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0 겨울.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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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징계청구와 공수처 야당 배제, 문민독재로 가는 9부 능선을 넘는가

임필수 | 편집장
10월 19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여 라임사건과 윤석열 총장 가족 및 측근 사건에 관한 윤석열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했다. 그에 이어 11월 24일,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조치를 취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추-윤 갈등’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이를 그저 권한이나 법률 해석을 둘러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의견 충돌로 볼 수 없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요소가 무엇이냐에 대한 근본적 인식 차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쟁은 격렬하고, 그 파장도 아주 오래갈 수밖에 없다. 

이제 문재인 정부도 후반기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숱하게 보았던 것처럼 권력의 이완이 발생하면서 권력형 부패·비리 사건도 점차 빈도나 강도가 강해질 것이다. 이와 비례하여, 정부와 여당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강행하며 ‘검찰개혁’을 사활적 과제로 격상시킬 것이다. 이제 문 정부의 검찰개혁이라는 문제는 문 정부 후반기를 평가하는 가장 중대한 쟁점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다시 말해, 문 정부 전반기를 평가하는 쟁점이 소득주도성장론이나 남북관계 문제였다면 후반기는 검찰개혁이 계속 전면을 차지할 것이다. 이제 사회운동은 이러한 쟁점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고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타락시키냐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 장관과 민주당의 검찰개혁: 사법 방해, ‘법의 지배’ 부정 

사회진보연대는 올해 1월 추미애 장관의 취임 이후로 그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사회운동포커스》를 통해 여러 차례 발표했다. 「집권세력과 검찰의 갈등, 노동자운동은 정권부터 비판해야 한다」(1.13.)는 여권 인사의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좌천시킨 추 장관의 검찰 인사가 검찰수사를 방해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는 ‘사법 방해’에 관한 법률이 별도로 제정되어 있지 않으나, 궁극적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추 장관의 사법 방해와 자연국가로 타락하는 문 정부」(2.11.)는 국회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관한 공소장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추 장관이 이를 거부한 행동을 규탄했다. 이는 당파적 이해를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마저 너무나 손쉽게 무시하는 무도한 처사라고 규정했다. 이미 기소된 사건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지도 않는데, 합당한 이유 없이 국회 요청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국회의 권한이 파괴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보다 민주당의 지배가 낫다는 여권의 신종 독재」(9.24.)는 집권세력의 법 인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윤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을 두고, 민주당의 신정훈 의원은 “법의 지배는 무섭고 위험하다”고 답했고, 신동근 의원은 “사실상의 반정부 투쟁선언”이라고 단정했다. 법의 지배, 즉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즉 통치자마저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인식이 왜 위험하고, 나아가 반정부 투쟁선언이 되는가? 통치자가, 현 정부가 법을 위반했다고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인가? 법의 지배를 부정하려면 차라리 그를 대체하여 ‘민주당의 지배’를 명시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윤 총장 수사지휘권 배제 

추 장관의 사법 방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력해졌다. 추 장관은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이 처음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지 15년 만인 2020년 7월 신라젠 관련 취재 의혹 사건에서 두 번째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데 이어, 불과 3개월 만인 10월 19일 또다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번에는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검사 룸살롱 접대 의혹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가족 및 측근 사건 등 5건을 한꺼번에 묶어 윤 총장의 수사지휘를 배제했다.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횟수는 전체 3번 중 2번이지만 관련 사건은 모두 6건이다.) 

