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2021 겨울.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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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가족의 혁명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남은 질문

메리 게이브리얼의 『사랑과 자본』

이혜인 | 회원,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부장

1. 마르크스와 가족의 일대기로서 『사랑과 자본』의 특징

 

『사랑과 자본』은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들의 실제 삶을 그려내는 책이다. 저자 메리 게이브리얼은 서문에서 ‘지금까지 출판된 마르크스 전기는 치열한 이데올로기 격전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마르크스를 공산주의의 성자로 보는지, 망상에 사로잡힌 범죄자로 보는지에 따라 그와 가족들의 삶이 다르게 묘사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저자는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마르크스와 가족들의 편지를 수집하여 편지에 담긴 인물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마르크스와 그 가족의 삶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쓰인 『사랑과 자본』의 특징은 찬양과 비난을 배제하고 마르크스의 삶을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복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특징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면은 마르크스 추종자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혼외자식이라는 마르크스의 치부를 숨기지 않고 아내가 겪은 고통을 묘사하면서도, 한평생 아내의 신의가 꺾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 부분이다.

책의 두 번째 특징은 마르크스뿐 아니라 그의 가족에 조명을 비추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첫 계기가 마르크스의 가족사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밝힌다. 그에 걸맞게 아내인 예니 마르크스와 세 딸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았다. 마르크스 가족이 살았던 19세기는 유럽에서 산업과 노동운동이 동시에 발전하고 각국에서 혁명이 발발하며 사상가와 정치가로 자신을 칭하는 사람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시기였다. 그 속에서 아내인 예니는 마르크스의 사회적 활동의 한 축을 굳건히 지켰고, 딸들은 성장하며 정치적 입장을 발전시키고 일부는 그 자신이 혁명가로 거듭났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태동을 배경으로 한 마르크스의 가족사가 마르크스 사상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본다.

마르크스의 실제 삶을 추적하고 마르크스의 가족사를 샅샅이 밝힌 끝에 저자가 밝힌 결론은 사랑이다. 이는 아이들의 죽음, 빈곤,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유지되었던 부부의 사랑과, 아버지를 존경하며 그의 원대한 사상을 위해 헌신했던 세 딸의 마르크스에 대한, 그리고 혁명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의 전기 제목이 『사랑과 자본』이라는 것은 일견 어울리지 않지만, 마르크스와 그 가족의 생애를 좇다 보면 사랑이란 단어가 꼭 들어맞는다고 느끼게 된다.
 

2. 19세기 역사 속 혁명가 마르크스

 
마르크스를 경제학 이론으로 접한 사람에게 마르크스의 혁명가로서의 삶은 새로운 감동과 교훈을 준다. 저자는 “마르크스 가족은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혁명 속에서 먹고 자고 숨 쉬었다”고 표현한다. 그 말처럼 마르크스는 당대의 사회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치열하게 판단하고 실천했으며 그의 이론 역시 실천의 결과로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책은 마르크스가 유럽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노동운동의 성장, 분출하는 혁명을 계기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혁명가로서 마르크스 일생의 중요한 순간을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내와 결혼하자마자 언론을 통해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1842년에는 쾰른의 《라인 신문》에 억압적인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다. 그 결과 프로이센 정부로부터 추방당한 마르크스는 1849년 런던에 정착하기까지 파리와 브뤼셀을 거치며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난 것은 1844년이다. 엥겔스는 영국 직조회사 경영자로 일하며 알게 된 노동자의 현실을 바탕으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썼으며 마르크스는 새로운 산업체제 속에서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목격하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열흘 밤낮의 대화를 통해 이념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1850년 엥겔스가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맨체스터로 떠난 이후 약 20년간을 떨어져 살았다. 그러나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평생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지로 살게 된다.

1848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발생한 시기에 마르크스는 혁명의 물결을 독일로 옮겨가기 위해 분투했다. 엥겔스는 당시를 “혁명의 파도가 모든 과학적 추구를 뒷전으로 만들었다. 당시 중요한 것은 운동에 개입하는 것이었다.”라고 표현했다. 마르크스는 《신라인 신문》을 통해 중간계급에 보장된 권리가 노동자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민들에게 무장할 것을 촉구했다. 《신라인 신문》은 독일 전역에서 가장 많이 읽힘으로써 성공을 거두었지만, 1848년 혁명의 결과는 유럽 전역에서의 반혁명의 승리였다. 마르크스는 유럽 정부의 무자비함과 중간계급의 비겁함을 목도하며 분노한다. 이 1848년 혁명을 통해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완전히 결합’했다고 평가된다.

마르크스가 필생의 역작인 『자본』을 집필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1848년 혁명이 반혁명으로 끝나는 것을 목격한 마르크스가 혁명의 가능성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함을 깨닫고, 자본주의 경제 법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혁명의 객관적 전망을 밝히려 했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책은 또 다른 장면을 묘사한다. 마르크스가 1851년 영국 만국박람회에서 자유무역의 승리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목도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전기 원동기를 보며 아이처럼 기뻐하면서도, 그러한 인류의 경이로운 기술 진보가 어떻게 소수의 사람만을 이롭게 만드는지를 생각했다.

