중국의 무역기회는 감소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외국투자는 봉쇄될 수 있다. (미국은 ‘안보’를 그 명분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다른 국가도 어떤 이유든 간에 중국기업을 억제하려 할 수 있다.) 나아가 유행병의 타격을 입은 가난한 국가가 중국에 진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면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결국 코로나19 위기는 중국의 장기 경제전망에 상처를 가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억압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므로 당장 중국 내에서 큰 소요가 발생하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내부적 동요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키고 G7이 이를 재고하라는 공동성명을 준비하면서, 중국과 서구의 이데올로기적 균열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5월 말 경찰의 잔혹행위로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후로 6월까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회 내부적으로 취약하고 균열이 존재하는 국가는 다른 국가가 모방하고자 하는 모델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국제적 지도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이 모든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도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의 ‘G 제로’라는 세계를 넘어서, 퇴락하는 패권국이 오히려 ‘공공악’을 공급하는 ‘G 마이너스 2’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G 마이너스 2’가 장기화된다면 그 결과는 자본주의 위기의 가속화일 것이고, 곧 세계적 무질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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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집은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라는 주제를 잡았다. 이번 기관지를 발간하기 전에도 사회진보연대는 여러 매체를 통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분석과 입장을 제시하고자 했다. 대표적으로는 4월 6일, 『코로나 사태의 원인과 전망』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발간했다. 인터넷 매체 《사회운동포커스》도 20편에 가까운 글을 통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이번 사태를 다루었다. 「야생동물 사육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2.7.),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지는 코로나19,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3.11.), 「코로나 패닉에 이은 경제 패닉, 원인과 전망」(3.13.)은 코로나 확산 초기 시점에 이번 사태가 보건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 제시하고자 했다. 「노동조합, 재난 극복의 제도로 역할 해야 한다」(3.18.), 「민주노총 코로나19 대응 정책워크숍 참관기」(3.25.), 「코로나19 사태가 바꾼 노동현장」(3.26.),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해외 노동조합의 대응 현황과 시사점」(4.1.), 「민주노총은 한국의 '대표노조'답게 행동해야 한다!」(4.14.), 「코로나19 사태와 노동운동의 역할」(4.30)과 같은 글은 코로나 사태에 직면한 노동조합의 총괄적 대응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 코로나 경제위기 해설로 「미국 연준,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3.23.), 「미국 의회의 3단계 재정정책, 2조 달러의 CARES」(3.30.), 「과연 금융공황은 발생할 것인가」(4.8.), 「‘아메리카 퍼스트’는 어떻게 세계 보건·경제위기를 악화시키는가?」(4.17)와 같은 글도 발간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 공항·항공산업 다시 예전처럼 날 수 있을까?」①, ②(5.6., 5.15.),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부장 인터뷰」(5.12.), 「코로나 시대 이주민의 고난」(5.14.), 「민주노총인천본부 공항노동상담소/공공운수노조 영종특별지부 인터뷰」(5.27.)와 같은 글들은 공항·항공, 금속, 이주 부문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운동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번 특집에 《사회운동포커스》에 이미 발표한 글을 다시 모두 수록할 수 없었기에 독자 여러분은 인터넷에 실린 글에도 관심을 주길 바란다. 