이는 10월 국정감사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말과 10월 26일 국회 법사위 종합국감에서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한 말이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은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면서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위법, 부당하다고 말했다. 반면 추 장관은 장관이 총장의 상급자이자 지휘감독관이며, 윤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박탈이 적법하고 필요하고 긴급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곧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위법, 부당하게 행사했고 이는 정치권력이 노골적으로 검찰 장악을 실행 중이라는 뜻이 된다. 이는 전형적으로 독재 정권이 검찰을 독재권력의 무기로 삼기 위해 취했던 수단과 다를 게 없게 된다. 반면, 추 장관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검찰이 법무부장관으로 대표되는 행정부의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면서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반개혁세력이 된다. 과연 어떤 주장이 타당한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지난 7월 5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을 둘러싼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을 두고 지휘권 갈등이 벌어졌을 때 2011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저자로 참여했던 책을 인용했다. 그 책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이하 『검찰을 생각한다』)인데, 조국 장관이 빨간 펜으로 밑줄 친 내용은 이러했다. “검찰은 당연히 있어야 할 민주적 통제를 기존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 간섭과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려고 했다”, “법무부장관이 헌법과 인권에 기초해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권한이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정치권력의 민주적 통제의 일환이다.” (262~263쪽.)
 
조국 전 장관의 페이스북 (2020년 7월 5일)

확실히 이 책은 ‘검찰개혁’의 방향 전환을 공표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검찰개혁의 방향은 중립성과 독립성, 즉 정치적 중립성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이었다. 대표적으로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2년)가 도입되었는데, 이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뒷받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정치권력의 민주적 통제’가 핵심 방향으로 설정된다. 이 책에 따르면 검찰이 “정치권의 부당한 개입·간섭으로부터 검찰을 지킨다는 소극적 의미의 정치적 중립을 검찰의 기득권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거부하는 적극적 의미로 변질”시켰다는 게 그 논거가 된다(263쪽).
그러면서 ‘정치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검찰은 본질적으로 행정부”라고 주장한다(58쪽). 또한 검찰이 준사법기관이라는 입장을 비판한다. 검찰이 준사법기관론에 근거해서 독립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검찰을 생각한다』는 그러한 논리를 완전히 파괴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따라서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이고 국민과 정치권력, 법원에 의한 견제와 감시다”(65쪽). 

그렇지만 이러한 논리에 어떤 맹점이 없냐는 문제는 검토하지 않는다. 즉 “정치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통해 정치적 중립을 실현한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정치인이 검찰을 통제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실현한다”는 말이 언제나 실현 가능하냐는 문제가 있다. 정치권력이 항상 선의를 갖고 있어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려 할 때 정치권력이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때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위배하는지 여부를 정치권력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심대한 공간이 열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다른 식으로 말하면, 어떤 조직이든 독립성이 없는데 어떻게 중립성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독립성과 중립성이 어울리는 짝인가, 정치적 통제와 중립성이 어울리는 짝인가? 『검찰을 생각한다』는 이러한 명백한 문제에 대해 답이 없었다.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과 검찰총장 경유제 

그렇다면 검찰이 행정부라는 주장은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적으로 검찰제도는 판사가 수사, 기소, 심판을 모두 담당하던 전(前)현대적 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출현했다. 판사가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면 심판도 유죄가 나올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너무 불리하다는 게 그 원인이었다. 그래서 소추 이전에 사실 규명(수사)과 기소의 책임은 검사가 맡고, 그 후 사실 확정(심판)은 판사에게 맡기는 검사제도가 등장했다. 그래서 검사와 법원이 서로 견제하는 사법권력의 분할이 실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검찰은 재판부로부터 독립했으나, 사법권력을 분점한다는 의미에서 〔준〕사법기관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무부와 검찰은 단순히 행정부 내의 상하관계로 볼 수 없다는 윤 총장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 프랑스나 독일은 법원이 법무부 소속 기관으로 되어 있으나, 대법원장, 법원장, 판사가 법무부장관의 부하(部下), 즉 직책상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 수 없다는 사실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검찰, 또는 검찰총장의 전횡이라는 것도 당연히 존재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견제수단이 필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이 검찰(총장)에 대한 최후의 견제수단으로 존재한다. 검찰의 독립성이 원칙이고,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예외인데, 현재 민주당은 예외가 원칙이라고 강변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검찰청법 8조,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은 1949년의 (제정) 「검찰청법」에 뿌리를 둔다. 그 이전인 1947년의 「검찰청조직법안」은 “검사총장은 검찰권행사의 최고책임자”라고 하여 사법부장(법무부장관)이 구체적 사건을 지시하는 권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총장 경유제’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제도는 전후 일본의 새로운 검찰청법을 모델로 삼았다. 일본의 경우 책임정치의 원칙상 법무대신의 지휘권을 인정하되, 지휘권이 발동될 경우에 검찰총장을 반드시 경유하게 하여 정당내각의 일원인 법무대신이 개별검사를 지휘하는 식의 정치적 간섭을 배제한다는 게 입법 취지였다. 즉 책임정치와 검찰의 독립성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절충을 한 셈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자주 언급되듯이, 일본에서도 법무대신의 지휘권 발동은 오래전인 1954년, 단 한 차례의 사례만 있다. 법무대신이 도쿄지검 특수부가 수사하던 뇌물 정치인의 사건을 불구속하도록 지휘했다. 하지만 당시 법무대신은 여론의 비난에 사퇴했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법무대신의 지휘권 발동이 없었다.   