이후 마르크스는 인터내셔널이 설립되기 전까지 생계를 유지하며 책을 집필하는 데 몰두했다.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글을 기고하는 한편 백과사전을 집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휴식기인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괴로운 나날이었다. 1850년을 시작으로 5년 사이에 세 명의 아이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의 정치 활동은 인터내셔널과 함께 다시 꽃핀다. 인터내셔널은 1860년대 초반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유럽 노동운동도 급속히 성장하는 배경 속에서 설립된다. 1864년 인터내셔널 설립과 함께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마무리되는 담화를 발표한다. 담화는 몇 주 내에 유럽 전역과 미국까지 퍼지며, 종전까지 출판물과 정치적 활동이 변변치 않았던 마르크스가 성공적으로 정치에 복귀하는 계기가 된다. 

마르크스의 삶에서 파리 코뮌을 빼놓을 수는 없다. 1871년,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을 계기로 파리 시민들이 자치, 코뮌을 요구하며 봉기하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초반에는 봉기가 무익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이후에는 입장을 선회한다. 파리 코뮌에서 시민들의 영웅성과 함께 새로운 정치형태의 단초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예상되었던 코뮌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새로운 사회의 영광스러운 선구자”로 명명한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을 분석한 글 『프랑스 내전』으로 명성을 얻고 운동의 정신적 아버지로 추앙받게 된다. 말년에 마르크스는 독일사회주의노동자당의 창당을 목격하고 새로운 세대인 베른슈타인과 베벨을 만난다. 책은 마르크스의 사위인 라파르그의 장례식에 등장한 블라디미르 레닌을 묘사하며 끝맺는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정신으로 교육된 사람들이 공산주의 체제를 건설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일생이 끝난 이후 러시아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을 암시한다.

이후 마르크스의 사상은 세계를 양분했다. 마르크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양분된 세계의 한 축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그토록 위대한 지적 성취를 이룬 인물임에도 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지적인 면모만큼이나 열정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책은 격동하는 19세기의 유럽을 마르크스의 시선으로 꼼꼼히 따라가며, 역사 속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간 마르크스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마르크스는 정치적 견해를 신문에 발표하며 직업 활동을 시작했고, 혁명이 발생한 순간에는 입장을 발표하고 운동을 지도했으며, 자신의 사명이 이론에 있다고 느낄 때는 정치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학문적 작업에 몰두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설명력을 갖는 이유는 그 자신이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으며 현실의 요구에 충실한 작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3. 마르크스 가족의 혁명에 대한 사랑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마르크스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마르크스를 있게 만든 아내와 딸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책의 매력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가족사는 ‘개인적, 정치적으로 가혹한 현실에 의해 좌절된 희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책은 마르크스와 그 가족이 현실에 어떻게 맞서고 어떤 희망을 품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예니는 귀족의 딸이었으며 마르크스는 대학을 졸업했다. 이는 마르크스 부부가 자신들의 신분을 통해 더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 삶을 일부러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니는 마르크스의 정치적 야망에 공명하며 귀족들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택했고, 마르크스는 법조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정치의 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마르크스 부부가 어떠한 각오를 했더라도 경제적 궁핍 때문에 아이를 잃는 슬픔까지는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섯째인 프란치스카가 ‘요람도 없이’ 지내다가 죽었을 때, 예니는 상실의 고통과 함께, 필요한 기본적인 생활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부부에게는 성장한 세 딸에게도 역시 부모의 출신에 걸맞은 성장 환경을 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있었다. 비극이 대물림되었다고 보아야 할까? 첫째 예니헨은 아버지인 마르크스보다 먼저 죽었고, 둘째 라우라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어린 아이를 잃는 슬픔을 세 번이나 겪어야 했다. 막내 엘레아노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마르크스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속한 것은, 혁명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1855년 아들 무슈가 죽고 전에 없던 고통을 겪는 중에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최근 견뎌야 했던 무서운 고통들 속에서도, 자네와 자네의 우정에 대한 생각이, 우리가 함께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해볼 만한 일이 아직 있다는 희망과 마찬가지로 항상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돼주었네.”라고 썼다. 변혁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자기 세대 혹은 자식 세대를 위해 살기보다는 일관되게 미래의 세대를 위해 살았다.

