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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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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더불어 살/아/내/기

강국주 | 회원
구멍의 공에 제일 깊게 사유한 최초의 인물은 노자이다. 그는 항아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항아리의 텅 빈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빈곳이 있어야 채울 마음이 생겨난다.
공은 행위, 욕망의 행위의 밑바닥이다. 장자는 그것을 더 논리화해서, '구멍을 뚫으면 혼돈은 죽는다'라고 말한다. 그것을 뒤집으면, 구멍이 있으면 혼돈은 없다. 그 구멍은 질서, 사회 생활의 기본틀이다.
구멍이 없는 존재는 완전자-신·악마·자연……-뿐이다.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인간적이다. 인간은 구멍의 모음이다. 채워도 채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구멍들……인도의 피리 소리에는 원초적인 공허가 있다.
절망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며, 그렇다고 수치도 아닌, 쉰 듯하면서도, 텅 비어 있고, 텅 비어 있으면서도 공허로 꽉 차 있는 것 같은 묘한 소리이다. 저 광활한 아시아의 초원에서, 아무리 외쳐도 반향이 없는, 꼬리가 사라져 없어져버리는, 그래서 공 속으로 돌아가는(/들어가는) 소리들의 반향이 그 소리에는 잠겨 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공허 속으로의 긴장된 침잠이 있다……
뭐랄까 어둠 속에서 오르페가 분 피리 소리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 자기 존재가 텅 빈소리로 바뀌는 기묘한 체험.<font color="#0066cc"> 김현,<<행복한 책읽기>>, 문학과지성사, 1992, 71면과 204면.</font>


1
道家와 나.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편하게 쓸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만만치 않은 중압감이 나를 억누르고. 그래서인지 괜히 잘 쓰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 솟구치는 것. 그 욕구에 비례해 입은 막혀 버리고...

잠시 손을 놓고 예전에 보던 장일순 선생<font color="#0066cc"><각주1: 无爲堂이라는 호를 가진 장일순 선생은 우리나라 생태운동(선생의 표현이라면 '생명운동')의 아버지뻘 되는 분이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며 그보다 더 큰 사상적 깊이를 가졌던 분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아마 생전의 선생이 글쓰고 말하는 것을 꽤 피했기 때문일 게다. 다행스럽게도 선생을 추모하는 몇몇 이들이 그의 부스러기 말과 글을 모아 <<나락 한알 속의 우주>>(녹색평론사, 1997)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 그 생각의 단편이나마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현주 목사와의 <道德經>에 대한 대화/가르침이 <<无爲堂 장일순의 老子 이야기>>(다산글방, 1993)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어 道家에 대한 선생의 이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도가 이해에 대한 선생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나로서는 이 글 마지막에 선생의 글 한 조각이나마 옮겨 볼 수 있었으면 한다.></font>의 글을 읽어본다.
선생의 말-글을 읽으면 참으로 가슴을 찌르고 온몸을 부르르 떨리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말-글을 하려면 모름지기 그래야 하리라. 쓰레기 같은 말-글의 홍수. 생태학적 삶이란 결국 마음을 비우는 일에서 시작하는 것. 그 자리에서 이 글도 시작할 수 있을 터. 황지우였던가, '길은 가면 있다'라고 말한 이가. 그렇다. 가다 보면 길은 스스로 드리워지는 것. 하여 道-길 찾기는 무장무장 가는 하나의 과정일 따름이다.


2
나의 사적인 얘기부터 말을 풀어보자. 92년에 대학을 들어왔다가 작년에 다시 편입을 하여 여태 학부 생활을 하고 있다. 문학이라는 것, 혹자는 삶이 곧 문학 아니겠냐고 말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삶의 자리와 문학의 자리는 건널 수 없는 거리로 다가오는 것. 계속 문학을 부여잡는다면 계속되는 화두가 아닐지. 사실 삶이 운동이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문학이란 재미로 해 보거나 여가로 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본질적(?)인 뭔가를 가지지는 않는, 한갓 소일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 문학이 삶의 운동처럼 세상을, 나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내가 문학을 부여잡는 마지막 이유가 아닐지.

