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19 가을.168호
첨부파일
2019_가을호_[05]_특집2_이유미.pdf

대법원판결의 쟁점과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현실

이유미 |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2012년 5월 24일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했다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소가 확정되었다. 국내에서는 획기적 판결이라고 환영하였으나 일본에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 반발하여 한일갈등의 발단이 되었다. 갈등은 역사문제에서 경제영역으로 확대되고 양국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며 장기화되고 있다. 따라서 발단이 된 대법원의 2018년 판결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판결의 주요쟁점을 살피고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현실을 돌아보면서 대법원판결의 의미를 해석해보고자 한다.

 

 

1. 2018년 강제동원 피해 대법원판결 개관

 

1) 소송의 경과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1995년 일본국과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미지급임금을 청구하면서 시작되었다. 1999년 히로시마 지방재판소는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제척기간(권리의 존속기간)의 경과, 미지급임금에 대해서는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다. 2005년 히로시마 고등재판소의 기각판결을 거쳐 2007년 최고재판소 패소판결이 확정되었다. 미쓰비시중공업 원고들은 일본1심판결에서 패소한 뒤 2000년 부산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07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패소했다. 2009년 부산고등법원은 일본 재판소 확정판결 승인을 이유로 항소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에서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2013년 환송심 판결에서 부산고등법원은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승소판결을 내렸으며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은 원고들에게 1인당 8천만 원 손해배상 지급을 확정지었다.

 

신일철주금 소송은 1997년 일본국과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미지급임금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2001년 오사카 지방재판소와 2002년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청구가 기각되었고, 2003년 최고재판소에서 상고 기각 및 상고 불수리 결정이 내려졌다. 일본에서 패소한 신일철주금 원고들은 2005년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서울지방법원은 일본에서 확정된 판결효력 승인의 문제, 구 일본제철과 신 일본제철의 법인격 동일성의 문제, 위자료청구권의 소멸시효완성의 문제 등을 이유로 패소판결을 내렸다. 2009년 서울고등법원도 항소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에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은 환송심 판결에서 원고들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 지급을 명했고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였다.

 

2) 대법원판결의 주요 쟁점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 소송은 2012년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과 2018년 대법원의 최종판결에서 주요쟁점이 동일하다. 다만 2012년 대법원판결과 2018년 판결에서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2018년 대법원판결은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피해자 위자료 청구권이 포함되었는지, 개인청구권행사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하여 <다수의견>과 <별개의견2> 그리고 <반대의견>으로 입장이 나뉜다. <다수의견>은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신일철주금이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고, <별개의견2>는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지만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한 것은 외교보호권이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며, <반대의견>은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고, 청구권협정으로 외교보호권만 소멸했다고 볼 수 없으며, 개인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소송을 제기하는 권리행사가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2012년 대법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판단과 근거가 <다수의견>과 동일하다. 즉 한일 양국이 식민지배 불법성을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에는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2년 대법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만이 아니라 외교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2012년 대법판결은 예비적 주장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설사 청구권협정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외교보호권만 상실되었을 뿐이지 개인청구권은 존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개인청구권과 관련하여 직접적 언급이 없는데, <다수의견>과 2012년 대법판결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같다. 따라서 <다수의견>은 개인청구권만이 아니라 외교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는 2012년 판결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2018년 대법원판결의 주요 쟁점을 <다수의견> <별개의견2> <반대의견>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2. 강제동원 손해배상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는지 여부

 

1) <다수의견>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수의견>은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성격은 위자료이며, 둘째, 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민사상 채권채무관계를 협의한 것이고, 따라서 청구권협정에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로 원고들이 청구하는 것은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이 아니라 강제동원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란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해 발생한 강제동원 피해 배상이라는 의미로, 식민지배를 합법으로 전제하여 징용도 적법했다는 규정 하에 지급된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과는 다른 성격으로 구분한다.

