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가을. 1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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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나

임필수 | 정책교육실장

1. 문재인 정부와 한국사회의 변화: 문 정부가 파괴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그 이전 정부와도 분명히 구분되는 확연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오히려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확대되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전에는 말로는 가장 강력하게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다가, 집권 후에는 가장 의식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청와대 중심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인 2012년에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그렇지만 대통령 권력이 본인에게 점점 더 가까이 오자, 말을 완전히 바꾸었다. “과연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현실에서 대통령제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충분히 검증된 바가 없다”고.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급과 인원, 권한이 다시 확대되었다. 행정부 기구와 병렬적이면서 비대한 청와대 기구는 한편으로는 청와대 중심의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의 발원지이자, 다른 한편으로 행정부·관료의 무능이 나타나는 원천이 된다. ‘청와대 중심’ 정부가 되다 보니 ‘장관 패싱’이 일상다반사가 된다. 그에 따라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정부를 운영한다는 약속이나, 책임장관과 책임총리에 관한 약속도 빈말이 되어버렸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필연적으로 ‘기생정당, 식물국회’를 낳을 수밖에 없고, 한국 민주화의 실패를 낳는 중대한 원인으로 작동한다. 

둘째,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조건에서 ‘법의 지배’라든가, 사법부 독립과 같은 현대적 정치원리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는 조국,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시기를 거치며 극대화되었다. 예를 들어, 추 장관은 임명되자마자 여권 인사의 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좌천시키는 ‘사법방해’를 단행했다. 이에 항의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을 두고, 민주당의 신정훈 의원은 “법의 지배는 무섭고 위험하다”고 답했고, 신동근 의원은 “사실상의 반정부 투쟁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민주당 인사들은 법의 지배, 즉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즉 통치자마저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인식 자체를 부정했다. 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민주당 주류 정치인의 정치관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였다. 

심지어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검찰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라고까지 주장했는데, 이는 수사, 기소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주장과 같다. 이는 법의 지배를 부정하고, ‘법을 이용하는 지배’, 즉 권력자의 자의적인 법률 해석이나 파괴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도입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명분으로 문 정부가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검찰을 핍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었다. 

셋째, 문 정부는 경제학적 근거를 결여한 비전통적 경제정책을 구사했다. 대표적으로, 집권 초기에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웠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이론적 기반은 이른바 ‘포스트케인즈주의’의 임금주도성장론이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주류 경제학이 공유하는 지반을 무시한다. 즉 임금주도성장론은 자본가 이윤의 저축=투자가 아니라 노동자 임금의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본축적과 기술진보의 중요성을 무시한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식의 소득주도성장론은 포스트케인즈주의의 임금주도성장론과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분배율 증가도 주요하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사실상 폐기한 후로, 재정적자와 국채에 의존하는 경제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보유하면,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고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 조세’도 발생한다. 정부의 조세수입은 증가하지만, 민간이 보유한 화폐의 가치는 하락하는 현상 말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조세의 효과는 역진적이다. 물가 상승이 식료품, 주거, 수도, 광열 등 저소득층의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에 집중됨에 따라 저소득층이 더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결국,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계급 간 불의를 낳는다. 

만약 △국채를 민간이 보유하면, 국채 원리금을 미래세대가 갚아야 하니 세대 간 불의가 발생한다. 게다가 미래세대 중에서도 국채를 보유하지 못한 노동자가 국채를 보유한 자본가에게 빚을 갚아야 하니, 계급 간 불의도 발생한다. 

또한 △국채를 외국인이 보유하면, 국부유출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경제성장 속도를 앞지르는 과대한 국채 증가는 빚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폰지게임(다단계 피라미드) 상태를 유발하고, 계급 간, 세대 간 불의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문 정부는 이 역시 무시하고 있다. 

