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가을.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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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보장제는 100조 원짜리 공공 근로?

일자리 보장제로는 돌봄서비스 제공, 기후변화 대응 못해

김진현 | 정책교육국장
최근 정의당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일자리 보장제(이하 보장제)를 핵심 노동정책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지난 4월 30일, “코로나19 시대의 기본소득은 전 국민 일자리 보장제”라고 발언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8월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제1공약으로 ‘신노동법’을 내세웠다. 신노동법은 일할 권리와 단결할 권리, 여가의 권리로 나뉘는데 이 중 일할 권리는 일자리보장제로 구체화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인 김병권씨도 7월 6일 레디앙에 기고한 칼럼에서 ‘기본소득’ 대신 ‘일자리 보장제’라면서 이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일자리 보장제란 간단히 말해, 실업자를 모두 국가가 고용하는 정책이다. 이들은 적절한 수준의 생활임금을 받으면서 돌봄노동, 지역사회 인프라 개보수, 기후변화 대응 노동을 하게 된다. 보장제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로는, 완전 고용이 달성되고, 국가가 생활임금과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함으로써 저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점이 있다. 또 수요를 창출해 경제성장에도 기여하며 돌봄 등 사회서비스를 대량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보장제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데, 주로 현대화폐이론의 신봉자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화폐이론은 국가의 화폐 발행 능력에는 한계가 없으며, 화폐를 많이 발행할수록 민간 경제가 좋아진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주목을 받았고, 2020년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세를 불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여러 선진국은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량의 화폐를 발행했는데, 국가 파산과 같은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대화폐이론을 활용해 보장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즉, 국가가 화폐를 발행해 실업자들을 모두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자리 보장제는 실제 시행했을 때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보장제는 수요 창출이나 투자 확대,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지 못해서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민간 부문 일자리를 감소시킬 가능성도 크다. 찬성론자들은 돌봄노동 같이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일자리나, 대체에너지 관련 부품 생산 등 기후변화 대응 일자리도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모두 일자리 보장제의 본질에 맞지 않는 일자리라서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일자리 보장제는 현재도 시행되고 있는 공공 근로의 확장판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들어가는 재원은 60~100조 원 정도로, 2020년 법인세 총액보다 큰 수준이다. 따라서 복지 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면 증세를 통한 재원조달 계획을 내고 사회적 동의를 끌어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찬성론자들은 상세한 재원조달 계획 대신, 거의 돈이 안 든다는 식으로 쟁점을 회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세계가 빚더미에 짓눌리는 상황에서 증세 이야기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걸 인식하고 있고, 여차하면 국가부채로 재원을 충당할 생각일지도 모른다.
 

일자리 보장제란 무엇인가?

 
아직까지 정의당이 일자리 보장제 구상을 구체화해서 제시한 문건은 없다. 따라서 일자리 보장제를 주창하는 핵심 이론가이자, 현대화폐이론의 주요 학자인 파블리나 R. 체르네바와 L. 랜덜 레이를 참고해 보장제를 살펴보자.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에서도 보장제를 언급할 때 항상 이들의 논의를 인용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비슷한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원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기간 제한 없이 일자리를 제공한다. 미국 기준으로 시급 15달러이며, 건강보험 및 기타 복리후생 혜택도 제공한다. 일자리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돌봄 노동이다. 아동 돌봄이나 노인 돌봄에 종사하는 일자리다. 둘째는 지역사회 인프라 개보수와 관련된 노동이다. 도서관을 수리한다거나 놀이터를 만드는 등의 일자리다. 마지막은 기후변화 관련 일자리로 태양광 패널 설치, 생태친화적 농업 등의 노동을 들 수 있다. 

일자리를 마련하고 배분하는 데 있어 지방정부가 주축이 된다. 중앙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은 받지만, 지역사회에 어떤 일자리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지출을 결정하는 것은 지방정부다. 여기서 일자리를 만들고 시급을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대전제가 있다. 바로 이미 존재하는 일자리를 없애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 부문이나 공공 부문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는다. 시급은 너무 높으면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몰려올 것이므로, 생활이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낮춘다. 

