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1999.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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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묻어나는 운동을 한다는 게 중요하죠."

최이숙 | 출판편집팀
<한겨레리빙 노조 교육선전부장 권정희 회원을 만났습니다>


<b>사람들...</b>

온나라가 신창원 열기에 휩싸여 있던 날, 우리는 홍대 앞 작은 술집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한겨레 리빙 노조 교육선전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정희 회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달여간 지속되는 싸움으로 인해서 지친 탓일까? 아니면 더위탓인가? 약간의 핼쓱해진 얼굴로 나타난 그녀는 처음 시작하는 '진보를 위한 접속' 회원취재의 제안을 받았을때 짐짓 놀랐다고 한다. 사회진보연대에 지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을 대상으로 한 글이 쓰인다는 것이 약간은 당혹스러웠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겨레 리빙, 그리고 권회원의 활동에 대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b>"정희야, 네가 하면 잘할것 같아."</b>

"5월 3일 한겨레 이사회에서 한겨레 리빙에 대한 지원을 5월 10일부터 그만둔다고 결정했어요. 회사에는 그 다음날 통보되었지요. 그리고 그 주말에 28명의 사람들이 모여 노조를 꾸리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나서 처음 총회를 하던 날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분위기가 별로 심각하지 않았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겨레가 매각자를 세워놓고 나서 통보한 줄로 생각했었거든요. 총회 자리에서도 매각이 끝날때까지는 '우리 그냥 있자'라고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법적으로 노조원이 될 수 없는 일용직(텔레마케터 사원과 배포사원)이 노조원의 1/3을 차지하고 최소한 고용승계 등의 기본적인 요구조건은 있어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을 하라고 해서 손을 들고 얘기를 했지요. 질문에 대한 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채, 팀별로 대의원을 뽑자고 했어요.
그런식으로 대의원 대회는 넘어가고 우리팀의 대의원을 뽑는데 그 발언하나 때문인지 사람들이 '정희야 네가 하면 잘할 거 같애' 했죠. '그러지 뭐' 그렇게 해서 처음 노조 활동을 시작한 거였어요. 그러다가 매각 협상이 결렬되고,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고 급박해 지니까 철야농성은 시작되었고, 선전물도 늘어났습니다.
철농장에서 노조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글씨 쓸 사람있으면 도와달라'고 노조간부가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글씨 쓰는 게 더 재미있을 거 같아 '저요' 하고 나갔지요." 대학에서 권회원을 알던 사람들은 선전활동에 일가견이 있는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학교에서 5년동안 하던 버릇이 어디가겠냐면서 노조에서 교육선전부장이 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날 일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학교다닐 때 뭐했냐'고 대뜸 물었지요. 그 다음부터는 대자보, 플랭카드 등 선전과 관련된 모든 일이 나에게 떨어지더라구요. 그리고 2기 노조 출범하면서 교육선전부장이 되었어요."


<b>새로이 사람들을 바라보게 됩니다</b>

처음 시작하는 노동운동, 학교를 떠난 이후 사회에 나가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것에 대한 길을 얻어 이전의 답답함은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한겨레 리빙의 갑작스러운 매각으로 운좋게(?) 시작한 노동운동이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처음 시작하는 노조에서 자료가 있을리는 만무하고 모두 권회원과 함께 처음 시작하는 운동이어서 어떻게 투쟁을 이끌어갈지, 사람들을 만나가야 할지도 난망한 일이었다.
"교육선전부장이 되어서 단체협상안을 짜야하는 데 너무나 막막했어요. 이렇게 저렇게 사회단체에 있는 선배, 친구,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안이 무엇이고 어떻게 짜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정보를 얻어냈지요.
하긴 이런 일은 어쩌면 작은 일일지도 몰라요. 학교 다닐 때보다 생활 속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요. 편집부며 일용직인 배포부며 부서가 워낙 일하는 방식이 틀리니까 투쟁일정도 잡기 힘들어요. 게다가 급여체계도 다르고 날짜도 다르고 자기부서 외에는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점점 일이 손에 익어간다는 말을 하면서 권회원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 총회를 할 때 '임을 위한 행진곡' '동지가' '철의 노동자' 악보를 나누어주는데,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것이 가지각색이었어요. 교회성가대 하던 한 언니는 소프라노로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러던 사람들이 철농을 하고 싸움을 하면서 이제는 노래도 다 외우고 투쟁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게 하고 있어요. 어설프게 구호를 외치던 친구가 이제는 저보다도 구호를 더 잘 하는 모습, 그리고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한사람의 활동가로 단련되어갈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전에 내가 무슨 근거로 그들을 재단하였나 라는 반성도 들었어요. 삶에 기반을 둔 운동의 힘이 저런 거구나 라고 저절로 깨닫게 되더라구요."