넷째, 문 정부는 트럼프식의 대북협상을 조장하거나 추종하면서, 대북정책의 거의 완전한 실패를 낳았다. 이는 문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 또는 과대한 주관적 희망에 기댔기 때문이기도 하다. 트럼프 본인의 독특한 개성을 고려하더라도,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컨센서스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즉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표방하고, 핵 능력을 어느 정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최종적 비핵화로 나아가는 단계적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본격적 협상 돌입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현재 북한이 문 정부를 극렬하게 비난하는 상황이나, 북한처럼 노골적인 언사는 아니지만 미국 측 관련 인사들 역시 문 정부에 협상 실패의 책임이 있다는 암시적 발언을 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문 정부가 북한과 미국 양자 모두에 계속 잘못된 신호, 심지어 모순적인 신호를 준 것은 아닌가, 그래서 양자로부터 완전히 신뢰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 후 문 정부는 대북정책을 지속할 기회를 완전히 상실했다. 

다섯째, 문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를 자칭했으나, 동북아 모든 국가와 관계가 더 악화했거나 불안정하다. 이미 2017년 미국 《디플로맷》은 문 정부를 풍자하는 의미에서 ‘균형자 상’을 주면서 “우방국과의 관계가 이렇게 나쁜데, 적성국이 따로 필요하겠나”라고 지적한 바 있다. 

먼저 청와대와 여당은 징용 노동자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반일 민족주의를 선동하며 지금까지도 외교관계 단절에 버금가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최근 중국 시진핑 정부가 보이는 대내정책, 대외정책에 대한 분명한 경각심을 표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홍콩 문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권위주의적 통치 의지를 전혀 숨기지 않고 있다. 또한 최근 미얀마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적 정부를 직간접적으로 후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이 호주에 가하는 경제보복이나, 중러 간 군사협력의 강화, 중국의 핵무기 현대화 계획 등은 모두 위협적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문 정부는 이에 대해 대체로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국에 압박을 당하는 형국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각국이 합의하는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의 원리를 옹호해야 한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이러한 규칙과 그 원리를 천명한 바 없다. 이런 조건에서 그때그때 즉흥적, 임기응변적 대응을 하다 보니, 오히려 동북아 각국과의 관계가 불안정하거나 더 악화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요약하면, △ 제왕적 대통령제는 현대적인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리나, 그에 동반되는 법의 지배, 사법부 독립이라는 원리를 위협하며, △ 경제학적 근거를 결여한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협하며, △ 주관적인 국제정세 인식과 즉흥적인 외교정책, 대북정책은 원칙과 규칙에 입각한 국제질서의 수립에 위협을 가한다. 

그런데 문 정부가 위협하는 이러한 요소들은 현대적인 정치의 기본원리이자,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공감, 공유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문 정부와 현 집권세력은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공유하면서도 경쟁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파괴해왔다. 그다음에 남는 것은 전(前)현대적, 반(反)현대적인 포퓰리즘 정치일 뿐이다.   
 