체르네바와 레이 등의 해외 학자들과 전용복 경성대학교 교수와 같은 국내 논자들은 일자리 보장제로 기대되는 효과를 여러 가지 제시한다. 먼저 거시적으로는 경제 성장 효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니, 그들이 임금을 받아서 소비하면 수요가 증가하고, 수요가 투자를 촉진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삶의 측면에서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 일자리의 질이 향상되고 실업으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주장한다. 일자리 보장제에서 제공하는 시급보다 낮거나 노동 환경이 열악한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국가 보장 일자리로 이직할 것이다. 그러면 민간 기업들도 이에 맞춰 임금을 올려주거나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다. 이는 사실상의 최저 임금 인상 효과도 가져오며, 이로써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생활 임금을 획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공공서비스의 측면에서는, 돌봄 노동과 같은 사회서비스가 확충됨으로써 지역 공동체의 ‘미충족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일자리 보장제에는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할까? 아직까지 일자리 보장제에 필요한 예산을 추계한 연구는 없다. 심지어 정의당조차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추계 결과는 해외 사례로, 랜덜 레이 같은 학자들이 미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것이다. 물론 이 추계 결과도 세부적인 항목들은 생략했다고 많은 비판을 받긴 했다. 한국에서는 ‘진보너머’ 운영위원인 박가분씨가 《뉴스톱》에 기고한 기사에서 아주 간략한 형태의 소요 비용 예측을 소개한 바 있으며, 2021년 6월 30일에 있었던 정의당 일자리 보장제 토론회에서도 경성대 전용복 교수가 예상 소요 비용을 간단히 언급했다.

먼저 박가분 씨의 예측부터 살펴보자. 그는 2019년 기준,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잠재 취업가능자와 잠재 구직자를 모두 합한 351만 명 중 일자리 보장제에 응할 인원을 241만 명으로 예측했다. 인건비는 최저임금 기준 연봉 2100만 원에 사회보험료, 각종 수당 및 복리후생을 더해 2600만 원으로 추정했다. 그러면 1년에 63조 원이 소요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여기에 노동자들의 교육훈련비, 장비·비품 비용, 운영비 등 간접비를 추가해야 하는데, 인건비의 20%로 가정할 수 있다. 사실 박가분씨는 간접비를 구체적으로 추정하기 어렵다고 제외했지만, 랜덜 레이도 연구에서 25%의 간접비를 추가한 바 있으므로 어설프더라도 추가하는 게 옳을 것이다. 

여기에 일자리 보장제로 절약되어 빼주는 금액이 있다. 기초생활보장예산(13조 원)과 고용보험 지출(14조 원)이다. 레이의 추정법은 약 절반이 절감된다고 보는 것이므로 두 개 합쳐 약 13조 원이 절감된다. 그러면 최대 약 63조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가정할 수 있다. 물론 이 금액은 어느 범위까지의 인구를 일자리 보장제의 대상으로 설정하는지에 따라 감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완전 고용이 목표라는 일자리 보장제의 본질에 부합하려면 60조 원 정도의 예산은 필요하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전용복 교수의 소요 예산은 이보다 훨씬 적다. 그는 확장적 실업자 340만 명 중 최대 210만 명의 참여를 예상했다. 그리고 임금 총액, 사회보험료, 간접비를 모두 합쳐 60조 원을 예상했다. 문제는 여기서 빼주는 금액이다. 사회복지비 감액 및 참여자 소득세 징세분(10조 원)을 빼주었고, 고용노동 예산 35조 6570억 원 중 대부분을 제하고, GDP가 증가할 거라는 가정하에 세수 확대 금액(7.5~10조 원)까지 빼주었다. 결국 순비용을 5~7.5조 원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실업자들이 정부가 마련한 일자리에 모두 취업한다고 고용노동 예산이 사라질 순 없다. 예컨대, 민간일자리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훈련 비용 지원 사업이나 저소득 노동자 지원 사업을 중단하긴 어려울 것이다. GDP가 증가할 거라는 예측도 본인의 주장일 뿐, 근거가 부족하다. 전용복 교수의 소요 예산 예측은 과도한 전제에 기초해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박가분 씨의 예상 비용을 기준으로 논의한다.

이제부터는 일자리 보장제가 기대하는 효과들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재원 마련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자. 
 