1949년에 한국에 이러한 모델이 도입될 때도 동일한 입법 취지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이 조항에 대한 인식을 보면, 특히 ‘오로지’ 법무부장관만이 검찰을 감독한다는 의미가 크게 부각되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나 다른 내각원이 직접 검찰사무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검찰이 정당의 당략에 이용되는 상황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윤석열 총장이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위법, 부당하다고 말한 것은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바로 법무부장관이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검찰총장 경유제’를 무시했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도 겸임하는 셈이 되므로, 정치권력의 검찰장악은 최고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검찰을 생각한다』에서도 분명히 지적하듯이,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많은 수단이 도입되었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어 여론의 검증을 거치게 했다.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직급을 일원화고 검사동일체 원칙을 개정하여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상명하복 문화를 바꾸고자 했다. 검사보직은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제청하도록 했고, 검찰인사위원회를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시키며, 모든 검사는 임명 후 7년마다 검사적격심사위원회를 거치도록 했다. 책은 이를 통해 검사의 중립성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과제’는 거의 모두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치권력이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는 상당히 도입되었으나, 역으로 정치권력의 검찰장악을 견제할 수단이 무엇이 있냐는 문제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 발동이 문민독재의 새로운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 장관의 윤 총장 징계청구와 직무배제 

이처럼 우리는 추 장관이 취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배제가 검찰을 사유화하려는 새로운 수법이라고 규정했지만, 이제 와서 볼 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바로 또다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총장 징계청구와 직무배제는 추 장관이 다시금 한계를 깨뜨리며 세운 신기록이 되었다.   

11월 24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총장의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며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 조치를 보고드린다”고 말했다. 즉각 윤 총장 측은 “위법·부당한 처분에 대해 끝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이 “개인의 직(職)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가?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을 간단히만 살펴보아도 그 답을 알 수 있다. 출발점이 사법 방해였다면 그 종착지도 사법 방해다. 추 장관은 취임 이후부터 노골적인 검찰 인사를 통해 청와대와 여권에 대한 수사 방해, 즉 ‘사법 방해’를 개시했다. 그 후로는 자기편에 유리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상 피의사실 공표를 거리낌 없이 행하고, 불리한 사건에 대해서는 국회의 정당한 요청마저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의적, 파행적으로 장관직을 수행했다. 그러더니,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발언을 기회로 삼아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는 초유의 사태를 단행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검찰총장을 완전히 직무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겠다며 또다시 우리 사회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을 취했다. 
 