갑자기 운동과 문학에 관한 말을 하는 저의는 무언가. 학생운동을 했다는 것을 표나게 내세우고 싶어서? 사실 겉으로 하는 척은 했지만, 그래서 배운 도적질이라곤 그런 종류밖에 없지만, 늘 그 공간에서도 중심이 되진 못하는 그런 부류의 존재였다. '절대'라는 것, '과학'이라는 것에 대해 딴지 걸고 잘 믿지 못하는 것. 주류라고 말해지는 것들은 잘 따져보지도 않고 기피하기. 하여 변방에서 부유하는 삶. 이를 들뢰즈/가타리는 유목민적 삶이라 하여 기존 체제를 깨뜨리는 유력한 수단의 운동방식이라 말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원래 성격이 그랬는지 아니면 살아온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의 내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라면 단연코 예수를 접하게 된 일이겠는데, 그를 통해 '예전의 나는 죽고 지금의 내가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사울 이었던 전도자 바울이 그랬던가. 소설가 김승옥이 강연을 하러 학교에 왔다고 하는데, 신=절대를 이미 맛본 사람이 너절한 문학 나부랭이를 할 수는 없는 일. 그가 더 이상 문학적 글쓰기를 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일 게다. 그런데 그는 왜 왔던 것일까? 그가 만난 신=절대를 자랑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굳이 김승옥일 필요가 없을 텐데. 요즘의 그의 행보를 보면 과거에 버린(?) 문학적 명성을 이용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혹이 일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이 물음에는 할 말이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조용히(?) 살고 있는 그를 문단의 광장으로 끄집어 낸 일단의 문인들-출판사를 포함-에 대한 불만일 게다. 억지 춘향식으로 끌려 나온 그의 모습이 한편으론 애처롭다. 이 또한 나의 자만일 터). 하여 지금도 종교를 물으면 두말 않고 "기독교요"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교회를 나가는 것은 아닌데, 아마 남한에 존재하는 뭇 교회들이 신을 팔아 제 뱃속 챙기는 꼴이 보기 싫었기 때문인지도.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데 굳이 교회를 갈 필요는 없는 것. 함석헌 선생이나 장일순 선생에게 끌렸던 것도 이 때문. 그런데, 내가 볼 때 기독교든 불교든 모두 그 근본 이치는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도가 역시 마찬가지일 터. 즉 만물에 일관하는 하나의 道(진리)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를 '절대적 상대주의는 아니다'고 여기는 것. 굳이 말하자면 '상대적 절대주의자'라고 할까? 여하튼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道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고 길러낼 것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히는데, 여기서부터 복잡해지고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 아마 이 글에서의, 그리고 계속 짊어질 나의 물음은 여기에 있는 것.
지금 우리는 모순 투성이 현실(道家라면 자연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 할 것이고, 마르크스주의라면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필연적 모순이라 할) 속에서 살아가는데, 이를 어떻게 정화시킬 것인가? 아마 도가와 관련한 의문 가운데 가장 급한 것은 이것 아닐지.
곧 도가의 실천적 의의(효과?)는 무엇인가라는 물음. 당장 파업을 할 수밖에 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이들은 평생 밑바닥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는데,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가의 실천적 지침은 무엇이냐고 묻는 일. 익히 알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우 그것은 혁명을 통해 가능하고 이러이러한 일을 준비하고, 그래서 여차여차하면 그날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해 놓고 있는데, 도가에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들이 老莊의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랐던 것.
물론 그런 식의 생각(혁명을 해야 한다) 자체가, 혹은, 가진 자 못 가진 자 모두가 자연의 道에서 멀어졌기에 그 양자간의 투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면 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모두가 다 바뀌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할...
말을 하다 보니 흥분했나 보다. 이럴 땐 쉬어 가는 게 올바른 처방. 담배 한 대 피고 돌이켜 볼 일.

