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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1-2.42호

송두율교수 사건에 대한 소고

김세균 | 사회진보연대 대표, 송두율 대책위 상임대표
송두율교수사건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가까워 오고 있다. 오는 2월 10일(목)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311호 법정에서 열리는 제8차 공판 - 2월 3일에 열리는 제7차 공판에 황장엽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출두하지 않으면 이 공판이 제7차 공판이 된다 ―에서는 검찰 측이 추가신청한 증인 2명의 증언만이 아니라 검찰의 구형, 변호인들의 최후변론 및 피고인의 최후진술까지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주후인 2월 24일 선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송교수가 국보법 상으로 중대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이 너무나 명백하고, 또 그런 이상 재판을 받게 되면 중형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간의 공판과정에서는 검찰이 송교수에게 덮어씌운 거의 대부분의 혐의사실들이 근거 없는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송교수에 대한 가장 중요한 혐의사실인 ‘송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는 혐의를 입증할만한 아무런 유력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때문에 황장엽이 증인으로 출두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증언이 그 혐의를 입증할만한 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또한 송교수는 그간 6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던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를 북한이 대남적화정책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했다는 혐의가 있다. 하지만 길승흠 전서울대교수와 권만학 경희대교수의 증언을 통해 억지 주장으로 반박 받았다. 송교수의 저술활동 내용이 북한의 주체사상 등을 선전하는 내용이라는 혐의 역시 학문 활동에 대한 악의에 찬 왜곡에 불과했다. 송교수 저술의 이적성을 증언한 검찰 측 증인인 김광동은 재판장으로부터 ‘증인으로서의 자격미달’이라는 지적까지 받았고, 자신의 입북을 권유했다는 오길남의 (비공개리에 행한) 증언은 국정원에 고삐가 붙잡힌 한 인격파탄자의 횡설수설에 가까웠다. 유럽에서 국정원의 공작원으로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에 접근한 적이 있는 최창동 전 부산외국어대 법대교수의 증언 역시 재판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추측성 발언에 불과했다. 게다가 국정원 등이 결정적인 물적 증거라고 주장해온, 미국으로 망명한 전 동독주재 북한대사관 소속 외교관 김경필의 파일은 오히려 ‘송교수가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라 북한의 공작대상자였음’을 입증하는 자료였다. 그 외 송교수의 노동당 입당사실이나 북한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사실은 법적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항들이다. 그리고 송교수의 북한 방문 등이 국보법상의 잠입-탈출 및 회합-통신죄를 범했다고 검찰 측은 주장하고 있지만, 그의 북한 방문 등이 학술연구 및 남북한의 상호이해와 화해-협력 등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진실이다.
지금까지 지적한 점들과 더불어 ‘증거 없이는 무죄’라는 원칙을 지키고, 인권존중과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존중하면서 재판부가 판결을 내린다면 송교수에게 무죄는 아닐지라도 무죄에 가까운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설령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송교수에게 덮어씌운 주요한 혐의사실들을 벗겨줌으로써 일반국민들이 예상한 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형벌 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송교수가 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받게 되는가는 송교수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국보법의 운명 등과 관련하여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송교수가 중형을 받게 된다면, 이는 공안당국과 송교수에게 중형을 내리라고 아우성쳐온 수구보수세력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이 경우 앞으로의 남북교류 등은 이들 세력의 보다 엄중한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될 것이고, 근자에 이르러 국보법위반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내다시피 (그 목표가 최종적으로 사회변혁세력을 뿌리 뽑거나 무력화시키는 데에 있는) 국보법에 의한 사회통제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송교수에 대한 판결이 무죄에 가까운 것이면 그럴수록, 그 판결은 ‘해방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사건’으로 지목받아온 사건에 대한 판결인 만큼 국보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고, 국보법 자체의 페기의 필요성을 전사회적으로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로서 작용할 것이다.

송두율교수는 ‘민주화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37년 만에 고국방문의 기회를 갖기 위해 입국했다. 그가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 입국을 결행한 것은 체포영장이 발부되긴 했지만 국정원에서의 조사가 형식적인 통과의례 절차쯤으로 여기게 된 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물론 민주화기념사업회 측의 설득이 주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기념사업회 측이 그렇게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정권이 김대중정권에 이어 과거청산 차원에서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하다가 북한방문 등으로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아온 이른바 ‘해외거주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추진한 데에 기인한다. 노무현정권 하에서 적어도 정권 고위층은 아직 귀국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대부분의 해외인사들에게는 과거의 행적을 불문에 부치고 귀국의 자유를 허용하되, 거물급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혀온 송두율, 정경모 등은 ‘(준법서약서 제출을 대신하는) 국정원 조사 이후 자유체류 보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송교수가 북한 정치국후보위원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구속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발언한 것이나 노무현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나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 그리고 포용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 것 등에서 확인된다. 그렇게 본다면 현 정부가 친북좌익세력과 연대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송두율교수를 입국시켰다는 수구세력의 ‘기획입국설’은 왜곡-과장되긴 했지만 완전히 사실무근이 아니었다.
그러나 송두율교수 귀국 이후의 사태전개는 송교수 자신의 판단은 물론 정권고위층의 의도와 목표설정 등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공안당국과 한나라당 및 보수언론이 주축을 이루는 수구보수세력은 송교수에 대해 집중포화를 퍼붓는 동시에 이른바 정권 내 개혁세력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이들이 이처럼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것은 송두율교수사건이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을 높여 국보법에 의한 사회통제를 재강화하고, 그간 불리해지고 있었던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일거에 호전시킬 호재로 파악한 데에 기인한다. 아무튼 이들의 공세로 인해 송교수 문제는 그 성격이 ‘해외거주 반체제인사에 대한 포용’ 문제에서 ‘국보법의 엄격한 적용’ 문제로 변경되고, 송교수는 결국 구속기소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정권내 개혁세력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세력은 자신의 도덕적-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로서 기획한 것을 자신들이 불리해진다고 판단하자 스스로 철회했다. 그런데 이는 자유주의세력이 국보법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보법의 완전 폐지 대신 국보법 개정 내지 대체입법의 제정을 주장하고 있고, 국보법위반자의 사면 등을 추진하면서도 국보법위반자를 양산시키고 있는 것과, 그리고 개혁을 추진하면서 수구보수세력의 반발이 커지면 개혁을 실종시키고 있는 것 등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은 그들이 지닌 본래적인 반민중성으로 말미암아 역풍을 만나면 그 역풍에 맞서기 보다는 한발 물러서기를 거듭하는 비겁함과 무능함을 드러내 왔다.
반면, 민주진보세력과 반제민족주의세력은 이전부터 국보법의 페기를 줄곧 주창해 온긴 했지만, 송두율교수사건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대응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송두율교수사건의 핵심을 국보법에 관련된 문제라기보다는 지식인의 윤리에 관련된 문제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잘못을 범하는 진보인사들도 많았다. 그런데 송두율교수사건은 애초에는 죽어가는 국보법을 되살리는 계기로 작용했지만, 지금은 송교수 자신의 일관된 법정투쟁과 그의 석방을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국보법의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계기로 변하고 있다. 송두율교수 석방을 위한 투쟁을 국보법의 폐기를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민주-민중진영의 노력이 한 층 더 요구된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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