일자리 보장제로 인한 경제 성장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일자리 보장제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포스트-케인지언 학파에 속해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임금 증가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수요-주도 경제 성장 모델’을 지지한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 주도 성장’도 포함되는데, 보장제와 사촌 관계쯤 되는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경제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함으로써, 소득 주도 성장은 실패한 것이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보장제는 어떠할까?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규모로 보장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따져볼 수밖에 없다. 전용복 교수는 수요 증가 → 가동률 증가 → 투자 증가 → 생산성 향상 및 생산량 증가라는 경로를 통해 일자리 보장제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수요가 증가한다는 가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일자리 보장제 예산 63조 원을 조달하려면 증세를 하거나 국채를 발행해 빚을 내야 한다. 빚을 내는 선택지는 뒤에서 자세히 서술하겠다. 한국 세금 수입 중 규모가 가장 큰 세 항목이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다. 2020년 기준으로 각각 98조, 56조, 65조 원이다. 부가가치세는 상품을 구매할 때 모든 사람이 동일한 비율(10%)로 부담하므로 역진적 성격이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인상되는 효과가 있으므로 수요를 감소시킨다. 법인세로 소요 예산을 충당하려면 세율을 두 배 가까이 증가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자본 도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자본 도피가 없다고 해도, 투자가 줄어 민간 일자리가 감소한다. 

결국 소득세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수요 증가 효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게 될 것이다. 노동자 간 분배이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다른 노동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고소득층에게만 선택적으로 증세를 했을 경우에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고소득층 중심으로 세금을 올릴 경우에 소득 상위 구간 세율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고, 엄청난 조세 저항이 발생할 것이다. 실제 프랑스가 2013년 최고 세율이 75%에 달하는 부유세를 도입했을 때 고소득자들이 해외로 대거 도피하는 일이 있었다. 부유세 도입의 결과로 얻은 세수도 소득세의 1%도 채 안 되었다. 보장제를 주장하는 논자들에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나 전략은 없어 보인다. 또 생산성 하락이 만연한 자본주의에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친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요가 증가하면 투자도 증가한다는 가정 역시 문제가 있다. 기업 투자는 수요보다도 이윤율에 더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수요 증가로 유휴설비를 가동하면(즉 가동률이 높아지면) 기업 수익성이 향상되기 때문에 투자 유인이 발생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업이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투자를 결정할 때 염두에 두는 건 경기 변동(또는 수요의 변화)에 따른 가동률 변화가 아니라 평균적 가동률이다. 기업의 투자 결정에서 핵심은 평균 가동률에서의, 즉 예측 가능한 수요에서의 이윤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윤율 결정에 핵심은 자본생산성이며, 자본생산성은 노동을 절약하기 위해(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자본의 양으로 결정된다. 정부가 억지로 수요를 늘려도 자본생산성이 낮은 상태에서는 투자가 증가하지 못한다. 참고로 투자에 있어 수요보다 생산성을 강조하는 건 마르크스주의뿐만이 아니라 신고전파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케인스의 유효수요 이론은 20세기 초중반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자본생산성 상승 기간에 설득력이 있었을 뿐이다.

투자 증가로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란 가정도 문제가 있다. 투자가 증가하면, 즉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자본재의 양이 증가하면, 당연히 노동생산성은 상승한다. 하지만 기업에게 중요한 건 노동생산성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자본의 양, 즉 자본생산성이 중요하다. 자본생산성이 투자 자본의 수익률, 즉 이윤율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케인스주의 계열의 경제학은 이 자본생산성을 무시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낮아지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증적으로 봐도, 이론적으로 봐도, 선진국에서의 자본생산성은 20세기 후반부터 하락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가들이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 개발에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은, 1900년대 초중반에 발생했던 2차 산업혁명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산업혁명 수준의 기술혁신만이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본소득이나 일자리 보장제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전망에 대해 더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을 기정사실화 한다든지, 대규모 재정지출 정책을 재원 조달 계획 없이 제출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기술혁신에 대한 낙관적 인식 없이는 불가능한 주장이다.
 

일자리 보장제는 민간 일자리를 감소시킬 것이다

 
일자리 보장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최저 임금의 일자리를 원하는 만큼 제공하면, 최저 임금을 민간 부문에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이다. 국가가 최저 임금의 일자리를 기간 제한 없이 제공하는데, 굳이 민간 부문의 최저 임금 미만 일자리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지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민간 부문 일자리의 최저임금 현실화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민간 부문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최저 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는 주로 숙박 및 음식점업,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도매 및 소매업과 같이 사업 자체의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에 집중되어 있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간병노동자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임금을 최저 임금으로 맞춰주기보다는 아예 사업을 정리할 가능성도 높다. 설령 최저 임금에 맞춰준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다시 그 일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은데, 똑같은 최저 임금이라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영세업체에 있는 것보다 국가가 보장하는 일자리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지다. 최저 임금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생산성이 낮은 부문은 정리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거기서 실업한 노동자들을 일자리 보장제로 고용하는 데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갈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민주노동연구원의 최근 이슈페이퍼에 의하면, 한국의 최저임금 미달자는 79만 명보다는 많고 319만 명보다 적다. 시행되고 있는 통계 조사에 여러 문제가 있어서 정확한 추정이 어렵다. 보수적으로 100만 명으로 가정하고 박가분 씨의 계산대로 연봉 2600만 원과 간접비 20%를 적용하면 31조 원이 소요된다. 앞서 계산한 비용 63조 원과 합치면 94조 원이 되어 약 100조 원에 육박한다.