왜 사는가를 묻는 물음 앞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無化되고 만다. 요즘 나는 왜 사는가라는 물음을 한 편에 조용히 놓아두었다. 그 물음에는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나름의 답안을 만들어가려 애쓰고 있다. 도가에서 말하는 삶, 그리고 예수가 몸으로 보여주었던 삶, 혹은 불가에서 말하는 삶 등은 모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답안이다. 그것을 보다 현대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 마르크스의 언명이 아닐 것인지.
요즘 들어 相剋을 넘는 相生의 철학을 많이 얘기한다. 하지만 相生은 여태껏 짓눌려 온 자들에 의해 얘기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무언가로 다가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 때려 온 놈이 "이제 서로 화해하자"고 말하는 건 분명 우스운 놀음 아닌가. 마르크스와 도가는 접합 지점이 있을까? 그리고 내 삶의 운동과 문학은 화해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 앞에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오두마니 서 있다. 당장은 열심히 내 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따름이라는 것으로 자위하지만 그것이 관성이 되어 버리면, 그래서 현실에 함몰되어 버린다면...

쓸데없는 주정부리만 늘어놓은 듯하다. 예수를 알았을 때, <<전태일평전>>(초판본)과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을 때, 그리고 나와 가장 친했던 벗이 죽었을 때 삶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의지를 느꼈었다. 벗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生은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될,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상식적인 가르침을 던져 주었다. 사는 일이 죽는 일보다 더 어렵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은 접어두고 살아내기.
'세상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내가 곧 우주며 하늘이다. 나락 한 알속에 우주가 있는 것이다. <font color="#0066cc"><각주2: "생명의 진수가 물질 하나에 다 있다 이 말이야. 그래서 성서에도 하느님은 無所不在하시다는 말이 있지. 또 불경에서는 뭐라고 했느냐. 터럭 하나 속에도 헤일 수 없는 부처님이 계시다고 했어요. (…) 앞에서 보셨지만 나락 한알 속에도, 아주 작다고 하는 머리털 하나 속에도 우주의 존재가 내포되어 있다 그 말이에요. 불교의 화엄경 같은 데서 보면 '一微塵中 含十方 十方日宇宙' 조그마한 티끌 안에 우주가 있느니라 하는 말씀이에요.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나락 한알 속에 우주가 있다>>, 장일순, 녹색평론사, 1997, 66-67면)></font>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야말로 우주가 자기 속에 있음을 體認한 존재라 여겼던 것, 그래서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온 세상이라' 말할 수 있었던 것. 그렇다면? 모든 것은 한 道로 통하는 게 아닌가. 貫道. 우리가 할 일은 그것. 道를 꿰는 일. 이미 천국은 내 마음속에 도래해 있는 것. 그 천국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내 안에 있는 하늘을, 우주를 느끼지 못하기에 이 세상이 지옥처럼 보이는 일.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뀔 터. 하여 세상을 바꾸자는 말 앞에 선행하는 것이 나를 바꾸자는 말.


3
蛇足-뱀다리로 기어가는 아픈 배밀이

부끄러움, 혹은 후회. 쓰고 보니 술 취해서나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술이 깬 이후에 내가 뱉어 놓은 토사물을 볼 때의 애잔함. 그러나 하고 나면 시원하기는 한 그런 토악질처럼 말-글 또한 그런 것. 이왕 토한 것, 누런 위액으로 범벅된 똥물까지 게워낼 때까지 가 보자, 고통스럽게.
5월이면 생각나는 이들이 많다. 광주, 그리고 그 광주와 오버랩 되는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의 미치광이 소녀. 그 죽음의 기록들, 광란의 잔치들. 이를 황지우는 '華嚴광주'라 했던가. 피와 살이 타는 그 매캐한 연기 속에서도 시인은 부처를 볼 수 있었던가!
...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기억되지 않는 죽음이 있다, 박혜정이라고,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젊은 영혼. 그의 이름 앞에 새겨진 '故'라는 단어 하나만을 우리 가슴에 남긴 채...