 

둘째로 청구권협정의 성격에 대한 판단이다. <다수의견>은 청구권협정을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으로 합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청구권협정 과정에서(제1차 한일회담) 한국측이 제시한 8 항목 중 제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포함되지만, 일본 식민지배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은 없으므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자금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한다. 청구권협정 제1조는 ‘일본국이 대한민국에 10년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하였고, 제2조 1은 “양국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였다. 대가관계가 없다고 보는 이유는 청구권협정에 자금 제공의 명목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당시 일본 역시 자금의 성격을 경제협력을 위한 것일 뿐 권리해결을 정하고 있는 제2조와의 상관관계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즉, 일본으로부터 제공받은 자금은 권리해결의 대가의 성격도 아닐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 배상의 성질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강제동원 위자료가 일본이 제공한 자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청구권협정으로 수령한 자금을 사용할 책임이 있다고 밝힌 것은 ‘도의적 책임’ 때문이지, 강제동원 위자료가 그 자금에 포함되어서가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으니,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별개의견2>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다”

 

<다수의견>은 청구권협정 합의의사록에 강제징용 피해보상이 포함된다고 명시되었고 회담 과정에서도 관련내용을 다뤘지만, 강제동원 위자료는 일본 식민지배 불법성을 전제하는 청구권이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별개의견2>는 <다수의견>과 달리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이 없어도 청구권협정 문언과 회담과정을 해석하면 강제동원 위자료까지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으로 받은 자금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이 포함되었다고 봤기 때문에, 국가가 보상조치를 진행했다고 판단했다.

 

첫째로 회담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강제동원 위자료가 포함되었다고 보았다. 대한민국은 한일회담 과정에서 징용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청했고(1961년 제5차 한일회담 예비과정), 피해보상금을 구체적으로 산정했다(1961년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게다가 이 같은 요구액은 국가로서 청구하는 것이고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것이라 주장하였고, 일본이 증거자료를 요구하여 협상의 난항을 겪었다. 이에 일본은 증명의 곤란함을 이유로 경제협력 형식을 취해 금액을 올리자고 제안했고 한국도 금액별 항목구분 없이 총액만 표시하는 방법을 제시함에 따라 청구권협정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1961년 5월 10일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과정에서 대한민국 측은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이에 일본 측이 개인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인지, 대한민국에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할 용의가 있는지 등에 대하여 묻자, 대한민국 측은 ‘나라로서 청구하는 것이며,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성질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961년 12월 15일 제6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과정에서는 대한민국 측이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했는데, 그 중 3억 6400만 달러(약 30%)를 강제동원 피해보상에 대한 것으로 산정(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 기준)한 바 있다.

 

둘째로 청구권협정 문언의 통상적 의미도 강제동원 위자료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봤다. 청구권협정 합의의사록(Ⅰ)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소위 8개 항목)이 포함되어있다고 명시했는데, 8개 항목 중 제5항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가 포함되어 있다. <별개의견2>는 청구권에 언급된 8개 항목의 제5항 ‘피징용 보상금’에 식민지배 불법을 전제로 한 강제동원 위자료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했다. 협상 체결경위를 보았을 때 ‘피징용 보상금’이 식민지배 적법성을 전제로 하는 보상만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양국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배상도 당연히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아서다. 또한 청구권협정 1조에 따라 일본이 제공한 자금이 2조의 권리문제 해결에 대한 대가인지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협상 체결경위를 보았을 때 자금이 권리문제 해결에 대한 보상의 성질을 가진다고 보았고, 따라서 일본이 제공한 자금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뿐만 아니라 <별개의견2>는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어있음을 전제로,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보상 등 후속조치를 취했다고 봤다.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1971년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과 1974년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 법을 제정하여 피징용사망자에 대한 신고 및 보상절차를 진행했다. 또한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도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에는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고 보았다.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불충분했다는 반성으로 2007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및 미수금을 지급하였다. 즉, <별개의견2>는 단지 ‘도의적 성격’ 이었다는 <다수의견>의 주장과 달리, 대한민국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장기간 보상 등의 후속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3) 판결에 대한 찬반

 

앞서 설명한 것처럼, 2018년 대법원판결의 <다수의견>은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2012년 대법원판결과 논지가 동일하다. 2012년 대법원판결 이후 제시된 찬반입장을 살펴보면서 2018년 대법원판결의 쟁점에 대한 이해를 풍부히 하고자 한다. 2012년 대법판결에 찬성하는 입장으로는 김창록과 반대하는 입장으로는 이근관의 주요논지를 살펴보겠다.