1930~1940년대 미국에서 시행했던 뉴딜 정책의 사례는 민간일자리를 없애지 않는 임금 수준의 국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뉴딜 프로젝트 당시 최저/최고시급과 최고주급이 정해져 있었다. 프로젝트의 임금 수준이 민간기업에 비해 높으면, 노동자들이 민간에서 프로젝트로 이동했다. 그러면 민간기업은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민간기업의 경영이 악화되었다. 그렇다고 프로젝트의 임금 수준을 민간 최저임금에 맞추면,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고 프로젝트 노동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최저시급은 올리되, 최고주급으로 총임금을 제한하면,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민간 일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프로젝트에 머무르려고 했다. 민간 일자리가 워낙 불안정한 것에 비해 뉴딜 프로젝트 일자리는 정해진 기한 안에는 안정적인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자리 보장제는 진정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

 
한편 일자리 보장제로 인해 사회의 돌봄서비스가 대폭 확대될 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돌봄노동은 보장제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험과 숙련이 필요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노인 돌봄 일자리는 요양보호사라는 자격증이 엄연히 존재하고, 몇 달간 교육훈련을 받아야 수행할 수 있다. 아동 돌봄 일자리는 더 긴 교육 기간이 필요하다. 이는 기후 변화 일자리도 마찬가지인데, 태양광 패널 설치나 생태친화적 농업 역시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다. 반면 국가 보장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민간 부문으로의 이직을 전제로 한 일자리라서 누구나 쉽게 진입하고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지원자에 한해 교육비와 생활비를 지급하고 직업훈련을 받게 할 수도 있으나,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2021년 기준으로 요양보호사 자격 누적 취득자는 118만 명인데, 2021년 6월 기준으로 활동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51만 명밖에 안 된다. 요양보호사 노동이 고된 것에 비해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세한 업체에서는 최저임금도 안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돌봄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자리 보장제가 아니라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이며, 경력이 있는 요양보호사들이 일자리로 돌아올 경우 노인들이 얻을 수 있는 편익도 훨씬 크다. 물론 아무런 교육과 경험이 필요 없는 일자리를 억지로 돌봄서비스 부문에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게 과연 사회가 원하는 노동인지는 질문해봐야 한다.

결국 일자리 보장제가 제공하는 일자리의 조건을 따져 보면, 오늘날 정부가 경기 침체시에 제공하는 공공근로 일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숙련노동이어야 하고,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이 현재 제공하고 있지 않아야 하며, 경기 활성화로 인해 실업자가 줄어들 때 사라져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과거 미국의 뉴딜과도 큰 차이가 있다. 뉴딜은 고속도로나 댐 같은 대규모 건설사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일자리 보장제로 댐을 건설하다가 경기가 좋아지면 노동력이 확 줄어 공사가 중단될 수 있다. 찬성론자들은 시민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지역사회의 숨어 있는 미충족 욕구를 찾아내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얼마나 될까? 200~300만 명이 일할 정도로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과연 그 서비스가 세금을 올려서 제공받을 만큼 필요한지도 시민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일자리 보장제와 현대화폐이론의 관계

 
사실 지금까지 비판한 지점 중 재원 조달과 관련된 쟁점은 체르네바나 랜덜 레이와 같은 해외 일자리 보장제 옹호자들에게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임금으로 지급하면 된다는 현대화폐이론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앙은행이 화폐를 아무리 많이 찍어내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으며, 부채 위기도 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현대화폐이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일자리 보장제는 시행해도 무방하다. 비록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제공하지 못할 것이지만, 세금을 걷을 낼 필요 없이 한국은행에서 찍어낸 돈을 주고 시키면 된다. 

