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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4.6.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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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학살과 고문의 현장

진재연 | 편집부장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는 사담 후세인시절에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지금, 후세인독재의 이라크 민중들을 해방시킨다던 미국은 바로 '그 곳'에서 끔찍하고 야만적인 성학대와 고문을 자행하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을 빼앗긴 채 절규하는 이라크 민중들의 현실은 이미 죽음보다 더 참혹하다.
우리는 이러한 잔혹한 폭력이 이라크 전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극단적인 폭력은 '새로운 전쟁'이 낳은 하나의 양상이 되었다. 그것은 (조작된)공포와 증오를 기반으로 타인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이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고문과 학살로 드러난다. 이러한 폭력은 잔혹할 뿐 아니라 일상적이다.

'가시화'되는 참혹함

잔혹한 폭력은 미디어에 의해 '가시화'되고 있는데, 우리는 아부그라이브의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보았다. 하지만 한편의 쇼가 되어버린 전쟁, 포르노와 구별할 수 없는 성학대·고문장면은 선정적으로 이용되었다. 즉, '볼거리가 되는 폭력'의 가시성에만 집착할 뿐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무수한 폭력'은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아부 그라이브의 학대가 폭로되면서 미군의 팔루자 공격이 묻혀진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디어의 선정주의는 양가적인 효과를 낳기도 하는데, 서구의 국가들 안에서 일정한 보호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동정심'과 '경계심'이 그것이다. 그것은 그 끔찍한 곳에 내가 있지 않다는 '안도감'과도 맞닿아 있다. 이미 중심부국가의 "치안"(안전)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그것은 그 외부의 사람들을 배제하고, 인권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고문과 학살은 미제국주의의 조직적·체계적 범죄

우리가 본 잔혹한 광경은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조직적인 범죄를 낳을 수 밖에 없고, 그 속에서 인간성을 말살하는 광기 어린 폭력은 '필연'적이다. 실제 이라크 포로에 대한 학대는 작년부터 있었고 ,발생했을 때부터 미군 지휘부에 보고되었으나 묵인, 은폐되었다.
이 사건 폭로의 계기가 된 미군 소장 안토니오 타구바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서의 내부 보고서'를 보면, 아부 그라이브가 미 육군 정보장교들의 철저한 통제아래 있었으며 그들의 사주에 의해 조직적으로 고문이저질러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라크 구금 시설 관리 책임자였다가 징계된 카핀스키 준장은 "이라크 포로 학대 사실을 처음부터 상급자에게 보고 했으며, 이라크 주둔 미 지상군 사령관 리카도 산체스 육군중장이 2003년 10월 이 교도소를 세 차례나 방문했다"고 증언했다. 외신들은 이라크에 미군 수용시설이 15개나 있고, 한 차례도 찾지 않은 수용시설들도 있다는 점에서 이처럼 잦은 방문은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뉴요커>는 아부 그라이브의 고문이 미 당국이 승인한 '코퍼그린'이라는 암호명에 따라 행해진 작전의 일환이었다고 폭로했다. 이 작전은 럼스펠드 국방장관,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의 승인을 받은 것이며, 부시 대통령도 이작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코퍼그린' 비밀작전의 근원은 바로 '특별접근 프로그램(SAP)'인데, SAP는 미 국방부내 최고의 비밀보안이 유지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고문금지등 각종 '규제'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효율적인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데 '격분'한 럼즈펠드장관이 주도하여 만든 것이다.
이는 야만적인 성학대와 고문이 몇몇 저질군인들의 소행이 아니라 군 수뇌부와 정보기관이 깊숙이 개입한 조직범죄이며, 그 끔찍한 행위 하나 하나가 체계적으로 기획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13일 미군이 이번 사건을 조사중인 상원군사위원회에 제출한 이라크 포로 심문규칙은 이를 더욱 뒷받침해준다. 이 규칙에 따르면 미군 장성이 문서승인을 해줄 경우, 심문관들은 최장 45시간 스트레스를 주는 자세로 포로들을 놔 둘수 있고, 30일 이상 독방에 격리 조치 할 수 있으며, 72시간까지 수면을 조절시키고, 포로를 위협하기 위해 군견도 이용할 수 있었다.