 

김창록은 2012년 대법원판결에 찬성하며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청구권협정에는 식민지배 불법성에 관한 권리문제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근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조약들에서는 ‘전쟁의 결과’라고 목적을 명시한 것과 달리, 청구권협정은 문언에서 대상이 된 ‘권리’의 원인에 대해 전혀 규정하지 않아서, 청구권협정에 식민지배 불법성에 관한 권리문제가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한일 양국 추후관행을 보아도 식민지배에 불법성을 전제로 한 권리문제는 배제되었다.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이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고, 일본 정부도 일관되게 식민지 지배에 대한 법적책임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창록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징용’과 ‘강제동원’의 개념을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이러한 구분은 2018년 대법원 <다수의견>이 원고들의 청구를 강제동원 위자료라고 규정하는 것과 유사한 논리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강제동원 위자료란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해 발생한 강제동원 피해배상으로, 식민지배를 합법으로 전제한 징용에 대한 보상과 다른 것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김창록은 ‘징용’은 일제의 <국민징용령>을 전제로 하는 개념으로, ‘강제동원’은 일제의 <국민징용령>의 효력을 부정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대일청구권요강 제5항의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은 일제의 <국민징용령>을 전제로 하는 ‘징용’을 원인으로 하는 권리들이고, 이 권리들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고 보아야 하지만, <국민징용령>의 규범적 효력을 부정하는 강제동원을 원인으로 하는 권리는 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고 그것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근관은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한 합의여부와 상관없이 청구권협정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2012년 대법원과 2018년 대법원의 <다수의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청구권협정이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아서 강제동원 위자료가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근관은 강제동원 피해배상이 청구권협정의 물적 대상이 되는지 여부는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 및 강제동원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여부가 아니라, 과연 한일 양국 정부가 재산 및 청구권 문제의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에 이 문제를 포함시킬 의사가 있었는지에 달렸다고 본다. 어떠한 문제와 관련하여 일방의 법적 책임 존부에 대해 쌍방의 의사가 합치되지 않는 경우에도 일방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기초 위에서 금전 등을 지급하고 당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주권국가들이 자신의 위엄을 중시하는 국제관계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1965년 청구권협정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한일 양국 간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기에 청구권협정에 권리해결의 원인을 명시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절충했다.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해 견해가 서로 다르지만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 양국과 양국국민들 간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대한 문제를 최종적이고도 완전한 해결에 합의한 것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합의의 존부와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은 논리적으로 절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식민지배 불법성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제동원 손해배상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3. 청구권협정과 개인청구권의 관계

 

1) <별개의견2> “외교보호권만 포기되었고 개인청구권은 존속한다.”

 

<별개의견2>는 청구권협정으로 한국의 외교보호권만 포기되었을 뿐 개인청구권은 존속하기 때문에, 원고들은 일본기업에게 소송을 통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 소멸에 관한 양국의 의사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어서다.

 

첫째로 청구권협정은 문언상 개인청구권 자체의 포기나 소멸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이 없다. 국가가 외국과 교섭에서 자국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일괄처리협정 방식을 채택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외교보호권을 넘어 개인청구권까지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려면, 적어도 해당조약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제14조(b)에서 “연합국은 모든 보상청구, 연합국과 그 국민의 배상청구 및 군의 점령비용에 관한 청구를 모두 포기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청구권협정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다”고 표현되었을 뿐 명시적으로 개인청구권에 대한 “포기”라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청구권협정 당시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보호권만 포기된다는 입장이었고 한국 역시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보이므로 일본과 한국은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단적으로 일본은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에서 한국인의 일본과 일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재산권조치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일본이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고 여겨 예방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봤다.

 

2) <반대의견> “외교보호권만이 아니라 개인청구권도 제약된다”

 

<별개의견2>는 청구권협정 문언 상 개인청구권 소멸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으며, 청구권협정으로 외교보호권만 포기된다는 일본의 입장에 한국 역시 합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청구권협정 문언의 통상적 의미가 외교보호권만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고, 외교보호권만 포기된다는 일본과 다르게 한국은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제약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양국이 외교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는 않더라도 제약된다고 해석했다.

 

첫째로 청구권협정 문언의 통상적 의미를 보았을 때 청구권 관련 문제가 체약국 사이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도 해결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지 국가들이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청구권협정 제2조 1은 “양국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둘째로 대한민국과 일본이 외교보호권만 포기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일본은 정부가 자국 국민에 대한 보상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하였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청구권협정 당시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적어도 그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한국 정부는 협상과정 처음부터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을 제시하면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그 분배는 국내법상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청구권협정 체결 후 청구권자금법, 청구권신고법, 청구권보상법, 2007년 및 2010년 희생자지원 법 등을 제정하여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2010년 법제정 이후 2016년까지 지급된 위로금 등의 내역은, 사망 행방불명 위로금 3601억 원, 부상·장해 위로금 1022억 원, 미수금지원금 522억 원, 의료지원금 5500억 원 가량이다. 이를 종합하면 청구권협정 당시 한국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적어도 그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므로 청구권협정 당시 양국의 의사가 외교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데 일치하고 있던 것도 아니라고 해석한 것이다.