하지만 현대화폐이론과 결합된 일자리 보장제는 실제 시행되었을 때 많은 문제점을 낳게 될 것이다. 먼저 상품의 명목 가격이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자산 가격에 거품이 끼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화 현상이 본격화되기 전인 1970년대에는 대규모 적자재정의 결과가 주로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고, 금융시장이 발달한 이후인 이번 코로나19 위기 때는 주로 자산 거품으로 나타났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이 실물 경제 투자가 아니라, 은행에 예금으로 남아있으면서, 이 예금이 자산 구매에만 사용되고 있어서다.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위기에서 증가한 현금은 사실 실물 경제가 너무 비관적 상태라 인플레이션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로 자본 도피와 외환위기의 위험성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2007-2009년 금융위기 당시 천문학적인 수량 완화를 단행했고,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도 비슷한 규모의 수량 완화를 했지만 미국은 파산하지 않았다며 현대화폐이론의 적합성을 주장한다. 또 일본의 사례를 들어서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기축통화 발행국이다. 세계 모든 국가는 무역 거래와 외환 위기 방지를 위해 대량의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달러 자산을 보유해야만 하기 때문에 미국 달러 가치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미국은 첨단산업 부문에서는 아직까지도 세계 1위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고 군사력 역시 흔들림 없는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는 궁여지책으로 빚을 내고 있는 것이지, 결코 의도한 바가 아니다. 잃어버린 30년 이후의 일본은 가계와 기업 모두 빚을 내지 않고, 투자와 소비를 줄이는 게 일상화 되었다. 2017년 기준으로 기업의 40%가 아예 빚이 없는데, 이는 전무후무한 수치다. 여기에 기술혁신은 정체되고 고령화는 심각해졌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국가가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상황은 심각하고, 출구 없는 부채 축적은 지속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 때는 일본은행이 가진 주식 가격이 폭락해 사상 초유의 일본은행 파산을 겪을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굴러가는 건, 과거에 일궈놓은 기술과 자산이 많아 이렇다 할 경제 성장 없이도 먹고 살 수 있는 채권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대량의 자본 도피가 현실화 될 수 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이 화폐 가치 하락과 경제 성장률 하락을 염려하여 자산을 처분하고 달러를 요구하는 것이다. 달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외환위기는 불가피하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비슷한 조짐이 보인 적이 있다. 현재 집권 세력은 현대화폐이론의 영향을 받고 있는 포퓰리즘 정당인데, 이들의 집권 시기 동안 몇 번이나 국가부도 가능성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왑이 2~3배 가량 증가한 사례가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든지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화폐이론의 추종자들은 섣불리 한국은행이 화폐를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하자는 이야기를 못한다. 대신 일자리 보장제에 예산이 얼마 안 든다거나, 한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낮다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론적 배경이 현대화폐이론이다 보니, 국가 부채 증가에 남들보다 훨씬 더 둔감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60조~100조에 가까운 재정이 소요되는 정책을 예산 추계도 없이 주장부터 하고 나서는 게 그 증거다. 그리고 이런 재정 지출에 대한 둔감함은 민주당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따로 또 같은’ 노선을 추구할 가능성도 크다. 
 

일자리 보장제의 이름만 가져다 쓰는 민주노총과 여타 정치세력

 
일자리 보장제가 기본 소득과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내용의 정책에 일자리 보장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참세상연구소나 사회변혁노동자당은 기존의 국유화론에 국가직업보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선전하고 있다. 이들은 일자리 보장제로는 부족하다면서, 재벌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일자리를 보장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대전제인 “민간 부문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기 때문에 보장제가 아니다. 또 일자리의 종류도 서비스업뿐만 아니라 제조업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식의 국유화 전략은 과거 소련의 전철을 답습하는 것으로 사회운동의 대안이 되긴 어렵다. 소련은 생산수단의 법적 소유권만 국가로 이전하고 그것을 사회주의라 이름 붙였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생산을 조직할 수 없었다. 생산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권력은 소련공산당에 모두 귀속되어 있었고,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노동을 하고 있었다. 소련식 국유화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생산성과 이윤율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고용과 생산량 증대를 달성해야 했기 때문에, 대량의 인적·물적 자원이 소모되지만 산출은 낮은 비효율적인 생산 체계가 만들어졌다. 

민주노총은 국유화론에 공공부문 확대 요구를 합쳐서 일자리 국가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역시 일자리 보장제와는 무관하다. 오는 10월 20일로 예정된 총파업 요구안 2번 핵심요구가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일자리 국가책임’이다. 여기에 항공, 조선 등 기간산업 국유화, 110만 돌봄일자리 국가책임제, 기후위기 대응 국가 일자리 창출이 포함되어 있다. 돌봄노동과 기후위기 대응 일자리는 얼핏 보면 일자리 보장제의 요구와 비슷하지만, 핵심적인 차이는 정규직 여부일 것이다. 보장제 일자리는 해고는 없지만 경기 활성화가 되면 사라질 임시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규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요구는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문재인이 2017년 대선 당시 공약 1호로 내세웠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과 유사하다.
 