추 장관의 징계청구와 민주당의 공수처 개정안 처리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할 때부터 징계를 청구할 가능성이 언급되긴 하였다. 그렇지만 그럴 만한 분명한 사유가 있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관측가들은 이렇게 빨리 사태가 진행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추 장관이 내세운 여섯 가지 근거를 두고 곧바로 ‘억지’ 감찰 결과라는 평이 나왔다. 이번에 새롭게 언급된 사실이 있다면 ‘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불법 사찰’이다. 즉각 대검은 재판부 기피 신청에 대비해 공개정보를 취합한 것뿐이라고 밝혔고, 언론은 관련 문건을 작성한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이 쓴 반박문을 보도했다. (추 장관이 재판부 사찰 문제를 퍼뜨리는 게 향후 벌어질 행정소송을 염두에 두고 검찰과 재판부를 이간질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그렇더라도 보통의 상식적 판단과 재판부의 판단이 갈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렇게 허술한 ‘억지’ 논리를 펴면서까지 검찰총장 직무배제, 징계를 강행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현재 여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올해 내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출범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11월 25일 민주당은 법제사법위를 열어 야권의 공수처장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징계청구와 공수처 강행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며, 틀림없이 하나의 짝을 이룬다. 이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최대한 방해하면서 공수처를 빠르게 출범해 관련 사건을 모두 넘겨받아 검찰수사를 최종적으로 파탄을 내겠다는 계획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집권세력은 이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현 정부 식의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윤석열 일당의 축출’과 공수처 출범이 하나의 쌍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다양한 SNS 어록이 있으나 생략하겠다.) 

최근 나경원 전 의원은 2019년 11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노 실장이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6개월 전에는 공수처를 출범 시켜 달라”고 했다는 게 핵심 요지였다. 왜 그랬을까? 정권 말기나 새로운 정권 등장 후, 문 정부의 핵심인사에 대한 검찰수사가 벌어지는 일을 미리 막겠다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았을까? 

만약 이러한 의구심이 타당하다면, 현재 집권세력의 행동은 그 시한이 1년여 더 앞당겨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사건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난 10월 대검 국정감사에서 야당 측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다고 주장했고, 윤 총장 역시 수사가 종료된 게 아니며 지금 진행되는 재판 경과를 보며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식으로 답했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이나, 원전 사건처럼 지금 수사가 진행 중인 건도 있다. 또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도 정권 말기형 권력비리 사건이 터질 수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 집권세력의 의도대로 공수처가 출범한다면 여권에 대한 수사는 유야무야 무마되고, 오히려 공수처가 칼을 들고 야권이나 검찰, 사법부를 대상으로 한 수사를 펼칠 수 있다. 그처럼 국면을 180도 전환해서 정권 재창출의 조건을 만들겠다는 게 현 집권세력과 지지자가 공공연하게 구상하고 있는 미래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이 ‘사법의 정치화’, 민주주의의 파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민주주의의 파괴는 곧 현 집권세력의 독재를 낳을 것이므로, 이는 문민독재로 간다는 너무나 분명한 신호를 담고 있다.  
 

민주당의 음모론적 세계관 

그렇지만 문 정부의 핵심 인사와 지지자들은 윤 총장의 해임과 공수처 출범이 적폐세력의 중핵인 검찰의 저항을 분쇄하고 개혁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여권의 인식은 대검 국정감사에서 신동근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윤 총장은 신 의원의 질의에 대해 “영화 〈1987〉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무슨 말을 했길래 이렇게 답변했을까? 
 
신동근 의원이 제시한 ‘윤석열 라인’