 

셋째로 청구권협정은 대한민국 및 그 국민의 청구권 등에 대한 보상을 일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일괄처리협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이 외교보호권만 포기하기로 합의한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일괄처리협정은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 등을 포함한 보상 문제를 일괄타결하는 방식이므로, 일괄처리협정에 의해 국가가 상대국으로부터 보상이나 배상을 받았다면 자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는 것으로 처리된다. 그 자금이 실제 피해국민에 대한 보상용도로 사용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넷째로 <반대의견>은 <별개의견2>의 지적처럼 청구권협정은 문언 상 개인청구권 자체의 포기나 소멸을 직접 정하고 있지는 않기에 개인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러나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訴)로써 권리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 이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외교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했다면 보상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3) 판결에 대한 찬반

 

개인청구권 쟁점과 관련해서는 2018년 <다수의견>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외교보호권만 포기되었다는 2012년 대법판결의 예비적 주장과 2018년 <별개의견2>가 입장이 같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2012년 대법원판결 이후 찬반입장을 제시한 김창록과 이근관의 개인청구권 관련 쟁점을 살펴보겠다.

 

김창록은 청구권협정 문언에는 개인청구권을 ‘포기’ 또는 ‘소멸’ 한다는 표현이 없으며, 한국과 일본 양국의 협정 이후 추후 관행을 보아도 외교보호권만 포기했다고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별개의견2>와 동일한 입장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일관되게 외교보호권만 포기되었을 뿐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임을 설명한다. 단적으로 1994년 중의원 개각위원회에서 타케우치 외무대신관방 심의관은, “일한 양국민의 재산청구권 문제에 관해서는, 양국이 국가로서 가지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한 것입니다. 협정상의 취급으로서는, 일한협정의 규정 그 자체에 의해 개인의 재산 내지 청구권을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직접 소멸시켰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종래부터 말씀드리고 있는 바입니다”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인권의 차원에서 고려한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들의 보상청구를 회피하기 위한 취지이지다. 즉, 일본 정부가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여 일본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킬 경우 일본헌법 29조에 의한 국가보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의도가 무엇이건 외교보호권 한정 소멸이라는 입장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일본의 대응이 변화하는데, 2007년 니시마츠 건설 중국인 강제노동 피해 소송에서 최고재판소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틀에서 비추어 볼 때, 청구권의 포기란, 청구권을 실체적으로 소멸시키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청구권에 기초하여 재판상 소구[소송을 청구]할 권능을 상실시키는 데 머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다”라고 판결했다. 즉, ‘소권 없는 권리’라는 의미로, 중국인 강제노동 노동자들이 법정에서 소송을 통해서 구제받을 수 없지만, 니시마츠 건설이 자발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의 법적인 근거도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의 <반대의견>과 동일한 논지라 볼 수 있다.

 

김창록은 비록 일본의 입장이 ‘외교보호권 한정 소멸’에서 ‘소권 없는 권리’로 변했지만 기본적인 전제는 동일하게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 정부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개인청구권에 대한 입장이 모호했으나 이후 외교보호권 한정 소멸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기 때문에, 한일 양국 간의 개인청구권 존속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고 해석한다.

 

한편 이근관은 협정 문언을 강제동원 피해보상이 해결되었다고 해석되며 협정체결 당시 개인청구권 소멸에 대한 양국 간의 의사합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외교적 보호에 관한 국제적 및 국내적 차원의 실행에 기초한 해석론은 현재로서는 일괄보상협정 체결 및 그에 따른 개인청구권의 소멸을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청구권협정 역시 일괄보상협정으로 규정한다.

