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2.42호

한국적 시각에서 본 군사주의, 전쟁, 그리고 평화

홍근수 | 사회진보연대 지도위원,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양 살인사건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공동대표,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기독교 목사
4회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신 존경하는 세계평화애호가들과 인도와 세계 각 국에서 오신 언론인 여러분, 오늘 제가 ‘한반도의 군사주의, 전쟁과 평화의 주제’, 특히 북한 핵문제에 대하여 여러분들에게 제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저의 이 견해는 남한의 운동권의 전체적인 통일된 의견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반미자주, 반전․평화 운동에 앞장서서 투쟁해 온 한 사람으로서 남한의 투쟁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2년 6월 13일 미군이 장갑차로 한국의 두 여중생을 치어 죽인 끔찍한 사건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당시 12살에 불과했던 심미선, 신효순 두 여중생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다가 미군 장갑차에 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두 여중생을 무참하게 죽인 주한미군은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Mark Walker)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Fernando Nino) 병장으로 그들은 모두 미 2사단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군 당국은 두 여중생을 죽여 놓고서도 두 미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주장하여 한국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에 한국 국민들은 범국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살인미군 처벌, 한국 국민에 대한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공개 사과, 살인미군의 한국 법정에서의 재판, 한미소파 개정 등 네 가지를 미국 정부에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요구를 모두 거부하였습니다. 살인미군에 대한 재판권을 한국에 넘길 것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요구를 무시한 미군 당국은 2002년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미군 판사와 미군 검사, 미국 변호사, 미군 배심원으로 이뤄진 자신의 군사법정에서 두 미군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미 군사재판은 두 미군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위한 재판 놀음이었습니다. 장갑차 운전병은 관제병에게 차를 세우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증언이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반면 관제병 니노는 자신의 통신장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증언이 받아들여져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이들은 무죄평결을 받은 후 신병 상의 안전 이유 등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전출되었습니다.
이러한 무죄평결은 한국의 주권 부재를 절감케 했고 남한에서 반미 감정을 폭발시켰습니다.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고 보는 한국인들은 이것이 모두 주권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군사훈련 중에 발생한 사건을 한국 법정에서 다를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는 불평등한 한․미 소파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한국 정부의 군사주권의 부재의 현실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혔는데 이는 또한 불평등한 한미 관계와 한국 측의 군사주권의 부재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분노의 표현이자 우리 한국인들의 민족자주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밝힌 것이었습니다. 정전 상태에서 50년이 넘는 생은 한미간의 관계가 불평하게, 북미 간의 적대적인 관계가 지속되게 했다고 믿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집권은 민족자주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이와 같은 염원이 뒷받침된 것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등장한 뒤로도 종속적인 한미관계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게 이라크 파병을 요구하였고 한국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라크 추가 파병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정부는 한국정부로 하여금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한국 국민들의 민족자주와 평화투쟁을 탄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한국 정부 당국은 두 여중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자주와 평화를 위한 촛불기념탑마저 철거하는 폭거를 자행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여러분들께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이라 불리는 한미동맹의 재조정에 관한 한미 당국간 회의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주한미군의 동북아시아에서 역할 확대, 한미연합전력증강, 주한미군 재배치,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전적으로 미국이 대 북한 선제 공격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중국에 대한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남한 민중들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미국의 한미군사동맹의 강화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줄기찬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남한 민중들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 한국부담 반대,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주한미군 사격장 신설 반대, 한미연합훈련 반대, 한국 국방비 삭감 촉구, 전시작전권 즉각 환수,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등의 요구를 내걸고 힘차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남한 민중들은 민족자주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지향과 염원을 꺾어버리기 위한 미국의 비열한 책동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이라크로 보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최근 남한의 반미감정은 두 여중생의 죽음으로 더욱 불타올랐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 북한 전쟁위협으로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남한 민중은 같은 동족인 북한을 공동의 운명체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한반도의 지형상,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도 함께 파멸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그래서 더욱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깡패국가로,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요구하는 등 북한을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선제공격 대상의 하나로 삼는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선 북한 핵포기 후 안전보장’을 떠들면서 북의 일방적 굴복을 강요하고 있고 경수로 건설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에게 압력을 가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미국은 겉으로는 6자 회담을 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6자 회담을 북한에 대한 압박의 장으로 밖에 여기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지금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부시입니다. 