특집의 첫 번째 글, 한지원의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은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 쟁점을 네 가지로 꼽았다. 첫째 이윤율 하락의 가속, 둘째 지속불가능한 부채, 셋째, 몰락하는 미국과 타락하는 중국, 넷째, 가속하는 생태 위기와 자본주의의 임계점이다. 이 모든 문제가 가리키는 곳은 자본주의 체계적 위기일 수밖에 없다. 한편 한지원은 한국의 코로나 대응도 평가한다. 먼저 코로나 사태에서도 여당과 지지자들의 인민주의는 다시금 여실히 드러났는데, 새누리당과 신천지가 연관이 있다거나 대구가 보수적이어서 코로나19에 당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SNS에 서슴없이 퍼뜨렸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염두에 두다 중국입국 규제를 지연한 것도 정치공학적 판단으로, 위험한 도박이었다. 모든 가계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도 총선용 정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존 위험에 처한 가계를 지원한다는 정책 취지는 중간에 사라져버렸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전국민고용보험과 한국판 뉴딜을 집권 후반기 핵심 정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임금과 고용안정, 자영업과 특수고용의 저소득과 불완전취업이라는 이중구조가 완화되지 않는 한, 전국민 고용보험은 그 구조상 장기 지속되기 어렵다. 그리고 디지털 투자, 친환경 투자를 묶어 ‘한국판 뉴딜’이라고 말한다면 포장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고, 뉴딜의 핵심인 실질적 개혁이라 칭할 요소는 없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이 제시하는 대책 일부도 비합리적이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긴급재정명령을 통해 ‘해고금지’를 실행하라는 요구는 실제로 영세기업과 자영업의 해고를 막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전쟁과 같이 극단적 상황도 아닌데 현존하는 의회를 없는 것처럼 취급하며 대통령이 긴급명령을 발동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이다. 덧붙여 진보진영 일각에서 주창하던 기본소득론이 여야 정치인의 정책 소재가 되었으나, 기본소득론자는 오직 분배의 측면만 볼 뿐, 생산의 측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정부 지원은 필요하지만, 치료제와 백신 개발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므로 충분한 재정여력을 확보해야 하며, 중기적으로는 정부의 부채누적을 경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빚더미에 깔린 정부는 장기 위기에 대처할 여력이 떨어지며 최악의 경우 아르헨티나처럼 국부가 소실되는 붕괴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박준형의 「코로나19 경제위기, 노동조합 운동의 대응」은 노동조합의 대응과정을 ‘중간 점검’한다. 먼저 저자는 전체 노동시장에서는 심각한 고용위기가 나타나고 있으나, 재벌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는 위기가 본격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즉, 위기는 주로 영세 자영업,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업종, 중소영세 사업이나 하청 비정규직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를 계기로 과거처럼 기업별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 총연맹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둘째,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 기존 정책요구의 구성과 강조점을 달라지더라도 그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중소영세 자영업자가 폐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태일법(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계속 핵심요구로 내걸 것인가, 또한 대기업도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여 현금확보에 나서고 정부에 대출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요구가 타당한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즉 고용위기의 긴급성을 고려하여 기존 정책을 면밀히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경사노위의 기존 합의를 반복하는 수준의 추상적 합의, 또는 정부정책을 보완하는 수준의 합의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현재 국면에서 사회적 협의 자체를 거부해야 할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과거처럼 개별 기업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묶는 방식의 투쟁으로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위기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거시경제정책과 재정정책, 산업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을 아우르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사회적 협의는 물론, 총노동·산업별 교섭·협의와 이와 연계된 총노동·산업별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류미경의 「코로나19 위기에 대한 해외 노동조합의 대응 현황과 시사점」은 4월 1일 《사회운동포커스》로 발표한 글을 보강한 것이다. 저자는 유럽 내에서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급속히 확산했고 높은 치명률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이 감염병 유행 단계별로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고 시사점을 도출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탈리아노총은 코로나19가 미칠 영향을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산별노조와 지역본부를 통해 전국적인 현황을 파악하여 감염병 차단을 위한 전국 수준의 기준을 신속하게 수립했고 현장 투쟁을 통해 이를 관철했다. 