 

한국과 일본의 청구권협정에서 개인청구권 소멸에 대한 의사 합치가 있다는 주장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은 일관되게 일괄보상협정 방식으로 국제적인 차원에서 일본과 문제를 해결한 후, 제공받은 자금의 분배는 전적으로 국내법상의 문제라는 인식을 견지했다. 그리고 일본 역시 외교보호권 한정설을 통해 자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존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회적으로 소멸시키려고 했다고 해석한다. 당시 일본은 헌법상 보상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청구권협정이 직접 개인청구권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추가조치로 소멸된다는 방식을 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청구권협정 제2조 3항에 대한 일본 측 공식 해설책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헌법과 관련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 제2조 3에 의해 한국이 취한 조치의 대상이 되는 일본 국민의 사유재산권이 그 조치의 결과 소멸하는 것으로 되는 때에는 그 재산권의 소멸은 이 협정에 의해 직접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 정부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되어 이것을 달리 말하면 그 재산권의 처리는 일본국의 법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의 법률의 적용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 제 29조 3항의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사료된다.” 즉,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권리를 협정으로 직접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추가조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국민에게 보상의무가 없다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일본의 한국에 대한 권리는 1945년 미군정법령 제 33호와 1948년 재산 및 재정에 관한 최초 협정 등으로 이미 실질적으로 소멸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자국민에 대한 보상문제 회피를 위해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지만 국가별 조치를 통해 소멸된다는 우회적 방식을 거쳐 자국민의 재산 및 청구권 소멸에 합의하였다. 따라서 개인청구권 소멸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의사합치가 있다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4. 소결

 

2018년 대법원판결은 <다수의견>에 대하여 <별개의견2><반대의견>이 논지를 반박하고 있으며,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으므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별개의견2>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이 없어도 청구권협정 문언과 회담과정을 해석하면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협상 체결경위를 보았을 때 ‘피징용 보상금’이 식민지배 적법성을 전제로 하는 보상만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양국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배상도 당연히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한 합의여부와 상관없이 청구권협정 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개인청구권 쟁점에 대해서는 <다수의견>은 의견을 밝히고 있지 않은데, 식민지배 불법성을 부정하고 있으니 강제동원 피해보상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같은 이유로 개인청구권뿐 아니라 외교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는 2012년 파기환송판결에 대한 지지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별개의견2>는 강제동원 피해보상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만 외교보호권만 소멸되었을 뿐 개인청구권은 존속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외교보호권만 포기된다는 입장이었고 한국 정부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으니 사실상 외교보호권만 포기하는 데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외교보호권만 포기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한국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적어도 그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일련의 보상조치를 실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법판결에 대한 반대 입장인 이근관은 한국과 일본의 청구권협정에서 개인청구권 소멸에 대한 의사 합치가 있다는 주장한다. 한국만이 아니라 외교보호권 한정설을 주장하던 일본 역시 자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존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조치를 통해 우회적으로 소멸시키려고 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2018년 대법원판결에서조차 쟁점이 상당한데, 여기서는 다루지 않은 외국판결에 대한 승인 여부, 동일한 법인인지 여부, 소멸시효 등 녹록치 않은 쟁점들도 산적해 있어, 국제적 중재에 놓였을 때 반드시 유리하다고 전망하기 어려울 수 있다.

 

 

5.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현실과 대법원판결

 

1) 1965년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현실

 

징용피해 보상에 대해 청구권협정 문언에 포함하여 해결되었다고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협상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가적 차원으로 요구하여 분배는 국내차원의 문제라고 했음에도, 대법원판결은 식민지배 불법을 전제로 하지 않아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위자료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재정적·민사적 문제와 식민지배 배상의 문제가 있는데, 1965년 체결된 청구권협정에서는 식민지배 배상이 배제되었으므로 한국 정부 또는 국민이 오늘날 식민지배와 관련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일본에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1965년 한국은 왜 식민지배 배상청구 없이 민사적 문제만으로 청구권협정을 맺었을까. 재정적·민사적 문제와 식민지배 배상에 대해 각각 청구할 수 있었지만, 우선 민사문제만 다루기로 한 것인가. 대법원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이 일본에 모두 청구할 수 있는 권리였지만 1965년에 미처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시일이 지나 다시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만약 그럼에도 주장했다면 재정·민사적 문제마저 협상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었다. 즉, 일본과 민사 문제만 협상하거나 식민지배 배상도 주장하면서 협상을 무산시키는 선택지밖에 없었던 것이다.