세계 곳곳의 고문

이 광기어린 범죄들은 '하나의 고문기법'일뿐이다. 이라크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고문에 시달리고 있는데, 실제로 세계 2/3에 해당하는 국가에서 고문이 여전히도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경우,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고문을 아예 '합법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긴박한 경우 피의자를 찬물에 집어넣거나 며칠간 잠을 못 자게 하는 등의 '온건한 신체적 압력'을 용의자에게 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팔레스타인의 공격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으며, 자신들이 하는 고문이 사실 '고문'이라고 할 수 없는 정도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정부에 의한 고문은 어른 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가해지는데, OMCT(세계고문방지기구)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불법적인 체포와 구금,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금시설내에서의 고문과 가혹행위로 매우 심각한 곤란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고문을 부정하거나, 고문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 은폐하고 있지만 고문은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게 사실인 것이다.
특히 미국은 자신이 적으로 간주하는 나라에 대한 조직적인 고문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아부 그라이브와 같은 '지옥'수용소가 이라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9000명의 수감자들이 미 정부가 불법적으로 운영하는 미공개 수용소 및 감금시설에 수용돼 있는 실정이다. 수용시설은 크게 3가지로 구별되는데 1>미국방부가 직접 운영하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등지의 대규모 수용소 2> 미 중앙정보국(CIA)관할의 소규모 비밀시설 3>명목상 미국 정보요원등이 파견돼 이용하는 외국 정보기관 시설이 그것이다. 부시정권이 출범한 이후 '고문합법화'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흘러나왔던 미국은 911이후 '반테러활동'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이들 시설을 가동시켰는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카타르등의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 '지옥'이라 불리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CIA운영 심문시설에서는 무수한 인권유린과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5월 13일 아프간 주둔 미군들의 현지인 포로학대 사례를 발표했는데,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사건과 똑같이 닮아있다. 또한 대규모 수용소로 알려진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수용소의 인권침해사례를 보면 수감자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압박하여 무기력하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이 나와 있다. 이러한 방법은 미 국방부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것인데, 수면방해(sleep disruption), 뜨겁거나 찬 곳에 수감자를 두는 방법(temperature extreme),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주거나 매우 밝은 빛에 노출시키는 감각공격(sensory assault)등이 그것이다. 미국이 테러용의자로 지목한 인물들을 (재판없이) 불법납치, 구금, 심문하는 것은 이미 수십년 된 관행이 되어 버렸다.
한편, 슬라보예 지젝은 이러한 고문이 (자본주의의 범례적 전략에 따라) 아웃소싱되고 있다고 말한다. 끔찍하고 더러운 고문이 하청계약을 통해 미국의 제 3세계 동맹국으로 위임되는 것인데, 이것은 법적 문제나 대중적 저항을 걱정하지 않고 고문을 행하기 위한 것이다. 즉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같은 미국의 동맹국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법의 체계적 붕괴

이러한 폭력의 형태들은 최소한의 국제질서 유지를 위한 국제법의 규율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번 이라크 포로 학대의 경우, 1950년 발효된 제네바 3협약(포로 대우에 관한 협약)위반이며, 국제 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7조(인도에 관한 죄:고문금지) 8조(전쟁범죄:포로에 대한 인간 존엄성 유린행위,모욕적인 대우 금지)를 위반한 것이다. 또한 국제인권규약 10조 1항 "자유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은 인도적으로 또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존중하여 취급된다"에도 반한다. 국제 적십자 위원회는 2004년 2월 이라크 교도소와 수감시설을 방문,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행위를 적발하고 "제네바협정 위반"이라는 의견을 미국·영국 당국에 전달하였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전부터 이미 "의지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이라는 신개념을 통해 국제법이나 유엔과 같은 국제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이해와 의지에 따라 동맹체제를 구축할 것을 천명했다. 즉, 미국의 방침에 동조,지지하는 국가들끼리의 동맹관계를 통해 세계질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미국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는 배제된다. 미국의 이러한 일방주의 전략은 911이후 더욱 강하게 드러났고, '새로운 전쟁'은 과거의 전쟁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불법적이라 여겨지던 것이 '전투양식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것은 고문 뿐 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인종청소, 계획적인 살인등 마을의 인구를 절멸시키는 방법들이다. 미국은 국제법에 의한 정치적 해결보다는 군사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전쟁" 재도입