<b>한겨레의 노동자 죽이기</b>

2달여간의 투쟁 속에서 한겨레 리빙의 투쟁은 처음 '한겨레 리빙의 정상화'에서 '체불임금 지급', 그리고 현재 '한겨레 신문 불매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진보적 정론지라고 알려진 한겨레 신문에 대한 불매운동을, 다른 곳도 아니고 왜 노조에서 시작한 것일까?
"작년에 한겨레 리빙이 만들어졌을 때, 그 경영진은 한겨레 신문사에서 내려온 간부들로 구성되었어요. 출발부터 경영에 대한 체계는 엉망이었지요. 하다못해 오후에 지점 발령을 받은 사람이 다음날 아침 다른 지점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부실경영의 원인을 찾자면 한겨레 리빙의 발간을 결정하고 사원을 뽑고 경영을 한 한겨레 리빙 경영진에 있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매각 발표가 나기 전인 지난 3월과 4월 한겨레 신문, 한겨레 21이나 다른 한겨레 계열사로 발령을 받았어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퇴직금 다 받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매각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평사원들만이 지금 당하고 있는 꼴이죠. 처음에는 아까 이야기했듯이 한겨레에서 적어도 매각자는 세워놓고 간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니…"
현재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1/3정도는 입사당시 '한겨레'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을 믿고 들어왔다고 한다. 권씨도 한겨레 신문 및 한겨레 재단이 주는 신뢰감 때문에 98년 3월 한겨레 리빙에 입사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부실경영으로 인한 한겨레 리빙의 매각소식은 이들에게 씁쓸함과 배반감을 안겨주었다.
"한겨레 쪽에서는 '매각계약이 끝났으니 자신들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해요. 하지만 법적 책임이 중요한가요. 한 무가지 회사에서 매각협상에 나섰을 때, '거기 가서 일하려면 나 안 가'라고 했던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한겨레가 그렇게 욕하는 재벌처럼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하고 부실경영에 책임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니 그로 인한 상처는 너무나도 커요. 게다가 우리의 투쟁을 알린 타신문 기사도 각종 로비를 통해 공개하지 않는 그들의 작태는…"
소주를 한잔씩 들이켰다. 한겨레 리빙 사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유인물을 나누어주면서, 그리고 통신에 이리저리 상황을 알리는 글을 올리고, '한겨레 불매 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을 알리면서도 그 씁쓸함은 계속되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진보적'이라고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주 신문이자 유일한 진보정론지가 그 성격을 잃어버린 채, 반노동적인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남다른 고뇌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주는데 주는 사람도 그렇고, 받는 사람도 그렇고 서로 씁쓸해 했어요. 얼마 전 통신으로 독자게시판에 이리저리 글을 올리는 데, 차마 조선일보에는 글을 올리지 못하겠더라구요. .'나도 명색이 운동하는 사람인데,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싶었어요. 꼭 내 얼굴에 침뱉는 거 같은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라구요. 한겨레 불매운동도 그랬어요. 정말 하기 싫었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더라구요. 하지만 어려움도 많아요.
한겨레가 아무리 어설프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잘 실어주는 일간지이다 보니까 진보적 단체 또는 주변의 사람들이 '한겨레 나쁜 건 다 알겠는데, 그럼 한겨레 말고 다른 대안 있나요?' 또는 '그럼 뭘 보죠?'라고 물을 때, 너무나 답답해요. 뭐라고 명확하게 해줄만한 답이 없거든요. '아주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한 2달만 봐주지 말아달라는 이야기에요'라고만 하죠."


<b>생활이 묻어나는 운동을 한다는 게 중요해요</b>

2달째 급여가 없는 생활 속에서 부모님이 가끔 물으신다. 다른 데 이력서 내고 취직하면 안되느냐고. 그러면 권회원은 '억울해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답한다. 열심히 삶을 꾸려가는 회원과의 첫 만남이니만큼 사회진보연대의 그간의 활동에 대한 생각도 듣고싶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노조 활동을 하면서 생활이 묻어나는 운동을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요. 사회진보연대가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오긴 했지만, 회원들은 잘 모르거든요. 그것이 단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생활이 그러하니까요.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회원들과 좀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도 만들고 활동도 모색했으면 좋겠어요. 또 저같이 처음 노조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실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기도 하구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그리고 소주가 거의 바닥이 날 즈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문제를 이야기했다.
'2차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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