신 의원은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옥중서신에 등장하는 A변호사와 ‘룸살롱 접대’ 의혹을 받는 검사 중 일부가 윤 총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한동훈 검사장 밑에 있었다며 ‘윤석열 사단’이라고 주장했다. 윤 총장에게 라임 사건을 직접 보고해 ‘반부패부 패싱’ 논란에 휩싸인 송삼현 전 남부지검장도 “윤석열 라인이라 반부패부장을 패스하고 직접 보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 총장은 “도표를 보니 〈1987〉 영화가 생각난다. 라인이라는 게 뭔지 모른다. 검찰은 검찰 구성원의 비리에 대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영화 〈1987〉에는 공안경찰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사 타깃을 미리 설정하고 도표를 만들어 라인을 먼저 그려놓고 짜 맞추기 식으로 죄를 만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신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검찰권력을 지향하는 윤석열 사단이 암약하고 있고, 그들이야말로 한편으로는 검찰개혁에 저항하려고 여권을 표적수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자와 향응을 즐기는 파렴치한 집단이다. 검찰집단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좀먹는 만악의 근원이 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현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어떤 기억을 조합하고 각색하여 민주당과 그 지지집단이 그려내는 가상적 이야기다. 악의 ‘끝판왕’ 검찰, 이를 개혁하려다가 처절히 희생당한 노무현 대통령, 한명숙 총리, 조국 법무부장관, 그런데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영웅으로서의 청와대와 법무부장관, 여당 국회의원 등등. 이러한 이야기 모델은 가상의 적(특히 엘리트집단)을 만들어 내어 그들에 대한 원한을 끌어내 이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인민주의 정치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가상적 이야기가 현재까지도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허상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정의당은 문 정부의 행태를 계속 묵과할 것인가

한편 추 장관의 브리핑 후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해 방관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작 정의당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는 회피한 것이다. 정의당은 지난 10월 추 장관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배제 문제에 대해서도 “코로나19 재난위기에서 시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 국정감사가 온통 부하네 아니네 논란으로 뒤덮여 답답하다”, “대체 시민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나”라며 문제의 핵심을 피하고자 했다. 

또한 새로 선출된 김종철 대표는 11월 1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공수처법은 고 노회찬 의원이 2016년에 처음으로 입법한 것”이라면서 “공수처 출범을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고 간다면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결단을 해야 한다”라며 야당의 공수처장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법 개정을 사실상 지지하기도 했다. 장혜영 의원이 11월 24일 정의당 의원총회에서 “공수처를 설치도 하기 전에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입법부인 국회가 웃음거리가 될 일”이라며 당 대표와 다른 인식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정의당이 공수처 문제에 관해 적절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매우 우려스럽다. 

정의당은 여권과 공조해서 패스트트랙 법안, 즉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처리를 함께 한 전사가 있기 때문에 공수처 문제에 관해 그 이전과 확연히 다른 인식을 보여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시 함께 처리한 선거법 개정이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어떻게 무력화되었는가를 현실을 통해 처참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선거법 개정이 민주당의 선의를 담고 있었다고 여전히 믿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현실 정치에 눈을 감고 싶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그렇다면 공수처가 부패척결이라는 민주당의 선의를 여전히 담고 있다고 믿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있겠는가? 

정의당은 패스트트랙 공조에 대해 현실감이 있는 평가를 통해 기존 입장을 과감히 바꿀 용기가 필요하다. 비례위성정당을 통한 선거법의 무력화, 부패·비리에 따른 재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당헌의 개정(즉 서울·부산시장 선거 무공천 원칙의 철회)을 보더라도 민주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규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보지 않았는가. 왜 공수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공수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발언하려고 결단한다면, 현재 추 장관의 윤 총장 징계청구나 직무배제와 같은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종철 대표는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겠다’고 누누이 강조했으나 정의당은 정말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실천해야 할 때를 놓치면 안 된다.    

한편 민주노총은 현 사태에 관해 어떤 입장도 피력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이제 검찰개혁과 관련된 여러 쟁점은 문재인 정부 후반부를 가로지르는 결정적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민주노총의 강령은 첫 번째 항이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인데, 정작 우리 사회의 결정적 쟁점에 대해 아무런 발언도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까지 상황을 볼 때, 민주노총 소속 조합과 조합원이 검찰개혁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토론하는 게 낯선 일일 수 있으나, 문 정부를 민주정부로 볼 것이냐, 아니면 민주주의의 파괴자로 볼 것이냐는 화두를 두고 기초적인 입장을 모으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문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는 이제 새롭게 등장할 집행부에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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