 

1951년 9월 8일,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서명국은 총 48개국이다.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볼리비아, 브라질, 캄보디아, 캐나다, 실론(스리랑카),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에콰도르, 이집트, 엘살바도르,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콰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라오스, 레바논, 라이베리아, 룩셈부르크, 멕시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니콰라과, 노르웨이, 파키스탄,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 시리아, 터키, 영국, 미국,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그리고 일본.) 남한과 북한은 조약에 참여하여 서명하거나, 독립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한국이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였던 이유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동아시아 질서에서 기인한다. 즉,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에 식민지배 배상을 요구할 수 없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징벌하기보다 빠르게 재건하여 동아시아 반공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고,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한다면 일본의 배상부담이 커진다고 판단해서다. 뿐만 아니라 한국도 한국전쟁을 경유하면서 반공안보와 경제발전이 사활적 과제였으므로 과거사 청산보다 경제지원을 우선시하였다.

 

결국 한국은 일본과 교섭에서 재정적·민사적 문제를 다루게 되었지만 최대한 식민지배 배상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는 별도의 교섭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입장이므로 한국과의 교섭에서 최대한 식민지배 배상의 의미를 퇴색시키고자 노력했다. 양국의 이러한 입장의 대립은 교섭과정 전반에서 확인된다.

 

2) 한일회담과정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1951년 9월 체결되고 난 이후에 1951년 10월 한국과 일본의 예비회담이 열리게 되었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청구권협정이 체결되기까지 14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일 간 협상의 틀을 형성한 것은 이승만시대의 교섭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식민지 시대에 일어난 문제의 처리’를 요구하기는 했으나 ‘식민지 지배 자체에 대한 청산’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한국 정부는 기본관계 문제 중 구조약(한일병합조약) 무효 확인을 주장했지만 일본의 강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연관 짓지 않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는 한국 정부의 역사인식 부족 탓이라기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획득된 한국의 청구권은 일본의 불법적인 한국지배에 기초할 수 없었던 구조적 한계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의 대표적 상징은 일본의 “역청구권” 주장이었다. 제4차 한일회담 재개까지의 기나긴 교섭은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일본의 역청구권 포기를 위한 교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청구권이란 전후 한국에 남겨진 일본인 재산을 미군정이 한국 정부에 이양했는데,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승전국으로 인정되지 못한 한국이 적산(敵産)으로 일본인 재산을 취득할 권리가 없다며 재산권을 주장한 것으로, 한국의 요구를 최소화하기 위한 교섭전술이었다.

 

결국 교섭이 중단되고 미국에게 중재를 요청하게 되면서 미국은 두 번의 각서를 전달했다. 그 중 두 번째로 전달된 1957년 미 국무성 각서는 일본의 대한청구권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 재산의 취득에 따라서 한국의 대일청구권은 어느 정도 충족되었음을, 또 미국이 그 구체적인 관련성에 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그 결정에 관해서는 사실과 법에 따라서 양자 간에서만 진행되어야 함을 문서로서 상세히 규정했다. 1957년 각서의 내용은 청구액을 최대화하고 싶던 한국에게 교섭에서 부담으로 작용했고 다른 한편 일본은 역청구권을 포기하면서 교섭이 재개되었다.

 

이후 장면 정부 시기 교섭에서도 한국의 대일청구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양국은 평행선을 달렸다. 일본은 재한일본인재산의 포기를 감안하여 대일8항목 요구가 얼마나 상쇄되는가가 이 교섭의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한국은 대일청구는 일본의 오랜 지배에 따른 심각한 피해와 고통의 대가를 요구하는 막대한 것이나 일본의 재한자산 청구권 포기를 고려하여 당초의 대일청구 대부분을 포기한 것이며 대일8항목은 이를 감안해서 제출된 것이므로 상쇄 근거는 없음을 주장했다.

 

이러한 양국의 공방은 일본에 의한 한국지배의 합법성 여부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누가 맞는지 결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단적으로 8항목 요구 중에서 제1항인 지금(地金), 지은(地銀) 반환토의에서도 역시 같은 대립을 반복했다. 한국은 조선은행의 지금, 지은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니 반환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 근거는 당시 법률에 의한 합법매매라도 통화발행 준비를 위한 금은을 일본이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식민지 통치라 가능했다는 논리다. 한편 일본이 반환을 거부한 이유는 조선은행법에 따른 합법적 경제거래이며 일본 본토규정과 동일한 것이기에 차별정책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대일 요구가 어디까지나 민사적 청구권이지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과거청산으로서 이루어진다는 합의를 얻어내지 못한 채 진행되어야 했던 한일회담의 구조적 성격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여 경제적 연계를 굳건히 함으로써 남한의 반공체제를 확보하고자 했다. 한국은 교섭에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필요한 액수를 확보해야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대기전략을 취하면서 한국 요구액수를 줄이는 것과 청구권 명목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일본은 한국이 요구하는 액수와 일본이 제시하는 액수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한국이 청구권 명목을 포기하고 한국의 독립축하와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무상, 유상에 의한 경제원조 방식을 채용하라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성은 한국 정부에게 청구권 명목에 고집부리지 말고 일본의 경제원조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만약 수락하지 않으면 미국의 경제원조를 재고하겠다고 압박했다.