미국의 '새로운 전쟁'은 "동일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 와 관련되는데, 이는 어떤 특정한 인종적, 종족적, 문화적 동일성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기획이다. 이른바 "순수화를 위한 폭력"인데,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제거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을 정당화한다. '새로운 전쟁'에는 동일성이 다른 지역(배제하고자 하는 지역)의 인구를 절멸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이용되는데, 증오의 확산, 우물에 독을 타는 제거·절멸의 방식등이다. 이것은 몇몇 저항세력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들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다 민간인들에 대한 '고문''학살'은 차라리 또 하나의 전쟁기술일뿐이다.
또한 인구를 제거시키는 기술로서 어떤 구역을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드는 전술을 택하기도 한다. 그것은 물리적, 경제적으로 뿐 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가능한데, '심리적'이란 그 사회의 의미에 모독을 가하여 그들의 가정에 참을 수 없는 기억을 심어줌으로써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아랍-이슬람문화의 전통이 강한 이라크에서 포로에 대한 '성학대','인권침해'는 그 어느 사회보다도 참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이슬람교에서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는 돼지고기와 술을 강제로 입에 쑤셔넣고, 금식시간인 '라마단'기간동안에 포로 식사를 변기에 넣고 먹도록 하는 등의 행위는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이자, 이라크 사회자체에 모욕을 가하는 것이다. 또한 남녀간의 엄격한 구분을 하는 이슬람에서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은 그 참혹함이 더하다. 전통적인 여성관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학대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라크에서 최근 여성학대와 강간의 사례가 계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한 여성은 미군의 강간으로 임신된 후 가족에 의해 명예살인 되었다. 아랍에서 정조를 잃은 여성이 집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가족구성원에 의해 살해되는 것은 오래된 관례이다. 또한 아브 그라이브 교도소의 한 여성포로는 강간당한 뒤 48시간이나 의식을 잃었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한 또 다른 여성은 결국 자살했다.
'새로운 전쟁'은 그 사회의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의미들을 모두 파괴한다. 미국 네오콘들이 아랍을 이해하는 바이블이라고 소개했던 아랍의 심성(The arab mind)이라는 책에는 "아랍인들은 창녀집에 가는 것 보다 자위행위에 대해 훨씬 더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디언>은 이 책이 네오콘들 뿐 만 아니라 미군들에게도 가장 널리 읽히는 책이라고 하면서, 이는 아부그라이브에서 주요한 고문의 형태로서 남성포로들에게 자위를 하도록 한 것과 관련된다고 보도했다.

절대적 가치 -인권의 문제
지금 이라크의 모습은 배제된 지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지 보여준다. 삶의 물질적 조건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존엄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폭력이 출현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다양한 수사들이 사용된다. 2003년 3월 미국의 폭스 TV에서 한 논평가는 테러리스트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없는 인간 쓰레기"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잠을 재우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등의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대받지 않을 권리, 고문받지 않을 권리, 타자들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둘 권리, 자신의 몸을 온전하게 유지 할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절대적 가치로서의 인권. 증오에 찬 타인에 대한 적대감은 결국 수많은 '어떠한 권리도 없는 인간'을 양산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타락한 제국 - 몰락의 징후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는 "증오주간(hate sessions)"이라는 기간에 모든 사람들이 '증오'를 실천해야 한다. 국가와 정보기관은 일상적인 감시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증오를 키워간다. 그것은 테러에 대한 공포로 침략전쟁을 지지한 지금의 미국사회 모습과 닮아 있다. 미국정부와 언론은 전시효과를 통해 이 참혹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미국이 처한 위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미국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미국은 더 잔혹한 폭력을 동원하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은 더욱 커질 것이다. 끝없는 폭력의 굴레. 지금 미국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이 그토록 찾아내려 했던 대량살상무기는 결국 미국 자신이었다는 것은 그 잔혹한 광경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타락한 제국주의의 모습이며, 이는 결국 제국 몰락의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헤게모니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무고한 사람들의 피와 비명을 부르고 인간성을 짓밟는 것뿐이다. 결국 미국의 전쟁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파멸을 막기 위한 유일한 길은 지금 당장 광기 어린 전쟁을 멈추고 점령군이 이라크를 떠나는 것뿐이다
또한 지금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성찰의 시간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지금 "대테러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그 곳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그를 둘러싼 다양한 폭력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해야 한다. '새로운 전쟁'의 결과로서 어떤 종류의 사회가 나타날 것인가? 이 참혹함 뒤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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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미래 이동현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