나아가 정부 재정정책의 원칙과 방향을 앞서 제시하고 이 과정에서 미조직 노동자의 요구가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둘째, 노동조합은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오거나, 경기침체, 실업대란이 발생할 때를 염두에 두면서, 재난과 위기에 직면해 한시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편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국제 노동조합 조직은 2008년 위기를 반성하며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사회포럼을 매개로 대안세계화운동이 형성되었던 때와 비교할 때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지만, 노동조합의 국제적 교류를 통해 ‘반(反)세계화에 맞선 국제적 공조와 다자주의 강화’를 비롯해 세계적 대안 형성을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진현의 「렘데시비르와 코로나19 시대의 지적재산권 논쟁」은 세계적 유행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치료제와 백신의 지적재산권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냐는 첨예한 쟁점을 다룬다. 지난 3월 다국적제약사 로슈는 진단기기 완충액 성분과 제조기법을 공개하지 않아 큰 비난에 직면했고, 그 후 마지못해 공개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치료제 렘데시비르의 경우, 10일분의 생산가격은 10달러이나 판매가격은 4,460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개발사 길리어드는 미국 식품의약국에 희귀의약품 지정을 신청했는데, 승인되면 특허독점과 별도로 7년간 판매독점권이 부여된다. 이 시도 역시 강력한 국내외적 비난에 직면했고, 길리어드는 자진 철회했다. 그후 저개발국에 치료제를 공급하라는 여론에 부딪쳐 인도, 파키스탄 등에 위치한 제약사 5개에 특허권 사용을 허가했다. 세계적 유행병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약회사의 자선행위에 기대는 게 아니라 정보와 지식을 적극 공유하는 것이다. 대안적 지적재산권 전략으로는 특허풀과 강제실시가 있다. 우리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스위스,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등이 세계보건기구의 특허풀에 참여하도록 압박해야 하며, 각국이 강제실시를 허용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시작된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을 전면 수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정세초점으로는 이유미의 「21대 총선평가와 정치 전망」을 담았다. 총선 결과를 두고 한국사회의 주류가 교체되었다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치지형이 변동했다는 징후가 보인다는 평가가 있으나, 저자는 그런 평가에 비판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고 정책개혁을 매개로 한 새로운 지지연합을 구축했다고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당은 시종일관 인민주의 정치를 수행하고 있는데, 반보수, 민족주의와 같이 감정에 호소하는 진영논리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지 기반도 안정적이지 않고, 정부 지지율이 낮아지면 더욱 강도 높은 인민주의적 호소에 매달릴 개연성이 크다. 한편 정의당의 경우, 선거결과가 매우 부진했는데, 이는 단지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악용했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정의당은 지금까지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진보정당’을 호소하며 일종의 ‘민주대연합’ 노선에 의존해왔는데,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창당되면서 오히려 정의당을 지지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즉 정의당의 독자적인 이념이 전략의 부재가 이런 선거결과를 낳은 궁극적 원인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선거 이후에도 정의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민주당과의 대선 시기 연합을 추구할 개연성이 있고, 이를 견제할 만한 내부적 역량도 여전히 취약하기 때문에 정의당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문재인 정부 전반기를 되돌아볼 때, 저자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보수세력에게 내주었다고 지적한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은 시장주의자에게, 북한 핵개발에 대한 비판은 호전적 핵무장론자에게, 조국 사태나 사법 개입과 같은 문제에 대한 비판은 보수주의자에게 내주었다. 노동자 사회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으로서 자기 자리를 확보할 때만이 활로를 찾을 수 있다. 

다음 글은 기획연재, ‘소설과 함께 보는 한국 노동자운동의 역사②’로 조유리의 「『객지』에서 『공장의 불빛』까지, 1970년대의 노동문학」이다. 2019년 가을호에 실린 「해방공간의 『폭풍』,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 이은 글로 앞으로도 꾸준히 연재를 이어갈 것이다. 김태훈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한국사회성격 논쟁(상)」은 윤소영 선생이 올해 2월에 출판한 『한국사회성격 논쟁 세미나』 Ⅰ, Ⅱ를 소개한다. 이 책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출판된 『한국자본주의의 역사』, 『한국의 불행』, 『위기와 비판』, 『재론 위기와 비판』을 합본하고 종합토론과 후기를 추가한 것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매우 넓고 분량이 많기 때문에 책 소개도 두 번에 나눠 싣고자 한다. 김유미의 「가족의 틀을 넘어 새로운 관계와 사회를 열자」는 새로운 기획연재 ‘페미니즘 읽기’의 첫 번째 글로 『반사회적 가족』(1982), 『진화하는 결혼』(2005), 두 책을 통해서 여성해방 운동의 ‘고전적’ 주제인 가족이라는 문제를 다시 고찰해본다. 이소형의 「송유나 선배를 기억하며」는 지난 5월 17일 타계한 송유나 님을 추모하는 글이다. 다시 한번 선배의 명복을 빈다. 이번 호 ‘필자가 독자에게’는 독자의 글과 필자의 글을 함께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기대해 본다.
 
2020년 6월 9일
편집장 임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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