정의당, 민주노총, 민주당의 공통점은 바로 책임 없는 재정지출

 
지금까지 보장제의 내용과 비판 지점을 살펴봤다. 보장제 일자리는 현재도 시행되고 있는 공공근로의 확장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확장 범위가 넓어질수록 노동보다는 복지에 근접하게 된다. 세금을 지출해서 수행해야 할 필요한 노동이기보다는, 뭐라도 시켜야 해서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자리가 된다. 일자리가 없어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최저임금이라도 제공한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지만, 복지에는 재원 마련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증세에 동의하고, 지속가능한 수준의 체계적 실행 방안이 마련된다면, 복지 차원에서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 하락 국면에 코로나19 위기까지 더해진 지금,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증세 계획을 제출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중요한 재정지출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거나, 근거가 부족한 장밋빛 경제 성장론으로 덧칠해서 논의를 회피하려 한다.

이런 경향은 비단 정의당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민주노총을 비롯해 여러 운동세력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책임 없는 재정지출 요구를 정부가 거부하면서 타협지점이 만들어졌다면, 오늘날의 민주당은 여기에 동조하면서 비합리적인 재정 지출을 통해 표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를 가리기 위한 경제 발전 전략으로 소득주도 성장과 같은 사이비 경제학을 가져다 쓰는데, 이는 현대화폐이론과 보장제를 수용하는 정의당이나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소득주도 성장, 현대화폐이론, 기본소득은 서로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경제학적 근거 대신 기득권에 대한 반감을 통해 지지를 얻고자 한다는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정의당의 보장제, 민주노총의 공공부문 확대, 이재명 도지사의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 계획 없는 대규모 재정지출 정책이라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이런 묻지마식 재정지출은 위험한데, 결국 세수를 넘어서는 지출은 국가부채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일자리 보장제를 시행하고, 경제성장률이 지금과 같이 계속 하락한다면 매년 100조 원의 예산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세 없이 모두 부채로 충당한다고 가정하면 매년 GDP의 약 5%의 국가부채가 누적된다. 20년만 지나도 GDP의 100%의 국가부채가 추가로 생긴다. 이는 당연히 지속가능하지 않다.

물론 한국은 아직까지는 단기간 내 부채위기의 가능성은 없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2년에 5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140%를 넘는 이탈리아나 230%를 넘는 일본에 비하면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위험 요소가 있는데, 빠른 고령화 속도와 가계부채다.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는 이미 빠른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더 빨라질 것이다. 202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로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의 1.35, 대만의 1보다 낮은 것으로 한국과 비슷한 국가는 0.86을 기록한 홍콩 정도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2018년에 최고치를 찍은 후 감소 추세다. 한 사람의 생산가능인구가 몇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지 측정하는 총부양비율은 2015년 36.2(1인당 0.362명을 부양한다는 의미)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후 상승 중이다. 2055년에 100을 넘길 예정이다.

가계부채는 2021년 2분기 기준으로 1805조로 2020년 GDP와 비슷한 수준까지 불어났다. 일본이나 유럽은 60%대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도 8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어떤 계기로든 가계부채가 부실화되면, 그 중 상당수는 국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부채무는 2007년 GDP 대비 64%였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2012년 100%까지 상승했다. 아일랜드 역시 비슷한 시기에 부동산거품 폭발과 가계부채 부실화가 은행위기로 이어져 정부부채가 2007년 25%에서 2012년 120%까지 치솟았다. 한국의 경우 빌려준 주체는 은행이고, 빌린 주체는 가계인데 어느 쪽도 파산시킬 수 없는 경제 주체다. 부실의 주체였던 기업들을 정리한 1997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따라서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킬 묘안이 없다면, 국가부채 수준이라도 낮게 유지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 제1노총을 자랑하는 민주노총, 집권 정당인 민주당 중 그 누구도 국가 부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기회가 있을 때 빨리 써버리자는 생각으로, 비합리적이고 근거 없는 정책들을 내놓고 재정을 낭비하자고 부추기고 있다. 복지 정책을 경제 성장 정책이라고 거짓말하면서 재원 조달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진정한 진보정당의 길이 어떤 것인지 정의당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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