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0 여름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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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역사로 살펴본 민주당 정치의 위험성」 필자에게

임정석 | 《계간 사회진보연대》 구독자
이 글은 지난 겨울호에서 지적했던 ‘반(反)보수뿐인 개혁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보다 역사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지는 정치세력의 계보가 각 경제위기의 시기마다 보였던 입장과 태도를 살펴보며 그들의 근본적 한계를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들어 모두의 예측과 상상을 뛰어넘고 있는 민주당의 행태를 지켜보며, 민주당의 타락한 포퓰리즘이 우연한 일탈이 아님을 일관되게 비판하고 경고해온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이 중요함을 새삼 더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도 반복되고 더욱 심화될 반보수전선에 대한 미망에서 노동자·사회운동이 비로소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민주당 정치의 한계와 위험성을 지적하는 이 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각 경제위기 시기에 대한 설명을 제한된 글 내에서 읽다 보니, 내용상에서 한 가지 의문 및 고민이 남습니다. 1979~80년 중화학공업화의 모순으로 인한 한국경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 시기 야당의 경제학적 문맹으로 인한 어설픈 신자유주의 흉내를 지적하는 글의 논지가 자칫하면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논지로 오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민주당 신파로 소급되는 야당 세력의 관치경제 철폐와 자유시장 강화라는 경제노선이 재벌개혁 없는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으로 이어졌고, 외환위기와 김대중 정부의 집권을 바탕으로 노동자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요지로 파악하면 되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독자에게


한지원(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임정석 님께서 주신 질문에 짧게 답해보겠습니다. 1979~80년 한국경제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미국 경제는 1970년대부터 침체 상태에 진입했고, 박정희가 육성한 중화학공업 기업들은 가동률 저하, 기술 부족 등으로 줄도산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여기에 은행들의 무분별한 기업 대출과 정부의 경기 부양 탓에 인플레이션도 높았습니다. 금융 제도를 정비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했고, 한계기업도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는 사회주의적 변혁이냐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냐는 양자택일 선택밖에 없었습니다. 서유럽도 복지축소에 나선 상황이라 복지국가 같은 중간 선택지는 불가능했습니다. 더군다나 1970년대 이후부터 소련도 경제위기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체제가 국가자본주의로 굳어진 상황이라 사회주의적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즉, 사회주의적 변혁의 길도 봉쇄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글은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지배 엘리트 분파 사이의 태도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0년대 남아 있던 선택지는 어떤 과정의 신자유주의 개혁이냐 정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서 전두환은 개혁을 광주 학살로 상징되는 엄청난 폭력을 동반해 진행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김영삼, 김대중이 단결해 군부 쿠데타를 사전에 방지하면서, 명확한 정세 판단으로 빠르게 경제 개혁에 나섰다면, 1980년의 광주 학살과 더 나아가 1997년의 외환위기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글에서도 자세히 썼듯 1997년 외환위기는 1980년대 미완에 그친 경제개혁의 후과였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독재와 IMF에 의한 구조개혁의 대가는 당연히 민중의 엄청난 희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임은 양김에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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