험한 세상을 아프게 겪다
一九八六년 五월
끝내 화합할 수 없었던 세상에 등돌리고
한강에 몸 던져
눈물과 부끄러움마저 거두어 숨어버린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

反省하지 않는 삶
아파하면서 살아 갈 용기 없는 삶
이 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의 부당한 빼앗김을 방관하는 삶
덧보태어 함께 빼앗는 삶
부끄럽게 죽을 것

함께 절망하고 함께 괴로워하다
홀로 빠져버린다고
자살로 도피해버린다고
욕하라,
욕하고 잊으라,
눈앞에 아득해오는 밤
서성이다
서성이다
스물 둘에 떠난 친구여

더 이상 늙지도 바래지도 않는
그 푸른 젊음과 순수
그 단단한 아픔의 응어리에
남은 벗들의 기억을 새긴다

故 박혜정 학형 10주기 추모집 가운데 <비문>

이 죽음 앞에서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비겁하지만 나는 내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은 조용히 던져둔다 했다. 그가 죽은 지 꼭 십년이 되던 96년 8월,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운동의 공간 속에서 함께 지샜던 그 많은 밤들. 서로를 할퀴던 무수한 말들의 난도질. 나는 군대로 그리고 너는 운동을 정리한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던가. 사랑이라는 말을 쓰기조차 부끄러워했던, 아니, 그런 치열함을 갖지 못한 우리 세대의 운동에 욕지기를 퍼부으며 짐짓 부끄러운 척 했던 나날들. 그리고 너는 갔다, 알량한 유서 하나 없이.
서산 바닷가. 너의 몸은 타고 있었을 게다... 시원하던?
네 몸 속의 타는 불을 끄기 위해 바다로 간 너를 남은 우리는 다시 태웠지. 하지만, 화내진 않겠지. 네가 좋아하던 남원의 광한루 강가에 다시 보내주었으니.
재작년엔 상록의 교정에서 너를 아는 몇몇 이들이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름도 없고 어떤 표식도 없이, 볼품없이 그냥 심어 놓았다. 왜, 오디를 따다가 술을 담근 후 일주일도 채 못 참아 오디酒가 아닌 '오디 띄운 소주'를 먹던 그 방 앞에다. 그날도 비가 왔었다. 비오는 날 나무를 심으면 잘 자란다고 좋아들 하더라. 뿌리를 묻고서는 다져지지 않는 땅만을 괜히 밟아주고는 늘 그랬듯 그 방에서 술을 마셨다.
소나무 하나, 네가 남긴 게 그것이었니? 아니지, 더 열심히 살라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비겁해하면서, 그래도 살아내라는 말을 남기지 않았니? 너를 마지막 보내는 날에도, 차마 눈물 흘리지 말라고, 그 힘으로 힘든 세상 살아내라고 말했었지. 하지만 서울 올라와 혼자 있으니, 그리고 밤이 되니 어쩔 수 없더구나. 술을 먹어서라고 변명했지만, 밤새 느껴 울었지. 넌 옆에서 지켜보며, '이번 한 번은 봐줄게'라고 말하며 조그만 손으로 살아남은 나를 토닥여주더구나.

너는 박혜정이라는 이름을 아니? 혹 거기서는 서로 만나 친하게 지낼지도. 나는 본 적이 없지만 너라면 볼 수 있을 거야. 박혜정 선배를 기억하면 네가 기억나고 너를 기억하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구나.
너 몫까지 열심히 살아내라고 지금도 그러는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내긴 할거야, 네가 있는 한. 자꾸만 그렇게 말하는구나, 5월이라고, 다시 내 몸이 뜨거워진다고... 이제 놓아두렴. 그리고 지켜봐 주렴. 나도 금기였던 네 이름을 풀어 둘 테니 너도 이 세상에 또아리 튼 네 몸뚱이, 쉬게 하렴.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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