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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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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자

사회변혁의 기초생산단위

송명관 | 운영위원
이제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자
-사회변혁의 기초생산단위

송명관 | 운영위원


#1. "농가소득 마이너스, 농가 빚 가구 당 2,700만원 , 통계청, 2003년 농가경제 조사"
#2. "쌀 수매가 인하, 벼 수매가 4% 인하안 의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아나운서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들었다. 1년 동안 일을 해도 소득이 마이너스라니... 학교에서 배운 자본주의 경쟁논리로 보면 이 사업은 당장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좀 버스 분위기가 이상하다. 몇 초간의 침묵. 약간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마 대놓고 그런 얘기하지 못하리라. 온갖 사기꾼들과 요행이 판치는 지금 세상에서 농민들만큼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나운서도 연신 농가부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결론은 10년 내내 반복하는 경쟁력 향상뿐이다.
농민들을 바보로 아나?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짓고 계신 일흔 여덟의 나의 할아버지도 11월이 되면 좋은 값을 받으려고 연일 선과장에서 예쁘고 보기 좋은 귤을 골라내느라 정신 없으시다. 그렇게 벌어도 농약값, 비료값 제하고 나면 초라한 연말 정산서가 나온다. 올해 초 할아버지는 귤밭을 정리하셨다. 어차피 돈도 안되고, 몸은 힘들어 지는데 보상금이라도 받고 정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이분들에게 경쟁력이라는 것은 수요가 많이 생겨 값이 올라가는 것 밖에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수입농산물이 모든 시장바닥을 점령한 지금, 가능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쌀수매가 인하'... 개방의 충격을 완충시키기 위한 여건조성이라고 한다. 그 여건조성이라는 것은 미리부터 값싼 수입쌀에 대비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라는데, 농가부채로 농사를 포기하는 이 마당에 아예 확인사살을 하겠다는 것인가. 아마도 경제관료들은 농업이라는 것을 필요에 따라 잘라버릴 수 있는 수익사업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최소한 주식(主食)정도는 자급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을 터인데, 너무 막나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추억이 '오 필승 코리아'라는 한마디로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지만, 그 코리아는 이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코리아는 아닌 듯 하다. '민족국가 해체', 어느 정세문서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단어이지만 우리는 지금 그것을 아주 극명하게 보고 있다. 쌀을 자급할 수 있는 코리아보다는 핸드폰과 자동차를 더 잘 팔 수 있는 코리아가 인기인 지금, 사람들은 농민들을 불쌍하게만 바라볼 뿐 '생체에너지'의 생산자로는 보고 있지 않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도 무엇이 인기가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 농업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민족국가의 구성원들이 뽑은 대표가 민족국가의 보편적인 이익이 사라졌음을 인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우울한 것은 이런 논리에 우리 모두 이미 굴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살리기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리고 뼈 속 깊이 박혀있는 지금, 정작 두려운 것은 WTO의 개방압력보다 "까짓 거 신토불이 안 해도 좋으니 싼 거 먹고 경기만 살아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아닐까.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소환제'가 이슈가 됐었다. 이에 덧붙여 민중진영에서는 '국민발의제'를 미약하게나마 제기하고 토론하였다. 우리는 투쟁의 매개고리로 만드는 수준에서라도 '국민소환제/국민발의제'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그래서 '국민발의제'를 더 중요하게 여긴 이유도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지배질서가 모든 생산영역의 규율을 장악한 지금, 이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의 패러다임과 내용을 가지고 대응하지 않는 한, 우리는 패배의 쓴잔을 피할 수 없다. 하기에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 FTA 비준거부 등의 대국회 투쟁을 뛰어넘어 새로운 투쟁전술과 농업의 대안담론을 제기해야 한다. 전국의 모든 농민들이 참가하는 쌀개방 반대 투표와 국민투표 제안, 식량자급률 법제화, 식량주권사수, 농촌근거지 사수운동, 지역순환형 농촌사회 건설 등. 쌀개방 재협상을 앞둔 지금 농업, 농민, 농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결정지을 중요한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에서 소농체제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이미 간파한 지배질서의 관리자들은 대농화 정책으로 급속하게 농업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상당한 여건조성을 하고 있다. 농지 점유 상한선이 대폭 완화됐으며,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대형농장들이 등장하고 있다.
앞서 말한 농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좀더 빨리 재촉해야만 한다. 지금의 경쟁구조에서는 소농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이상의 대안을 낼 수 없는데, 집단이기주의와 비효율성으로 매도될 우려가 있다. 핵심은 현 사회가 안고 있는 소농체제의 조건들을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WTO 체제로부터의 이탈을 전략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결국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에 의존하지 않는 생산과 분배의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 인가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일농업, 민족농업, 생태농업.. '농업'이라는 단어 앞에 붙었던 수식어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제는 '농업'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언뜻 떠오르지 않지만 '사회변혁의 기초생산단위'라고 하면 어떨까. 이로서 우리는 직면하고 있는 이 농업문제가 농업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 시작이 바로 올해 쌀개방저지 투쟁에서 시작되고 있다. 어떤 항로를 따라갈 것인가. 순전히 이 문제는 사회변혁을 향한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아직 만들어진 항로는 없으니까. PSSP
주제어
생태
태그
국가 여성의 권리 페미니스트