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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42호

호텔리베라 노동자들, 250일의 싸움

김원정 | 호원,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
호텔리베라노조가 처음 투쟁을 시작한 것은 지난 해 5월 17일이었다. 따뜻한 봄 햇살아래 모여 출정식을 가졌던 300여명의 조합원들. 깔끔한 유니폼 대신 투쟁복을 입었는데도 그렇게 단정해 보였던 서비스 노동자들. 그녀들과 연대한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어느덧 나는 제법 호텔 노동자들이 겪는 남다른 소외감을 공감하게 되었다.
지하 4층 노조사무실, 지하 5층 전기 설비실, 허름한 탈의실, 세탁물 더미를 실어 나르는 직원용 엘리베이터... 이 '노동자만의 공간'은 번듯한 지상과 너무 다른 세계이다. 그곳은 호텔에 가본 적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물론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들도 상상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렇게 모든 서비스를 마치 공기처럼 의식하지 못할 만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호텔노동자들의 노동이다.
그런 '지하세계 사람들'이 2003년 8월 6일 전면파업 선언과 함께 지상으로 나왔다. 번듯한 호텔 앞에 천막을 쳐 새로운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와 자기 손으로 차 문 하나 여닫지 않는 고객들에게 '우리의 고충을 알아주었으면'하는 간절한 눈길을 보내는 조합원들. 그러나 그 둘 사이의 교감은 쉽지 않아 보였다. 휘양 찬란한 로비에 앉아 외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민주노조 사수' 구호는 어떤 투쟁 현장 보다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 '민주노조 사수'로

호텔리베라노조는 87년에 설립되어 제법 긴 역사를 가진 노조이고, 비교적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해 왔다. 서울과 유성에 각각 노동조합 본조직와 지부를 두고 있는 호텔리베라노조의 파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파업은 2001년이었는데, 시설 용역화 저지를 위한 투쟁으로 단 9일 동안의 파업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당시 계약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데도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 노력으로 유난히 비정규직이 많은 호텔에서 그나마 계약직 직원이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파업엔 12명의 비정규직이 참여하여 정규직과 함께 투쟁하기도 했다.
평화로운 호텔이 술렁거리기 시작한 것은 건설, 철강, 골프장 등 십여 개의 계열사가 있는 신안그룹이 2000년 말 호텔리베라를 인수하고 현재 호텔의 총지배인이자 대표이사인 박길수 사장이 대표 이사가 되면서부터다.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은 노동조합의 기본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용자이다. 무노조 경영도 아니다. 그가 바라는 노조 위원장의 역할은 우습지만 ‘회장의 친위대장’이다. 호텔 사측은 끊임없이 민주노조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박길수 대표이사는 노조 간부를 부당 강등, 전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인사권 남용과 부당노동행위를 수 차례 자행했다. 급기야 작년 1월부터 시작된 2003년 임금․단체교섭에서 노조전임자 축소안을 제출하였다. 15년의 역사를 가진 노동조합에 전임자 축소를 요구한 것은 그야말로 민주노조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었던 셈이다.
같은 해 4월 비정규직 정규직화, 임금인상 등 노조의 주요 요구안이 일정하게 반영된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을 노조가 수용하겠다고 했는데도, 사측이 거부하는 극히 보기 드문 사태가 발생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영업손실이 수억 원에 이르더라도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듯 사측은 사실상 노조의 파업을 유도하였다.

청담동 한복판은 연일 폭력의 아수라장으로

5월 17일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하여 불과 십여 차례 하루파업과 집회를 한 것이 전부였지만 사측은 7월 5일, 8월 6일 서울과 유성에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것도 파업에 열성적으로 참가한 조합원들이 있는 사업장에 한에서만 벌어진 공격적 직장폐쇄였다. 이에 노조는 유성리베라 직장폐쇄가 이루어진 8월 6일을 기해 전면파업에 돌입하였고, 그 파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동안 사측이 저지른 노조탄압 사례는 가히 백화점 수준이다. 서울, 유성 노조간부 재산 가압류 액이 6억 8천만 원 이르렀고, 지난 11월에는 조합원 개개인에게 손배가압류 협박을 하여 서울 조합원 중 다수가 파업대오에서 이탈했다.
아예 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많은 장기투쟁사업장과 다르게 호텔리베라 사측은 항상 상황을 극한 대립으로 몰고 간 다음, 구사대와 복귀한 조합원들을 동원하여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호텔 앞 천막 농성장을 3번이나 침탈했고, 평화적인 1인 시위와 사업장내 합법적인 집회를 방해하여 아수라장을 만든 것도 수 차례다. 작년 12월 마지막 날에는 사측의 만행이 극에 달하였는데, 조합원들은 술 냄새를 풍기는 구사대에게 둘러 쌓여 집단폭행을 당했고, 연대 투쟁한 사람들이 크게 다치기도 했다.
교섭에 나와서는 노조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 일단 복귀하지 않으면 협상할 수 없다는 등 단체교섭 내용과는 무관한 주장만 반복하며 사실상 민주노조가 사라질 때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직원들을 선동하여 노조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표이사가 조장하는 노-노 갈등은 마치 노-사간 대리전의 양상을 띠면서 복귀자와 파업 참가자들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다.

사용자는 무엇하나 거칠 것이 없다

이렇듯 호텔리베라의 노사관계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키는 주범은 신안그룹의 박순석 회장이다. 그가 지난해 굿모닝시티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였고, 김대중정권 때부터 한화갑 등 민주당 중진세력과 끈끈한 유착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썬엔문 사건 등 작년과 올해 정신 없이 터져 나온 각종 부정부패 스캔들을 비껴가며 여전히 법 집행의 사각지대에 안전히 착륙해 있다.
민주노조를 인정하기 않으려는 박순석 회장의 고집 때문에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부와 경찰이 어떤 기대할만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사정 탓이다. 노동부와 경찰은 명명백백한 부당노동행위에도, 코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도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얼마전 노조를 취재한 한 기자의 말처럼 '노무현 시대 노사관계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호텔리베라이다. 노무현 정권 1년 동안 이 나라 민주노조의 조합원들은 인간으로 대접을 받을 권리도 없는 국민으로 내몰렸다. 작년 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5명의 노동자, 그러나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또 다른 열사들이 민주노조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다. 더욱이 이른바 '노사관계 로드맵'을 법제화해 노조의 최소한의 기반마저 무너뜨리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호언장담 덕에 박순석 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악질 사용자들의 사기(?)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아직도 카드 되는 사람이 있어?"

가끔 술자리를 가질 때 조합원들이 주고받는 말이다. 파업대오에 남아있는 21명의 조합원의 대부분은 작년 7월 직장폐쇄부터 지금까지 월급한푼 못 받으며 싸운 사람들이다. 또 그중 대부분이 여성이고, 다수가 아주머니들이다. 사측의 도를 넘어선 물리적인 폭력 때문에 자기 몸뚱이 하나 지키기도 벅찬 게 지금 조합원들의 현실이다. 오십이 넘은 한 아주머니는 폭력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다치고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가기를 수 차례, 온 몸에 남아있는 기운이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2003년의 마지막 날 열린 집회에서 부하직원으로 일했던 계약직 사원에게 폭행을 당하고 몇 시간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 한 여성조합원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을 당하면서도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합원들은 여전히 '민주노조 사수'를 곱씹으며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자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만은 아니다. 불평등한 노사관계, 더러운 정경유착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 한복판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는 스스로가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PSSP
주제어
노동 여성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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