2. 문재인 정부 시기 사회운동의 변질, 타락: 누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나?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정부의 취약한 기반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운동의 ‘독자성’, ‘자율성’이라는 외관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간 노력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기 이후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외관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2020년 21대 총선을 보면, 시민운동 출신 인사가 급조된 ‘비례위성정당’ 후보로 나가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이제 시민운동이 곧 정당(즉 민주당)이 되고, 시민운동이 의회, 청와대, 정부기관 등등의 권력으로 가는 징검다리, 발판이 되었다. 또한 이러면서 국가권력과 시민운동이 유착 관계를 형성했다. 시민운동은 특정 정당, 정부를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정당과 정부는 시민운동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새로 선출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년간 시민사회와 시민단체에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지원된 총금액이 무려 1조 원에 가깝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시민운동의 유착 관계는 문재인 정부하 몇 가지 사건에서 심각한 쟁점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시작된 정의기억연대 사건(민주당 윤미향 의원), 박원순 피소 사실 유출 사건(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또한 조국 사태가 벌어진 후, 참여연대 김경률 집행위원장이 조 장관을 감싸는 시민단체 인사들을 위선자로 지칭하면서 “권력예비군, 어공(어쩌다 공무원)… 이른바 촛불혁명정부에서 권력주변 맴돈 것 말고 한 게 뭐 있느냐”고 한 말을 두고, 참여연대 내에서 징계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권경애 변호사는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두고 “민주화 세력이 독재를 꿈꾸고 있다”며 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바로 이 김경률, 권경애 씨가 진중권, 서민, 강양구 씨와 함께 ‘조국흑서팀’을 구성했다. 다른 한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김헌동 부동산본부장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요약하면,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첫째, 기존 시민운동이 비판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윤미향, 여연 사건이 어떤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설사 앞으로 이와 똑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민주당과 시민운동의 정치적-물질적 후견관계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시민운동의 진실한 권력 비판 기능은 기대하기 힘들다. 둘째, 그런데, 그러한 권력 비판 기능을 노동자운동, 민중운동이 충분히 대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눈에서 볼 때는 조국흑서팀과 같은 몇몇 개인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비판적 시민운동’ 전체를 대체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때늦은 후회겠지만, 민중운동, 노동자운동은 문재인 정부 비판의 주도력을 행사하기에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다. 첫째, 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일관된 비판세력을 자임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의 말과 행동이 모순을 일으키는 여러 쟁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반복적 비판을 가했어야 했다. 예컨대 청와대가 직접 대통령 개헌 발의안을 내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제왕적 대통령제’ 비판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다. 둘째, 아무리 늦어도 조국 사태가 벌어지는 시점부터 전면전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누구는 ‘검찰개혁’과 같은 집권세력의 명분 앞에서 혼선을 겪고, 다른 누구는 선거법 개정이라는 ‘실익’을 추구하며 조국 옹호세력과 분명한 선을 긋지 못했다. 

이처럼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후, 문 정부 비판의 상징은 시민운동, 지식인층에서는 조국흑서팀이 가져가고, 정치계에서는 ‘검찰’이라는 가장 격렬한 격전지에서 싸웠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가져가게 되었다. 게다가 지난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문재인 정부 ‘심판’이라는 정치적 구도는 이미 확인되었고, 그 성과를 국민의힘이 가져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금도 야권 대선후보 개개인의 지지율 변동과 무관하게, 대체로 정권 재창출보다 정권교체 여론이 더 높게 나오고 있다. 여기에 노동자운동이나 진보정당이 낄 자리가 있어 보이는가. 따라서 노동자운동은 대선 대응방안을 논하기에 앞서, 왜 이런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는가를 정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왜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은 문재인 정부 비판에 주저하거나, 심지어 명시적 또는 암묵적 옹호자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 

그렇지만 진보정당이나 노동조합은 자기 평가라는 기본적인 과제에는 눈을 감은 채로 또다시 대선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맹목은 한쪽에서는 민주노총 전직 임원을 비롯한 노동자운동 인사들의 이재명 캠프행으로 표출된다. 또 다른 쪽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포퓰리즘 정책을 따라잡으려는 진보정당의 시도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번 특집을 구성했다. 첫 번째 글은 ‘왜 조국 사태에서 정의당은 조국 장관 임명 찬성에 손을 드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 이유는 단연 정당명부제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선거법 개정이었다.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정의당의 인식은 도대체 왜,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확립된 것인가. 이 문제를 따져보니 2010~20년, 10년에 걸친 야권연대, 또는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에 대한 평가로 확장되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글은 진보정당이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에 대한 자기 평가 없이 대선에 뛰어들면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포퓰리즘 정책 경쟁을 벌이려 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로 기획했다. 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 쪽과의 연대가 아니라 경쟁이기 때문에, 지난 10년의 야권연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양당 포퓰리즘 정책의 공통점을 찾으려는 ‘연대’ 시도로 급전환될 수 있다. 두 글은 이러한 우려를 염두에 두고,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이 제시하는 일자리 보장제와 청년정책이 왜 포퓰리즘 정책일 수밖에 없는가, 그 위험성은 무엇인가 해명하고자 한다. 

기관지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사회운동포커스》로 발표된 「심상정 1호 공약, 희망 사항 나열로 민주당과 다를 수 있나: 정의당 심상정 대선 예비후보 노동 공약 비판」(2021.9.9.)도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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