또한 그 사랑은 마르크스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이 공유하는 것이었다. 예니는 마르크스에게 걸맞은 지적 소양을 갖추었고, 남편의 사상이 세상에 반향을 일으킬 것이란 믿음을 평생 잃지 않았으며, 마르크스의 집으로 몰려오는 혁명가들을 환대하고 돌보며 공산주의자로서 살았다. 세 딸은 지적으로 성장하여 마르크스의 비서 역할을 하며 토론 상대가 되었다. 마르크스가 가장 자신과 닮았다고 말한 예니헨은 아버지와 인터내셔널 공식석상에 함께하며 인터내셔널 출범을 도왔고 라우라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번역하고 편집했다. 두 딸이 주로 마르크스를 보조했다면, 엘레아노르는 자신의 독립적인 정치 활동을 꾸렸고, 영국 노동운동을 조직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딸들이 힘든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 딸은 모두 자신의 파트너로 혁명가를 선택했다. 그 자신이 이미 혁명에 투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를 따라 살아가는 일이 아내와 세 딸에게 고달픈 일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비극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수호하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책은 시대의 요구 때문에 남성 가족을 부양하는 역할을 맡았을지언정, 여성들이 언제나 역사에 함께했으며 자신의 삶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구성한 여성들 역시 있었음을 담담하게 밝힌다.

예니의 장례식에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은 조사를 읽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자신의 가장 커다란 행복으로 여긴 여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니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헌신했던 대상은 다름 아닌 전체 민중이었다. 그리고 이는 예니뿐 아니라 마르크스 가족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마르크스 가족은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개인적 고통을 감내하며 미래 세대를 위해 희생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괴로움으로만 점철된 삶이 아닌, 민중의 행복이라는 자신의 가장 커다란 행복을 힘껏 추구한 삶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능동적으로 규정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데에 혁명가 가족의 위대함이 있다.
 

4. 마르크스의 질문과 21세기 마르크스주의자의 답

 
마르크스는 일생을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서 역사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했으며, 자신을 희생해 미래 세대를 위한 한 걸음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자가 딛고 선 현실은 무엇이고 미래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먼저 눈여겨볼 점은 마르크스가 실천적으로 아나키즘과 맹동주의를 경계하며 일평생을 보냈다는 점이다.

1848년 혁명 시기 마르크스는 군대를 만들어 독일로 쳐들어가 공화국을 쟁취하겠다는 헤르베크의 계획을, 정부 내 보수 세력의 입지를 강화할 뿐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1850년에는 ‘공산주의자동맹’이 분열했다. 즉시 혁명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 빌리히와 대규모 사회변혁은 훗날의 과제라고 본 마르크스가 대립했고, 마르크스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은 끝에 소규모의 동료만을 남겨둔 채 고립되었다. 1870년을 전후해 인터내셔널에서 바쿠닌과 대립한 일은 유명하다. 노동자들이 권리를 얻으려면 폭력으로 힘을 과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쿠닌에게 맞서 마르크스는 정치교육과 조직으로의 집결을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봉기와 혁명은 다르며, 혁명은 전체 사회를 재구성하는 일이지만 봉기는 무엇도 재구성하지 못하며 자신을 파괴할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가 동료들에게 비난당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진정한 혁명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지식과 역량이 필요하다는 신념이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노동운동이 번창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살았다. 그 때문에 혁명이 꽃피기도 전에 탄압당해 가능성이 파괴되는 일을 걱정했다. 그렇다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자본주의조차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되는 지금, 마르크스주의자가 걱정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국가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에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지식과 역량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마르크스는 기존의 사회 질서가 힘을 잃을 때 노동자계급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전체 사회가 붕괴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이 더 비참한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이를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싸움은 그때마다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 또는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멸로 끝났다.”라고 표현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은 해결되어야 하고, 국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대체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국가를 파괴하는 데 골몰한 아나키스트를 비판했다. 21세기의 독특한 점은 지배계급이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데 실패할 것 같은 상황에서, 지배계급 내부에서 민중을 등에 업고 국가의 기반을 앞장서서 부정하는 세력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살아 있었다면 아나키스트가 아닌 지배계급의 맹동을 우려해야 했을 것이다.

현재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는 현대국가의 전제를 흔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한 ‘촛불혁명’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이라는 칼을 휘두르고 대통령의 권한을 비정상적으로 강화하며 민주주의의 규범을 무너뜨렸으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거짓 약속으로 경제 위기를 심화시켰다. 대선을 앞둔 지금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소년공 출신’을 자처하며 노동자계급과의 친화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더 강력한 대통령 권한을 외치고, 기본소득과 같이 더 거짓된 약속을 일삼으며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사회운동은 강력한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청하는 민원인 역할에 머무르며 대안적 세력으로 자리잡는 데 실패했다. 사회운동의 공백은 파시즘이 파고든다. 저소득층 블루칼라 노동자의 높은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트럼프의 충격이 남한에도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다시, 마르크스주의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본』은 발간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사람들이 기대한 마르크스의 새 책은 신속하고 과감한 혁명의 촉구였던 반면 『자본』에서 묘사된 혁명은 길고 느린 과정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일생은 혁명이 임박했으니 들고 일어나라고 말하는 대신, 노동자계급의 역량을 쌓아 올리는 길고 느린 과정을 이어갈 수 있는지 묻는다. 그에 대한 21세기 남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대답은 과감한 혁명에 대한 거짓 약속을 버리고 지배계급의 파시즘으로의 질주를 전면에서 막아서는 한편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역량을 갖추는 단초를 찾는 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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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자본주의 자본론 노동가치론 4차산업혁명 21세기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