지난 해 5월 미국 공화당의 웰던 의원이 북한을 방문할 때 제시했던 안은 하나의 해결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웰던의 구상은 '북한의 핵포기'와 '미국의 불가침 약속'을 동시에, 단계적으로 진행하여 일괄타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같은 합리적 안마저 거부하였습니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을 가해서는 안 되며,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무조건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또한 미국은 한국 정부에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강요 등의 내정간섭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한국인들의 주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부시 행정부의 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 정책을 포기하고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해제하고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여야 하며 두 나라들 사이에 외교관을 교류하여 합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국가적 주권을 인정하고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문서로 약속한다면, 북한 핵문제는 얼마든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준수하고 NPT의 복귀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에게도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같은 미국의 조치야말로 북미간의 현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북미 관계의 정상화는 한국의 평화와 통일로 이어질 것이며 동아시아를 교류와 번영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미국 언론인인 셀리그 헤리슨(Selig Harrison)은 대북 경제제재가 미국 대선 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부시가 만일 재선되면 그 후인 2005년 4월에 전쟁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조지 부시가 대선에서 낙선되는 것이 미국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도 유익합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 해소는 오늘 한국 민중들의 가장 절박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것은 꼭 한국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세계의 문제입니다. 세계의 평화 애호 민중들이 미국의 대한반도 전쟁책동을 중지시키고 부시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도록 연대하고 함께 싸워나가도록 합시다. 또한 세계의 평화애호 민중들이 불의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더욱 강고한 투쟁을 벌이도록 합시다. 세계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첫째는 전쟁은 문제해결의 수단으로서 포기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최전방 군부대 앞에 ‘내일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오늘 전쟁을 준비하라!’는 구호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전쟁의 불가피성이나 필요악을 정당화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불가피한 것도 필요악도 아닙니다. 오늘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문제는 사실은 인류의 사멸이냐 생존이냐를 가르는 문제입니다. 오늘의 전쟁은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핵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을 피하는 길이 곧 인류가 사는 길입니다.
둘째로 전쟁 비용이 평화비용보다 더 싸다는 군사주의적 사고를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평화가 전쟁에 비해 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은 전쟁주의자나 군사주의자의 사고입니다.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것은 무기를 팔아서 자기의 배를 채우고, 다른 나라를 정복함으로써 자기 나라의 국익을 도모하려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사고입니다. 군수산업이 미국의 정치․경제․외교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은 하이태크놀로지와 거대한 자본을 갖고서 무기생산으로 돈벌이를 하는 미국의 군수산업 구조에 그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신의 군사주의노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관계에서 힘의 균형, 공포의 균형만이 평화를 보장한다고 떠들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 구축과 선제공격을 공식적인 국가안보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계 평화의 위기는 바로 이와 같은 부시정권의 일방적이고 패권적인 군사주의 노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오늘 세계에는 패권적 군사주의 논리가 팽배합니다. 지금 미국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지구화’를 또한 제창하고 실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계의 평화애호 민중들은 이러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논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세계에 넘치는 무기장난감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군사주의적 사고에 물들게 합니다. 따라서 총․칼․탱크와 같은 무기장난감을 점차 줄이고 없애나가야 하며 대신 평화적 정서를 갖게 하는 장난감을 더 많이 보급함으로써 어려서부터 평화의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인간 경시 풍조를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전쟁은 병사란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온 천하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유대 격언에는 ‘어떤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먼저 그를 지으신 조물주를 저주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의 노래 가운데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사람은 ‘목적적인 존재’이지 결코 ‘수단’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 발 자욱 더 발전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동학’(東學)에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이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가 아주 중요시해야 하겠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박애, 평등, 자유’ 이 세 가지를 내세웠고, 성서는 ‘사랑, 믿음, 희망’은 영원히 있을 것인데 그 중 제일은 사랑이다’ 고 말합니다. 나는 ‘생명, 선, 평화’,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중 제일은 생명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랑보다 생명, 희망보다 평화, 믿음보다 선이 더욱 절실하다고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힘없는 나라나 개인이라도 ‘자주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평화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꿇어 엎드려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서서 자유인으로 죽겠다’고 한 말은 주후 70년의 유대․로마 전쟁에서 죽음으로 마감한 한 유대인 사제의 설교입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철학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의 연설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이라크 민중들의 자주성을 짓밟고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라크에 대한 한국군의 파병 또한 이라크 민중들의 자주권을 짓밟는데 동참하는 것이므로 한국 민중들은 그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해 둡니다. 북한 핵문제를 빌미로 한 미국의 대 북한 전쟁위협, 나아가 우리 민족전체의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맞서 단호히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민중들은 주권국가의 자주성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미국의 군사주의에 맞서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든 세계평화애호 민중들과 힘을 합칠 것입니다. 불의한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결코 안 됩니다. 군사주의, 반테러리스트 전쟁, ‘신자유주의 지구화’ 등의 제국주의적 사상 없이 평화는 쟁취될 수 있습니다. 이라크나 세계 다른 어떤 나라에 대한 전쟁 없이 ‘다른 세계는 가능합니다.’ 부시와 제국주의 없는 ‘다른 세상은 가능합니다.’ 고맙습니다.PSSP
주제어
평화 국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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