 

3) 대법원판결의 의미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은 기본협약과 청구권협정에서 식민지배 성격을 불법으로, 제공받은 자금은 식민지배 배상의 성격이 포함되는 것으로 의미부여하고자 했다. 반면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고 제공하는 자금 역시 어떤 대가가 아니라 경제협력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성격을 일본의 주장대로 규정하면서, 식민지배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이 배제되었으니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과 일본의 입장대립으로 모호하게 절충되면서 발생한 청구권협정의 허점을 일본의 주장 그대로 돌려주면서 공격하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을 청구권협정에 대한 법리해석의 ‘통쾌한 일격’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국가 간 조약이나 협정이란 당시 국제관계의 반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청구권협정의 성격이 일본 제국주의를 응징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북아 반공전선을 위해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기 데에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한국은 과거사 청산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역사적 현실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역사에 대한 상이한 이해라는 문제를 넘어 곧바로 국가 간의 현실적 문제를 야기한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1965년 당시 협정을 체결하면서 사실상 식민지배 배상 청구가 불가능해 포기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는데, 오늘날 다시 요구한다면 한국이 사실상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때문에 대법판결 <반대의견>은 청구권협정의 역사적 평가가 여전히 논란이 있으나, 그것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좋든 싫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수의견>이 청구권협정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입장으로 보인다.

 

대법원판결은 단순히 <별개의견2>처럼 개인청구권을 근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청구권협정이 식민지배 불법성을 전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가 포함되지 않았고 따라서 청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식민지배를 합법으로 한다면 발생하지 않을 피해자의 위자료청구권이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밀고가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이었으므로 그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배상의무가 있고 한국 정부는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예를 들어 한일병합 100년이었던 2010년에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처럼 반성과 사죄의 뜻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선다. 물론 대법원의 입장을 한국 정부가 실행에 옮기는 것은 판결과 별개의 문제이지만, 대법판결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열어줬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결은 청구권협정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성격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식민지배 불법성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의 주장만으로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고 일본이 인정할리 없으므로 국제적 압력이 필요하다. 즉, 대법원판결대로 청구권협정은 재정적·민사적 문제만 다뤘으니, 제외되었던 식민지배 배상 문제를 청구할 수 있으려면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대한민국이 주장한다고 해서 국제관계에서 자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전후보상 문제를 국제적으로 결정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도 한국의 의사와 달리 식민지배를 불법이라 규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1951년에 불가능했던 일이 2019년에 와서 가능해진 조건은 무엇인지, 대법원판결로 충분한지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본고에서 대법판결의 의미와 역사적 현실을 살핀 것은 청구권협정과 체계가 정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식민지배로 고통 받은 과거에 대한 분노와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염원만으로 현실적 조건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965년 한일기본협약과 청구권협정은 한국이 공산주의에 맞서 미국의 지원 아래 일본과 자본주의 발전 동맹을 맺은 것을 뜻한다. 국가 간 협정은 체결 당시 국가 간 세력구도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그것에 대한 비판 역시 국가 간 관계에 대한 비판과 변화시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1965년 협정 비판은 한미일 자본주의 체계와 군사동맹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1965년 체제를 넘어서는 것은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변혁하고 반전평화를 지향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진지하게 한국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군사동맹을 넘 어설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이 과거에 비해 크게 국력이 강해졌고 장차 북한과 교류를 통해 더욱 성장할 것이니 일본에게 과거사 청산을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일본 수입품을 기술개발을 통해 넘어서고, 북한과 교류를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전혀 진지한 태도도 아니거니와 가능하지도 않다. 게다가 미국과 일본은 한미일 경제군사동맹을 흔든다고 경고하고 있으나, 문재인 정부는 그것에 대항할 의지도 실력도 없으면서 무책임하게 반일감정만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역사와 현실조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한 행보를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1965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출발지점이 될 것이다.

 

주제어
정치 반전평화 국제
태그
청구권협정, 반일 민족주의, 한일갈등, 강제동원 대법원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